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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3화 (13/228)

제13화

제13화 증명 (1)

“이쪽입니다, 이쪽.”

수많은 이들로 복작이는 거리.

우리는 주르아든 왕국의 자이트시에 도착해 있었다.

도시의 외곽으로 빠지자 넓은 부지를 가진 ‘팔레이트 상단’의 본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레이트 상단은 용병 길드를 함께 운영하며 급속도로 성장 중인 상단, 이란 설명을 오는 중에 들었다.

이곳에 바로 독립군 본부가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무에 손수건을 매달기도 하고, 조용한 호숫가를 걷기도 하는 등, 여러 관문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는 이곳에 본부가 있음을 알았다.

물론, 내가 아닌 세 녀석들이 고생했지만.

상단의 너른 부지 안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프레디가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밀어를 속삭였다. 그 누군가는 우리를 깊숙한 별채로 안내해 주었다.

일은 매번 이런 식으로 은밀히 진행됐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우리를 방에 안내해 준 자는 그리 말하고 자리를 떴다.

깔끔히 정돈된 집무실.

살짝 열린 창가로 불어 든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내부는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져서, 담백한 느낌을 줬다.

“오, 좋다.”

알렌과 체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갓 상경한 시골 촌놈같이 굴었다.

우리는 손님을 위해 준비된 테이블에서 차를 대접받으며 방의 주인을 기다렸다.

세 녀석은 이런 대접이 어색한지 다리를 떨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등, 불안 증세를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고요하던 복도 위로 발걸음이 내렸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총 두 명.

발소리를 들어보니 하나는 우리를 안내했던 녀석이고, 나머지 하나는 새로운 자의 것이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그러고는 이목구비가 큼직하니 시원하게 생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격도 생긴 것만큼이나 호탕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들 했네! 나는 맥스웰이라고 하네. 차는 입맛에 맞던가?”

그는 솥뚜껑처럼 두꺼운 손으로 악수를 한 번씩 나누고는 맞은편에 풀썩 앉았다.

“아이아스 영지에서 왔다고?”

“네, 맞습니다.”

“자 그럼 상황 먼저 들어 보세.”

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이야기를 해 보라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프레디가 나서서 지금까지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뭣!”

맥스웰은 이야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짧은 비명과 함께 낚인 물고기처럼 펄쩍 튀어 올랐다.

“구, 국새를 찾았다는 말인가!”

그는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자세로 우리에게 몸을 기울였고, 입을 뻐끔거리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국새를 보여 주었다.

“저, 정녕.”

감격에 젖은 맥스웰의 눈가로 눈물이 맺힌다.

그의 손끝이 국새에 닿을 듯 말 듯 주춤거렸다.

그는 국새를 감히 만지지 못하고 큰 눈으로 빤히 보고만 있었다.

나는 국새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시선은 국새를 따라 가죽 주머니에 꽂혀 들었다.

“얘기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프레디가 묻자 맥스웰은 다급히 고개를 젓더니,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건 나 혼자 듣고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군.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대장을 모시고 오겠네.”

맥스웰이 다급히 떠난 방 안은 고요했다.

그가 떠나자 세 녀석은 좀 전처럼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이상 증세를 반복했다. 체스는 화장실만 벌써 세 번째였다.

“나오기는 나와?”

프레디가 묻자 그는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말했다.

“죄졌냐? 왜들 그리 긴장해 있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를 짓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건데요.”

알렌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을 넣고 똑바로 설명해 보라는 의미였다.

알렌은 곧장 그렇게 했다.

“제네스 님은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잖습니까.”

나머지 두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내가 신원 불명의 사람이기에 발생될 수 있는 문제를 염려하고 있는 듯했다.

독립군 내부는 보안이 철저한 만큼, 신원 확인이 까다롭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독립군 대장 앞에서 난동을 피울까 걱정되는가 보다.

그러니 이리 불안에 떨고 있지.

이들의 심정을 정확히 이해한 나는, 세 놈의 머리통을 벼락같이 두드려 주었다.

