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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43화 (43/228)

제43화

제43화 이츠리엘 (2)

산채 회의실.

나는 가장 상석에 앉아 양측에 앉은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우측에는 이리엘과 알렌이, 맞은편에는 산적, 가크웬과 피톨이 앉았다.

둘은 산적 대표로 와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전은 간단하다. 내가 주둔지를 휘젓는 동안 너희들은 잡혀간 동료들을 구하면 된다.”

기발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은 작전.

하지만 당장 오늘 움직이지 않으면 크래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당장에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작전은, 내 무력에 기대는 것뿐.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될까요?”

가크웬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크래커가 잡혀 있는 곳은 카트르시에 주둔하고 있는 뿔사슴 부대의 본진.

한마디로 제국군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그 심처에 있을 크래커를 쉽사리 빼 올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존재치 않는다면.

내가 물었다.

“넌 지금 우리가 왜 여기에 모여 있다고 생각하지?”

“……그게.”

가크웬은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맸다.

알렌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입니다.”

녀석, 눈칫밥 좀 먹었다고 이제 그나마 낫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너희들은 내가 만든 혼란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구상하면 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건 너희들이다. 살아서 그들을 구출해 내려면 알아서 방도를 생각하도록.”

나는 세밀한 작전은 그들에게 위임했다.

귀찮아서만은 아니었다.

약한 놈들이니 자기 실력을 잘 알 터.

살기 위한 절박함이 더 나은 계획을 세우게 만들어 줄 거다.

나로서는 그게 안 되니까.

“그럼 우선 크래커 씨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부터 알아내야겠네요.”

이리엘이 다부지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알려 주지.”

나는 그것까지는 도와줄 작정이었다.

그게 빠르고 편하니까.

회의실 중앙에 놓인 긴 테이블에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종이 여러 장이 있었다.

나는 가크웬에게 물었다.

“포로들은?”

“데리고 오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순순히 알려 줄까요?”

……이 새끼가.

그럼 순순히 알려 주겠냐?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야지.

후. 좋지도 않은 인내심이 시험당하고 있었다.

나는 의미 없는 질문을 반복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가 뇌가 별로 필요가 없나 보구나.”

“아, 아닙니다.”

“생각하고 질문해라. 내가 오해하기 전에.”

“예, 옙!”

파랗게 질린 녀석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황급히 닦아 냈다.

잠시 후, 단단히 포박당한 포로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왔다.

총 넷이었다.

의식을 잃고 기절했던 이들을 포로로 데리고 있었다.

눈을 가린 두건에 얼굴 반이 가려졌지만, 굳게 닫힌 입매는 하나같이 결연했다.

“너희들은 나가서 내가 부를 때까지 계획을 세우고 있어라.”

나는 아군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그들을 내보내고 포로들과 가벼운 면담을 나눌 작정이었다.

내게는 분근착골이라는 효율적인 대화법이 있거든.

상대에게 내공을 주입해 기혈과 근골을 뒤트는 수법인데, 그 고통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여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는 일품인 수법이었다.

과연 잠시 후 포로들은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양털을 달라 하면 가죽까지 벗어줄 기세.

역시 분근착골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긴말하지 않으마.”

나는 탁자 위에 종이를 가리키며 내가 원하는 바를 친절히 설명했다.

“동그라미가 그려진 종이를 너희들에게 한 장씩 줄 것이다. 그 안을 주둔지 내부 구조로 채워 넣거라. 건물의 위치와 그 목적 또한 상세히 기술해야 한다.”

나는 안 그래도 열심히 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 굳이 친절한 설명을 보탰다.

“나는 너희들이 그린 네 장을 비교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것이다. 가장 성실히 그린 자에게는 두 발로 멀쩡히 돌아갈 수 있는 상을, 가장 불성실한 자에게는 저승을 걷는 벌을 줄 생각이니 성심껏 그리도록.”

* * *

손톱달이 먹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밤.

깊게 잠든 카트르시는 고요했다.

나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석벽을 가만히 쓸었다.

높이가 3m쯤 되어 보이는 담.

이것이 나와 뿔사슴 부대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주변의 경계는 삼엄하지 않았다.

