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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38화 (38/228)

제38화

제38화 암살 작전 (2)

술자리가 모두 정리된 후에도 회의실에 모인 ‘크레이산의 삼 형제’는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었다.

막내, 포르틴이 물었다.

“그 녀석들 믿을 만한 겁니까?”

포르틴은 중대한 작전을 앞두고 등장한 새로운 인물들이 달갑지 않았다.

크래커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비테로를 벤 ‘북부의 흰사자’ 소속의 독립군들이야. 신원은 확실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뭔가 수상하잖아요. 아무 관계도 없으면서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것도 그렇고. 또 실력에 관해 허풍도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실력이라면 너도 낮에 봤잖아.”

크래커의 말에 포르틴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 또한 보았다.

발을 굴러 땅을 흔들고 멀리 떨어진 마차를 일 검에 쪼개 버리는 장면을.

“그자는 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포르틴이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여태 가만히 술을 홀짝이던 바르텐 또한 흥미를 보이며 크래커에게 질문했다.

“형님보다도 강합니까?”

바르텐은 검을 익히지 않았기에 제네스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없었다.

크래커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괜히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보다 강하기는 할걸?”

“네에?!”

바르텐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20대 청년으로 보이는 자가 크래커보다 강하다니……. 그의 실력을 눈으로 보지 못한 바르텐이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큼큼.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아주 살짝?”

크래커는 엄지와 검지의 간격을 닿을 듯 말 듯 좁히며 말했다. 양심이 쿡쿡 쑤셔 왔지만 ‘황금 들녘’의 채주이면서 맏형으로서의 체면도 있는 법이다.

“그럼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들이 혹시 다른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포르틴이 다시 나서자, 바르텐이 그를 말렸다.

“염려가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형님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야. 그들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건 형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물론 그것을 알고야 있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니 그러지 않습니까. 혹시 정보가 샐 수도 있고…….”

포르틴이 말꼬리를 흐리자, 크래커가 나섰다.

“네 마음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들이 나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도와 달라고 청한 거니까. 그러니 괜한 걱정은 할 필요 없고.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잘 좀 챙겨 주거라.”

크래커는 포르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독려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는 까닭.

이츠리엘 암살 작전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제네스를 굳이 끼워넣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

그렇기에 포르틴은 갑작스레 생겨난 변수가 오히려 독이 될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크래커가 제네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확실하고 안전한 승리를 취하기 위함이었다.

비테로를 죽인 그가 자신들을 돕는다면 이츠리엘을 보다 손쉽게 암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나저나 갑자기 폴체로 상단은 왜 친 것이냐?”

크래커가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바르텐을 바라보았다. 바르텐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포르틴을 가리켰다.

“저 녀석이 몸이 근질근질하다며 굳이 나서야겠다지 않겠습니까.”

포르틴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연회를 위한 행렬이라는데 술과 고기가 많을 게 아닙니까. 마침 홀로 길을 떠났던 형님이 돌아오실 때도 됐고. 미리 맞이할 준비를 해 놔야지요.”

그의 말에, 크래커는 헛웃음을 지으며 애정 어린 눈빛을 던졌다.

“네 덕분에 거하게 즐기기는 했다만, 당장에는 조심해야 해. 게다가 너는 몸도 성하지 않잖냐.”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 제국군 놈들을 짓밟지 못해 몸이 다 근질거린다고요.”

포르틴이 어깨를 빙빙 돌리며 건장함을 과시하자 크래커는 흐뭇하게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었다고 생각한 동생이었다. 그런 그가 살아 돌아왔으니 전보다 더 귀할 수밖에.

“이츠리엘을 죽이고 나면 한동안 산에 틀어박혀 살아야 하는데 벌써 그러면 어쩌려고.”

“이츠리엘을 죽일 수 있게 되었는데, 몇 년 쥐 죽은 듯이 사는 게 대수겠습니까.”

“푸하하. 그래, 맞지 맞아.”

크래커는 호탕하게 웃으며 포르틴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고는 이내 술을 들이켜며 표정을 굳혔다.

“이제 곧 녀석과의 질긴 악연도 끝이 날 것이야.”

죽은 동료들의 얼굴이 눈앞으로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지난 8년.

이츠리엘과는 지독한 악연을 쌓아 왔다.

서로에게 많은 것을 빼앗고 잃어 온 그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고, 이제 그 결전이 종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크래커는 애써 상념을 지우며 잔에 술을 채웠다.

“자자, 이제 무거운 일 이야기는 그만하자.”

간만에 삼 형제가 모인 자리.

