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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2화 (12/228)

제12화

제12화 까마귀 기사단 (2)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테더는 제네스를 바라보며 죽음이 전신을 기어오르고 있는 듯한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끈적하고 어두운 손길이 자신을 심연의 밑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듯하다.

서슬 퍼런 검을 쥔 동료들이 제네스를 겹겹이 포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전장을 함께한 전우들의 뒷모습.

언제나 믿고 따랐던 그들의 등이 오늘따라 위태로워 보였다.

동료들이 만들어 낸 단단한 포위 벽이 모래성처럼 느껴진다.

제네스의 여유로운 미소가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고 있었다.

적진을 찾아온 그의 입가는 분명 기다란 호선.

까마귀 기사단에 포위당하는 그 순간에도 그랬다.

* * *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나는 죽음을 향해 맹렬히 달려온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나름 먼 거리를 달렸을 터인데, 그 끝이 죽음이라 안쓰러울 뿐.

이름난 녀석들답게 순식간에 대열을 갖추며 나를 둥그렇게 포위했다.

어둠에 물들어 가던 숲을 가리는 낯선 얼굴들.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헤치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대장, 러셀이다.”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홀로 온 것이냐?”

“보다시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러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감이 도가 지나치군.”

“그렇게 느낄 만해.”

그의 질책에 나는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

스스로에게 가진 자부심만큼, 내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들 테니까.

“홀로 왔다고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봐 달라고 한 적도 없다.”

“까마귀 사냥 대형을 갖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위망이 꿈틀거리며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러셀 또한 뒤로 물러나 그 흐름에 스며들었다.

마치 주변에 까만 벽이 솟아난 듯했다.

지금껏 만난 이들 중에서 가장 제대로 된 놈들.

그들이 피워 낸 농밀한 살기와 패도적인 기세가 온몸을 짓눌러 왔다.

나는 그 묵직한 적의를 고스란히 맞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살기는 간만이다.

마교 놈들보다 한참은 모자라지만, 그래도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었다.

간만에 흥이 돋는군.

천하제일이 된 후, 아니 그 전부터 무림에서는 내게 대드는 녀석이 없었다.

그 누구도 내 앞에서 감히 적의를 드러내지 못했다.

나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발렌시아 대륙에 오니 별것도 아닌 녀석들이 내게 검을 들이밀며 죽음을 이야기한다.

근데 왜 좋지?

변태 같지만, 그것이 심기에 거슬리면서도 나쁘지만은 않다.

다시금 무인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이런 도발적인 기세를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갈증이 해소되는 듯하다.

나의 손짓을 따라 뇌운검이 창백한 모습을 드러냈다.

노을빛이 칼날 위에서 무너졌다.

검을 세우는 것만으로 몸을 짓누르던 압력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사냥을 시작한다!”

허공을 울리는 고함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꽈리를 튼 뱀처럼 주변을 꿈틀거리던 녀석들이 사방에서 쏘아져 왔다.

철저히 훈련된 움직임.

틈은 없었다.

명성이 허명은 아닌 듯 사위를 덮어 오는 검격이 날카로웠다.

간만에, 부지런히 움직여볼까.

나의 뜻을 따라 일어선 내공이 대로와 같이 너른 혈도를 타고, 척추 쪽의 기해(氣海)부터 발바닥의 용천(慂泉)까지 격류처럼 흘러내렸다.

온몸이 깃털보다 가벼워지며 시간이 쪼개지고 쪼개지다, 이내 멈춘 것처럼 걸음 앞에 섰다.

나의 독문 무공인 천령신공[天令神功]은 하늘의 법령을 담았다는 광오(狂傲)한 이름의 무공으로 검법편, 보법편, 경신편, 심공편, 기예편까지 총 다섯 편으로 나뉘어 있다.

하늘에 붉게 물든 구름이 흐른다.

나는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저 불그스름한 운무의 실재는 모두 손안에 흩어질 뿐, 누구도 움켜쥘 수 없다.

그것은 나의 걸음과 같았다.

천령신공 보법편.

제1장 산운(散雲).

