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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31화 (31/228)

제31화

제31화 괴인 (1)

좁은 소로가 뱀처럼 구불거리는 비탈진 산길.

우거진 잎사귀들 사이로 햇볕이 기다랗게 떨어지고 있었다.

말은 타고 갈 수 없어 평야에 풀어 준 상황.

우리는 두 다리로 그 가파른 길을 올랐다.

카트르시로 향하는 길은 평원이라, 적들의 추격이 있을 수 있었다.

크테러산맥을 타는 게 차라리 깔끔했다.

“저 앞에서 좀 쉴까요?”

앞장서 걷던 알렌이 저편에 보이는 바위를 가리켰다. 그의 얼굴 위로 구슬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알렌이 숨을 몰아쉬며 엄살을 부렸다. 녀석이 가리킨 바위는 경사면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고, 넷이 편히 앉아도 될 만큼 커다랬다.

알렌 바로 뒤에서 걷던 이리엘도 나를 돌아보며 간절한 눈빛을 던졌다.

“……이러다 진짜 죽겠어요.”

고작 이만큼 걷고 쉬고 싶다니.

이래저래 성가신 녀석들이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이제야 좀 쉬겠네.”

이리엘은 몸을 튕겨 가방을 고쳐 메고는 안도의 숨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내게 입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런데 반나절 동안 한 번도 안 쉬고 산을 오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산길에 발을 디딘 이후로 지금 처음 쉬는 거 아시죠?”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곧 쉴 생각에 참았던 불만이 터지나 본데.

“쉬기 싫다는 말이지?”

내 물음에, 불만을 토로하던 그녀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 덕분에 곧 있을 휴식이 매우 달콤할 거 같다는 감사의 말을 전하려던 참이었다구요. 발렌시아 대륙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것도 몰라요?”

나는 답하지 않고 계속 걸으란 식으로 턱짓을 했다. 이리엘은 조용히 꿍얼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알렌 삼촌, 괜찮아요?”

알렌의 등 뒤에 업혀 있던 베론이 조심스레 말했다. 알렌이 헉헉거리며 큰소리를 쳤다.

“걱정 마! 하나도 안 무거우니까!”

그는 배낭을 앞으로 멘 채, 베론까지 업고 험준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베론의 체력으로는 이 가파른 산을 오를 수 없는 까닭.

내가 업어야 옳지 않냐고?

이 또한 하체 단련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절대 번거롭고 귀찮아서가 아니라, 알렌을 위해서였다.

“으자자.”

바위에 도착한 알렌이 곡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경사면에 툭 튀어나온 바위다 보니 정상에 오른 것처럼 시야가 트이며 산면의 경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빼곡한 수림이 산등성이를 따라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휘잉.

서늘한 산바람이 머리칼을 흔들고 지나갔다. 나는 그 장엄한 풍광에 시선을 둔 채 이리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활.”

“왜요?”

이리엘은 이유를 물으면서도 별말 없이 내게 활을 건넸다.

나는 빈 시위를 퉁퉁, 튕겨 보며 활의 탄성을 확인했다. 몬스터의 뼈로 만들어진 활이었다. 중원의 것보다 사정거리가 길 듯하다.

“화살도.”

이리엘은 의문을 담은 눈빛을 보내며 화살도 건넸다. 잔뜩 지쳐서 그런지 평소와 달리 군말 없이 움직였다.

앞으로도 자주 굴려야 되겠군.

나는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 허공을 겨누며 당겼다.

내 시선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고 있는 검은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까마귀였다.

화살 깃을 귀 뒤까지 주욱 당기자, 활이 적당히 휘어지며 활시위가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그리고 이내.

파앙―!

활시위가 공기를 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손끝에서 사라졌다.

쇄액―!

하늘을 가르며 쏘아지는 화살.

흐릿한 궤적이 유성우처럼 길게 늘어졌다.

순식간에 공간을 집어삼킨 검은 가시가 멀리 있던 검은 점을 정확히 꿰뚫고 지나친다.

관통당한 까마귀는 곧장 연기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와…….”

뒤편에서 짧은 탄성이 들렸다.

나는 그녀에게 활을 넘기며 말했다.

“실력에 비해 과분한 활이군.”

“활이 좋다는 표현을 색다르게 하시네요. 나중에 활을 거래할 기회가 생기면 응용해 봐야겠어요.”

이리엘은 입을 빼쭉거리며 활을 건네받았다.

옆에 있던 알렌이 물었다.