잠시만이라도 무거운 생각일랑 버리고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오랜만에 이리 함께 모였는데, 간만에 회포나 제대로 풀어 보자고!”

크래커가 술잔을 들어 올리자, 형제들 또한 금세 근심을 지우며 잔을 부딪쳐 왔다.

* * *

파란 하늘 위로 새털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이리엘이 무료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오랜만인 거 같아요.”

“그러게. 본부를 떠나고는 처음이지.”

알렌이 말했다.

그 또한 옆 침대에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나는 이리엘을 흘겨보며 말했다.

“넌 왜 여기 와 있냐?”

그녀의 방은 옆방이었고, 현재 그녀가 뒹굴고 있는 침대는 내 침대였다. 나는 창가 앞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이리엘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 그럴 만도 하다. 어제 술자리가 끝난 후부터 우리는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엘이 물었다.

“오늘 오후에 출발하면 내일 오전에나 오는 거예요?”

“아마 그럴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이츠리엘 암살 작전에는 나 혼자만 다녀올 것이기에 둘은 작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녀석들은 데리고 가 봐야 짐만 될 뿐이니까.

“어디로 간대요?”

“그의 별장이 반나절 거리에 있다더군.”

이츠리엘은 내일 있을 사냥을 위해 소수의 병사만 데리고 오늘 밤 별장에 올 것이었다.

우리는 그때를 노려 암습을 진행하게 될 거고.

이츠리엘이 별장으로 온다는 정보가 확실한지는 모르겠다만, 크래커가 자신의 목숨도 걸 수 있다니 믿어 봐야지.

나는 그저 그들을 따라가 이츠리엘의 목만 베면 될 일이었다.

“아아―.”

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닫자, 이번에는 알렌이 벌떡 일어나 질문해 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강했습니까?”

녀석의 관심은 어제 분지에서 만났던 사내에게 가 있었다.

“그 정도면 프렌치아에서 손에 꼽힐 거다.”

“……흠, 누구지?”

알렌이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프렌치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자라면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독립군 쪽에서 떠오르는 사람은 서부의 검 ‘용 사냥꾼’이나 남부의 창 ‘검은 유성’ 정도가 있는데. 그들이 여기서 용병 노릇을 하고 있을 리도 없지만,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용 사냥꾼’일 확률이 높거든요. 남부는 워낙 머니까. 그런데 하는 짓을 보면 또 ‘용 사냥꾼’은 아니에요. 사람이 너무 가볍잖아요. 그는 냉혹하다고 알려진 사람이라.”

홀로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생각하던 알렌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 사람인 거 같아요. 아니면 제네스 님처럼 새로이 등장한 인물이거나. 소드 마스터이신 제네스 님도 갑작스레 등장한 판국에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일단 새로운 인물은 아닐 거였다. 나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니까.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 온 자일 확률도 있겠다.

크레본과 프렌치아 중 프렌치아를 선택했다고 그가 프렌치아 사람인 건 아니니.

“그 녀석이 누구고 어디서 왔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느냐.”

나는 별 감흥 없이 대꾸하며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녀석이 무엇이든 내게는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적이라면 베면 그만이니.

“이제 나한테 말 걸지 마라.”

나는 엄포를 놓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고 따스한 햇볕을 맞으니 심신이 평온하기 그지없다.

내가 바라던 삶이 바로 이런 거였는데.

이렇게 한가로이 누워 먹고 마시는 한량 같은 삶.

빌어먹을.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하자.

생각할수록 괜히 화만 끓는다.

나는 떠오르는 상념을 애써 지우며 지금 누릴 수 있는 여유에 집중했다.

성을 내 봐야 나만 손해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 너머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길을 나서야 할 시간이 다가왔음이다.

눈을 뜨니 창가를 통해 땅거미가 기어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가시게요?”

내 움직임에 부스스 일어난 알렌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낮잠을 푹 잤는지 입가에 침 자국이 흥건했다.

“다녀오마. 가만히 놀지만 말고, 떠날 채비를 단단히 해 두거라.”

“네, 네.”

“어서 다녀오세요.”

이리엘은 낮에 누워 있던 자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배웅했다.

나는 천하태평인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냥 데려갈까?

나와 달리 편히 있을 녀석들을 생각하니 괘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데리고 가 봐야 짐일 뿐이고, 오히려 나만 고생이다.

두 녀석 모두 이렇게 온종일 뒹굴거리는 건 오랜만일 테니, 편히 쉬라지.

다녀와서 곱절로 부려 먹으면 되니까.

문을 열자, 마침 문을 두드리려던 이가 눈을 크게 뜨며 헉하고 숨을 삼켰다.

“가자.”

