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3화 (23/228)

제23화

제23화 다시 프렌치아로 (2)

“누가 살아 있다고?”

나는 확실히 들었음에도 되물었다.

너무 말이 되지 않아서.

레이크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근래, 세자 저하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나는 하도 기가 차서 헛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세자가 살아 있다고?

레이크가 말하는 세자란, 나의 전생.

그는 테나스타 광장에서 처형당했다. 수없이 많은 국민이 그 광경을 보았고.

그런데 그가 살아 있다니.

재고할 가치도 없는 헛소문이었다. 그 소문의 당사자인 내게는 더욱이 그랬다.

내가 말했다.

“그걸 믿는 건 아니겠지?”

“확신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문을 믿지 않지만, 거짓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는 의미.

나는 잠시 일렁였던 감정을 추슬렀다. 전생과 연관되어 있다 보니 평소보다 감정적이었다.

나는 한 호흡을 쉬고 나서 물었다.

“왜지?”

팔체라토를 베기 전 세 녀석에게 내가 죽고 나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 또한 왕세자가 테나스타 광장에서 공개 처형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레이크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소문의 진위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저희 쪽에서도 그 소문을 헛소문이라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하를 살려 두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할렌트의 함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레이크가 나를 직시했다.

“국새가 나오기 전까지는요.”

“국새 때문에 세자의 생존에 의구심이 생겼다는 건가?”

고개를 끄덕거린 레이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왕국이 패망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제국군은 물론이고, 변절자들과 독립군 모두 국새를 찾으려 전국을 뒤졌음에도 국새의 위치는 오리무중이었죠. 그랬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 어떻게 국새의 위치를 알게 된 걸까요?”

“그야 그동안 찾아왔으니 어쩌다 알게 됐나 보지. 누군가 아이데할을 알아봤다던가.”

“정확한 상황이야 모르지만, 아마 그럴 확률이 높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요.”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살아 있던 세자를 이제야 찾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레이크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네. 10년 전, 그들은 궁을 빠져나간 저하를 잡지 못했지만 프렌치아를 장악하기 위해 대역을 세워 저하를 처형한 것처럼 꾸몄고, 지금까지 은밀히 저하를 찾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죠. 그러면 세자 저하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말이 됩니다.”

말은 되지만, 빈틈이 많은 가설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왕세자는 지금까지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겠는가.

레이크 또한 그 부분에 대해 순순히 인정했다.

“물론, 비약적인 가설일 뿐입니다. 이쯤에서 저는 제네스 님께 한 가지 묻고 싶군요. 제네스 님은 그곳에 국새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잠시 입을 닫았다.

첫 만남에서야 어영부영 넘겼다지만,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순간이 올 줄은 알고 있었다.

내가 답이 없자 레이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프레디와 체스에게 당시 상황을 더욱 자세히 들었습니다. 정황상 제네스 님은 그곳에 국새를 찾으러 왔던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그가 국새를 가지고 있던 것과, 팔체라토가 가져간 것이 가짜란 걸 알아차리신 겁니까.”

“이러려고 크레이 지부에 보냈던 건 아니니, 오해는 마.”

추궁하는 식으로 대화가 흘러가자 루시안이 말을 보태 분위기를 중재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야 내가 국새를 쥐고 있었기에 얼버무릴 수 있었다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아이데할에게 국새를 건넨 왕세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한 거짓이 필요했다.

나는 미리 생각해 둔 적당한 거짓을 말했다.

“나는 과거 웨일런궁에 있었다. 그래서 왕세자와 아이데할에 대해서도 잘 알지. 그리고 너희가 세리어스 공작가의 자제란 것도.”

루시안과 이리엘이 몸을 흠칫 떨었다.

내가 본인들의 가문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을 거다.

레이크의 반응을 보니, 그 또한 이들이 세리어스 공작가의 자제란 걸 이미 알고 있던 눈치다.

나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이어 갔다.

“숲에서 세 녀석과 만난 건 우연이었고, 그들을 따라 도착한 마을에서 아이데할의 시체를 봤다. 자연스레 마을에 벌어진 참상과 그가 변방에서 죽은 이유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그러다 국새를 떠올렸다. 아이데할의 용의주도한 성격상 국새를 베개 속에 숨기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 그러다 보니 입구에 서 있던 느레티 나무가 보였다. 왕세자는 느레티 나무를 좋아했었으니까. 그래서 그 밑을 파 보니 예상대로 국새가 있더군.”

