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제17화 이상 (1)
독립군들의 주점, ‘저항의 숨결’은 축제 분위기가 완연했다. 다들 승전한 군인처럼 환희에 젖어 있었다. 덕분에 자리가 모자라, 널따란 마당에 앉아 다 함께 술을 즐겼다.
“왔다!”
한 사람의 고함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개선장군인 양 당당한 기세로 걸음을 옮기는 인물들이 있었다.
알렌, 프레디, 체스.
그들의 등장에 중앙에 자리가 비워지며, 술잔이 돌았다.
주인공인 제네스가 없었기에, 그들은 주인공을 대신해 모든 관심을 독차지했다.
자리를 잡자마자 사방에서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와는 어떻게 만났는가?”
“그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까마귀 기사단을 격퇴하는 것을 직접 본 겐가!”
“그의 나이는?”
잔뜩 흥분한 이들의 질문 세례는 입이 세 개라도 도저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소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쾅! 쾅! 쾅!
모두의 시선이 주점의 외벽을 두드리는 한 남자에게 꽂혔다.
벽을 친 건, 구석에 앉아 있던 하트웬이었다. 그 옆으로는 우르노와 화렌카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트웬이 호탕하게 소리쳤다.
“그래서 얘기가 진행되겠나! 내가 사회를 보도록 하지!”
연무장에서도 사회를 보았던 그는 이야기의 진행을 자청하고 나섰다.
모두가 세 녀석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내가 정리되자, 알렌이 사뭇 비장한 태도로 서두를 열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알렌은 셋 중 감칠맛 나게 말하는 입담이 제일 좋았다. 그렇기에 전반적인 이야기 진행을 맡았다.
프레디와 체스는 그가 간간이 놓치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감초 역할을 했다.
알렌은 훌륭한 이야기꾼답게 적절한 몸짓을 섞어 가며 제네스와의 첫 대면부터 상세히 풀어 갔다.
사람들은 용사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귀를 쫑긋 세웠다.
“제네스 님이 더 이상 말하면 죽는다. 딱 이러니까 그 녀석들이 뭐라고 하겠어. 어이가 없는 거지, 어이가. 갑자기 등장한 젊은 놈이 그런 말을 해 봐. 그 말을 따르겠어? 당연히 안 따르지. 그럴 때 제네스 님이 딱 손을 뻗는 거야. 그러고 중지를 움켜쥐더니 마치 화살을 겨누듯 허공을 겨누더라고. 그때 한 녀석이 뭐라 말을 하는데, 그 순간 파앙 소리가 나더니 한 놈이 머리가 터지면서 그대로 자빠지는 거야.”
“에이!”
가만히 집중하여 듣던 이들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장난하나.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그것도 허공을 쳐서 머리통을 부쉈다니.”
“허풍이 너무 심하잖아!”
제네스가 강하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딱밤 이야기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허풍이라니! 진짜라고!”
“우리 모두 똑똑히 봤다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프레디와 체스까지 일어나 강력하게 항변하자, 반발하는 여론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믿는다기보다 그래, 어디 들어나 보자, 라는 심정이었다.
어쨌든 이야기는 다시 이어져, 칠인대와 조우하는 상황까지 흘러 있었다.
“그때 내가 딱 이야기했지.”
“아니야, 내가 이야기했어.”
프레디가 알렌의 말을 막아섰다.
목숨을 구해 줬으니 뒤는 우리가 맡겠다는 대사가 바로 자신의 말이었다는 의미다.
독립군들은 그런 프레디를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알렌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랬나? 아무튼 우리가 왜 그랬냐면, 칠인대라고 팔체라토의 친위대로 한가락 하는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이 뒤쫓아 왔다는 걸 알았거든. 근데 웬걸, 이미 와 버렸네. 저 멀리서 일곱 개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 와, 진짜 살벌하더라고―.”
사람들은 다시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해 나갔고,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간부들은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다들 제대로 신났어.”
이야기가 길어지자 사회자를 자처했던 하트웬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럴 만도 하지.”
우르노가 씁쓸하게 웃으며 목을 축였다.
낮에 있었던 패배가 마음에 걸린 탓이다. 그것은 화렌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어제 괜히 나서 가지고.”
“그러니까. 너 때문에 괜히 판만 커져서 내가 제대로 개망신당했잖아.”
우르노는 화렌카에게 책망의 시선을 던졌다. 그가 어제 패배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대련을 구경하지는 않았을 거였다.
화렌카가 발끈했다.
“그게 왜 내 탓이야!”
“쓸데없는 소리들 그만해. 어차피 승자는 나니까.”
제네스를 상대한 적 없는 하트웬이 상황을 정리하며 건배를 제의했다.
세 개의 잔이 한 점에서 부딪쳤다.
“직접 맞서면 어떤 느낌이야? 옆에서 봐도 간담이 서늘하더만.”
하트웬이 맥주를 홀짝이며 물었다. 우르노는 그 말에 고심하며 입을 열었다.
“흠, 뭐랄까. 검이 아니라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집어삼켜 오는 느낌이었지. 검이 오는 게 보이는데도 어떻게 대항할 수가 없더군.”
“호오, 재밌는 감상평이네.”
“옆에서 지켜볼 때는 어떻던가? 나는 오히려 그게 궁금하던데.”
“음…….”
침음을 흘린 하트웬은 대련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머릿속에는 그때의 상황이 선명히 담겨 있지만, 말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짧은 찰나, 무언가를 보았으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가늠하기 어려운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라는 직관적인 감각만 남아 있을 뿐.
그래서 그는 그 심정을 간단히 정리해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X나 세 보였어.”
“멍청한 놈.”
화렌카가 그의 감상을 비웃었다.
