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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8화 (18/228)

제18화

제18화 이상 (2)

“왕이 없는 나라?”

어이가 없었다. 왕이 없는 나라라니.

표정을 보니 장난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루시안이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왕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나는 일단 잠자코 들었다.

이해는 안 가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말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가 말을 이었다.

“독립군을 이끌면서 나는 신분 제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군 중에는 귀족이었던 자도 있지만, 과거 노예였던 자도 있거든. 하지만 나라를 잃으니 둘은 하나도 다르지 않더군. 그저 살아온 환경과 주어진 기회가 달랐을 뿐이지.”

왕세자였다가 거지였던 나는 누구보다 그 말을 쉽게 이해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태생적인 신분으로 한계가 정해지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어떨까? 그 자리가 왕의 자리일지라도, 뜻이 있고 능력이 된다면 누구나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있다면 멋질 것 같지 않나?”

……이 자식.

왕이 될 생각이 없다더니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나.

그러면 그 나라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무엇이 될지 정할 수 있는 건가?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기만 한 세상도 아닐 것 같다.

강렬한 빛에는 언제나 짙은 그림자가 따라붙는 법이니.

그래도 태생으로 한계가 정해지는 지금보다야 더 많은 이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맞아. 그저 이상일 뿐이지. 내가 왕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이런 나라는 왕이 아닌 국민이 원할 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 한 세대가 아닌 몇 세대에 걸쳐 이룩할 문제지. 그래서 내 첫 번째 목표는 국민의 교육 수준을 최대한 높이는 거야. 그들 스스로가 귀족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거지.”

녀석은 이후로도 홀로 신나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나라에 대해 떠들어 댔다.

왕이 될 생각을 안 해 봤다는 놈 맞아?

나는 그런 루시안을 보며 자연스레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는 늘 함께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내 기억 속의 루시안과 눈앞의 루시안이 하나의 그림처럼 포개어지는 듯했다.

그때서야 나는 환생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차이를 명확히 깨달았다.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 된 나와 달리, 그는 변하지 않았다.

성장했을 뿐.

“어때?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앞으로의 계획을 쏟아낸 루시안이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왕이 될 것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사람치고, 상당히 많은 걸 생각해 놨군.”

“이거 참, 생각해 보니 그러네.”

그는 민망한 척 볼을 긁적이더니, 금세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왕이 될 생각이 아예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독립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꿈꾸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하고.”

루시안이 입가의 웃음을 거두며 나를 보았다.

“자, 그럼 이제 네가 원하는 왕의 자격이 무엇인지 말해 봐. 나는 그것을 통과하고 너를 내 검으로 삼아야겠으니까.”

나는 답을 하는 대신 국새를 꺼내 그에게 툭 던졌다. 엉겁결에 국새를 받아 든 녀석은 나를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지?”

“일단은 합격. 지금의 그 이상을 잊지 말아라. 어긋난 길로 갈 경우, 다시 빼앗을 테니까.”

루시안은 손에 쥔 국새를 복잡한 심경으로 내려다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고개를 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쉽게 줘도 되겠어? 대련까지 시킨 입장에서 괜히 미안해지네.”

“말했듯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빼앗아 올 테니, 걱정 마.”

“다시 뺏는다니 괜히 불안한데? 평소 변덕은 어때? 심한 편인가?”

“죽 끓는 듯하지.”

“무지 조심해야겠군.”

루시안이 환히 웃었다. 나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루시안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줄 작정이었다.

내가 알던 그는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으니까.

다행히 그는 여전했다.

루시안은 프렌치아를 잘 이끌어 갈 것이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쓸 것이고, 국민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할 것이다.

그거면 되었다.

“그럼 쉬어라.”

나는 녀석에게서 등을 돌렸다.

출구까지 이르는 길이 정원을 가로지르며 곧게 뻗어 있었다.

이제 나의 행보 또한, 이처럼 확실히 정해졌다.

나는 루시안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두 베어 줄 생각이다.

그럼으로써.

한때 나와 함께 이상을 꿈꾸었고, 여전히 국민을 사랑하는 그에게.

잠시, 검[劍]이 되어 주겠다.

* * *

루시안은 멀어지는 제네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었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레이크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제네스.”

루시안은 그의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곱씹을수록 가슴에 일렁이는 진한 여운.

자연스레 오래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잠시 과거를 거닐던 루시안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추억의 책장을 닫았다.

제네스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럼에도 루시안은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작스레 나타난 녀석.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제네스란 이름이 본명인지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신뢰가 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막연한 직감.

하지만 그의 목적이 정말 프렌치아의 독립, 그것 하나뿐일까?

레이크는 그와 함께 가는 것이 목숨을 건 도박과 다름이 없다 했다.

제네스의 존재는 자신들에게 양날의 검.

‘녀석의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주체적으로 독립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그는 그만큼이나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렇기에 그를 신뢰하는 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시안은 제네스를 믿기로 했다. 정확히는 제네스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어차피 독립군이 되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내놓은 목숨.

직감을 믿고 눈앞에 다가온 가능성에 걸어 봐야겠지.

그 날카로움이 언젠가 자신을 향할지라도······.

그것을 각오했기에 그는 이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네스라는 날카로운 검을 능히 품어 낼 자신이, 루시안에게는 있었다.

“……제대로 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만.”