“그런데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나요?”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레이크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는 내 뜻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나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저하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국새의 발견으로 손톱만큼의 가능성은 생겼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저하의 생존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의 행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조그마한 가능성일지라도 간과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레이크의 말뜻을 이해했다.

지금에 와서 왕세자의 생존 여부가 중요하나 싶지만, 그의 생존은 독립군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가 어느 곳에 서느냐에 따라 독립군의 명분과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독립군을 하나로 통합시킬 가장 강력한 구심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소문의 진위를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앞으로의 행보도 결정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이 소문은 이런 독립군의 상황을 노린 할렌트 바레인의 계책일 게 분명했다.

감히 죽은 나를 이용해 계책을 꾸미다니.

거꾸로 치솟은 피가 북해의 빙하처럼 싸늘히 식었다.

괘씸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상황에 대해 제네스 님이 따로 해 주실 일은 없고, 그저 이리엘을 수도로 데려가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소문의 진상은 할렌트가 쥐고 있겠지요. 만약 본인이 저하라고 주장하는 자가 나온다면 이리엘은 그때 그 사람이 저하가 맞는지를 확인할 겁니다.”

아무래도 레이크에게 왕세자의 생존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은 듯했다.

그에게 프렌치아의 새로운 왕은 이미 루시안일 테니.

그는 왕세자의 생존보다 내가 할렌트를 죽이고 난 이후의 정황을 고려하여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라면 굳이 이리엘을 데리고 갈 필요가 없다.

“왕세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함이라면 내가 해도 된다. 말했듯 나도 웨일런궁에 있었으니까.”

“죄송하지만, 이리엘이 가장 믿을 만합니다.”

레이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내 말은 믿을 수 없다 이거지.

괘씸하기는 하지만, 내가 비밀을 품고 있는 이상 녀석도 날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을 거다.

녀석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리엘은 세자 저하가 생존해 계셨을 때, 그를 저희 쪽으로 오게끔 설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제야 루시안이 이리엘을 수도로 보내는 이유를 완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왕세자가 살아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의 행보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질 터.

이리엘은 왕세자를 ‘북부의 흰사자’로 데리고 올 수 있는 설득력을 갖춘 자였다.

루시안이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녀가 수도로 가는 게 여러모로 가장 합리적이었다.

어쩔 수 없지만, 나도 이 부분에 대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왕세자라 말할 수도 없으니.

“그럼 그렇게 해. 하지만 공작가의 여식이었던 이가 징징거리지 않고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군. 보다시피 내가 누군가에게 맞춰 주는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이리엘을 보았다. 머리도 사내처럼 자르고, 옷도 사내처럼 입었다지만―.

“저기요! 저 무시하지 마요! 이래 봬도 상급 마나 유저고,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남은 몸이라고요. 저를 지금 손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혀 본 귀족가 아가씨로 보는 거예요?”

이리엘이 쌍심지를 켜며 눈을 부라렸다.

그녀의 가문, 세리어스 공작가는 프렌치아에서 제일가던 무가(武家).

그녀의 무위 또한 어느 정도 수준에는 이르러 있었다.

적극적으로 익히지 않은 탓에 한참은 모자라지만.

물론, 그 부분은 이미 모두 알고 있던 바였다.

걷는 것만 봐도 한눈에 보이니까.

내가 염려한 것은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정의 불편함이었다.

나도 까탈스러운 편이지만, 평안한 여행은 아닐 것이므로.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 실수를 깔끔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왕세자가 아니듯, 그녀도 더 이상 세상 물정 모르던 공작가의 철부지 아가씨가 아니었다.

이리엘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만도 하다.

내가 말했다.

“힘들다고 징징거리면 버리고 갈 테니, 그리 알아라.”

이리엘은 눈을 뒤집었다.

* * *

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끝내고 나오니, 세상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서늘한 밤공기가 폐부를 훑었다.

나는 곧장 주점으로 향했다. 술이 당겼다.

딸랑.

문을 열자 종소리가 울렸다. 다가오는 종업원에게 위스키 한 병을 주문하며 주변을 훑었다.