“그럼 네가 말해 봐.”
화렌카는 맥주를 들이켜던 자세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그도 딱히 설명할 수 없었다.
찰나를 가로지르던 검을 대체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경지인데.
잠깐이지만, 제네스가 같은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어땠냐?”
우르노가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는 화렌카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래도 제일 뭐라도 해 봤잖아.”
우르노는 어젯밤의 상황을 묻고 있었다.
화렌카는 고개를 저으며 어제 느꼈던 끔찍한 기분을 떠올렸다.
하늘을 가리던 손바닥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마치 벌레가 된 기분이었지.
그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하긴 뭘 해! 헛손질하다 바닥 몇 번 쓸고 끝났는데. 그나저나 땅을 감쪽같이 덮어 놨네. 어제 그 흔적을 봤더라면, 손가락으로 제국군 머리통을 날렸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했을 텐데.”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잠시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서로 다른 패배를 맞보았지만, 느끼는 감정은 모두 같았다.
아득함.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는 까마득한 격차.
평생을 수련해 온 무위가 이렇게 초라해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질투심마저 일으킬 수가 없다.
같은 선상에 설 수조차 없으니 질투는커녕 오히려 경외심이 들 정도다.
그래서일까?
패배는 씁쓸했고 평생을 갈고닦은 검은 꺾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홀가분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친놈같이 설레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 같은 감정일 터였다.
그의 강함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란 걸.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마 그가 있겠지.
왜인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던 프렌치아의 독립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 * *
창공이 까맣게 물든 밤, 촘촘히 박힌 별들이 반짝였다. 곱게 굽은 달이 은은한 빛을 내리고 있었다.
캄캄하지만, 훤한 밤이었다.
저 멀리서 활기찬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주점, ‘저항의 숨결’에서는 주인공 없는 환영식이 한창이었다.
나는 나를 작은 정원으로 부른 이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뒷모습.
그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마음대로.”
이제 루시안은 나보다 한참 어렸지만, 그의 옆에 설 때면 왜인지 전생의 삶이 더욱 진해졌다.
그가 오랜 친우같이 느껴질 정도로.
이거 내가 너무 손해인데.
그는 여전히 저편의 밤하늘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창백한 달빛에 반사되는 녀석의 머리칼은 밤하늘과 똑 닮아 있었다.
어둠을 머금었음에도 진한 푸른빛이 맴도는 그의 머리칼은 새벽의 색이었다.
그가 물었다.
“너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냐?”
우스운 질문이었지만, 그 한마디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 또한 시선을 밤하늘로 옮기며 답했다.
“네 예상보다 더.”
“오만하지만 딱히 뭐라 할 수가 없군.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자를 찾는다 했지.”
“그래.”
같은 하늘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간질였다.
그와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전생의 감정이 선명함을 더해 간다.
여기 온 이후로 유독 그랬다.
정확히는 이 녀석을 만난 후로.
“왕이 될 자격이란 게 존재할까?”
그의 물음에 나는 딱히 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답을 얻기 위해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오래전 왕이 될 자를 알고 있었다.”
우연히도 내 이야기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왕이 될 운명이었고, 나는 그에게 충성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었지.”
“그래서 죽은 녀석 때문에 왕이 되지 못한다는 거냐?”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과연 그가 죽었을까?”
루시안이 나를 보며 되물었다.
그에게 황당한 시선을 던지자, 그는 나를 보며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녀석과 약속했다. 모든 국민이 웃으며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자고.”
……기억한다.
우리는 매일 함께 만들어 갈 프렌치아를 그렸다. 서로 의지하며 국무를 보게 될 시간을 고대했다.
모든 국민의 삶이 윤택해지는 이상을 꿈꿨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내가 말했다.
“그런 나라는 존재할 수 없어.”
우리가 꿈꿨던 이상적인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본 세상은 그러했다.
긴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을 만났고, 그만큼 다양한 인간을 경험했다.
그중에는 선한 이도 악한 이도 있었지만, 결국 인간은 그저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 이기심의 발로가 사회가 정한 틀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않느냐로 나뉠 뿐.
나 또한 내 뜻대로 살았고, 누군가에게는 선으로 누군가에게는 악으로 남았다.
선하면서도 악한 존재.
그게 인간이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인간들이 모인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알지, 그런 세상은 이상일 뿐이라는 거. 공상 속에서나 가능한,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나라.”
그의 목소리에서 자조가 묻어났다.
그 또한 다양한 경험을 했겠지.
10년간 많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지금 그가 이룩해 놓은 것들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깨지고 부서지고, 좌절하고 무너지면서도 그 생각을 놓지 못했지.”
“왜 그렇게까지 했지? 이제는 나라도 없는데.”
“음, 그냥 그것이 내게 이유가 돼 줬으니까. 나라도 가문도 잃은 내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였달까?”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루시안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을 향해 있었지만, 나는 그가 밤하늘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별을 품은 눈동자는 그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 녀석과 함께 그렸던 나라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은 안다. 이상일 뿐이라는 것도. 그런데.”
과거를 머금었던 그의 시선이 내게 닿는다.
무언가를 명확히 직시하는 눈빛이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이란 누구나 닿고 싶기에 이상 아닌가? 그러니 닿을 수 없을지라도, 조금이나마 그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 바로 나라를 이끄는 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가까워졌나?”
“그래. 프렌치아에 비하면 한없이 작지만, 이곳이 바로 내가 세운 나라다.”
그의 손끝이 팔레이트 상단을 수평으로 훑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안에 담긴 확신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프렌치아의 왕이 된다면 뭘 하고 싶지?”
“왕이 된다라…….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왕이 되려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만들고 싶은 나라는 있지.”
루시안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왕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