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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9화 (19/228)

제19화

제19화 나 하나면 충분하다 (1)

서류가 쌓인 고풍스런 책상, 머리칼을 반듯이 넘긴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사내가 업무를 보고 있다.

그의 이름은 할렌트 바레인.

프렌치아 총독부 1대 총독이자, 현 프렌치아의 최고 실권자.

현재 그의 가문인 바레인가(家)는 가문이 세워진 이래 가장 막대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똑똑똑.

“들어오거라.”

할렌트는 훑어보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집무실로 들어오는 라에슈를 바라보았다.

라에슈는 까마귀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맡은 자였다.

“충!”

절도 있게 경례한 라에슈는 할렌트를 긴장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져온 정보가 할렌트의 심기를 건들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3소대에 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상황이 벌어진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오고 간 시간까지 고려하면 늦은 것은 아니었다.

전반적인 상황은 할렌트 또한 이미 알고 있었고.

“결국, 국새는 오리무중인가?”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새의 행방.

할렌트의 낮은 목소리에 라에슈는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국새를 가져간 이들의 흔적을 추적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주르아든 왕국 쪽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주르아든 왕국이라, 그럼 흰사자 쪽이려나.”

“네,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까다로운 놈들에게 들어갔군.”

“그런데 까마귀 기사단을 전멸시킨 이들을 특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렌트는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흰사자 쪽의 전력이야 대강은 알고 있었으니까.

“새로운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예. 3소대를 전멸시킬 전력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전력이 투입되었을 거라 예상했지만, 간부급 인물들의 특성을 비교한 결과 딱히 맞아떨어지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다수의 인원이 투입된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남아 있는 흔적이 적어 정확한 판단은 내리기 어려우나 정황이 그러했습니다.”

“흠…….”

할렌트는 작은 신음과 함께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아마 다른 독립군 세력과 협력했거나, 새로운 인물을 영입한 것이리라.

“일단 알았다. 쉬고 있거라.”

“네, 알겠습니다.”

절도 있게 경례한 라에슈가 나가고, 할렌트는 몸을 일으켜 뒤편의 너른 창 앞에 섰다. 총독부의 전경이 한눈에 담겼다.

3소대를 전멸시킬 정도의 전력이라…….

과연 어떤 녀석들일까?

호기심이 동했다.

국새를 빼앗긴 것과 3소대를 잃은 것에 마음이 쓰림에도, 그는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세상을 오시하고 있었다.

제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으나 자신은 현재, 권력의 정점.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국새가 독립군의 손에 들어간 이상 그들은 조만간 이빨을 드러낼 것이니까.

어차피 국새의 용도는 그것이었다.

이제 와서 정통성이란 허울 좋은 상징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바레인 가문에는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으니까.

할렌트에게 국새는 독립군을 뿌리 뽑을 좋은 미끼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손에 쥐어졌지만, 크게 나쁠 것은 없었다.

살짝 비틀렸다 해도 상황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터.

이제 곧 프렌치아는 전장의 거센 불길로 뒤덮일 거였다.

* * *

“저, 정말입니까?”

“그럼 농담이겠냐.”

“……네, 알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세 녀석은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삶과 죽음의 기로 앞에 선 무인과 같은 안색.

이게 다 내가 조금 전에 뱉은 말 때문이다.

‘셋 중에 한 놈만 나를 따른다.’라는.

잠깐의 여정을 떠나야 하는데 내 시중을 들 녀석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단순히 운에 맡겨야 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운명은 나를 따르는 한 명이 되는 게 아니라, 남는 두 명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괘씸한 녀석들.

죽을 거 살려 놨더니 서로 안 가겠다 난리다.

나 정도면 아주 관대한 윗사람인데 말이지.

암, 그렇고말고.

세 녀석은 깊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손을 가운데 모았다.

그들이 아는 가장 공평한 경기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바로 가위바위보.

승부는 단판.

“가위, 바위, 보!”

필사의 외침과 함께 손이 한데 모이고.

“우와아아아!”

승부는 단번에 가려졌다.

홀로 승리한 알렌이 가위를 낸 손을 치켜들며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러 댔다.

그는 가위를 낸 자신의 손을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며 프레디와 체스 주변을 여러 차례 돌더니, 얼마나 기쁜지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있다.

누가 보면 독립이라도 한 줄 알겠네.

패배한 둘의 표정은 금세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 상황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당연히 배알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고 있는 알렌을 직접 지목했다.

“그럼 네가 가자.”

감격에 젖어 있던 알렌의 표정이 단숨에 굳었다. 그러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설마가 맞았다.

“당연히 이긴 놈이 가야지.”

“저, 저희는 진 사람이 가기로 했는데요…….”

그는 금세 사색이 되어 말까지 더듬었다.

“뭐?”

하지만 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문하자.

“우리가 언제! 제네스 님을 가까이에서 모실 기회인데 당연히 이긴 사람이 그 혜택을 누려야지!”

체스 녀석이 눈치 빠르게 상황을 넘겼고, 프레디도 재빨리 말을 보탰다.