일순, 신형이 구름처럼 흩어졌다.

나를 향해 쏟아지던 칼은 모두 허공을 베었다.

수많은 검이 목표를 잃고 헛춤을 추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구름처럼 자유로이 누볐다.

피슈슈슉!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가 혈우가 되어 내렸다.

간만에 속도를 내는 뇌운검이 공간을 가르는 반듯한 직선을 그려 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맹렬한 파공음.

수많은 생이 날 선 칼날 앞에 바스라지고 있었다.

겹겹이 쌓여 있던 벽은 찰나에 허물어졌다.

“까마귀 3 대형!”

구령과 함께 까마귀들의 움직임이 크게 요동쳤다.

주변을 벽처럼 두르고 있던 이들이 산발적으로 뭉치며 흩어졌다.

어깨를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지고 바늘처럼 날카로운 기세가 전신을 헤집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과 나의 격차는 명명백백했다.

그들의 검은 여전히 내 실체를 쫓지 못했고, 뇌운검이 경쾌하게 움직일 때면 피 구름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 이내 걸음이 멈춰섰다.

구름이 흩어진 자리,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내 주위를 둘러쌌던 기사들은 모두 생을 잃은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곤.

“……네놈은 누구냐?”

러셀이 물었다.

그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도 믿고 싶지 않은 듯했다.

복수의 의지조차 없는 허망한 눈빛이 내게 닿았다.

“말해 줘도 못 믿을 거다. 검을 들어라.”

“추태를 부렸군.”

그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는지 깨닫고는 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오른쪽 어깨로 당겨진 그의 검이 푸르른 오러를 머금었다.

검기였다.

여태 만난 놈들 중 제대로 된 검기를 뿜어내는 녀석은 이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기가 잘 정제된 검이다.

러셀의 검이 뻗어 왔다.

섬전 같은 찌르기.

나는 가볍게 물러섬으로 그 궤도에 벗어났다.

순간, 그의 검 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진한 검영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마치 세 개의 검이 동시에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

나는 내게 쏘아져 오는 검을 무시한 채 녀석을 향해 검을 뻗었다.

섬광이 그를 집어삼켰다.

선명했던 검영이 지워지고, 러셀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풀썩.

숲은 금세 적막에 잠겼다.

나는 그의 품에 있던 국새를 돌려받았다.

어둠을 끌고 온 땅거미가 그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 * *

캄캄한 어둠, 서늘한 밤바람이 옷자락을 뚫고 살갗을 쓸었다. 간혹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늦은 밤의 숲은 고요했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남은 흔적을 살폈다.

달빛도 들지 않는 칠흑의 어둠도 내 시야를 막지 못했다.

누워 있는 풀잎을 보고 알렌들이 이곳을 지나갔음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녀석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제네스 님!”

불침번을 서고 있던 알렌 녀석이 나를 죽다 살아온 사람처럼 반겨 주었다.

호들갑 떠는 꼴을 보니, 나는 그의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죽었던 것 같다.

프레디와 체스도 벌떡 일어나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반겼다.

편히 쉬고 있었을 녀석들을 생각하니 심사가 꼬였지만.

내 업보이니 내가 참아야지.

“이제 우리를 쫓는 이들은 없을 거다. 자던 잠이나 자라.”

말처럼, 국경을 넘기 전까지 추격대를 만날 일은 없을 거였다.

지리적 상황이 그러했다.

이곳은 국경에 가까운 변방이라, 중앙과의 거리가 상당하다.

작금의 상황이 보고되고 새로운 추격대가 편성됐을 땐, 우리는 이미 국경을 넘은 상태일 거다.

“까마귀 기사단과 싸우고 오신 거 맞아요?”

내 잠자리를 준비하던 알렌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의아해했다.

그도 그럴 게, 전투를 벌인 것치고 나는 말끔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도저히 안 믿겨서요.”

지레 겁먹은 알렌이 급히 변명을 이었다.

“그런데 제네스 님은 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맞은편에 있던 체스가 물었다.

일렁이는 모닥불 너머, 그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경지로 확실히 말해 줄까, 하다가 꼬인 심사를 따라 비틀었다.