루시안은 여러 심경이 섞인 복잡한 눈빛으로 손에 쥔 국새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머금은 국새가 영롱한 빛을 띠었다.

* * *

밤이 저물고 날이 밝았다.

현재 나는 전략회의실이란 곳에 앉아 있었다.

한편에 세워진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커다란 테이블에는 프렌치아의 전도가 놓여 있었다.

이 방은 독립군의 작전을 계획, 수립하는 곳이었다.

나의 맞은편에는 루시안이, 우리 사이에는 레이크가 서 있었다.

“현재 독립군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이크는 어디든 찍을 수 있는 긴 막대를 쥔 채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막았다.

“그런 것엔 관심 없다.”

“……그래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무표정한 녀석의 얼굴이 살짝 움찔거렸다.

나는 가볍게 의견을 전했다.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독립군의 전력, 상대의 전력, 현재 진행 상황, 앞으로의 계획, 그런 복잡한 것들은 내게 무의미했다.

그에 따른 세부적인 계획은 모두 이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자격을 논했고, 독립군의 본부를 찾은 것이니까.

“나는 할렌트 바레인을 베겠다.”

할렌트 바레인.

나의 외숙부였던 자이자, 프렌치아 총독부의 제1대 총독을 맡고 있는 제국의 개.

과거, 내게 검을 가르쳐 주었던 스승이자 한때는 존경했던 사내.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어째서 나라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배신했는지.

내가 알고 있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일 뿐, 그를 베려는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할렌트를 목표로 삼은 것은 그가 현재 프렌치아의 정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적진을 흔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니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큰 판을 벌여야겠네요.”

레이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는 내 의도를 모두 읽은 듯했다.

나로서는 여러 말을 하지 않아 편했다.

“정말 어떤 의미로든 상상 초월이군.”

루시안이 말했다.

그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한 견해야.”

나는 그의 말에 쉽게 긍정했다.

이런 시선, 이미 무림에서도 많이 겪어 봤다.

내가 천마의 목을 베겠다 공헌했을 때, 구파의 장문인들이 나를 이렇게 봤었지.

“어제의 이야기는 대장에게 대강 들었습니다.”

레이크는 자리에 앉으며 본격적으로 질문을 할 태세를 보였다.

그는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은 듯했다. 표정은 없지만, 칼처럼 번뜩이는 눈빛만 봐도 훤히 알 수 있다.

“제네스 님은 소드 마스터이십니까?”

“아니.”

“……그렇군요. 그럼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보면 될까요?”

그가 묻는 건 마나 유저부터 익스퍼트, 마스터로 구분되는 검의 경지였다.

익스퍼트 최상급은 무림과 비교하면 초절정 고수 정도. 그런 의미에서 소드 마스터는 화경의 경지와 일맥상통했다.

지금 레이크는 현경에 이른 내게 ‘화경이냐? 초절정 고수냐?’ 묻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곳이 무림이었다면 녀석의 머리통을 대차게 쥐어박았을 테지만, 녀석이 나를 소드 마스터보다 아래의 경지로 보는 것은 당연한 거였다.

무림에서 현경이란 경지는 역사를 통틀어 몇 안 되지만 누군가 오르기라도 했던 경지였고, 발렌시아 대륙에서는 소드 마스터 위의 경지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레이크가 소드 마스터의 위가 아닌 아래를 보는 건 그에게는 합리적인 시선이었다.

“최상급 경지로는 절대 할렌트를―.”

그래서 나는 녀석의 잘못된 관념을 정정해 주었다.

“아래가 아니라, 그 위다.”

?!

레이크의 동공이 한차례 일렁였다.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루시안은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 나를 향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창백한 표정의 그는 재미없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억지로 웃어 댔다.

레이크가 금세 평정을 갖추며 물었다.

“소드 마스터 위로도 경지가 있습니까? 저는 들어 본 적 없습니다만.”

“아무도 걷지 않았다고 길이 없을까.”

“근거가 있으십니까. 저는 독립군에서 참모를 맡고 있습니다. 작전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제네스 님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근거를 제시한대도 어차피 너는 알 수 없다. 그냥 소드 마스터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도록.”

“……하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많은 질문을 생략해도 되겠네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검 하나에 의지한 채 거침없이 살아온 나는, 복잡한 것과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다.

“미치겠군.”

루시안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넋을 놓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이 그 감정을 잘 보여 주었다.

내 경지는 검을 익히지 않은 레이크보다 루시안에게 훨씬 더 충격적이었을 거다.

레이크는 특유의 얼음 같은 표정으로 본론을 이어 갔다.

“그럼 할렌트 바레인을 목표로 계책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시간은 조금 걸릴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렌트 바레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프렌치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고, 그로 인해 프렌치아는 격동기에 들어서게 될 거다.

그 흐름을 사전에 예측하여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설계하는 것이 바로 그가 할 일이었다.

그는 내가 길게 말하지 않아도 내 의도를 척척 알아들었다.

그에게서 제갈문학의 그림자를 본 것은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준 것 없이 밉다.

이 녀석같이 효율을 중시하고 계산적인 인간들이 가지는 공통된 성향이 하나 있거든.

그건 바로 사람이 가만히 노는 꼴을 못 본다는 거다.

“계책을 준비하는 동안 제네스 님께 따로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역시 이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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