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34화 (34/228)

제34화

제34화 레논 보육원 (1)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노인은 분명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그가 죽었다는 건 여지없는 사실.

그럼에도 시체가 사라졌다.

심지어 핏자국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시체가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반면, 트롤의 사체는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그는 부활하기라도 한 것일까?

생긴 것부터 관 뚜껑을 박차고 나온 것 같더니만.

……희한한 노인네가 다 있다.

그때 불현듯 내팽개쳤던 책이 떠올랐다.

제목이 「불멸의 도시」라…….

왠지 이 상황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책을 챙겼다.

혹시 다시 나타나 귀찮게 할지 모르니, 가지고 있는 게 좋을 듯했다. 약점이 적혀 있거나 죽이는 방법 따위가 적혀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말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자.”

이 상황에 놓인 여러 의문은 일단 접었다.

동굴은 밀폐된 공간.

우리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고, 이곳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나는 알렌과 이리엘을 앞장세운 뒤, 평소와 다르게 직접 베론을 안아 들었다.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다행히도 동굴을 빠져나올 때까지 추가적인 위협은 없었다.

“후아.”

반달 빛에 젖은 숲을 보며 이리엘은 안도의 숨을 터트렸다. 알렌도 기지개를 켜며 긴장했던 근육을 풀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

적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심적으로 긴장됐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죽었다고 여긴 시체가 사라졌다. 뒤가 찝찝한 게 당연했다.

시체가 홀로 제 관을 찾아갔을 리도 없으니까.

이리엘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러니까. 분명 죽었었는데…….”

알렌이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서로에게서 답을 얻지 못한 둘은, 자연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들 알까.

나는 알렌에게 연구실에서 챙겨 온 책을 툭, 던졌다.

“이거나 챙겨 둬라.”

“방에서 챙겨 온 거예요?”

알렌이 책을 가슴팍으로 안아 받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한 뒤, 베론 또한 이리엘에게 넘겼다.

“뒤로 물러서라.”

그러고는 다시 동굴 입구를 보고 섰다.

동굴은 집채만 한 암벽들의 틈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 위로 뭉툭한 검기를 뿌렸다.

콰과과과광!

우레와 같은 폭발음이 고요한 산중을 뒤흔들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먹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이어 바람에 서서히 흩어지는 먼지 사이로 무덤처럼 쌓인 바위의 잔해가 드러났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꽤나 고생해야 할 거다.”

돌아오는 중, 동굴 내부에서 별다른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 샛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입구를 막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이 안에 살아 있든 아니면 밖으로 도망쳤든, 이곳을 다시 이용하려면 꽤나 고생해야 할 거다.

마무리를 짓고 뒤를 돌아보니 알렌이 내가 건넨 책의 겉표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 아는 거라도 있느냐?”

“아니요.”

고개를 저은 알렌이 책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나는 그를 지나쳐 걸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어느새 떠오른 은은한 볕이 밤을 새벽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잠은 다 잤네.”

뒤에서 투덜거리는 알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을 자지 못했지만, 해가 뜬 이상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보육원이 있는 레논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 * *

커다란 쇠창살 문 사이로 3층짜리 저택이 보였다. 저택을 두른 담은 성인의 키만큼 높았고, 넓은 마당에는 사용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무슨 일이오?”

철창 사이로 뾰족한 턱수염을 가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조금 전 철제문을 두드린 이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전쟁통에서 돌아온 패잔병처럼 꾀죄죄한 모습이 상당히 수상쩍다. 만약 일행에 아이가 끼어 있지 않았다면 일말의 대화 없이 쫓아냈을 터였다.

“원장님을 만나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이걸 전해 드리면 알 겁니다.”

한 남자가 가방에서 작은 철제 패를 건네 왔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패였다. 창살 사이로 그것을 건네받은 경비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확인해 보죠.”

그는 지나가는 사용인에게 패를 확인하라 명하고는 문 뒤에 있는 초소로 돌아갔다.

“휴, 이제 좀 쉴 수 있으려나.”

꾀죄죄한 사내가 긴 한숨을 토했다.

“전 당장 씻고 싶어요.”

얼핏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말했다.

행색은 남자 같지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동그랗게 반짝거리는 눈망울은 아름다운 향을 품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몰골을 보면 저 꼴로 성문을 넘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몬스터의 피와 흙먼지가 엉겨 붙은 그들의 옷은 걸레짝과 다름이 없었고, 떡이 진 머리칼과 땟국물이 자르르 흐르는 얼굴은 3일 굶은 거지의 입맛도 떨어트릴 수준이었다.

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알렌과 이리엘이었다.

거지도 질투할 몰골이군.

나는 그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깊은 산과 계곡을 넘으며 몬스터와 사투를 벌인 까닭에 참으로 가관인 꼴이 되었다.

나는 큰 칼은 큰일에 쓰여야 한다는 이유로, 산맥을 넘는 도중에 만난 몬스터들의 처리를 모두 이들에게 맡겼다.

그렇기에 저들의 몰골이 나와 베론에 비해 유독 거지꼴인 거다.

우리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먼지를 뒤집어쓴 옷보다 바닥이 깨끗해 보일 지경이니, 그런 행동에 스스럼이 없었다.

나는 간만에 사부님을 만나기 전, 거지 소굴에서 보냈던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 언제 오는 거야.”

이리엘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불만을 드러냈다.

어느새 문 앞에서 죽친 지도 꽤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나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곳이 베론이 지내게 될 보육원이 아니었다면,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거다.