“천하제일.”

“예?”

녀석들이 반문했다.

중원의 언어인 탓.

나는 뜻을 풀어 주었다.

“하늘 아래 가장 강하다는 의미지.”

“……참신한 표현이네요.”

나는 벙찐 녀석들을 뒤로하고, 모포 안으로 몸을 넣었다.

눈을 감으니 밀어 두었던 생각들이 밀려온다.

어제오늘 본 프렌치아의 현실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을 건드렸다.

나는 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갔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밤낮이 몇 번이고 바뀌었다.

나는 그 여정 속에서 작금의 정세를 보았고, 들었다.

직접 겪은 국민의 삶은 생각보다 더 비참했고, 제국의 횡포는 들은 것보다 악랄했다.

“이제 끝이네요.”

프레디가 뒤를 돌아보며 애틋한 눈빛을 보냈다.

우리는 어느새 프렌치아와 주르아든의 국경에 이르러 있었다.

선은 그어져 있지 않지만,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 프렌치아의 끝이었다.

눈앞에 솟은 웅장한 바위가 그것을 증명했다.

나는 뒤를 돌아 프렌치아를 바라보았다.

쭉 뻗은 광야 뒤로, 드높은 산악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 이제 조금 있으면 해방이구나!”

알렌이 프렌치아를 보며 양팔을 뻗었다.

“무엇으로부터?”

내가 묻자 녀석의 안색이 푸르죽죽해졌다.

“……그 뭐냐, 이제 국경도 넘었으니 추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추격으로부터의 해방인 거죠. 하하.”

힘겹게 말을 이은 녀석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단칼에 잘랐다.

나는 알렌이 한 말의 진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추격은 이미 전부터 없었을 텐데.”

“아, 그래도 저는 다 신경 쓰고 있었죠. 너희들도 그렇지? 누군가 금방이라도 추격해 올 것 같아서 신경은 쓰였잖아. 안 그래?”

프레디와 체스는 알렌이 뻗은 손을 모른 체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를 서서히 조여 오는 올가미를 느낀 탓이다.

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부담을 느낀 녀석은 결국 본심을 실토했다.

“에이, 제가 설마 제네스 님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했겠습니까. 바보도 아니고.”

“하긴, 그렇겠지.”

“그럼요! 제네스 님이 좀 까탈스럽고 성격이 별나기는 하지만, 막 그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좀 편해졌다고 알렌은 이런 장난을 간혹 걸어 왔다.

“농담인 거 아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녀석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쥐어박았다.

비명을 지른 알렌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농담인 거 아신다면서요!”

“받아 준다고는 안 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 머리를 돌렸다.

뒤에서 알렌의 꿍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새 제네스 님 때문에 머리가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좋았던 적은 있었냐? 괜한 걱정하지 마라. 내 꿀밤은 정신을 맑게 해 주는 효능이 있으니.”

“그런 게 있다고요?”

“왜? 한 대 더 맞고 직접 확인해 볼 테냐?”

알렌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 꿀밤에는 효능이 있다.

추궁과혈이란 고명한 수를 섞어 때리기 때문이다. 맞을수록 되레 머리가 잘 돌아갈 거다.

다 애정이 있으니 때리는 거다.

애정이 없는 놈들은 때리지도 않는다.

죽이지.

그러니 녀석은 내게 맞는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대신 많이 아프겠지만.

협박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조용히 나아갔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조금 전 보았던 프렌치아의 풍경을 되새겼다.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들판과 그 뒤로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산악.

국경을 넘는 건 처음이지만, 그 장엄한 경관은 1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내가 알던 프렌치아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자비한 전쟁에 갈기갈기 찢긴 나라.

삶의 평안함과 희망을 잃은 국민들.

그들을 유린하는 제국군.

나라를 팔아넘긴 변절자.

내 생전에는 이 안에 담겨 있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되돌릴 작정이었다.

내가 알던 프렌치아로.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쓸어 왔다.

나는 그것에 내 다짐을 전했다.

프렌치아 전역에 내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나는 곧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저들은 모든 걸 잃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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