빡! 빡! 빡!

이것들이 누구를 사고뭉치로 아나.

“끄으으.”

세 녀석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삭이는 찰나, 복도에 새로운 발걸음이 쌓이기 시작했다.

맥스웰을 포함해 총 세 명.

주먹을 거둔 나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문가에 두었다.

궁금했다.

패망한 나라를 위해 독립군을 이끄는 자가 누구인지.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맥스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두 명의 사내.

나는 그들을 보며, 정확히는 방문을 넘고 있는 한 사내를 보며 크게 동요했다.

잔잔하던 마음이 돌풍을 맞이한 듯 세차게 출렁인다.

사파이어처럼 푸른 청발과 청안을 가진 남자.

나는 시리도록 푸른, 저 눈동자를 알고 있었다.

강직하게 선 오뚝한 콧날과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주변을 밝히는 미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 걸음을 따라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내 머릿속에서 서서히 되감아지다, 어느새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됐다.

루시안 세리어스.

세리어스 공작가의 장남.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의 조각들이 머릿속으로 함박눈처럼 선명히 내리며 다시금 소복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는 내게 어느 때는 엄격한 스승이었고.

-저하는 왕이 될 분이십니다. 그에 맞는 품위를 보이셔야지요.

어느 때는 충성스런 신하였으며.

-세자 저하의 검이 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프렌치아를 지킬 겁니다.

또 어느 때는 함께 프렌치아를 꾸려 갈 벗이자 동반자였다.

-저는 국민들이 웃는 모습이 좋습니다. 그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10년이란 세월은 그를 많이 자라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 그는 여전했다.

하나의 생을 지나 돌아온 나를, 단숨에 그 시절로 당겨 버릴 만큼.

“반갑습니다. 루시안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마음의 흔들림을 태연히 감추며 그를 보았다.

전에도 느꼈지만, 전생의 관계가 이어지며 닿는 감정은 참으로 기묘하다.

깊지만 낯설고.

분명하면서도 내 것 같지가 않다.

“레이크라고 합니다.”

루시안과 함께 온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백색에 가까운 금발을 가진 사내였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세상을 낱낱이 해체하는 듯한 냉철함이 전해진다.

딱 보니 무예를 익힌 자는 아니고.

왠지 그놈이랑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나는 레이크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한 사내를 떠올렸다.

천시천통(千示天通) 제갈문학.

가만히 앉아 천리를 내다보고 하늘의 뜻을 통달했다는 무림맹의 군사.

레이크에게서 그 재수 없던 녀석과 비슷한 분위기가 풍겼다.

군사(軍師)의 상(相)이라고나 할까.

호위도 아닌데 함께 온 걸 보니 내 예상이 맞을 듯했다.

“기다리느라 지루하지는 않으셨나요?”

루시안이 묻자, 프레디가 쩔쩔매며 손사래를 쳤다.

“예? 아니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루시안은 반달 모양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전체적인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루시안의 물음에 프레디는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담담한 표정의 루시안은 중간중간 이채를 띠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한 번도 끊지 않고 모두 들었다.

“그렇게 된 거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성함이 제네스라고 하셨죠?”

“그래.”

내가 자연스레 하대로 답하자, 옆에 앉아 있던 녀석들의 몸이 일제히 움찔거렸다.

하지만 루시안은 내 반말에도 평온함을 잃지 않았다.

전생의 내가 이런 무례함을 보였다면 귀청이 따갑도록 잔소리를 했을 게 분명해서 나는 꽤 흥미롭게 그를 지켜보았다.

“몇 가지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

“마음대로.”

“혹 기분 나빠하지는 말아 주세요. 추궁한다기보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함이니까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들으며 내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을 터.

밝힌 게 없으니 당연했다.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 제네스란 이름이 본명인 것을 저희가 확인할 방법도 없겠군요.”

나는 출생 지역부터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모두를 비밀에 부쳤다.

환생과 귀환을 설명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모든 걸 이야기한다면 어떻게든 설득시킬 수야 있겠지만, 그럴 생각 자체가 없다.