한쪽 구석에서 익숙한 녀석들이 신나게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 동공이 풀린 녀석들이 나를 반겼다.

“왜 이리 늦으셨어요?”

알렌 녀석이 고부라진 혀로 술 냄새를 풍겨 왔다.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회포는 다 풀었느냐.”

“예, 그럼요. 이 녀석, 얼마나 신나서 이야기하던지. 제네스 님 안 따라갔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프레디가 알렌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종업원이 놓고 간 위스키를 잔에 따라 마셨다. 독한 알코올 향이 코끝을 찌르며 식도를 덥혔다.

체스가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무슨 일은.”

잔을 내려놓은 나는 그들을 슥 훑어보고 말했다.

“이제 프렌치아로 돌아갈 거다.”

술에 절어 있던 녀석들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양,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다들 풀어진 초점을 맞추기 위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프렌치아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프렌치아를 뒤집어엎겠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그들에게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했고, 바라 마지않던 일이기도 했다.

“한 명만 데려갈 거다. 누가 갈 테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녀석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프레디와 체스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둘은 손을 들려다 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알렌은 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어 가장 빨랐다. 이미 마음을 정해 놓았던 듯하다.

“제가 꼭 가고 싶습니다!”

알렌이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올리며 주사를 부렸다.

반쯤 풀린 동공에 어눌한 발음.

거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믿음직스럽다.

“저를 꼭 데려―.”

“알았으니, 물 좀 마시고 술부터 깨.”

나는 녀석의 말을 자르며 물을 건넸다. 그는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미간에 힘을 빡 주었다.

아직도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하지만, 취해서 내린 결정이 아님은 알았다.

그는 이미 이 선택의 근거를 보여 줬었으니까.

‘미드크레이’에서 그는 내게 자신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된 것 같다고 했었다.

당시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만든 지옥도에서 그토록 바라던 결말을 엿본 것이다.

자신이 꿈에나 그렸던, 이 이야기의 끝을.

“수도까지 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리엘도 함께 갈 거다.”

“이리엘이요?”

녀석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지부에서 봤던 여자.”

“아아, 지부장님이요.”

“세부적인 일정은 둘이서 이야기해. 너와 함께 가겠다고 기별해 둘 테니.”

“옙! 알겠습니다!”

나는 거수경례까지 하며 과하게 구는 알렌을 뒤로하고 프레디와 체스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곧 아이아스로 돌아가게 될 거다.”

내 말에, 체스는 잔에 반쯤 남아 있던 맥주를 한 번에 털어 넘기고 말했다.

“저희도 함께 갈 수는 없는 겁니까?”

“저도 가고 싶습니다.”

프레디 또한 말을 보탰다.

녀석들의 눈빛은 비장했다.

괜히 해 보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함께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내가 가는 길이 얼마나 위험할지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나는 둘의 굳은 의지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 중 한 명만 데려가는 건, 시중을 들 녀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데려가 봐야 짐일 뿐이지.”

“…….”

알렌을 포함한 셋은 잠시 아무 말도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그런가, 맞은 것처럼 뼈가 다 아픈데요?”

프레디가 본인의 팔뚝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옆에 있던 체스도 본인의 팔뚝을 마사지하며 거들었다.

“너도 거기가 아파? 나도 거기가 아픈데.”

나는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다.

알렌이 아쉬운 눈빛으로 그들을 보며 말했다.

“조만간 다시 볼 날이 있겠지?”

“그럴 거야 분명. 네가 눈치 없이 명을 재촉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체스가 실실거리며 말하자, 프레디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잔을 들었다.

“아마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프렌치아가 독립한 이후겠지.”

독립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각자의 임무가 있기에 그 전까지 다시 만나기란 어려울 거다.

그들 또한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동시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는 잔을 들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그 말에 병든 닭처럼 골골거리던 녀석들은 금세 어깨를 펴고, 다시 분위기를 달구었다.

“좋아! 그럼 오늘 한번 끝까지 달려 보는 거다!”

파이팅 넘치게 건배를 주도한 알렌은 술잔을 입에 가져가다가 무언가 번뜩 떠올랐는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참, 저희 출발은 언제입니까?”

홀로 위스키를 홀짝이던 나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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