도시 내에 있는 제국군의 주둔지를 쳐들어올 미친놈은 없으니까.

하지만 살다 보면 인생이란 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설마가 사람을 잡고,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게 바로 삶이니까.

그런 이유로 그들은 경계를 더욱 삼엄히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덜 당황스러웠을 테지.

콰아앙!

담벼락 위로 손바닥이 닿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직경 5m에 이르는 공간이 폭발했다.

화산이 분화하듯 터져 나가며 비산하는 잔해들.

그와 함께 피어오른 뿌연 구름은, 손을 한 번 휘젓자 소용돌이치며 하늘 위로 흩어졌다.

시원하게 뚫린 시야로 주둔지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화 마법이 걸려 있어 보통의 힘으로는 부술 수 없는 담벼락임에도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주둔지 내에서 다급한 소란이 일었다. 갑작스런 폭발음에 비상이 걸린 듯하다.

시끄러운 종소리와 함께 깊은 잠에 들었던 막사가 다급히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느긋하게 안으로 걸었다.

금세 무기를 꼬나쥐고 달려온 병사들이 흰 사자 가면을 쓴 나를 보며 흠칫했다.

나는 괘념치 않고 걸었다.

내부의 지리는 이미 숙지한 상황.

나는 천천히 주둔지의 중심, 지휘부로 향했다.

그곳에 이츠리엘이 있을 거였다.

“멈춰라!”

내게 창과 검을 겨누며 소리치는 병사들.

나는 맨손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휙!

몸을 틀어 찔러 오는 창을 피하며 창대를 쥐었다.

창을 잡아당기자, 창의 주인이 당황한 낯빛으로 딸려 왔다.

나는 녀석이 창을 쥐고 있든 말든 그대로 휘둘렀다. 창째로 휘둘러진 녀석이 날아가 병사들과 함께 엉켜 넘어졌다.

사용할 무기가 넘치기에 검도 챙겨오지 않았다. 이들 손에 쥐어진 것들은 모두 내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나는 창을 능숙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으나, 창을 쓰는 무인들과 수없이 겨뤄 보았기에 어느 정도 흉내는 가능하다.

검이든 창이든 손의 연장선일 뿐이니.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풍차처럼 회전하며 적진을 유린하는 창격.

창촉에 베이고 꿰뚫린 이들이 핏물을 뿜어내며 쓰러졌고, 창대에 맞은 이들은 격한 비명과 함께 날아가 벽에 처박히거나 동료들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처럼 능숙하게 창을 다루며 적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내 주위로 쌓여 가는 병사들의 수가 빠르게 불어났지만, 누구도 나의 걸음을 잡지 못했다.

이목은 확실히 끌었다고 봐야지.

“…….”

그리고 작금의 상황을 몸을 숨긴 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리엘과 알렌, 그리고 산적 5명.

제국군의 주둔지를 공략하기에는 상당히 조촐한 인원이었지만, 그들의 모든 신경이 한쪽으로 쏠린 틈을 이용한다면 붙잡혀 있는 산적들을 데리고 나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제네스가 굳이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담벼락을 무너뜨린 것도 이곳이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수용소와 가장 가까운 위치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슬슬 움직이죠.”

어둠 속에서 이리엘이 눈빛을 빛냈다.

사사삭.

그들은 어둠에 기대어 재빠르게, 또 은밀히 움직였다.

잠입한 주둔지 내부는 제네스가 병사들을 모두 끌고 가 버린 탓에 시체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무언가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흔적.

저편에서 굉음과 비명 섞인 고함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들은 제네스의 무지막지함에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저렇게나 강할 수 있다니.

오늘 새벽, 그 신위를 직접 목격했음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쪽으로.”

앞서 걷던 알렌이 고갯짓으로 방향을 알려 왔다.

이리엘과 일행들은 알렌을 따라 크래커가 잡혀 있을 감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정신 나간 놈인가.”

이츠리엘은 너른 창을 통해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휘부는 주둔지 중앙에 탑처럼 높이 솟아 있었기에 한눈에 상황을 내려볼 수 있었다.

