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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42화 (42/228)

제42화

제42화 이츠리엘 (1)

이츠리엘은 둘을 보며 환히 웃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형제의 해후가 이렇게 어색하면 쓰나.”

눈을 부릅뜨고 포르틴을 바라보는 크래커와 달리, 포르틴은 크래커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 또한 바라지 않던 만남이었기에.

이츠리엘은 그런 포르틴에게 어깨동무를 한 뒤, 크래커 가까이 끌고 왔다.

“이번 승리의 주역이지. 그는 바르텐을 죽이고 이곳에 왔어. 이제 산적이 아니라 훌륭한 제국군이 된 거라고.”

“……대체 왜? ……네가 왜?”

크래커가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 그러다 이내 지하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대체 네가 왜―!”

크래커는 악다구니를 쓰며 포르틴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벽에 건 쇠사슬이 사납게 출렁이며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들이 다가와 몽둥이로 크래커를 사납게 내리쳤다.

“이 개X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질러.”

퍽! 퍽! 퍽!

축 늘어지는 크래커를 보며 이츠리엘은 즐겁게 웃었다.

“이제야 대화할 자세가 된 것 같구만. 내가 이래서 천한 것들이랑은 말 섞기를 싫어한단 말이지.”

크래커는 피로 물든 얼굴을 들어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츠리엘이 포르틴에게 말했다.

“어서 네 형제에게 설명해 주거라.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저렇게 궁금해하고 있지 않느냐.”

포르틴은 입을 달싹이며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답답했던 이츠리엘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끔찍한 기억이라 말이 나오지 않나 보구나. 그럼 내가 친절히 얘기해 주는 수밖에.”

그는 크래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 갔다.

“이게 네 막냇동생만 나무랄 일이 아니야. 네가 산채에서 술 처먹고 노는 동안, 동생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츠리엘은 포르틴의 어깨를 격려하듯 두드려 주었다.

“……도망친 게 아니었군.”

크래커가 그를 보며 말했다.

포르틴은 최근 도적질을 하러 갔다가 실종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와 함께 간 이들은 모두 전멸한 상태였고.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달 후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했다. 제국군에게 잡혔지만, 간신히 탈출한 이야기. 상처를 입은 몸을 회복하느라 복귀가 늦었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자신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가 그리 말했으니까.

포르틴이 배신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자네가 몰라서 그렇지, 포르틴이 처음에는 얼마나 강단이 있었다고. 고문도 아주 잘 버텨 주었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다 변하는 것 아니겠나.”

이츠리엘은 자신이 포르틴에게 행했던 지독한 고문을 자랑스레 말해 갔다. 듣는 것만으로도 뼈가 시릴 정도로 잔혹한 나날. 그는 벽에 걸린 기구를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기구들을 좀 보게. 고문이 얼마나 끔찍한지 감이 오나?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럽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포르틴이 얼마나 살고 싶었겠나? 형이란 자가 동생의 마음을 이해해 줘야지. 안 그래?”

크래커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포르틴이 이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나날을 보냈을지 안 봐도 알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기 위해 형제들을 팔아넘기는 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크래커는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래도 버텼어야 했다. 그렇게 버티다 차라리 죽었어야 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웠다고 해도, 그렇게 죽었어야 해! 어떻게 혼자 살겠다고 형제들을 팔아넘긴단 말이냐! 네가 어찌 그럴 수 있어, 네가 어찌!”

찢어진 이마에서 흐른 피가 입술에 부딪히며 침과 같이 튀었다.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포르틴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언성을 높였다.

“버티라고요? 차라리 그렇게 죽으라고요? 내가 왜 여기서 죽어야 합니까! 한 번 사는 인생 아닙니까! 칼로 고기를 썰고, 깃털 침대에 누워 보니 확실히 알겠더이다! 그깟 프렌치아가 뭐라고! 내가 왜 누군가를 위해 애쓰며 살아야 합니까! 이 나라가 대체 나한테 뭘 해 줬다고요!”

“이 멍청한 녀석아!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거다! 우리가 왜 산중에 처박혀 살겠느냐! 우리를 보호해 줄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프렌치아가 있어야 우리가 황금 들녘에서 살 수 있는 거라고!”

