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제7화 말하는 까마귀
팔체라토는 얼굴을 퍼렇게 물들이며 부들부들 떨었다.
나의 이름은 이미 죽은 자의 것.
믿길 리 없었다.
“네놈이 나를 모욕하는구나!”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이 부분은 아니었는데.”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사실을 말해도 그것마저 모욕으로 받아들이니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
아직 건네줄 모욕이 산더미처럼 남았는데 말이다.
“닥쳐라!”
팔체라토는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여전히 큰소리였다.
나는 검을 늘어뜨린 채 녀석에게 다가갔다.
“물어서 답했더니 닥치라고?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자, 잠깐!”
그는 두 손을 다급히 뻗으며 나의 걸음을 만류했다.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는 걸 보니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나 보다.
“내 얘기 좀 들어 보거라. 독립군에서 온 것이냐?”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지. 무슨 유언이라도 있나?”
나는 그가 뱉을 개소리를 친절하게 들어 줄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최대한 추할 수 있도록.
마음껏 발버둥 쳐 보라는 심산에서 우러나온 배려였다.
“나는 팔체라토 아이아스다.”
“그런데?”
내 시큰둥한 반응을 본 녀석은 사색이 되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나를 살려다오. 그러면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돈을 주겠다.”
녀석은 어린아이를 사탕으로 꾀듯, 미끼를 던졌다.
그를 찾아 나선 목적은 돈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돈은 딱히 필요치 않은데.”
“그럼 원하는 것을 말해 봐라.”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너에게 많은 걸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만일 나를 따른다고 하면, 부와 권력이 손안에 흘러넘칠 것이고 여인들도 마음껏 품을 수 있으며 삶은 모두 너의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어 주마.”
팔체라토는 내 환심을 사기 위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지만, 그의 말에는 내가 바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절히 정답을 알려 주기로 했다.
“네놈이 살 방법은 하나다.”
“그게 무엇이냐?”
살 희망이 보였는지, 녀석이 반색하며 물어 왔다.
내가 말했다.
“어젯밤에 죽인 사람들, 모두 살려내.”
팔체라토의 표정이 싸늘히 식었다.
그는 모욕을 받았다고 느꼈는지 눈을 회까닥 뒤집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감히 네놈이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호령과 함께 내게 검을 겨누는 녀석.
하지만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팔도 없었다.
그의 팔은 여전히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가 검을 뽑으려는 순간, 쏘아진 검기가 팔뚝을 자른 것이다.
그의 의지를 따라 뿌려진 건 검이 아닌 붉은 피였다.
“크아아악!”
팔이 잘린 것을 알아챈 그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나는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반만 남은 팔을 부여잡은 녀석은, 몸을 돌리더니 뒤쪽에 쌓인 바위 더미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가볍게 발을 굴러 그 앞을 막아섰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더니, 미친놈처럼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 저리 가, 이 개자식아!”
내게서 필사적으로 멀어지려는 녀석.
파랗게 질린 얼굴이 공포로 뒤덮였다.
나는 그를 천천히 따라가며 말했다.
“무엇이 두렵나? 그들을 살려 내면 너도 살 수 있거늘.”
“이미 죽은 새끼들을 어떻게 살려 내란 말이냐!”
그가 발악하며 소리쳤다.
나는 말했다.
“잘 아네. 너의 죄가 그러하다. 되돌릴 수도 없고. 결코, 용서받을 수도 없지. 그러니 처절히 죽어라.”
“이 빌어먹을 새―!”
부드러운 궤적이 고성을 내지르는 녀석의 목을 가르고 지나쳤다.
팔체라토는 쩍 갈라진 목을 부여잡은 채 천천히 넘어갔다.
까악, 까악!
때마침 날아온 까마귀가 푸드득 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죽은 팔체라토의 가슴팍에 앉았다.
그새 피 냄새를 맡고 온 것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이 사람의 말을 뱉기 전까진.
“국새는 어떻게 됐지?”
나는 까마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까마귀가 말을 하다니…….
인간의 말을 하는 까마귀나, 까마귀가 말을 했다고 믿는 나나,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미쳤다고 생각했다.
“뭐 하는 놈이냐.”
나는 혹시나 해서 까마귀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내가 벌써 노망났을 리는 없으니까.
다행히 녀석이 답을 했다.
“대화를 오래 나눌 시간은 없다. 네놈이 누구든 살고 싶다면, 국새를 가지고 바이트 시로 오거라.”
역시, 미친 것은 내가 아니라 까마귀였다.
녀석이 내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살 기회는 한 번뿐이다.”
“재밌는 까마귀일세.”
“경고했다. 살고 싶으면 지금 당장 바이트 시로―.”
번쩍인 섬광이 까마귀를 단숨에 갈랐다.
까마귀는 까만 연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서 건방지게 경고를 하고 있어.
아무래도 마법의 일종인 듯싶은데, 추격자가 더 붙을 듯하다.
국새를 찾은 놈치고는 멍청하다 싶더라니, 배후가 있었나.
나는 무너진 바위 더미를 넘어 건너편으로 이동했다.
