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제36화 레논 보육원 (3)
오전 내내 우리는 베론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베론에게 필요한 실용품들을 잔뜩 사 주었고, 공부할 책도 잔뜩 사 줬다.
그리고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인형극도 보고, 장난감도 사 줬다.
베론은 첫 만남의 공허한 표정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밝게 웃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었다.
짐을 챙긴 우리는 보육원 마당에서 베론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클로스도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왔다.
이리엘은 베론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의 머리칼을 쓸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일이 끝나면 돌아가는 길에 꼭 들를게. 알았지?”
이리엘의 말에, 베론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제 걱정은 마세요! 여기 친구들도 많고, 선생님들도 잘해 주셔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 씩씩하게 잘 있을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작 아홉 살의 나이.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을 텐데도, 베론은 어른처럼 의연하게 말했다. 오히려 알렌과 이리엘이 어린애처럼 아쉬워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알렌이 베론을 품에 꽉 껴안으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내가 다음에 올 때 이야깃거리 잔뜩 가지고 올게! 그때는 잠도 안 재우고 밤새도록 이야기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정말요? 벌써 엄청 기대돼요! 그런데 알렌 삼촌, 저 이러다 죽을 것 같아요…….”
베론의 얼굴은 피가 통하지 않는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제야 알렌은 베론을 놓아주었다. 어찌나 세게 껴안았는지 베론은 품에서 벗어나자마자 캑캑거렸다. 알렌은 그런 베론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며 웃었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였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베론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렌의 반 정도 되는 조그만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작은 머리통에 가차 없이 꿀밤을 먹였다.
쿵.
“악!”
냅다 비명을 지른 베론이 고사리만 한 손으로 맞은 부위를 부여잡았다.
알렌에게 먹이는 꿀밤에 비하면 밤톨만큼의 충격이겠지만, 머리통의 크기에 비례하면 충분한 고통을 느꼈을 거다.
“아니, 뭐 하는 거예요!”
화들짝 놀란 이리엘이 베론을 끌어안으며 나로부터 보호했다. 그러고는 나를 도끼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애를 왜 때려요!”
내게 소리를 빽 지른 이리엘은 웅크리고 있는 베론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다정히 굴었다.
“괜찮아? 많이 놀랐어?”
베론은 머리를 푹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고개를 기울여 가려져 있던 얼굴을 보니, 녀석은 입술까지 씰룩이며 터지려는 울음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한 대 더 때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베론은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앙!”
막혀 있던 혈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울음이었다. 베론은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울어 댔다.
무엇이 그리 쌓여 있었던 건지 서럽게, 아주 서럽게 울어 댔다.
아이의 눈물은 메마른 땅에 내리는 폭우처럼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왜 그래? 많이 아파?”
베론이 크게 울자, 이리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이내 긴장했던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그 울음을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아이의 울음이 아파서만은 아님을,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엉엉 울던 베론은 이리엘의 품에 갑자기 뛰어들며 소리쳤다.
“흐앙! 저만 여기 두고 가지 마세요! 저도 데려가 줘요! 엉엉. 말도 잘 듣고! 투정도 안 부릴게요! 허어엉. 헤어지기 싫어요! 저도 같이 가고 싶다구요! 흐어어엉.”
여태껏 삼켜 왔던 울음과 함께 숨겨 왔던 진심이 쓸려 나오고 있었다. 베론은 이리엘의 옷깃을 작은 손으로 꽉 움켜쥐곤 아이처럼 울어 댔다.
그제야 아홉 살짜리 꼬마 같아 보였다.
이리엘은 그런 아이를 가만히 안아 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울음에 담긴 것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지, 이제 2주 정도 된 아이였다.
이 나이 때 아이에게 부모의 존재란 세상과 같다.
베론은 지금껏 무너진 세상 속에서 지내고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베론이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첫 만남에서도 그랬고, 체즈웬 시장에 데려갔을 때도, 마법사에게 납치됐을 때도 아이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이별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나마 막혀 있던 걸 뚫어 준 것이다.
운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때로 사람은 울어야 살아갈 수 있다.
한참을 울던 베론은 슬슬 진정이 되는지, 숨을 딸꾹질처럼 쉬며 서서히 울음을 그쳤다.
이리엘이 아이를 품에서 떼어 내 눈을 맞추자, 베론은 부끄러운지 붉어진 얼굴을 푹 수그렸다.
이리엘은 베론의 작은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베론의 마음은 잘 알아. 나도 같이 가고 싶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위험해서 베론과 함께 갈 수 없어. 그래서 그런 거야. 베론은 이제―.”
그녀는 베론에게 우리와 함께 갈 수 없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베론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전에도 이야기해 주었던 부분이었으니까.
그저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속의 감정이 다른 것일 뿐이었다. 베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저도 다 알고 있어요.”
눈가를 소매로 거칠게 훔친 베론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든 아이의 얼굴은 눈 주위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긴 속눈썹에는 눈물이 이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울어서 죄송해요.”