나는 그런 녀석을 지나쳐 별채를 나섰다.

마당으로 나가니 크래커를 포함한 산적 8명이 서 있었다.

이츠리엘 암살 작전을 위해 차출된 산채의 정예들.

산적치고 제법 날카롭게 벼려진 자들이었다.

수는 적지만 ‘황금 들녘’ 전체 전력의 절반에 이르는 정도.

“쉬는 동안 불편한 건 없었고?”

크래커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씩 웃은 녀석이 말을 이었다.

“마음의 준비는?”

“그깟 녀석 잡는 데 마음의 준비는 무슨.”

내 말에 호탕하게 웃은 크래커가 선두로 나서며 말했다.

“그럼 출발하자고.”

나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금세 산채를 벗어나 노을빛에 물들어 가는 산속을 달리고 있었다.

* * *

달이 휘영청 뜬 밤.

낮잠을 너무 오래 자서일까?

잠이 오지 않았던 이리엘은 밖으로 나와 지붕 위로 올랐다.

그녀는 고요한 밤, 지붕 위에서 보는 하늘을 좋아했다.

휭.

자리에 앉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칼을 쓸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질 것처럼 밝게 빛나는 별 무리.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왜인지 지붕 위에 올랐다가 제네스를 본 날이 기억났다.

바람 쐬러 올라갔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도 가만 보면 좋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당시의 대화를 생각하던 이리엘은 자연스레 베론과의 이별 장면에까지 다다라 있었다.

다짜고짜 꿀밤을 때리던 제네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투박하기는 했지만, 베론에게 필요한 위로였다.

그렇게 가만히 제네스를 생각하던 이리엘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 지금 그 인간 생각한 거야?’

어이가 없다 못해 자존심까지 상할 지경.

정신이 들자마자, 머릿속으로 제네스의 재수 없는 모습들이 스쳐 갔다.

사람을 깔보는 눈빛하며, 사람을 무시하는 말투까지.

게다가 어찌나 부려 먹는지.

이리엘은 조금 전 잠깐이나마 그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소드 마스터라는 점만 빼면 인간 말종이 분명한 인간이니까.

옅은 신음이 귓가에 닿은 건 그때였다.

“……으으.”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귀를 기울이니 사람의 소리가 분명했다. 지붕에서 내려온 이리엘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며 주변을 경계했다.

‘저쪽인 거 같은데?’

긴가민가했지만, 아무래도 안채 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녀는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레 소리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끄으…….”

이번에는 소리가 명확히 들렸다. 사람의 신음이 분명했다.

‘뭔데?’

이리엘은 불안한 마음에 눈썹을 비틀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안채로 다가가니 1층에 창이 열려 있는 방이 보였다. 창가 쪽으로 다가간 그녀는 고개만 빼꼼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불이 꺼진 방 안은 어두웠다.

더 이상 신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 이쪽이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주변을 살피고는 도둑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창을 넘었다.

방의 구조를 보니 누군가의 집무실로 보였다.

그녀는 자세를 바짝 낮추며 품속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쥐었다.

긴장감에 이마에 땀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불길함을 감지한 본능이 경고를 보내 왔지만, 그녀의 호기심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때마침 다시 한번 신음이 들려왔다.

바로 코앞이었다.

그녀는 곧장 그 소리를 쫓았고, 책상 뒤편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빨리 다가간 이리엘은 남자를 바로 눕히며 상태를 확인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남자의 옷이 그가 흘린 피로 축축했다.

남자는 한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칼에 찔린 듯했다.

이리엘은 다급히 옷을 찢어 환부를 동여맸다.

다급히 지혈하고 나니, 쓰러져 있던 자의 얼굴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바르텐 씨!”

그는 크래커의 의형제인 둘째, 바르텐이었다.

깜짝 놀란 이리엘이 그의 어깨를 흔들어 보았지만, 의식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곳은 산채 가장 깊숙이 위치한 곳이었고, 주변에는 저항의 흔적조차 없었다.

내부의 인물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조용하게 일을 벌일 수 없었을 거다.

다급함에 방문을 열고 나가 보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방 한구석에 누워 있는 바르텐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젠장.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요.”

이리엘은 쓰러진 바르텐에게 다급히 말하고는 한달음에 알렌이 자고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형님!”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소리치자, 곤히 자고 있던 알렌이 경기를 일으키며 펄쩍 튀어 올랐다.

“……?”

어정쩡하게 일어난 알렌이 멍한 눈으로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비몽사몽인 그는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저 이리엘만 끔벅끔벅 바라보고 있는 알렌.

이리엘은 그런 알렌에게 다가가 등짝을 가차 없이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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