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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6화 (6/228)

제6화

제6화 끊겼던 전생이 이어지다 (4)

두두두두!

말발굽이 요란하게 대지를 두드렸다.

그들은 거의 밤새 이동했던 거리를 단 몇 시간 만에 주파했다.

저 멀리 마을의 목책이 보였다.

흰 거품을 입에 문 말은, 그들이 이 길을 얼마나 재촉해 왔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목책을 넘어서자 그들은 떠나기 전과 마을이 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입구에 있던 나무가 뽑혀 있었고, 나무가 있던 자리엔 깊이 파헤쳐진 흙바닥이 존재했다.

‘대체 누가? 조력자가 있었단 말인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죽은 이들을 화장한 흔적이 보였다.

재를 뒤집자 시뻘건 불씨가 아직 살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모아 화장한 데다, 나무를 뽑고 땅을 파헤쳤다. 어느 정도의 인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꽤 소요됐을 게 분명했다.

팔체라토는 우습게도 그제야 암살자들을 쫓았던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국새를 찾았다는 기쁨에 깜박 잊었다.

‘어떻게 그걸 까먹고 있었지?’

칠인대 녀석들이야 평소에도 제멋대로 굴지만, 이 정도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는 자신의 안일함에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황상, 그놈들밖에 없다.

하지만 그 녀석들이 칠인대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을 텐데.

아무래도 독립군들에게 숨겨진 전력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팔체라토 님! 흔적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저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팔체라토는 눈썹을 휘날리며 황급히 말을 몰았다.

기사들이 모여 있는 풀숲에는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급히 도망가느라 미처 지우지 못한 듯했다.

하늘이 자신을 돕고 있었다.

“가자!”

팔체라토는 말의 옆구리를 차며 좁은 숲길을 달렸다.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아도 흔적은 그들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 * *

마을을 떠난 우리는 숲속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마을에서 녀석들을 맞이해도 되지만, 영면에 든 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돌아올 팔체라토를 기다리며 현재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내가 국새가 가짜인 것을 안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애초에 가품과 진품.

이렇게 두 개의 국새를 모두 아이데할에게 주었다.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을 정문에 심어져 있던 느레티 나무. 내가 전생에 가장 좋아했던 나무다.

어렸을 적 나는 소중한 것들을 그 아래 숨기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진품을 베개 속에 두었을 거라 여기지 않았기에 나는 확신했다.

예상대로 진품은 그 아래에서 나왔다.

나는 내 앞에 앉아 초조해하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프렌치아가 패망한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짧고 굵게 설명해 봐. 마치 10년 전의 사람에게 설명한다는 느낌으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의아함을 표한 이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겪지 못한 사건들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압축된 10년의 세월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과연, 작금의 프렌치아는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패망한 나라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나는, 그들을 물리고 눈을 감았다.

지끈거리는 두통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강도가 심해진 듯하다.

현경에 이른 무위도 불혹을 넘은 나이도 모두 무의미했다.

진즉에 잊었던 전생의 책임이 어깨 위로 소복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내가 왕세자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은 그 누구보다 컸다.

모든 잘못은 나라를 다스렸던 왕가와 귀족들에게 있었으니까.

국민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프렌치아의 왕세자가 아니었다.

나는 왕세자, 제네스 쿤 프렌치아가 아니라 검성, 이검학이었다.

그렇다고 전생의 비통함을 모두 잊은 건 아니었다.

이곳에 온 뒤로, 잊은 줄도 몰랐던 전생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여전히 생생한 기억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감정적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했던 이들의 죽음을, 나의 평안을 불안과 공포로 채웠던 이들을.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만.

전생의 감정이 이어지기에는 그간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다.

내게 프렌치아의 패망은 40여 년 전의 일이었고, 이미 오래전에 털어 버린 전생일 뿐이니까.

프렌치아 국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왕세자로서의 책임감은 이미 세월에 바스라진 지 오래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완전히 끊어졌다 여겼던 전생의 연이 아이데할의 죽음을 본 이후로, 나를 강하게 휘감아 오고 있었다.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내 위로 덧씌워지는 무언가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녀석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잡히면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세차게 달리는 팔체라토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뱉어졌다.

그는 적들의 꼬리를 잡은 것에 안도를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속인 아이데할의 괘씸함에 분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워워. 이런 젠장!”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삐를 당기며 말을 멈추었다.

그들은 현재 양옆으로 폭이 좁은 협곡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앞길이 막혀 있다는 거다.

산사태라도 벌어졌는지 절벽에서 쏟아진 바위들이 길목을 막고 있었다.

말을 타고는 이동할 수 없는 지형이었다.

말에서 내려 앞의 상황을 살펴보려는 찰나,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필요 없다.”

무너진 절벽을 바라보던 시선은 자연스레 그 소리를 좇았다.

그들이 지나온 길목에는 요상한 옷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너희들이 찾는 것은 내게 있으니.”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거리가 있음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의 인장.

국새였다.

“크하하하하. 네놈이구나!”

팔체라토는 국새를 바라보더니 목을 젖히며 호탕하게 웃었다.

근처에 함정을 설치했나 싶지만, 별다른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있어도 괘념치 않았다.

급조된 함정에 당할 만큼 자신의 전력은 약하지 않았다.

“멍청한 새끼. 그걸 들고 여기까지 와 주다니 고맙구나. 하지만 장난이 지나쳤다.”

