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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5화 (25/228)

제25화

제25화 울지 않는 아이

은은한 달빛이 허름한 가정집을 비추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그곳에서 작은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슨 일이야? 이리 온.”

잠에서 깬 여인이 훌쩍이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무서운 꿈을 꿨어요.”

아이는 어미의 품을 파고들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녀는 아이의 체온을 느끼며, 옹기종기 붙어사는 좁고 허름한 집의 장점도 있음을 알았다.

“괜찮아, 씩씩한 아이는 우는 거 아니야.”

모로 누운 사내가 아내의 품에 있는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이는 따뜻한 부모의 손길을 느끼며 점차 울음을 그쳐 갔다.

아이를 품에서 꺼낸 여인은 아이의 조그만 얼굴을 감싸 쥐며 엄지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우리 아가는 눈물이 이렇게 많아서 어쩐담? 어제도 울지 않았나?”

“저 눈물 안 많아요! 어제는 제이슨이 꼬집어서 운 거고 오늘은 무서운 꿈을 꿔서 그런 거예요!”

아이는 입을 빼쭉 내밀며 다시금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사내는 그런 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며 아내와 미소로 마주 보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밤.

그 안락함을 부수는 굉음이 들려온 것은, 그들이 막 단잠에 빠지려던 때였다.

콰앙!

우레와 같은 폭발음이 그들의 평온한 밤을 뒤흔들었다.

“여보!”

벌떡 일어난 여인이 사색에 질린 채 사내를 바라보았다. 몸을 일으킨 사내의 낯빛 또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폭발음 뒤로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한두 명의 것이 아니었다.

마을에 무슨 사달이 난 게 분명했다.

그들은 다급히 겉옷만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불안한 표정의 아이는 사내가 안은 채였다.

바깥에 나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니, 저편에서부터 시뻘건 화마가 덮쳐 오고 있었다.

고요했던 마을에 낯선 소음이 가득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순, 지반을 두드리는 말발굽 소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포에 질린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꿈이 아니었다.

“당장 도망쳐!”

저 멀리서 달려오던 남자가 어둠의 끝자락에서 소리쳤다. 그 뒤를 허공에 뜬 불길이 따르고 있었다.

횃불을 든 기사들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은빛 섬광이 번쩍였다.

도망치던 남자가 피를 뿜으며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달려!”

그 모습을 본 사내가 아내를 보며 소리쳤다. 그는 아이를 안고 달렸고, 여인은 그 옆을 바짝 따랐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위협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달렸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들려오는 비명과 말발굽 소리를 피해 달릴 뿐.

그들은 골목 사이를 누비며 이쪽저쪽으로 달렸다. 죽음이 사방에서 옥죄어 오고 있었다.

콰직!

그때 도망치던 사내의 등판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큭!”

짧은 신음을 터트린 사내가 비틀거렸다. 그는 아이가 다칠까, 쓰러지려는 몸을 억지로 세우며 갸우뚱거렸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또 하나의 화살이 솟아나듯 박혔다. 사내는 아이를 안은 상태 그대로 엎어졌다.

“아빠!”

그 밑에 깔린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순간, 그 위를 옆에 있던 여인이 몸을 날려 덮었다.

말을 탄 기사가 그들의 곁을 지나치며 검을 그었다.

은빛 궤적 끝에서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아이 위로 쓰러진 여인의 등이 시뻘겋게 물들어 갔다.

“…….”

바닥에 깔린 아이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아이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부모의 죽음 앞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여인은 그런 아이를 몸으로 덮어 안았다. 그러고는 머리칼을 쓸며 조용히 속삭였다.

“쉬이…… 울지 마, 아가. 절대 울면 안 돼.”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억지로 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를 달랬다.

그런 어미의 바람이 전해진 걸까?

아이는 다행히 울지 않았다.

안도의 미소를 지은 그녀의 눈가에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아이를 잠재우듯 가만히 토닥였다.

아이를 토닥이던 박자가 천천히 늘어지기 시작한다.

점차 흐릿해지던 손길은 결국 힘없이 스러졌다.

아이 또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새벽의 찬 공기가 남은 이른 아침이었다.

프렌치아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일주일.

우리는 크테러산맥을 낀 가도를 지나고 있었다.

“아침은 좀 대충 먹으면 안 돼요?”

억지로 몸을 일으킨 이리엘이 나를 흘겨보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알렌을 통하지 않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대화 내용은 여전히 유쾌하지 않았지만, 알렌은 장족의 발전이라며 박수를 쳐댔었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일말의 재고 없이 말했다.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물은 건 아니지?”

“입버릇처럼 해 본 말이에요.”

“바보는 아니라 다행이구나.”

“말투 뭐야. 아저씨도 아니고.”

“투덜대지 말고, 아침이나 준비하거라.”

“예, 예. 그럽지요.”

대답과 달리 이리엘은 투덜거리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갔다.

“어휴, 얼마나 잘 먹고 잘살겠다고 유난을 떠는지. 아침을 제대로 차려 먹고 싶으면 자기가 하든가. 매번 부려 먹기만 하면서 팬케이크가 퍽퍽하네, 수프가 짜네, 말만 더럽게 많아요.”

식기를 험하게 다루며 하는 앞담화에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나는, 여전히 비몽사몽인 알렌을 온화한 목소리로 불렀다.

“알렌.”

“아, 옙!”

화들짝, 잠에서 깬 알렌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투덜거리고 있는 이리엘을 턱으로 가리켰다.