“저희를 봤을까요?”

“보지 못했다.”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녀석이었다.

멀뚱히 지나가는 것을 격추한 거였으니.

내가 말했다.

“앞으로 까마귀는 걱정할 필요 없다.”

이로써 녀석들의 시야에서는 완전히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위치는 정확히 모르지만, 정황상의 거리와 시간을 생각했을 때 우리를 추격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하, 다행이다.”

알렌은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를 늘어뜨리더니 그대로 바위에 드러누웠다.

뒤통수에 낯선 시선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나는 곧장 그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시각에 감각을 집중하자, 주변을 채운 녹음이 흐릿해지며 한 곳에 초점이 맞춰졌다.

꽤나 먼 거리.

거뭇한 무언가가 나무 뒤로 황급히 모습을 감췄다.

뭐지?

거리도 있었고 우거진 풀숲 때문에 나도 확실히 보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건 분명했다.

아까부터 무언가 주변을 알짱거리는 게 느껴진 까닭.

그 탓에 신경이 예민해져 까마귀 전령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고.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왜요?”

이리엘이 내가 보던 방향을 따라 보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굳이 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도 어렴풋이 존재만 느낀 상황.

지금 말하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호들갑만 떨게 빤했다.

* * *

“와, 맛있겠다!”

베론이 침을 삼키며 눈을 반짝였다. 녀석은 팬케이크를 굽는 알렌 옆에 찰싹 달라붙어 코를 킁킁거렸다.

주변은 어느새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는 바위에서 쉰 이후로, 한참을 더 걸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뒤편으로는 짧은 절벽을, 앞으로는 어둠에 잠긴 숲을 둔 곳이었다.

산속의 밤은 깊고 짙었다.

간헐적으로 몬스터의 포효가 산을 울려 왔다.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베론은 깜짝깜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능숙하게 팬케이크를 뒤집은 알렌이 베론을 바라보았다.

“몬스터 실제로 본 적 있어?”

“이야기만 많이 들었어요. 알렌 삼촌은 본 적 있어요?”

베론은 겁먹은 커다란 눈망울을 깜박거렸다. 알렌이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봤지. 사람쯤은 우습게 잡아먹는 위험한 녀석들이야. 옛날에는 산이고 들이고 없는 곳이 없었다지. 지금은 검은 숲으로 대부분 몰아냈지만. 그래도 크테러산맥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깊은 산속에는 여전히 서식하고 있지.”

“몬스터 만났던 이야기 해 주세요!”

“흠, 가만 보자…… 어떤 녀석이 좋을까? 그래, 그 녀석이 좋겠군.”

알렌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한번 팬케이크를 뒤집었다.

베론은 무서운지 몸을 움츠리면서도 알렌의 이야기 속으로 금세 빠져들었다.

그런 베론을 보며 이리엘은 염려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제 며칠 후면 베론과 헤어지겠네요. 보육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는지…….”

레논시에 도착하면 우리는 베론과 헤어져야 했다. 이리엘은 아이가 맞을 또 한 번의 이별이 걱정되는 듯했다.

나는 베론을 보며 답했다.

“잘 지낼 거다.”

부모를 잃은 아픔이야 평생 가겠지만, 그래도 이제 많이 밝아져 있었다.

보육원에서의 삶에도 금방 적응하겠지.

그래야 되고.

“오오.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이리엘은 놀란 눈치로 나를 보았다.

나는 황당한 눈빛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날 뭘로 보는 거냐?”

“말을 매우 못되게 하며, 툭하면 협박하고, 겁주고, 마음에 안 들면 때리기까지 하는 괴팍한 사람?”

나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때리지 않아. 차라리 죽이면 죽였지.”

“……대단하시네요. 그런 사람이 알렌 형님은 왜 때리는데요. 물론 그렇다고 죽이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쟨 맞을 짓을 하니까. 그리고 저 녀석에게 주는 꿀밤은 머리가 좋아지는 효능이 있는 특급 꿀밤이다. 애정이 없는 이는 때리지도 않지.”

“참, 설득력 있는 변명이네요.”

“못 믿어도 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아, 그럼 절 안 때리는 이유는 저한테 애정이 없어서 그런 거였어요? 저는 제가 예뻐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리엘은 턱 밑에 꽃받침을 하더니 예쁜 척을 해 댔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갈겼다.

“악!”

짧게 비명을 지른 이리엘이 금세 붉어진 이마를 감싸며 나를 쏘아보았다.

