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제35화 레논 보육원 (2)
기다란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들.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았다.
상당히 융숭한 대접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 듯했다.
“이 사람은 내 손님일세. ‘크레이산의 삼 형제’라고 근방에서는 유명한 의적인데 들어 봤는지는 모르겠군. 몸담은 집단은 다르지만,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보았네. 이 친구가 자네들을 유독 만나고 싶어 했거든.”
클로스의 소개에 거구의 사내가 시원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하하! 이거 만나게 돼서 반갑구만! 크래커라고 하네.”
목소리가 걸걸한 그는, 머리가 반들반들한 대머리에 사납게 뻗친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위에는 허전하고 아래는 풍성한 것이 꼭 머리칼이 거꾸로 난 느낌이다.
“저는 알렌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리엘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제네스다.”
화기애애하게 인사하던 분위기는 내 무뚝뚝한 소개에 뚝 끊어졌다. 그러자 알렌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 분위기를 재빠르게 무마했다.
“……하하. ‘크레이산의 삼 형제’라면 저도 익히 들어본 바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음화하! 영광은 무슨. 오히려 나를 알아봐 주니 내가 영광이지!”
크래커는 별것도 아닌 말을 하며 크게 웃었다. 소리통이 커서 그런지 시끄러운 녀석이었다.
“본격적인 대화는 식사를 하면서 하세.”
클로스의 말에, 드디어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
나는 가장 먼저 닭 다리를 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상적인 대화에 관심이 없던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고 먹는 것에만 오롯이 집중해 나갔다.
아까부터 나를 빤히 꼬나보는 녀석만 없었다면 더욱 만족스러운 시간이 됐을 거다.
나는 그런 시선을 무시로 대했지만, 녀석은 기어코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자네의 이야기는 대충 들었네. 홀로 비테로를 베었다고.”
크래커의 말에, 클로스가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도 꼬치꼬치 묻길래 대강은 말해 줬네. 그 또한 독립군과 마찬가지이니…….”
클로스는 알렌에게 들어 알고 있었을 거였다.
베론에 관해 이야기하다 듣게 되었을 테지.
이 와중에도 크래커는 내게 뜨거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데. 비테로를 혼자서 베었다니 믿기지 않는군.”
나는 고기를 입에 넣으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믿으라고 한 적 없다.”
“하하! 내 말을 오해했나 보구만. 자네를 의심한다는 말은 아닐세. 그 실력이 놀라워서 그렇지.”
내 삐딱한 태도에도 녀석은 호탕한 웃음으로 대꾸했다. 웃음소리가 시끄럽기는 해도 성격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목이 타는지 맥주를 쭉 들이켠 녀석은 수염에 묻은 거품을 소매로 훔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초면에 조금 무리한 부탁이기는 하지만 그 힘 좀 빌려주면 안 되겠나?”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부터 설명하는 게 순서 아닌가?”
“아아, 그렇군. 내가 마음만 급했구만.”
멋쩍게 민머리를 긁적인 그는, 괜히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에 이츠리엘을 암살할 생각이네.”
……이츠리엘이라.
나는 가만히 그 이름을 곱씹다가 물었다.
“그게 누군데?”
내 말에, 크래커는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독립군이란 자가 이츠리엘도 모른단 말인가?”
“제네스 님이 원래 모르는 게 많은 편이거든요.”
옆에 있던 알렌이 나서서 나를 대변해 주었다. 나는 크래커를 보던 시선을 알렌에게로 옮겼다.
고기를 썰고 있던 녀석은 내 살벌한 시선을 느끼고는 그제야 부리나케 이츠리엘에 관해 설명했다.
“그게 그러니까, 이츠리엘은 과거 세자 저하를 추포한 자입니다.”
“세자를 추포했다고?”
그럼 나를 잡았던 놈이란 이야기잖아.
“네. 당시 왕궁기사단 레오니랜서에 속해 있었던 그는, 도망치시던 세자 저하를 추포해 제국에 넘겨 유명해졌지요. 그런데 그자가 근방에 있었습니까? 그건 몰랐네요.”
크래커가 설명을 보탰다.
“이후로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백작의 작위를 받았고, 영지는 없지만 카트르시에 주둔하고 있는 뿔사슴 부대를 이끌면서 근방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네.”
나는 둘의 말을 들으면서 전생을 곰곰이 더듬어 보았다. 그러다 이내, 내가 어쩌다 지하 감옥에 끌려가게 됐는지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아, 그 새끼 이름이 이츠리엘이었어?
놈은, 까먹고 있었다는 게 분할 정도로 내게 모욕을 주었던 자.
나는 녀석을 통해 프렌치아가 패망했음을 처음으로 톡톡히 실감했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에 혀로 안쪽 볼을 긁었다.
볼이 어제 맞은 것처럼 괜히 욱신거렸다.
내가 말했다.
“암살 계획은 세우고 말하는 건가?”
크래커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일주일 뒤에 진행할 생각이네. 놈을 잡을 계획은 이미 준비되어 있어. 그럼에도 자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우리의 전력을 높여 성공 확률을 높이고자 함일세.”
이미 계획은 모두 세워진 상태라는 의미.
그렇다면 나는 거기에 검만 보태면 될 듯한데.
“자세한 이야기는 자네가 도와주겠다고 한다면 본채로 가며 차차 해 주겠네. 당연히 위험하기야 하겠지만, 실패할 확률은 매우 적어. 그러니 초면인 자네에게도 이리 부탁을 해 보는 것이고.”
일주일 후에 암살을 실행한다라.
마침 다음 목적지도 카트르시인 상황.