“그럴 거 없다. 울라고 때린 것이니.”
머리통의 혹을 쓱 만진 베론은 내게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꿋꿋하게 말했다.
“저도 커서 제네스 님처럼 엄청 강한 독립군이 될 거예요. 그래서 엄마 아빠를 괴롭혔던 나쁜 사람들 제가 다 혼내 줄 거예요!”
아홉 살다운 기특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넌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그건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
너의 가능성이 아무리 찬란하다 한들.
네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너는 그리 될 수 없을 거다.
“네가 자란 나라에는 더 이상 독립군이 필요치 않을 테니까.”
그대로의 의미였다.
베론이 자란 나라에는 독립군이란 존재 자체가 없을 거였다.
아이가 청년이 되기 한참 전에 프렌치아는 이미 독립했을 테니까.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니까.
“대신 마음껏 울어도 되는 나라를 만들어 주마.”
그러니 훗날 네가 꿈 많은 청년이 되었을 때의 프렌치아는, 더 이상 슬픔으로 가득 찬 나라가 아닐 것이다.
프렌치아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모든 악행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국민은 나라의 굳건한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무엇이 되든, 그건 네 마음대로 해라.”
베론은 활짝 웃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이의 맑은 눈망울로 환한 빛줄기가 비쳐 들고 있었다.
“베론이 자네를 많이 믿나 보군.”
알렌과 이리엘이 베론에게 못다 한 애정 표현을 하는 사이, 클로스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웃고 있는 베론을 보며 답했다.
“보았으니까요.”
세상에 눈으로 본 것만큼 확실한 건 없다.
베론은 내 말이 모두 현실이 되는 걸 실제로 보았다.
그렇기에 그런 나라가 올 것을 의심치 않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리 말했으니까.
“베론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만들 나라에서 꿈꾸며 살게 해 줄 생각이니. 나도 그런 나라가 왔으면 좋겠거든.”
클로스가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고, 우리는 그렇게 베론과 작별했다.
* * *
말발굽이 바닥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렸다.
좌우로 드높이 뻗은 산줄기가 웅장한 경관을 뽐냈다. 크래커를 포함한 우리 일행은 그의 산채로 가기 위해 휴르첸 협곡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라면 감탄을 토해 낼 경관임에도 일행은 조용했다.
“베론이 없으니까, 기분이 안 나네요.”
이리엘이 축 늘어진 어깨로 말했다.
베론과 헤어진 지도 어느새 이틀이 지났건만, 이리엘은 여전히 이별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베론이 없으니 휑한 건 사실이었다.
“하하! 그래도 이제는 내가 있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새롭게 일행에 합류한 크래커의 든 자리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베론 녀석 이걸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알렌이 이리엘을 따라 푸념했다.
“허허! 나도 이런 풍광을 굉장히 좋아한다네.”
크래커가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았지만, 반응이 없는 건 매한가지. 그는 입을 빼쭉 내밀며 둘을 닦달했다.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거늘. 나도 우리 형제들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사람일세. 관심 좀 가지고 귀하게 대해 주게!”
“예, 예.”
알렌과 이리엘은 마지못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래커는 덩치만 컸지, 가만 보면 베론보다 더 애 같은 녀석이었다.
그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가장 후유증이 없는 내게 방향을 돌렸다.
“자네는 어때? 그래도 내가 있어서 좀 낫지? 밤에 술도 함께 기울이고 얼마나 좋은가. 술도 모르는 아홉 살짜리 꼬마보다는 이렇게 호탕한 산 남자가 함께하는 게 아무래도 좋지 않겠나? 하하!”
하여간 산 남자 타령은.
크래커는 매번 자신을 산 남자라 칭했다. 산속에 사는 남자야말로 진짜 남자라나 뭐라나.
그런 산 남자가 대체 왜 베론에게 경쟁 의식을 느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은 깡그리 무시하고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산채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오늘 저녁이면 도착할 걸세. 가면 아주 제대로 한잔하자고. 내 부하들과 형제들도 소개해 주겠네. 분명 마음에 들 걸세. 산 사람들이 얼마나 화끈하게 노는지 제대로 보여 주지. 너무 재밌어서 아마 까무러치고 말 거라고!”
“속도를 높여야겠다.”
내 말에, 크래커는 협곡이 떠나가라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 벌써 잔뜩 기대되는 모양이구만. 실망하지 않을 걸세!”
나는 그런 그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녀석들에게는 안 들리나 보지만, 전방에서 고함과 함께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투가 지금 막 시작된 듯했다.
굳이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녀석을 무시하며 말의 옆구리를 찼다.
크래커가 그런 내 뒤를 다급히 따르며 소리쳤다.
“같이 가세! 어차피 술자리는 늦은 저녁에나 시작한다고! 그렇게 급히 가도 소용없단 말일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달렸다.
길의 폭은 나아갈수록 점차 넓어지더니 이내 널따란 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에 들어온 전장은 혼전 상태였다.
산적들과 상단 간의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