병사들이 태풍처럼 한 점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우레와 같은 굉음과 병사들의 비명으로 주둔지는 혼란했다.

그 광경을 보며 이츠리엘은 저걸 과연 암습으로 봐야 할지 고민했다.

“……괴물 같은 놈.”

이츠리엘은 짧게 감탄했다.

강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대체 어디서 저런 실력자가…….

“이츠리엘 님, 말을 준비했습니다.”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츠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사이 일어난 전투로 지쳤을 거라고 예상했던 녀석이 팔팔 날고 있었다.

그가 온 이유는 하나.

자신의 목 아니면 크래커겠지.

정면 승부는 자신이 없으니, 몸을 빼내는 게 나았다.

“감옥에는 메시지를 전했느냐?”

“예. 모두 죽이라 했습니다.”

이츠리엘은 입매를 비틀었다.

어차피 이들의 수는 빤했다.

공개 처형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적들이 원하는 바를 내줄 수는 없었다.

이츠리엘은 마지막으로 병사들을 헤집고 있는 흰사자를 바라보았다.

멀리 있음에도 그의 움직임이 잘 보였다.

“한번 마음껏 날뛰어 봐라. 그럼에도 너희가 원하는 건 무엇도 얻지 못할 테니.”

그는 표정을 싸늘히 굳혔다.

병사들의 죽음은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저 정도의 강자는 막을 수 없다.

자신이야 상황이 끝나고 돌아오면 될 일.

상부에 보고할 변명은 이미 준비해 두었다.

‘크레이산의 삼 형제’를 무너뜨린 공이 희석되기야 하겠지만, 일단 살고 봐야 되지 않겠나.

인상을 찌푸린 이츠리엘이 전장에서 등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그 순간, 우습게도 저 멀리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봤나 싶을 때, 그는 어둠을 가르며 날아오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이츠리엘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콰아아앙!

거센 돌풍과 함께 머리 위를 스친 무언가가 천장을 터트리며 굉음을 내었다.

“뭐, 뭐야?”

눈앞을 가리는 먼지를 치우자, 천장을 꿰뚫고 저 위에 박혀 있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창이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저 먼 거리에서 이 정도로 정확히 던졌단 말인가.

화들짝 놀란 그는 다시 한번 전장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리에 있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도 그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모습.

이츠리엘은 난간 위로 몸을 빼내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건물의 지붕을 밟으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표물을 잃고 헤매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막아라! 저기 놈이 오고 있지 않느냐!”

이츠리엘의 목소리가 밤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그림자를 쫓아 다급히 움직였다.

“이츠리엘 님을 지켜라!”

하지만 검은 그림자는 병사들을 손쉽게 피해 지휘부로 날아올랐다.

제비처럼 날랜 움직임.

바깥에 있던 경비병들을 단숨에 무위로 만드는 신위였다.

“이런 X발!”

곧장 자신에게 쏘아져 오는 흰사자를 보며 이츠리엘은 사색에 질린 채 다급히 검을 뽑았다.

서슬 퍼런 검날이 지잉, 진동하며 푸른 불꽃을 피워 냈다.

검은 그림자는 어느새 코앞이었다.

“뒈져라!”

그는 고함과 함께 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반월로 그려진 오러가 건물을 터트렸다.

콰아아앙!

폭발하며 비산하는 잔해들.

하지만 손끝이 가볍다.

이츠리엘은 측면으로 지나치는 흐릿한 그림자를 따라 급히 몸을 틀었다.

일순 흰 사자 가면이 눈앞에 번뜩이더니 묵직한 충격이 복부에 틀어박힌다.

휘둘러진 창대가 그를 정확히 강타한 것이다.

콰앙!

벽을 뚫고 지휘부 밖으로 날아간 이츠리엘은 옆 건물에 처박혔다.

“커허억!”

바닥을 나뒹군 그는 충격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콜록거렸다. 몸을 억지로 일으킨 이츠리엘은 호흡을 가다듬고는 허공에 다급히 소리쳤다.

“막아! 저놈을 막으라고!”

병사들이 건물을 넘어 다급히 달려왔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흰사자가 그의 앞에 내려섰다.

“제, 젠장…….”

이츠리엘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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