“그럼그럼. 그런 좋은 기회는 당연히 이긴 사람이 가야 한다고!”

“야이익.”

알렌은 잘 익은 홍시처럼 얼굴을 붉히며 반론하려 했지만, 분함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거렸다. 나는 그런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뭐 해, 빨리 짐 챙겨 와.”

“……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말해 봤자 통하지 않을 것을 아는 거다.

반항하면 몇 대 쥐어박히기나 하겠지.

그런 그를 두 녀석이 다독이며 뒤따랐다.

알렌은 그들에게 배신감을 단단히 느낀 듯 어깨를 둘러 오는 팔을 세차게 뿌리쳤다.

아까는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던 몸이 지금은 천근보다 무거워 보인다.

가기 싫다 이거지.

나는 그에게 그런 감정을 준 사람으로서 자기반성은커녕, 빨리 짐을 챙기라고 닦달하는 악랄함을 보여 주었다.

“빨리 안 움직이냐?”

“네? 넵!”

황급히 달려간 세 녀석이 금세 멀어지고, 나는 마차에 올라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

루시안에게 받은 사두마차였다.

편안하고 안락하기가 침상과 다를 바가 없다.

잠깐의 여정이지만, 오가는 길은 꽤 편안할 듯하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귓가에 흘렀다. 네모난 창에 담긴 세상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나와 알렌은 크레이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곳에 가는 이유는 레이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사적인 부탁은 아니고 루시안이 이끄는 팔레이트 상단의 일이었다.

이 간단한(?) 일에는 문제 해결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말고도 추가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정확히는 나의 쓸모랄까.

소드 마스터가 전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그 또한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사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정확히 어느 정도로 강한지 감이 잡히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 일을 부탁한 것이다.

대략적으로라도 전력의 측정이 필요하기 때문.

고작 이런 일로 내 전력을 측정할 수 있을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일단 녀석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레이크는 독립군의 작전을 총괄하는 참모.

게다가 내가 제갈문학의 그림자를 보았을 정도로 똑똑한 놈이다.

웬만해서는 녀석의 말을 따라 주는 게 낫다.

독립을 빨리 이뤄야 나도 편안한 여생을 보낼 것이 아닌가.

나는 평안한 삶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던 와중, 발렌시아 대륙에 오게 됐다.

지금도 그 마음에 변화는 없었다.

나는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

마차는 그런 내 바람을 아는 듯 평온하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 * *

팔레이트 상단의 크레이 지부.

본단에 비해서는 조촐한 수준이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활기찬 느낌을 주었다.

사두마차는 정문을 넘어 안채까지 쉽게 나아갔다.

상단의 귀빈만이 탈 수 있는 마차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목적지까지 편히 올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오셨나요?”

중년의 사내가 마차에서 내리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맞이했다.

안내를 담당하는 이인가 보다.

“지부장에게 안내해 주게.”

나는 그에게 루시안이 준 편지를 보여 주었다.

이 편지를 지부장에게 전하는 것.

그 또한 나의 임무 중 하나였다.

봉투에 찍힌 왁스 실을 본 그는 곧장 앞장서서 우리를 어딘가로 안내해 주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분위기가 뭔가 뒤숭숭하네요.”

뒤를 따르던 알렌이 말했다.

그는 넉살 좋게 안내해 주는 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괜한 소리는 아니었다. 안채의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긴장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게 다 마적 놈들 때문이죠. 근래 녀석들이 더 날뛰고 있어서 다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툴툴거렸다.

현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던 터라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곧 지부장을 만날 것이기에 말을 아꼈다. 크게 관심도 없고.

긴 담벼락을 따라 걷다 만난 문을 넘으니, 매화나무가 만연한 중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을 따라 붉은빛의 꽃잎들이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다.

“지부장님께서 아까 나가셨다고 들어서요. 조금 기다리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라고, 사내는 안내했지만 우리는 중정에 발을 디디기 무섭게 나갔다던 지부장과 조우할 수 있었다.

“아! 다행히 저기 오시네요.”

마침 돌아오는 길이었나 보다.

날리는 꽃잎 사이로 흐르는 긴 청발이 시선을 끌었다.

바다처럼 푸르른 색이었다.

루시안을 만났을 때부터 예상은 했었다.

이 녀석 또한 살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지부장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청색의 눈동자는 별이 박힌 듯 반짝였고, 코는 앙증맞게 오뚝했으며,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붉은 입술은 도톰하니 탐스러웠다.

수수함 속에 기품을 간직한, 청초한 매력의 여인.

이리엘 세리어스.

루시안의 여동생이자, 전생에 내 약혼녀.

작은 소녀는 긴 세월이 지나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걷는 와중에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멈췄다.

이리엘은 고운 아미를 찌푸리더니 쥐고 있던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 허공에 흩뿌렸다.

찢긴 종이가 꽃잎처럼 허공에 휘날렸다.

그녀는,

“이런 미X 새끼들이!”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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