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27화 (127/127)

三十장. 왜군을 몰아내다. (1)

진주성에서 두 번째로 벌어진 대대적인 전투.

사활을 건 싸움 끝에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원래의 운명을 벗어나 살아남았던 김시민 장군을 비롯해 수천의 조선군은 결국 전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성에 있었던 수만 명의 백성들은 탈출할 수 있었고 왜장 중에서도 유명한 자인 가토 기요마사를 전사시킬 수 있었다.

진주성을 함락시켜 전라도 진출의 기회를 잡았지만 총대장인 우키다 히데이에는 군을 다시 부산으로 후퇴시켰다.

고니시 기요마사와 그를 따라갔던 부대 모두가 전멸한 것도 이유였지만 애당초 이 싸움은 본토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여주기 식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전쟁이었기에 사실 상 조선 반도에서의 철수를 간절히 바라는 왜군이었지만 바다에는 그 무서운 이순신이 있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그마저도 힘든 상황이었다.

한 편, 조선 측에서는 진주성의 일에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명군은 어쩐 일인지 조선 조정의 거듭된 요청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대를 나눠서 요괴가 출몰한다는 지역으로 계속해서 보내기만 했다.

이여송은 왜군의 섬멸보다 몬스터 코어의 확보를 더 우선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진주성 전투가 있고 보름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대치는 이뤄졌다.

전쟁의 판도가 이렇게 흘러갔지만 진주성의 함락 소식에 공분한 의병들은 적극적으로 왜군과의 싸움이 이어갔다.

챙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가운데, 마을 어귀에서 소수의 조선 의병들이 마을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쏴라!”

조총병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제 사격을 했다.

이 사격에 선두에서 달려오던 자들의 몸 곳곳이 총탄에 뚫렸다.

그런데······.

“헛! 사람이 사라지다니?”

“허, 허깨비?”

기이하게도 총탄에 맞은 자들은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곽재우가 가진 스킬, ‘분신’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이다!”

“와아아!”

사격이 끝나고 재장전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조총의 약점을 파고들어 의병들이 서슴없이 거리를 좁혔다.

순식간에 백병전이 치러지고,

서컥!

“······.”

검계 출신으로 상호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었던 노유명은 일격필살의 검술로 대여섯의 왜병을 쓰러트렸다.

상호와 있을 때보다도 훨씬 빨라진 속도로 움직이는 그를 왜병들은 눈으로 쫓지도 못했다.

“으라라!”

갑자기 고함이 들리자 왜병들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들은 검은 그림자에 가려졌다.

“허억!”

“으아아악!”

놀라며 비명 지르는 왜병들에게 날아든 것은 커다란 바위였다.

바윗돌은 그대로 왜병들을 깔아뭉개고 한참을 굴러갔다. 그것을 던진 것은 더벅머리에 덩치가 큰 떡쇠였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서 기습적으로 날아드는 작은 돌멩이가 왜병들의 머리를 수박 부수듯 부수니 남은 왜병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후퇴하려는 길목 쪽에서도 의병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나타났다.

“쳐라!”

“돌파한다!”

양측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와중에 한 무사가 말을 타고 긴 창을 휘두르며 길을 열고자 했다.

푸확!

창에 베인 의병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무사는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바로 그 때!

정면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조선군 군관이 있었다.

그는 바로 임충이었다.

“비켜라!”

무사는 창을 앞세워 임충을 격퇴하고자 했다.

그러나 서로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임충이 창을 피하고 검을 휘두르니 오히려 무사만 상처를 입게 되었다.

“크윽!”

팔이 베인 무사는 분함과 고통으로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 몸을 살짝 숙였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지금은 탈출이 먼저다. 무사는 그리 판단했고 뒤를 보지 않고 곧장 앞을 말을 몰아가려 했다.

푸욱.

“컥!”

그런데 느닷없이 옆구리에 칼날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놀란 눈으로 뒤를 본 무사는 곧 귀신이라는 본 것 마냥 눈을 크게 떴다.

그가 그토록 놀란 것은 방금 뿌리쳤던 조선군 군관이 자신의 뒤, 그것도 같은 말에 올라타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의문을 표시하며 말을 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결국 무사는 임충이 ‘점멸’ 스킬의 능력으로 자신의 말에 올라탔고 뒤에서 칼을 찌른 것을 알지 못한 채 말에서 떨어져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의 승리다!”

“와아아!”

곽재우의 승리 선언에 의병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실로 오랜만의 승리.

가토 기요마사에게 참패당하고 왜군의 토벌을 피해 경상도 일대를 전전했던 최근의 시기를 생각하면 이 승리는 참으로 값진 승리였다.

불과 300여 명의 의병으로 두 배가 넘는 왜군을 전멸시킨 곽재우 부대는 곧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곽 장군님, 오랜만입니다.”

“하하, 이게 누군가.”

곽재우는 상호를 보고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갑작스레 조정의 명에 의해 금부도사에게 추포되어 갈 때만 해도 무사히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던 이가 수백의 병사에 식량과 병장기를 갖고 돌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런 만큼 반가움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 무관도 무사하셨구려."

"무사히 다시 보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요."

그간 떨어져있던 동안에 있었던 일과 관련되어 할 말이 참으로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하는 게 먼저였다.