일주일 후라면 본래의 일정보다 3일 정도 추가될 듯한데, 그 정도면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게다가 녀석은 변절자 중에서도 꽤 유명한 놈인 만큼, 암살에 성공한다면 흰사자의 위명 또한 널리 퍼질 터.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계획, 도와주도록 하지.”
* * *
어둠에 잠긴 세상.
나는 완만한 사선의 지붕 위에 앉아 알딸딸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주방에 가서 얻어 온 술이었다. 독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흘렀다.
좋군.
취기가 혈관을 타고 전신에 번졌다.
이츠리엘 때문인지 잊혔던 기억들이 술기운과 함께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가까운 처마에서 검은 그림자가 불쑥 솟아났다.
이리엘이었다.
“……어?”
나를 발견한 그녀는 흠칫하며 그 자리에 굳었다. 나는 본 체도 않고 물었다.
“안 자고 뭐 해?”
“아, 그냥. 잠이 안 오네요.”
그녀는 내 옆으로 쭈뼛쭈뼛 걸어와 앉았다.
내가 물었다.
“베론은?”
“자요.”
딱 봐도 괜히 심경이 복잡하여 바람을 쐬러 나온 듯했다.
지난 시간 이리엘은 베론을 제 자식처럼 보살펴 왔다.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을 테지.
나는 술을 병째 들이켠 다음 말했다.
“여기가 나아.”
“저도 알아요. 그냥 아쉬워서 그렇지. 저도 술 좀 줘 봐요.”
“독할 텐데.”
이리엘은 내게서 호기롭게 병을 낚아채더니 술을 들이켰다. 술병을 내려놓는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떤 그녀는, 내게 다시 술병을 건넸다.
“후끈하니 좋네요.”
좋다고 말한 것치고 이리엘의 인상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청승 떨지 말고 잠이나 자.”
“청승이라뇨! 베론을 보면 괜히 제 어렸을 적 생각이 나서 그런 거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렸을 적이 생각난다고?
“이유를 모르겠군. 너는 베론처럼 선량하고 착한 아이가 아니었잖아.”
“그쪽이 제 어렸을 적 성격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
이리엘은 울컥했는지 언성을 높였다.
“안 봐도 알아.”
“참 나.”
황당해하던 그녀는 뭔가를 알아챈 것처럼 눈빛을 반짝이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맞다, 웨일런궁에 있었다고 했죠? 거기서는 뭐 했어요? 10년 전이면 그쪽도 어렸을 때였을 것 같은데.”
“알 거 없다.”
내 대답에, 이리엘은 입을 삐쭉 내밀고 구시렁거렸다. 사람이 대화할 줄을 모른다는 식의 앞담화였다.
나는 그것이 듣기 싫어 물었다.
“베론의 어디가 네 어렸을 적을 생각나게 하는데.”
“알 거 없어요.”
이리엘이 새초롬하게 대답했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런 기분이었나.
당해 보니 썩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는 알 거 없다는 대답과 달리 말을 이었다.
“오빠하고 주르아든 왕국으로 도망치던 때요. 하루아침에 부모님도 잃고 환경도 완전히 달라져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루시안에게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던 이야기.
나는 쓰게 웃었고, 이리엘은 당시의 감정을 이야기해 갔다.
“제가 알던 세상이 갑자기 무너진 것 같았죠. 그래도 전 오빠가 있어서 든든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빠도 나이가 고작 18살이었는데.”
“철없는 동생 덕분에 힘들었겠군.”
“뭐, 그렇죠. 그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으니까요.”
나는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그걸 알긴 아는구나.
“그런데 베론은 9살이잖아요. 게다가 기댈 형제도 없고. 그래서 계속 마음이 쓰여요.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기분을 잘 아니까.”
“대신 우리가 있었지.”
“그건 참 다행이죠.”
“저번에도 말했듯, 잘 지낼 거다.”
“제 생각도 그래요. 잘 지낼 거예요. 항상 웃는 아이니까. 그래서 더 걱정되기도 하지만.”
이리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부모를 잃은 아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베론이 우는 모습은커녕, 칭얼대는 모습도 한 번 보지 못했다.
슬프고 힘들지 않을 리가 없음에도 베론은 작은 투정도 부리지 않았다.
괜찮아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문이 닫혀 있는 까닭이다.
그나마 이리엘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가 아이의 마음을 잘 돌보아 주었으니까.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네 역할이 컸다.”
“맞아요. 제 역할이 컸죠. 히힛.”
이리엘이 기분 좋은 듯 높게 웃었다.
그러고는 갑작스레 머리를 좌우로 털어 댔다.
“아 자존심 상해. 칭찬 들었다고 기분 좋아졌어.”
……뭐 하는 거지?
나는 그런 그녀를 한심스레 바라보았다. 이리엘은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재빨리 변명했다.
“여자의 자존심이에요. 대충 뭔지는 알죠?”
“관심 없다.”
이리엘은 나를 보며 경악하더니 혀를 내둘렀다.
“참 나, 본인이 관심만 없는 게 아니라 재수도 없는 거 알죠? 보다 제대로 된 대화법을 배워 볼 생각은 없어요?”
나는 진지한 이리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말을 계속했다.
“그래도 이제는 그 말투가 적응된 거 같긴 해요. 같이 앉아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된 걸 보면. 여전히 못됐기는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요새는…….”
말을 하다 멈춘 이리엘은 별안간 몸을 일으키더니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술을 마셨더니 왠지 졸리네요. 취한 것 같기도 하고. 고거 독하네요. 적당히 마셔요. 내일 아침에 마당에서 취한 채로 발견되지 말고.”
이리엘은 제 말만 하고는 그대로 총총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밤하늘에 시선을 두었다.
조잘거리던 그녀가 떠나니 밤은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술병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