“참 나. 조금 전까지는 안 때린다고 해 놓고. 그럼 이 딱밤은 저한테 애정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 맞을 짓을 했다고 해석하면 된다.”

이리엘은 뭐라 구시렁거리며 본인의 무릎을 팔로 감싸 안았다. 그녀는 웃고 있는 베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만큼 강해졌어요?”

“검을 들어라.”

나는 몸을 일으키며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나를 따라 일어난 이리엘이 나를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올려다보았다.

“비법이라도 알려 주시려고요?”

“아니. 넌 100년을 수련해도 무리야.”

“그럼 검은 왜 들라는 건데요?”

“적이다. 알렌, 베론을 뒤로 보내고 전투를 준비해라.”

화들짝 놀란 알렌이 잽싸게 일어나 베론을 짐을 쌓아 놓은 가장 안쪽으로 보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뒤에 절벽을 두고 자리를 잡은 거였다.

나는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고, 이리엘도 나를 따라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가 불안한 눈빛을 내게 던졌다.

“까마귀들은 아니죠?”

“몬스터다.”

내 말에, 알렌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옆으로 붙었다.

“휴, 그나마 다행이네요. 몬스터도 제 말 하면 온다던데. 저 때문은 아니겠죠?”

우리는 뒤쪽의 베론을 중심으로 삼각 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중앙이었고 왼쪽에는 이리엘, 오른쪽에는 알렌이 섰다.

허약한 녀석들이지만, 상급 마나 유저라면 산맥에서 나오는 몬스터 정도야 충분히 감당할 만한 실력.

큰 걱정은 없었다.

나는 사방에서 접근해 오는 몬스터들의 기척을 살폈다. 밤바람을 타고 오는 살기는 짙었지만, 기세는 미약하다.

수는 열넷.

딱 봐도 위협적인 놈들은 아니었다.

잠시 후, 하수구 냄새 비슷한 악취와 함께 어둠에 잠긴 나무 사이로 호박색 별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눈동자였다.

녀석들은 우리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자, 그르렁거리며 달빛 아래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빛의 거친 피부를 가진 녀석들은 키가 성인 남성 가슴팍에 이를 정도로 작았으나, 몸은 두껍고 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롤이네요.”

알렌이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일반인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인 존재지만, 몬스터 중에는 위험 정도가 하급으로 분류되는 녀석들이었다.

이 정도 숫자면 알렌과 이리엘, 둘만 있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

“키악!”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은 그롤들이 손에 쥔 녹슨 날붙이와 날카롭게 간 돌칼을 들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걸음을 내디뎠다. 손끝에서 번쩍인 섬광이 갈라지며 빛살처럼 뻗어 갔다.

퍼버버벅!

정면에 있던 그롤들의 머리통이 폭죽 터지듯 터져 나가며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알렌과 이리엘도 순식간에 몇을 정리했다.

녀석들을 처리하는 건 식후 운동도 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괜히 입맛만 버렸군.”

나는 녀석들의 사체를 못마땅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이질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낮에 느꼈던 느낌과 분명 같았다.

나는 그 방향을 향해 발을 굴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과 내 사이의 간격이 증발하듯 찰나에 사라졌다.

스스스슥!

검은 그림자가 수풀을 헤치며 미끄러지듯 도망치고 있었다.

그 속도가 꽤나 빨랐다.

하지만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지.

“감히 어딜.”

금세 뒤를 잡은 나는, 검은 로브를 쓴 녀석의 뒷덜미를 낚아채어 당겼다.

그런데 손끝이 허전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뭐지?

나는 손에 쥐어진 로브를 바라보았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낡은 로브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로브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로브를 벗고 도망간 게 아니었다. 그 안의 존재가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내 앞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질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인가?”

나는 로브를 바닥에 버렸다.

몸을 돌리려는 찰나, 저편에서 다시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영지 쪽이었다.

도착하니, 알렌과 이리엘이 십여 마리의 그롤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을 도와 그롤의 목을 베었고, 상황은 금세 정리됐다.

“그롤이 두 조로 나뉘어 쳐들어오다니 별일이 다 있네요.”

알렌이 칼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말했다. 녀석들의 지능을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기는 했다.

“베론은?”

내 물음에, 알렌과 이리엘은 별다른 생각 없이 뒤를 돌며 말했다.

“당연히 뒤에…….”

말을 하다 만 그들이 몸을 돌처럼 굳혔다.

베론이 있어야 할 자리가 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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