“그럴까?”

청년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팔체라토는 그 여유로운 미소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머리가 어떻게 된 놈인 듯했다.

저런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지.

“죽여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명의 기사가 그를 향해 쇄도해 갔다.

* * *

내 양측으로 두 명의 기사가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상단과 하단을 동시에 노리고 들어오는 새하얀 섬광.

캉!

나는 하단을 쓸어오는 검을 쳐 내는 동시에 자세를 낮춰 목덜미를 베어 오는 검을 피했다.

그러곤 회전하는 몸을 자연스레 따라오던 검으로 한 녀석의 어깻죽지를 갈랐다.

“크악!”

팔을 잃고 울부짖는 녀석.

나는 놈의 비명까지도 검으로 잘라냈다.

머리 없는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동료의 죽음을 지켜본 기사가 검에 속도를 더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검을 피하며 한쪽 다리를 베었다.

그는 비명과 함께 무너졌고, 나는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일부러 적당히 어울려 주었다.

압도적인 무력은 상대를 체념케 하니까.

“뭐 해! 어서 죽여!”

팔체라토의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려오고,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네 명이다.

나는 조금 전과 다르지 않은 여유로운 태도로 그들을 맞이했다.

동료를 잃은 그들의 검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지만, 나를 경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형을 갖추고 싸울 줄 아는 이들이었다.

두 녀석이 측면으로 돌아 검을 휘둘러 오고, 앞에 선 두 놈이 검을 찔러 왔다.

반원을 그려 나를 감싸는 모양새.

나는 물러서지 않은 채, 공간을 장악하며 떨어지는 검격에 맞서갔다.

대기가 갈라지는 소음과 함께 손끝에서 네 개의 빛줄기가 뻗어 나간다.

카가가강!

일순, 나를 향해 쏘아지던 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튕겨 나갔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두 놈의 목을 베었다.

나머지 둘의 목을 베는 것 또한 찰나에 불과했다.

동시에 달려들었던 이들은, 마찬가지로 동시다발적으로 쓰러졌다.

어느새 사위가 고요해졌다.

나는 죽은 자들의 핏물을 밟으며 살아남은 이들에게 다가갔다.

이제야 그들의 눈가에 의문이 서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많이 당황했나 봐?”

약을 올려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기사들의 표정은 굳었고 과도한 긴장으로 근육은 수축됐다.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애새끼 하나 가지고 뭐 하는 거야!”

팔체라토의 신경질적인 고함이 골짜기를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한꺼번에 간다. 가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의 비장한 외침과 함께 남아 있는 놈들이 한달음에 쏘아져 왔다.

나는 그들을 향해 발을 굴렀다.

내가 움직이기 무섭게 나의 그림자를 베며 떨어지는 검격.

그들의 검이 닿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나는 우르르 달려드는 녀석들을 제멋대로 헤집었다.

양 떼 사이를 누비는 이리처럼 압도적이고 자유로운 움직임.

그들은 한 번도 내 걸음을 붙잡지 못했다.

푸확!

흐릿한 잔영 뒤로 붉은 꽃이 만발했다.

십여 명의 기사들이 생을 잃는 건,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하압!”

기합과 함께 시야로 푸른빛이 폭사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녀석의 검이었다.

내가 검을 거두는 타이밍에 맞춰,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속도의 우위를 이겨 낼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

상당한 집중력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나의 검이 먼저 녀석의 목을 갈랐다.

모든 상황을 압도하는 속도.

그것이 나의 검이었다.

어느새 살아 있는 자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팔체라토뿐이었다.

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녀석에게 다가가던 나는, 그 물음에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폭우처럼 떨어지는 검격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발걸음이다.

그런데 우스운 질문 하나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쉬이 답할 수가 없는 까닭.

내게는 두 개의 이름과 두 번의 삶이 있었다.

제네스 쿤 프렌치아와 이검학.

왕국의 세자와 무림의 검성.

열다섯 살과 마흔여섯 살.

이름부터 나이까지 전생과 현생의 간극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었다.

완전히 다른, 별개의 삶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이 질문에 일체의 망설임 없이 ‘나는 이검학이다’라고 답했을 거다.

전생은 이미 오래전에 잊혔고, 완전히 끊겼으니까.

천하제일인이면서 무림제일검인 검성, 이검학.

그게 나였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발렌시아 대륙에서의 나는, 온전히 이검학일 수만은 없음을.

전생의 나는 죽었지만, 그때의 인연과 당시의 상황은 내 존재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었다.

나는 40여 년이 넘는 다른 삶을 지나 이곳에 왔으나, 발렌시아 대륙에서 흐른 시간은 10년.

언젠가 나의 꿈이었던 이들이 지금의 핍박을 받는 당사자였고,

아버지가 끔찍이 여기고 어머니가 사랑했던 국민들이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지금 하얗게 타오르는 분노 또한 온전히 전생에서 이어져 온 것이었다.

“내가 누구냐고?”

그래서 나는, 전생을 되찾기로 했다.

“제네스 쿤 프렌치아.”

나는 잊혔던 전생의 이름을 다시금 끄집어내었다.

그럼으로써 죽음으로 내려놓았던 책임을 다시 짊어졌다.

하지만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열다섯 살 소년이 아닌, 하늘 아래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끊겼던 전생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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