걸음을 내리자, 풀숲에서 거뭇한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숨어 있던 복면인들이다.
그들은 얼마나 납작 엎드려 있었는지, 앞섶에 흙을 잔뜩 묻힌 채 이곳저곳에 나뭇잎을 장식처럼 붙이고 있었다.
“아예 땅굴을 파지 그랬냐?”
내 물음에 그들은 민망했는지 황급히 옷을 정리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그래.”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됐고, 일단 밥이나 먹자.”
* * *
모닥불 위에서 손질된 토끼 고기가 고소한 향을 피웠다.
발렌시아 대륙의 토끼는 중원의 토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덩치가 컸다.
웬만한 똥개는 저리 가라 할 만한 크기다.
생김새 또한 살벌하다.
맛은 괜찮겠지?
나는 맛이 궁금함에도 고기가 완전히 익기를 교양 있게 기다렸다.
이곳에 온 후 먹는 첫 끼였다.
한때 거지였던 나는, 끼니만큼은 웬만해서 거르지 않는다.
“국새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복면인 중 한 명인 프레디가 물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내.
잠깐 대화를 나눠 본바, 녀석들 중 머리를 가장 잘 굴리는 녀석이다.
“그러게, 어쩐다.”
나는 익어 가는 고기를 보며 답했다.
그 아래서 일렁이는 불꽃을 보니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다.
사실 아직 별생각이 없기도 했다.
“저희와 함께 본부로 가시겠습니까?”
프레디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나는 시선을 모닥불에서 그에게로 옮겼다.
그가 말을 이었다.
“국새를 저희 쪽에 전해 주시면 합당한 보상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국새를 독립군에 넘기라는 의미.
어차피 개인은 가져 봐야 의미 없는 물건이긴 하다. 도장으로 쓸 것도 아니고.
“맞아요. 마땅히 갈 데가 없으시면 저희랑 함께 가시죠.”
옆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알렌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덩치가 산만 한 녀석은 순박한 시골 청년이 생각날 정도로 순하게 생겼다.
나는 곰처럼 커다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몸으로 암살할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내가 물었다.
“본부가 어딘데?”
“주르아든 왕국에 있습니다만, 말을 구하면 아마 2주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프레디가 답했다.
현재 우리는 프렌치아 북부, 국경 부근에 있었다. 덕분에 주르아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독립군이 될 생각은 아직 없지만 패망한 나라를 위해 싸우는 멍청이들이 궁금하기도 했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듯했다.
나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물어뜯었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육질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법 구울 줄 아네.”
나는 고기를 구운 알렌에게 의외의 눈빛을 보냈다.
쑥스러운지 코밑을 훔치는 녀석.
화력이 일정하지 않은 모닥불로 이 정도면 꽤 훌륭한 솜씨다.
여정이 그리 괴롭지만은 않겠다.
“혹시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여태 가만히 있던 체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주근깨와 주먹코를 가졌다.
다른 녀석들도 고기를 뜯다 말고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물었지만, 정작 내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았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제네스.”
성은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도 없다.
말해 봤자 미친놈이란 소리나 듣겠지.
체스가 물꼬를 트자, 녀석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내게 이것저것 질문을 해 댔다.
이래저래 귀찮았던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앞으로 세 개의 질문만 받을 테니, 각자 하나씩만 물어봐라.”
선심을 베풀자 체스 녀석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질문을 해 왔다.
“의복과 검이 참 이색적이신데, 출신이 어떻게 되십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하나 프렌치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프렌치아 사람이라고 하니, 궁금하겠지.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알 것 없다. 옷은 도시에 가면 하나 장만해 주거라.”
“제가요?”
“싫으냐?”
“……아닙니다.”
나는 당황하는 녀석의 표정을 보며, 최대한 비싼 옷으로 고르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대체 어디에 계시다가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신 거예요?”
알렌의 물음에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였다.
주변에 높이 솟은 나무도 없었기에 그때 나는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나도 모른다.”
녀석은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이 부분은 나도 궁금하다.
나는 바닥에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 모닥불에 던진 다음 말했다.
“이제 질문 하나 남았다.”
“네? 지금까지 답변을 제대로 안 해 주셨는데요.”
알렌이 억울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녀석은 금세 꼬리를 말고 괜히 불씨를 뒤적거렸다.
“그 노인은 누구길래 국새를 가지고 있던 겁니까?”
머리를 굴리던 프레디가 신중히 질문을 던졌다.
제법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노인을 알아보았고, 그가 국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단번에 알았다.
그의 정체를 알면 나의 출신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추측이 가능할 거였다.
“그는 과거, 웨일런궁의 집사였다.”
“웨일런궁이라면 세자 저하께서 기거하시던 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 질문에 답을 해 주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질문하도록 하마. 별것은 아니고, 사람의 말을 하는 까마귀를 알고 있나?”
그들의 당혹스런 눈빛이 모이자, 나는 답지 않게 멍청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현상이라서 묻기는 했는데, 당연히 마법의 일종일 거였다.
이 녀석들이 알 턱이 있나.
“그야 물론 알고 있죠.”
그런데 그들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