“그놈의 황금 들녘!”

프로틴이 눈을 희번덕 뜨며 소리쳤다.

“이제 황금 들녘 따위 가질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 곳에 살아 봐야 뭐가 좋답니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한답니까? 벌써 10년입니다, 10년! 그날이 언제 오는데요? 다 늙어서 뒈지면 온답니까? 한 번 사는 인생 아닙니까! 그냥 좀 편하게 즐기면서 살다가 죽고 싶었다고요! 빌어먹을! 제가 진정 이딴 감옥에서 죽었어야 합니까!”

“그랬어야지! 그렇게 죽었어야지! 그 정도 각오도 없었다면 진즉 산채를 떠났어야지!”

“이미 늦은 걸 어떡합니까! 여기에 오고 나서야 제가 빌어먹을 새끼란 걸 알았는데 어떡하라고요! 저는 이렇게 살다 갈 겁니다! 잘 먹고, 잘살다 죽을 거라고요!”

“너 때문에 죽은 형제들은!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지도 않더냐! 그들을 팔아넘기고 네가 혼자 편히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예! 저는 편히 살 수 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요! 후회 따위 절대 안 한다고요!”

포르틴이 침을 튀기며 악다구니를 썼다.

후회? 이제 와서?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고문받는 매일이 지옥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살점을 뜯어내는 끔찍한 고통은 끝이 없었다. 비명을 하도 질러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이 고통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매일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자살을 할 수 있었다면 진즉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달콤한 말로 유혹했고, 날이 갈수록 마음은 약해져만 갔다.

그러다 문득 살고 싶었다.

울면서 고기를 썰었고 입에 넣었다.

빌어먹게 맛있었다.

이대로 죽기에는 남은 삶이 아까웠다.

한 번 마음을 돌리니, 어떻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다. 이들이 약속한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아 보고 싶었다.

포르틴은 자신을 쏘아보는 크래커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잘 알았다.

자신은 목숨보다 소중했던 의형제를 팔았다.

함께 지내 온 산채의 형제들을 팔았다.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길은 어차피 하나뿐이었다.

“전 이제부터 제국민이 되어 제대로 살아볼 겁니다!”

포르틴은 크래커를 향해 소리쳤다.

차가운 날붙이가 등을 뚫고 들어온 건 그때였다.

콰직!

격양되어 있던 그는 한 차례 비틀거린 뒤,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핏물이 묻은 창백한 칼날이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고 솟아 있었다.

푸확!

검이 빠져나가는 동시에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휘청거린 포르틴은 무언가를 쥐려는 것처럼 허공에 손짓하며 바닥에 허물어졌다.

“누가 네게 그런 삶을 허락한다더냐. 천하디천한 쓰레기 같은 새끼가.”

이츠리엘이 그런 그를 보며 싸늘히 조소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경악한 크래커는 말을 잇지 못하고 포르틴을 바라보았다.

이츠리엘은 환히 웃으며 크래커에게 시선을 돌렸다.

“배신자는 죽어 마땅하지. 안 그래?”

그는 사납게 일그러지는 크래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난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크래커는 죽어 가는 포르틴을 보았다.

그는 울고 있었다.

원통함의 눈물.

사람을 대체 어디까지 추악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얼마나 상처를 비집어야 만족하는 걸까.

대체 우리는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크래커는 이츠리엘을 바라보았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눈앞의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

“이츠리엘―!!”

크래커는 이츠리엘을 바라보며 발버둥 쳤다.

쇠사슬이 출렁이며, 손목에서 피가 흘렀다.

이츠리엘은 그런 그를 보며 감옥이 떠나갈 듯 웃어 댔다.

* * *

“뭐?”

고문실에서 나오자마자 받은 보고에 이츠리엘의 눈썹이 사납게 뒤틀렸다.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는 거지같은 소식을 전하는 부하 놈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막 도착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적의 본채를 궤멸시켰어야 할 부대가 패전하여 돌아왔단다.

그런데 패전한 이유가 고작 한 명의 위세를 넘지 못해서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과거 프렌치아 왕궁기사단, 레오니랜서에 속해 있던 전도유망한 기사.