"곽 장군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소인은  전 정3품 통정대부 겸 동래부사를 지내셨던 제봉 대감의 아들인 고인후라고 합니다."

"자네가 제봉 대감의 아들인가."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고경명에 대해 알고 있는 곽재우는 고인후의 소개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어서 옆에 선 눈빛이 부리부리한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본인은 김덕령이라 하외다."

"곽재우라고 하오."

무려 3명의 의병장이 한 곳에 모였다.

승병들의 활동에 관한 문제로 떠난 사명대사까지 있었다면 엄청난 자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곧 상호는 이들 의병장들과 함께 향후의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 괴물 같았던 가토 기요마사를 자네가 쓰러트렸다니. 날 대신해 내 부하들의 원수를 갚아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상호는 곽재우의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새삼 가토 기요마사와 치렀던 싸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힘겹게 가토 기요마사를 처단하고 상호는 그의 시체를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깊은 땅 속에 파묻었다. 그리고는 적당히 죽은 왜병 중에서 가토 기요마사와 비슷한 자의 머리를 취해 조정에 바쳤다.

아울러 다시는 가토 기요마사와 같은 예가 나오지 않도록 은밀히 사람을 시켜 몬스터의 고기를 먹으면 그와 똑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끔 했다.

"그보다 장군께서 무탈하시고 제 부하들까지 건사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허허, 자네의 부하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내 부대는 왜적 놈들에게 당하고 말았을 것일세.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지."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를 돕기 위함인 것인가?"

"물론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왜군과의 싸움에 대해 여기 있는 의병장 분들과 함께 상의하고자 합니다."

이런 상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 있던 김덕령이 말했다.

"이대로 왜구 놈들을 내빼게 둘 수는 없소! 진주성에서 죽어간 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놈들을 모조리 참하여 바다에다 던져버려야 하오!"

"김 장군님, 좀 진정하시죠."

고인후의 부름을 받고도 진주성에 합류하지 못했던 김덕령은 그 부분에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적극적인 것은 좋지만 과도하게 구는 김덕령을 제지하며 상호가 말했다.

"아무리 기세가 꺾였어도 아직 남아있는 왜군은 수만에 달합니다. 우리들의 힘을 갖고는 정면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끄응!"

"관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명군의 의향 때문인 것이오?"

곽재우가 이렇게 묻자 상호를 대신해 고인후가 대답했다.

"명군의 장수인 이여송은 아무래도 이 쯤에서 전투를 멈추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남의 땅에서 치르는 전투에 불필요한 피를 흘리기 싫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보다 많은 보옥을 취하기 위해서 서둘러 전쟁을 끝내놓고 거기에 집중하겠다는 뜻도 있습니다."

뒤이어 상호가 이리 말하자 곽재우는 탄식을 터트렸다.

기껏 도우러 왔으면서 잿밥에나 관심을 주는 명군에 대한 탄식이었다. 그러나 곽재우의 걱정은 또 있었다.

"허면 왜군이 물러나도 명군이 이대로 조선 땅에 남아 요괴들을 사냥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럴 가능성이 크지요."

상호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에 다른 의병장들도 무거운 침묵 속에 어두운 얼굴을 취했다.

분명 전쟁의 판세를 뒤집고 나름 왜군과 잘 싸워준 명군이지만 한편으론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얼마 안 되는 식량을 갈취하는 등 안 좋은 일을 벌인 바 있다.

그러한 그들이 계속 남게 되면 백성들의 고초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국의 땅에 다른 나라의 군대에 계속 주둔하게 되는 것이 조선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 아니었다.

"왜군을 몰아내도 혼란은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요괴들이 전멸하면 알아서 물러나지 않겠소?"

"그것도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김덕령 장군."

이제껏 상호나 의병들이 토벌한 몬스터 게이트만 해도 거진 100여 곳에 이른다. 거기에 명군이나 왜군이 쳐부순 숫자까지 합하면 대략 200여 곳이라 추정이 된다.

한 편, 조선 땅에 나타난 몬스터 게이트는 지난 몇 달 간의 조사 결과, 대략 500여 곳이라 확인 되었다.

무려 절반이나 되는 몬스터 게이트를 파괴했으니 남은 것들도 이만큼 시간을 들이며 부술 수 있다고 본다면 큰 오산이다.

남아 있는 게이트들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전송시켰다.

이렇게 넘어온 몬스터들은 해당 지역을 점거하였고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몬스터 게이트도 단계가 상승하였다.

그나마 이렇게 남은 몬스터 게이트가 상대적으로 토벌의 시급함이 없는 인구가 별로 많지 않은 외진 지역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피해가 크지 않을 뿐이지 이대로 가면 확장된 몬스터들의 영역에 의해 조선 땅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게 될 게 분명했다.

앞서 토벌한 몬스터 게이트보다 훨씬 많고 강력한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한 곳을 공략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걸리고 성공 확률도 낮아질 게 분명했다.

상호는 분명히 말했다.

"남은 전이문을 파괴하는데 적어도 수 년은 걸릴 것입니다."

"그렇게나 시간이 걸린다면 전후의 피폐해진 백성들이 버틸 수는 없을 것이야."

"왜군을 몰아내도 이 땅에서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견은 방 안의 분위기를 침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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