나는 전생의 못다 한 책임을 짊어졌을 뿐, 관계까지 이을 생각은 없으니.

사실 잇고 싶어도 이을 수 없다.

나는 이제 그들이 기억하는 제네스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그러므로 현재 내게는 스스로를 증명할 방법이 전무하다.

그런데 하필 제네스란 이름은 이들에겐 죽은 왕세자의 이름.

내가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다.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으십니까?”

“그랬다면 진즉 했겠지.”

루시안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군요. 일단 정확한 신원은 저희에게 밝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마음대로.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름을 제네스로 해서 신분도 하나 만들어 줬으면 좋겠군.”

“……어려운 일은 아니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하는 질문은 당신을 추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서로의 신뢰를 위해서지요.”

루시안이 타이르듯 말했다.

적당히 빼고 대답하라는 의미.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신분은 그렇다 치고, 국새가 느레티 나무 밑에 있다는 것과 그것이 진품인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오래전 그에게 들었다.”

루시안의 고개가 갸웃했다.

“그럼 애초에 국새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에 계셨던 겁니까?”

“아무래도 내게 궁금한 점이 많은가 본데, 내가 생각보다 답해 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거든? 그러니 의미 없는 과정에 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도록 하지. 중요한 건 국새가 내게 있다는 거니까.”

“…….”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루시안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가죽 주머니에서 국새를 꺼내 보여 주었다.

방 안을 밝히는 휘황한 빛과 함께 프렌치아라 새겨진 붉은 글씨.

국새는 나와 달리 자신이 진품임을 손쉽게 증명해 냈다.

“진짜가 맞는군요. 정말 프렌치아를 위해 큰일을 하셨습니다. 국새는 독립군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흡족해하는 동시에,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국새를 바라보았다.

“저희가 국새가 품고 있는 의미와 뜻을 제대로―.”

“잠깐.”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아직 너한테 준다고는 안 했는데.”

내 말에, 방 안의 모두가 움찔거렸다.

특히 맥스웰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그는 루시안에게 무례하게 구는 나를 보며 아까부터 화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내 옆에 쪼르르 앉은 세 녀석은, 루시안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루시안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였다.

“보상은 원하시는 만큼 충분히 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딱히 재물을 원하는 건 아니고. 이곳에서 며칠 머무르며 천천히 지켜볼 생각이야. 네가 국새를 가질 만한 자격이 되는지.”

루시안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며 미소를 지었다. 녀석이 당황했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럼 국새를 가질 만한 자격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국새는 나라를 대표하는 도장. 그런 국새를 가질 만한 자격에 무엇이 있겠나?”

“제가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가늠해 보겠다는 겁니까?”

루시안은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이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고 물었다.

“국새를 가지면 왕이 될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물론.”

국새를 가지는 것과 왕이 되는 것은 엄밀히 보면 별개의 문제였다.

왕이 되기 위해서 프렌치아의 국새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국새가 품은 힘은 정통성.

루시안이 국새를 원하는 것은 이 힘이 독립군을 하나로 모을 강한 구심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지금의 독립군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있었으니까.

이곳, ‘북부의 흰사자’ 또한 독립군 중 한 곳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의 의미는 네가 자격을 갖추지 않았다면 국새를 다른 파벌의 독립군에게 전할 수도 있다는 의미.

그 뜻을 이해한 루시안이 말했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국새를 가질 만한 자격은 뭔가요?”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다들 눈빛에 각자의 불안과 의문을 품고 있었다.

기껏 여기까지 와놓고 왜 이러는지 당최 알 수 없기 때문일 터.

하지만, 괜한 땡깡은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오는 동안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에 대한 답을 내린 상태.

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자격이란 간단히, 독립한 프렌치아를 이끌 만한 그릇인가의 여부. 그것의 판단은 오로지 내가 한다.”

국새에 내린 볕이 산산이 흩어졌다.

“나는 그자를 왕으로 만들 작정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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