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화 (2/228)

제2화

제2화 환생 후 귀환했다 (2)

지금 나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내가 마교 잔당들과 대치하고 있던 시간은 햇볕이 내리쬐던 정오.

그런데 지금은 은은한 달빛이 머무는 밤이다.

눈앞에는 마교 놈들 대신 웬 색목인들이 검을 쥐고 있다.

갑옷으로 가볍게 무장한 기사와 병사들.

그들은 검을 꼬나쥔 채 내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 깜박할 사이에 달라져 버렸다.

그런데 기사라고?

나는 내가 그리 생각해 놓고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담긴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포기해라.”

개중 하나가 중원의 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내가 어떻게 이해했지? 라고 의문을 가지는 순간.

전생의 기억이 세월의 묵은 때를 벗으며 존재를 드러냈다.

저편에 넣어 두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 여기는 발렌시아 대륙인 것 같다.

내가 전생에 살았던 그 대륙.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러했고 생김새가 그러했다.

“…….”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황당한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의 평정이 흔들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무공의 경지가 현경에 이른 이후, 정확히는 그 전부터 내 마음은 태산처럼 굳건했고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폭풍이라도 만난 듯 세차게 너울거린다.

나는 극에 다다른 심공(心功)을 운용하여 마음을 다스렸다.

거센 파도로 뒤덮였던 내면이 다시 잔잔해지는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마음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쯤이야 내게는 아무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의 당혹스러움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나는 일단 알 수 없는 의문은 치우고 몸 상태를 면밀하게 확인했다.

대해를 품은 듯 거대한 단전과 그 안을 가득 채운 내공은 여전하다.

신체 또한 불편한 점 없이 손가락 발가락 모두 존재하고, 입고 있던 의복부터 나의 독문병기이자 사문 대대로 내려오는 뇌운검(雷雲劍) 또한 허리춤에 얌전히 매달려 있다.

고로, 특별한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의문은 천천히 풀어 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시선을 나를 둘러싼 이들에게 돌렸다.

나를 포위하고 있는 건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복면을 쓴 세 놈이 내게 등을 돌린 채 병사들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병사들이 포위한 건, 정확히 내가 아니라 바로 이들이었다.

나는 복면인들과 병사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그들의 중심에 떨어진 듯하고.

그런데 병사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내 존재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마치 내가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우두머리로 보이는 기사가 말했다.

“너희들이 살 방법은 얌전히 투항하는 것뿐이다.”

“어디서 웃기지도 않은 개소리를 하고 있어.”

검은 옷을 입은 복면인이 코웃음 치며 대응했다.

나도 마침 위아래가 검은색인 무복을 입고 있었다.

차림새는 엄밀히 다르지만, 캄캄한 밤에는 거기서 거기로 보일 수도 있겠다.

나는 내가 왜 이들의 틈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됐는지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상컨대, 나는 병사들에게 이 거뭇한 것들의 일행쯤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끼어들었다.

싸움이 벌어진 후에는 입장 표명이 어려울 테니까.

“잠깐, 일단 내 얘기부터 들어 보겠나.”

“네가 이들의 우두머리인가.”

“그건 아니다.”

내 대답에, 등을 보이던 복면인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왁! 깜짝이야!”

귀신을 본 것처럼 발작한 녀석들은 걸음을 물리며 나를 경계했다가, 다시 등을 돌려 병사들을 경계하는 등, 상당히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 누구냐!”

복면인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 외침에 당황한 것은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을 친절하게 다독였다.

“너무 당황들 말거라. 사실 내가 제일 당황스러운 상황이니까.”

나는 능숙하게 대륙의 공용어로 대화를 이어 갔다. 이곳에 오니 전생의 기억이 또렷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대화가 어렵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내가 어느 쪽과도 연이 없는 사람이라서. 나는 빼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거라.”

나는 자연스레 복면인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복면인들은 나를 잔뜩 경계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사는 좀 달랐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그가 내게 검을 겨누며 도망자 취급했다.

나는 넓은 아량으로 녀석의 의심을 인정해 주었다. 내가 아무리 앞뒤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지만, 무분별하지는 않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들의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 어디서 많이 본 건데 기억나지 않는군. 소속을 알려 주겠나?”

나는 녀석을 설득하기보다 내가 묻고 싶은 것부터 물었다.

아까부터 갑옷에 새겨진 문양이 가물가물한 게 머릿속이 간지러웠다.

내가 익숙하다고 느낄 정도면 대륙에서 유명한 기사단이거나 프렌치아 왕국의 소속일 것이다.

물론, 후자는 말이 안 되기는 한다.

왕국은 패망했으니까.

“그것도 모르면서 암습을 했다고?”

기사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복면인들이 누군가를 암습하려 했었나 보다.

나는 그가 하고 있을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암습은 내가 아니라 이자들이 한 것이고. 나는 무고한 사람이야.”

“살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녀석의 모욕에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역시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의 주먹이 편하다.

하지만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다 보니, 나답지 않게 말이 많아진다.

“뭐 그렇다 치고, 소속이나 말해 봐.”

왠지 문양이 익숙한 게, 이들의 소속을 알면 상황 판단이 쉬워질 것 같았다.

누가 나쁜 놈인지 훤히 보이지 않냐고?

나는 복면을 썼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건, 굉장히 속 편한 이분법이라는 걸 복면 좀 써 본 사람으로서 잘 알고 있다.

