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제27화 비테로 체즈웬 (2)
다시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놀란 마음에 우리 쪽으로 몸을 기울였던 코레른은, 자세를 바로 하며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이거 내가 본의 아니게 실례를 했구만. 진심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 그래서 암살은 언제쯤 실행할 계획인가?”
“내일 연회가 있다더군.”
내 말에, 코레른은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
“취임 5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인데, 영지민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당장 튀겨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취임을 기념하겠다니. ……그런데 그건 왜?”
한차례 성을 낸 녀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불안한 눈길을 보냈다.
“설마 암살을 내일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본인의 예상이 적중하자, 코레른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갑자기 비테로를 암살하겠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는 길 가다 마주칠 수 있는 이웃이 아닐세. 그가 거주하는 체즈웬성은 높은 수준의 호위병들과 보안 마법으로 항시 철저한 경계태세를 유지하는 데다, 비테로 본인 또한 수준 높은 무위를 가지고 있다고! 섣부르게 암살을 시도했다가는 의미 없는 개죽음으로 끝나고 말걸세.”
코레른은 암살에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였다.
그럴 만도 했다.
암살을 계획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테니.
그는 여태껏 비테로의 행적을 감시하며 체즈웬 주변의 동향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아 왔다.
그만큼 비테로의 악행에 관해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만큼 그에 대한 원한도 깊었다.
비테로를 암살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 중 코레른이 가장 간절할 터였다.
반대로 그렇기에 코레른은 비테로를 암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를 베는 건 내가 할 테니 신경 쓸 것 없다.”
“그, 그게 무슨…….”
그는 나를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도 그 기분을 겪어 봐서 잘 아는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네스 님은 소드 마스터시거든요.”
옆에 있던 알렌이 코레른을 달랬다. 하지만 그 말은 언제나처럼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코레른이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자가 소드 마스터라고?”
“예.”
알렌의 자신 있는 대답에, 헛웃음을 터트린 코레른은 이제 우리를 미X놈처럼 바라보았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의 청년이 프렌치아에 있지도 않은 소드 마스터라니.
나 같아도 못 믿겠다.
“자네들 본부에서 온 게 맞기는 한 건가?”
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그에게 나답지 않게 친절히 굴었다.
녀석의 도움이 필요한 탓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보여 주지.”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있어 하책은 백 마디 말로써 설득하려는 것이고, 상책은 한 번의 주먹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그게 좀 아니다 싶을 때는 직접 보여 주는 중책도 있다.
내가 이번에 선택한 방법은, 조금은 번거롭지만 직접 보여 주는 중책이었다.
기이잉!
검지와 중지를 펴자 그 위로 타오르는 새파란 섬광.
영롱한 강기가 손가락 위로 칼날처럼 솟아있었다.
“오러블레이드다.”
“이,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래.”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이내 제 수북한 턱수염을 쓸며 말했다.
“어디서 거짓말인가. 내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갈 것 같아? 당신들 대체 목적이 뭐야?”
선명한 증거를 보여줬음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향한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말로만 들어봐서 그런가 본데.
보다 실질적인 강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듯하다.
“번거롭게 구는군.”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부엉이 조각상을 손에 쥐었다. 깃털 하나하나가 느껴질 정도로 정밀하게 조각된 조각상이었다.
무슨 돌을 깎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였다.
“이것을 한순간에 가루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을 테지.
하지만 이것이 협소한 공간에서 내 무력을 증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부엉이 조각상을 단숨에 가루로 만드는 건, 막대한 마력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이 조각상을 가루로 만들겠다는 건 아…….”
파스스슥.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부엉이 조각상은, 고운 모래가 되어 테이블 위로 흘러내렸다.
코레른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는 입을 금붕어처럼 벙긋거렸다.
그러고는 조금 전까지 부엉이 조각상이었던 가루를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루만졌다.
그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이, 이거 내가 엄청 아끼던 건데…….”
그의 반응이 탐탁지 않았던 나는 이번에는 벽에 걸려 있던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것도 가루로 만들어 주랴?”
“아, 안 돼! 저건 내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란 말일세!”
코레른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가는 길을 막고 섰다.
“그럼 내 말을 믿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그는 반쯤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마음을 추스른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강하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 그럼 알아서 죽일 것이지, 왜 우리를 찾아온 겐가?”
코레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조각상을 부순 것에 불만이 남아 있는 듯했다. 나는 벽에 걸린 그림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하, 오해하지는 말게.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알아야 도울 게 아닌가.”
그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호탕한 척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됐군.
내가 말했다.
“내일 연회 전까지 비테로의 목을 걸 효수대와 그의 죄를 낱낱이 열거한 벽보를 만들어라.”
내 의도를 이해한 알렌과 이리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화전민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이리엘이 염려스러운 듯 물었다.
“그런데 일을 이렇게 크게 벌여도 되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걱정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총독부가 있는 수도까지 가려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릴 터.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가는, 가는 길이 험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바라던 바였다.
나는 자연스레 본부를 떠나기 전날, 레이크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내게 이리 말했었다.
-검을 무겁게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것이 어떤 일이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제네스 님의 이야기가 프렌치아 전역에 닿을 수 있도록 말이죠.
나는 녀석과 나누던 대화의 맥락을 통해 이 말에 담긴 뜻을 손쉽게 이해했다.
독립은 독립군들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그 열망이 민중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이게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냐면.
내가 수도로 가는 와중, 남기는 발자국은 그 족적이 깊을수록 널리 퍼질 것이고.