지금 또한 꾸준히 검을 수련하는 중이고, 그랬기에 그가 행한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일순, 그의 머릿속으로 이곳에 오기 전 받았던 또 다른 보고가 스쳤다. 크래커를 생포해 왔던 피레르도 같은 말을 했었다. 가면 쓰고 있던 녀석을 놓쳤다는.

“흰 사자 가면이라더냐?”

“네, 맞습니다.”

이츠리엘의 미간이 더욱 구겨졌다.

‘한 녀석이 아니었던가?’

두 곳에 모두 흰 사자 가면을 쓴 자가 있었다. 등장에 시간차는 있으나, 짧은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흰사자가 두 놈이라고 보는 게 합당했다.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해 봐야겠다. 내 방으로 당시 상황을 말할 수 있는 녀석을 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집무실로 올라온 이츠리엘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두 다리를 책상 위에 놓고 꼬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얼마 후, 초췌한 안색의 병사 한 명이 들어왔다.

“충―!”

이츠리엘은 병사의 거수경례를 손짓으로 치우며 다짜고짜 물었다.

“네가 본 것을 처음부터 상세히 이야기해 봐라.”

병사는 긴장된 낯빛으로 산채에서 벌어졌던 전장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상황이 반전되는 대목에 이르러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녀석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가면을 쓴 남자.

처음에는 흰 사자 가면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비웃음이 공포로 변하는 건 찰나였다.

그는 칼날 위로 타오르던 영롱한 오러를 잊을 수 없었다.

지금껏 봐 온 어떤 오러보다 압도적이었으며, 안정적이었고 깨끗했다.

그 푸른 불꽃이 움직일 때마다 동료들이 쓸려 나갔다.

타오르는 푸른 섬광은 진형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땅이 갈라지고 그 위에 선 사람도 함께 갈라졌다.

더 이상 그가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순간, 자신은 이미 전장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그자에게서 멀리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다시 한번 그 순간을 상기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는 그때의 심경을 최대한 축소하고, 자신의 이탈을 죽은 지휘관의 책임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적에게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는 사실은, 상관에게 보고하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여기서 삐끗했다가는 목이 베일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그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츠리엘을 바라보았다.

“현재 경지가 어떻게 되지?”

“중급 마나 유저입니다.”

이츠리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중급 마나 유저라면 오러에 대한 지식이 천치는 아닐 거였다.

그는 지금까지 들은 정황을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자신에게 빗대어 보았다.

빽빽한 포위를 단숨에 벗어나는 것도, 3백에 이르는 병사들을 도망치게 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두 녀석 다 자신보다 우위에 있었다.

특히 두 번째 녀석은 익스퍼트 상급의 완숙을 넘어 절정에 이른 듯하다.

최상급을 눈앞에 둔 거 같은데, 그 정도 전력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아무래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두 녀석이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온다면?

막아 내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른 이들에게 일반 병사들의 수는 무의미하니까.

그때를 위한 대비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병사를 내보내고 부관을 따로 불러 명령을 내렸다.

“나는 오늘 밤 지휘부에 머물 것이다. 지휘부의 경계를 평소의 5배로 늘려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크래커를 공개 처형할 것이니 그렇게 준비하도록.”

본래는 살려 달라 빌 때까지 괴롭혀 줄 작정이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적은 분명 암살 시도를 하거나 크래커를 구하기 위해 움직일 터.

‘설마 오늘 밤에 오지는 않겠지?’

이츠리엘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암살의 위협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도망치는 건 시기상 좋지 않았다.

적어도 내일 아침, 시민들 앞에서 크래커를 공개 처형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높인 후여야 했다.

지금 도망쳤다간 그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들 또한 전장을 치렀으니 체력적으로 지쳤을 터.

당장 오늘 밤에 무리해서 움직이지는 않겠지.

‘아니, 어쩌면 그게 더 좋을 수도.’

밤새 전장을 치렀으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클 터.

칼날의 날카로움도 많이 무뎌졌을 터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오늘 밤이 절호의 기회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큰 공을 세울 기회가 굴러들어 오는 셈.

‘자칫 잘못되더라도 내 한 몸 빼내는 거야 어렵지 않을 테니.’

생각을 정리한 이츠리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가 너머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점차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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