“한심한 놈. 똑똑히 들어라. 너희들이 암살하려 한 분은 바로 팔체라토 아이아스 남작님이시다. 그 죄는 죽음으로도 갚지 못할 것이나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녀석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 모습이 심히 거슬렸다.

그런데 아이아스라.

들어 보니 신기하게도 기억이 났다.

“아이아스라면 프렌치아에 속한 가문 아닌가?”

나의 물음에 그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녀석의 무례함을 무시하며 물었다.

“혹, 프렌치아가 패망하지 않은 것이냐?”

“푸하하하하!”

녀석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시원한 웃음이었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굳히며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공포심에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구나. 그딴 나라는 진즉에 망한 지 오래다, 이 반역도들아!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우매한 족속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겠구나. 놈들을 죽여라!”

나는 대화를 제멋대로 끝내는 녀석의 말에 발을 굴렀다.

쿠웅!

묵직한 굉음과 함께 지반이 물결처럼 출렁였다.

그 진동을 느낀 이들은 자세를 바짝 낮추며 움직임을 멈췄다.

적막이 이어졌다.

나는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

“아직 내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모두 나를 바라보며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끔벅거렸다. 내가 말했다.

“나는 프렌치아가 패망했는지를 물었다.”

“……진짜 미치기라도 한 것인가.”

여태 나와 대화를 나누던 기사 녀석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렌치아 왕국은 현재 제국에 합병되었습니다. 팔체라토 아이아스는 나라를 배신한 변절자이고, 저희는 프렌치아의 독립군으로서 그의 암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원하는 답변을 내놓은 자는 복면을 쓴 녀석이었다.

내가 저들의 편이 아닌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답하는 걸 보니, 눈치가 있는 놈인 듯했다.

기사는 코웃음 치며 복면인들에게 멸시의 눈빛을 던졌다.

“X랄하네. 팔체라토 님을 암살한다고 독립이 가능하겠냐? 정신 차려, 이 한심한 새끼들아.”

나는 이제야 현 상황을 대강 읽을 수 있었다.

변절자와 독립군의 대치.

이들의 잘잘못을 떠나 적어도 내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는 알겠다.

지금은 그거면 된 거다.

“그만 물러가라.”

나는 기사 녀석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은가 보다. 들은 체도 않고 검을 꼬나쥐는 것을 보면.

어차피 내 말을 들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싫음 말고.”

나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등이 하늘을 향한 상태에서 중지를 엄지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딱밤을 치려는 자세였다.

그들은 그런 나를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간단히 설명하지. 말하는 자는 죽는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

전투가 벌어지는 건 불가피하다.

이럴 때는 어설프게 나서는 것보다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 주는 게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무슨 개―.”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중지로 허공을 튕겼다.

파앙!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입을 연 기사 녀석의 신체가 역동적으로 뒤집히며, 붉은 핏물이 허공에 뿌려졌다.

짧은 비명도 없었던 죽음에 다시금 고요가 찾아들었다.

내 손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물러가라고 했다.”

단 한 수를 보여 준 것만으로 이들의 눈빛엔 두려움이 가득 찼다.

“쳐―.”

파앙! 소리와 함께 한 놈이 또 피분수를 뿜어냈다.

“무, 무슨 마법―.”

파앙!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녀석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조건을 바꿔주마. 앞으로 다섯을 셀 것이다. 그때까지 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죽이겠다.”

숨소리마저 삼켜진 무거운 침묵이 내렸다.

그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하나.”

하지만 숫자가 세어지자.

“으아아악!”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강함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는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충분했다.

어느새 한적한 숲에는 세 명의 복면인과 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병사들이 도망친 자리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프렌치아의 독립군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나이가 마흔여섯이다.

그러니까, 프렌치아는 패망한 지 46년이나 지난 왕국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환생했다지만, 왕세자였던 나조차 나라를 잊었거늘.

아직까지도 프렌치아를 위해 제국에 맞서는 자들이 있을 줄이야.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물었다.

“현재 제국의 황제는 누구지?”

“아스라낙 윈 크레본입니다.”

“오래도 해 먹는군.”

아스라낙이라면 프렌치아를 패망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제는 뒷방 늙은이가 됐을 텐데, 아직까지 황위에 있을 줄이야.

“아직 한창이니 앞으로도 한참을 더 해 먹지 않겠습니까.”

덩치가 큰 복면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는 그를 보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네?”

녀석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은 아닐까, 염려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나답지 않게 질문의 의도를 친절히 풀어 설명했다.

“아스라낙이 재위에 오른 지는 벌써 60년이 다 되지 않았느냐.”

기억하기로 아스라낙은 프렌치아가 패망하기 10년 전쯤에 황위에 올랐다. 그 이후로 46년이 지났으니, 벌써 56년째 황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들의 눈빛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나는 서로 반문을 주고받는 답답한 상황에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녀석들의 반응을 토대로 혹시나 해서 물었다.

“지금이 발렌시아력으로 몇 년도지?”

“……549년입니다.”

고요해졌던 심상이 다시 한번 크게 출렁인다.

어쩐지 대화가 안 통하더라니······.

나는 539년에 죽었다.

전생의 기억이지만 내가 죽은 해이기에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지금이 549년이라니.

내가 중원에서 40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이곳에서는 고작 10년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전생의 내가 죽고, 10년이 지난 시점으로 귀환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