그 걸음이 총독의 목을 베는 것까지 이어졌을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독립의 가능성을 보게 될 거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결국,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열망으로 바뀌게 되겠지.
그래서 나는 내 존재를 감추지 않고 마음껏 드러낼 생각이었다.
프렌치아 전역에 독립의 열망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도록.
* * *
체즈웬성 내원의 연무장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거친 호흡과 함께 은은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엄지손가락 하나로 물구나무를 선 채, 팔굽혀 펴기를 하는 남자가 있었다.
거꾸로 곧게 선 그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단단한 등 근육이 뱀처럼 꿈틀거렸고, 그 굴곡을 따라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후우.”
그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바로 하자, 옆에 있던 하녀들이 재빨리 수건을 가져갔다.
사내의 덩치가 어찌나 큰지 하녀의 몸집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수건을 잡아챈 남자가 얼굴을 닦았다.
바위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이자가 바로 체즈웬성의 주인, 비테로 체즈웬이었다.
연무장을 벗어나는 그의 옆으로 집사가 따라붙었다. 비테로가 말했다.
“연회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겠지?”
“네, 물론입니다.”
집사의 대답에 비테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체즈웬은 촌구석이지만, 처음으로 얻은 자신의 영지이자 프렌치 놈들을 도륙한 대가로 얻은 상이었다.
‘취임 5주년은 특별히 기념해 줘야지.’
그는 근처의 이름 있는 자들을 모두 초대했다. 취임 후 첫 연회이니만큼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었다.
그래야 오는 이들도 양손을 두둑이 하고 올 게 아닌가.
“요새 영지 동향은 어때?”
“확실히 이탈률이 적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몇 달 전부터 주변의 화전민들을 찾아내 씨를 말리고 있었다.
과연 그 효과는 확실했다.
도망쳐 죽는 것보다, 이곳에서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겠지.
“버러지 같은 새끼들.”
비테로가 방문을 열며 말했다.
드러난 방은 호화스럽고 값비싼 것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는 하녀가 쟁반에 받치고 있던 물잔을 집어 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세금을 더 올려도 되겠어.”
“얼마나 올릴까요?”
“지금의 3할.”
“네, 알겠습니다.”
그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영지민이 말라 죽건 말건, 그것은 그가 알 바 아니었다.
비테로는 그들의 고혈을 최대한 쥐어짜 재물을 모은 다음, 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니까.
그의 꿈은 원대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 누가 냄새나는 프렌치아 변방에서 삶을 썩히고 싶겠는가.
“하여간 프렌치 놈들의 생존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크큭.”
가득 채워질 곳간을 생각하며 비테로는 웃음을 터트렸다.
제멋대로 휘두르는 권력의 맛은 제법 쏠쏠했다.
이제 그것마저도 슬슬 지루해지고 있지만, 잠깐의 유흥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른 세금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자못 기대되는군.”
벌써부터 죽을상을 짓는 이들의 표정이 눈앞에 선했다.
아마 항의도 빗발칠 테지.
비테로는 내심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발버둥 치는 놈들을 짓밟는 재미 또한 그가 이 시골 촌구석에서의 삶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으니까.
“씻고 나오시면 준비한 예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녀의 말에 비테로는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이 바로, 고대하던 연회가 있는 날인 까닭이다.
* * *
해가 저물고 있었다.
머리 위로 땅거미가 느릿느릿 드리웠다.
이제 곧 비테로의 취임 5주년을 기념하는 연회가 시작될 거였다.
가정집 지붕 위에 참새처럼 나란히 앉은 이들은, 붉게 물들어 가는 체즈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괜찮겠지?”
넋을 놓고 있던 코레른은 습관처럼 회의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는 비테로 암살 계획에 동참한 이후로 줄곧 저 상태였다. 옆에 앉아 있던 이리엘이 말했다.
“아마도요.”
사실 그녀 또한 제네스에 대해 확신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강하다는 것도, 소드 마스터인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루시안과 레이크가 그리 말했고, 실제로 ‘미드크레이’에서의 일도 단번에 해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일이 정녕 가능한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 마음 다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이들 중 오직 알렌만이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계가 삼엄한 체즈웬성에 홀로 잠입해서 비테로를 죽인다는 게 믿어지지 않겠죠.”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를 죽이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왜 진즉 그러지 않았겠는가.
코레른 또한 지금까지 상상 속에서 비테로를 수백 번 죽여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테로가 저리 버젓이 살아 있는 건, 현실에서는 그를 죽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제네스가 강한 건 알겠다만, 비테로를 죽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반면, 알렌은 제네스가 산책이라도 나선 것처럼 천하태평이다.
“‘미드크레이’에서 마적 떼를 헤집는 제네스 님을 봤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셨을 텐데.”
알렌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코레른이 말했다.
“……마적들이야 그렇다 쳐도 저들은 기사들일세. 게다가 비테로 또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야.”
“수백에 이르는 마적을 한 끼 식사처럼 가볍게 해치우신 분이 우리 제네스 님입니다. 비테로쯤이야 간식거리 정도밖에 안 된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렌이 호언장담을 했다.
코레른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안을 억지로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와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자네 말대로 제네스를 한번 믿어 보세.”
코레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제 우리도 슬슬 움직여 보자고.”
그는 엉덩이의 먼지를 툭툭 털며, 굳건히 서 있는 체즈웬성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무모해 보이는 이 일이, 잘 해결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