벌떡 일어난 알렌이 이리엘을 한쪽으로 데려가 어르고 달랬다.

아랫사람 관리는 중간 관리자에게 맡겨야지, 윗사람이 직접 나서면 체통만 떨어질 뿐이다.

내리갈굼이라고도 하지.

잠시 후, 입이 댓 발 나온 이리엘이 터벅터벅 걸어와 아침을 시작했다.

이제야 좀 조용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보니 네 요리의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오늘 식사는 더욱 엄중히 신경 쓰도록 해라. 이왕 가는 길 즐겁게 가야 하지 않겠냐.”

나는 보다 나은 아침 식사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고는, 손에 쥔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101가지 방법」이라는 책이었다.

“저 책을 불살라 버리든가 해야지.”

이리엘의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어? 저기 연기가 피어오르는데요?”

이리엘을 돕던 알렌이 손가락으로 저편을 가리켰다.

먼 산 중턱에서 잿빛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리가 있었기에 지금에야 눈에 들어왔다.

알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쪽에 마을이 있었나?”

“화전민인 것 같은데요.”

이리엘이 답했다.

권력의 횡포로 도시를 벗어나는 국민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은 타국으로 도망가 미천한 신분으로 살거나, 산간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아갔다.

어디를 가든 녹록지 않은 삶.

그들은 더 나은 지옥으로 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었다.

“왠지 불길한데…….”

알렌이 말끝을 흐렸다. 자신들의 주거지를 숨겨야 할 화전민들이 저렇게 큰 불을 피웠을 리 없으니까.

“한번 가 봐야겠다. 짐들 챙겨라.”

나는 책을 덮으며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금세 채비를 하고 연기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아 말을 타고도 오를 수 있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한동안 나아가자 바람에 날려 온 옅은 탄내와 그 사이에 섞인 혈향을 맡을 수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우리는 새까맣게 타 버린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지만, 이곳에 터를 잡은 지는 꽤 된 듯 보였다.

마을의 입구에는 여러 개의 수급이 나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옆에 펼쳐진 기다란 천에는 이들의 죄목이 적혀 있었다.

영지 내에서 세금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은 도적과 다름없기에 모두 극형으로 다스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끝에는 형벌을 내린 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비테로 체즈웬 남작.

“들어가 보자.”

마을 안으로 진입하니, 집들은 모두 불에 타 허물어져 있었고 거리에는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발렌시아 대륙에 온 후 벌써 두 번째 보는 광경이었다.

아이데할을 만났던 그 마을 또한 이러했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이리엘은 입을 틀어막으며 뒷말을 삼켰다.

이런 일이 프렌치아 전역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녀도 알고 있었겠지만,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나는 참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생존자가 있는지 찾아보거라. 적이 아직 있을지 모르니, 둘은 같이 다니도록 하고.”

우리는 두 개 조로 나뉘어 생존자 수색에 들어갔다.

작은 마을이라 수색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였다.

나는 죽음이 늘어진 거리를 천천히 살폈다.

시간이 역행하듯 흐르며,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흐르는 듯했다.

바닥에 누운 시체들과 그 주변에 새겨진 흔적들이 내게 말을 걸어 오고 있었다.

난데없는 습격에 도망치던 사람들과 그 뒤를 쫓던 기마병.

말을 탄 이들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후에 그 뒤를 보병들이 쓸고 지나갔다.

공포와 비명으로 얼룩졌던 어젯밤은 명백한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제네스 님!”

나를 찾는 소리에 그 소리를 쫓았다.

도착하니, 이리엘이 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듯했다.

그 옆으로는 부모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 아이는 그들의 시체로 덮여 있어 살아남은 듯 보였다.

“숲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를 돌보고 있거라.”

나는 이리엘을 먼저 보냈다.

나와 알렌은 마을에 남아, 할 일이 있었다.

·

·

·

잠시 후, 마을의 중심에서 불길이 일었다.

시체 더미가 거센 화염에 삼켜지고 있었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가만히 보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죽어야 할까?’

답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억울한 죽음이 생겨나고 있을 거였다.

나는 불길에서 천천히 눈을 떼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죽음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원망의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지금 막 깨어났어요.”

이리엘을 찾아가니 그녀는 의식을 찾은 아이에게 죽을 떠먹이고 있었다. 야위고 꾀죄죄한 아이는 흰자위만 맑게 빛났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나무둥치에 앉았다.

“어떻게 할까요?”

알렌이 물었다. 행선지를 묻는 말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체즈웬으로 간다.”

내 말에, 이리엘이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투명했다.

가서 뭘 어쩔 거냐는 물음.

알렌이 그것을 읽고 답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는 제네스 님만 믿으면 돼.”

가타부타 없는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녀석은 내가 마적 떼를 섬멸하는 걸 직접 본 이후로, 신실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리엘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자, 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우리가 안전한 곳에 데려가 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죠?”

아이를 달랜 이리엘이 알렌을 바라보았다. 알렌은 지도를 훑으며 말했다.

“가는 길에 우리 쪽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이 있으니까, 데려다줄 수 있을 거야.”

“들었지? 가면 친구들도 많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리엘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친절한 표정으로 아이를 달랬다.

이리엘이 저런 표정과 저런 말투를 보일 수 있다는 것에 솔직히 놀랐다.

대체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감사합니다.”

아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조금이나마 안도하는 아이의 눈빛에서 텅 빈 공허가 보였다.

어려 보이기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닌 듯했다.

아이는 부모의 죽음과 자신이 머물 곳이 사라졌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는 왜인지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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