문은 다행히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에 열렸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사용인을 따라 저택 내 접견실로 안내를 받았고, 그 안에서 나온 사내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레논 보육원의 관리를 맡고 있는 집사, 트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는 접견실의 문을 열어 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알렌과 이리엘이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창가를 타고 떨어진 빛줄기가 작은 화분 위로 내리고 있었다.

소소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의 아늑한 방.

이 꼴로 서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집사도 우리의 몰골을 유심히 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원장님이 출타 중이셔서 대응이 늦어졌습니다만, 우선 씻고들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그는 정중히 물었고, 우리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모두가 원하는 바였다.

“이제야 사람 같네요.”

멀끔하게 변한 알렌이 거울에 본인을 이리저리 비춰 보고 있었다.

나도 며칠 만에 씻고 새 옷을 입으니 상쾌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나는 베론의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털어 주며 알렌에게 말했다.

“원장에게는 너희 둘이 다녀와. 베론은 내가 보고 있을 테니.”

알렌이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접견실에서는 베론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터.

아이를 옆에 두고 말할 사안들은 아니었다.

집사에게 듣기로 뒷마당에서 놀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그쪽으로 데려가 봐야지.

알렌과 이리엘이 떠나고 나는 더 늦기 전에 베론을 옆구리에 끼고 발코니를 통해 지붕을 넘어 단번에 뒷마당으로 갔다.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베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상기된 표정을 보였다.

“와.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저기 네 친구들이다.”

나는 베론의 감상평을 무시하며 뒷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내게서 시선을 돌린 베론이 그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베론의 또래로 보이는 이들도 꽤 많았다.

그들을 돌보던 선생이 갑작스레 나타난 우리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말했다.

“새로 온 아이다.”

“아, 이쪽으로 오렴. 이름이 뭐야?”

그녀가 살며시 웃으며 다가왔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베론은 그녀에게 가지 않고 내 다리에 찰싹 붙어 쭈뼛거렸다.

나는 그런 녀석을 떼어 낸 뒤 등을 떠밀었다.

앞으로 밀려난 베론이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최대한 친절히 말했다.

“다녀오거라.”

베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에게 천천히 걸어갔고, 다가온 여선생이 베론의 손을 잡고 아이들에게 데려갔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베론이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점차 붉게 물들어 가는 세상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몇몇의 아이들이 베론에게 말을 거는 모습도 보였다. 베론은 불편한 듯 보였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나눠 가고 있었다.

나는 왜인지 그 모습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괜찮을 거 같네.’

이곳은 루시안의 후원 아래 운영되는 보육원.

그는 제국의 영향을 아무래도 덜 받는 소도시들에 보육원을 설립하여 운영해 오고 있었다.

이곳은 베론을 믿고 맡겨도 될 만큼, 확실한 곳이었다.

아마 잘 지내겠지.

“제네스 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알렌이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리엘도 옆에 있었고, 잘 가다듬어진 흰 수염을 가진 노인과도 함께였다.

온화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그는 내게 악수를 건네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원장, 클로스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모두 들었습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클로스가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알렌과 이리엘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금방이라도 사고 칠 애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들의 시선은 가볍게 무시하며, 주름진 클로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반갑습니다. 제네스라고 합니다.”

그는 내 손을 한번 꾹 쥔 뒤에 놓아주었다.

그는 아이들이 노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군요.”

그는 베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좋아 보입니다.”

“제 삶의 낙이지요. 요새는 보기 어려운 일들 아닙니까.”

그는 흐뭇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알렌과 이리엘도 어느새 베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식, 긴장했군.”

“그러게요. 그래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이리엘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베론 또한 그들을 발견하고는 놀다 말고 손을 흔들었다. 알렌과 이리엘은 손을 마주 흔들며 계속 놀라는 식으로 손짓을 했다.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베론은 다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어색한지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지만, 즐거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라 그런지 분위기에 금세 스며들고 있었다.

클로스가 말했다.

“내일 오후에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네, 이별을 길게 끌 이유가 없으니까요. 오전에 베론과 시간을 보내고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우리는 내일 바로 여정에 오를 생각이었다.

여기 며칠 더 있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그럼 오늘 저녁은 저와 함께하는 게 어떤가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그때 보도록 합시다.”

클로스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떠나갔다.

그가 자리를 뜨기 무섭게 알렌이 호들갑을 떨며 바짝 붙어 왔다.

“제네스 님! 존댓말 할 줄 아셨어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리엘도 옆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둘은 진심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까 그리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거였군.

내가 원장에게 반말할까 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베론에 관한 이야기는 잘 했어?”

“아, 그럼요! 잘 돌봐 주시기로 했어요. 사정도 다 설명했고요. 베론은 훌륭하게 자랄 수 있을 겁니다.”

알렌은 자신 있게 답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근데 제네스 님이 존댓말을 하실 줄이야. 처음에는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잖아요. 그래도 예의를 차릴 줄 아시기는 아시네요. 저는 또…….”

알렌이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내 싸늘한 시선을 느낀 탓이다. 그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내 눈치를 슬슬 보며 거리를 벌렸다.

저 녀석이 왜 저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생각보다 개념 없는 놈은 아니다.

나도 존대를 할 줄 안다.

내가 존중해 주고 싶을 때만.

원장이 그 기준에 부합했을 뿐이다.

나이도 나보다 많아 보였고, 존대를 받을 만큼 나잇값을 하는 자였다. 내가 사부님 때문에 유독 백발에 약한 것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이들의 표정만 보고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부모의 사랑만큼이야 못하겠지만,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듯했다.

후원을 받고 있다 해도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지 않으면 이뤄 내기 어려운 일.

그는 내게 존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가만히 서서 베론을 바라보았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세상은 점점 더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가 헤어질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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