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八장. 퇴로를 지켜라! (2)
상호와 그를 따르는 병력이 전투가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움직였고 전투 자체도 생각보다 빨리 끝나 성 서쪽의 일은 아직 북쪽 길목을 지키는 왜군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야심한 밤이기에 일부의 보초를 빼면 모두가 잠든 왜군 진지를 보며 상호가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저기 있는 적을 최대한 혼란에 빠트리고 그 소란을 왜군 본진이 알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공격할 때 최대한 우리의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전대로 왜군의 지원군이 온다면 신속하게 다시 이곳으로 집결할 수 있도록 한다. 내 말, 다들 이해하겠지?”
“알겠습니다.”
“네."
다들 표정이 결연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신들의 손에 지금 탈출하는 수만 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고 상호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우리의 손에 백성들의 목숨이 달려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도록."
"어떻게 싸우는데 무리를 안 합니까."
"내 말은 죽자고 싸우지 말고 자기 몸은 제대로 건사하고 싸우란 말이야. 좀 알아들을 때도 됐지 않나?"
"하하!"
가벼운 대화로 분위기를 풀었다.
상호는 아울러 말을 덧붙였다.
“싸움이 혼전인 만큼, 각 조장들은 대원들을 최대한 챙길 수 있도록.”
“걱정 마십시오.”
“한 명도 죽지 않게 잘 챙기겠습니다.”
각 조장에 해당되는 김태진과 백준수가 대답했다.
이에 상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후방을 향해 손짓했다. 이에 두 명의 대원이 불랑기포를 들고 와 거치했다.
“그럼 크게 한 방 날리며 시작해볼까."
“후후, 그것 좋지요.”
상호는 직접 화약과 함께 힘을 부여한 차원석 포환을 불랑기포에 장전했다.
마침내 준비가 되고,
“다들 귀 막을 준비를 하라고.”
상호는 불랑기포의 심지에 직접 라이터로 불을 지폈다.
심지가 타들어가고 소리와 함께 안에 들어있던 포환이 발사되었다.
그 직후!
“모두 엎드려!”
상호의 말이 아니더라도 다들 지면에 납작 엎드려 충격에 대비했다.
쿠아아앙!
큰 폭발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실린 폭풍이 강하게 불었다.
약 200보 거리에서의 발사.
날아간 포환은 절묘한 진지 중앙에 착탄했다.
공교롭게도 그 포환이 떨어진 곳은 이곳 방면의 왜군을 지휘하는 다이묘가 잠자던 천막이 있던 장소였다.
이로 인해 지휘관을 비롯해 그 근처에 천막을 치고 잠들어 있던 중요 지휘관들이 깡그리 전멸하고 말았다.
“아아악!”
“누가 도와줘!”
폭발이 휩쓸고 지나간 일대는 초토화가 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한 왜병들은 폭발 충격에 정신이 반쯤 나가 갑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고 정신없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자, 가자!”
주변이 잠잠해지고 상호는 직접 선두에 서서 돌격을 주문했다.
정확히 셋으로 나눠져 왜군이 있는 곳으로 질주했다.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왜군은 이런 상호 일행의 접근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서컥!
칼날이 살을 가르니 피가 뿜어진다.
끈 끊어진 인형 마냥 쓰러지는 왜병들을 지나쳐 검은 인영들이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헉! 기습......!”
“적이다, 적이... 으악!”
자신을 발견한 왜병들을 빠르게 베며 상호는 더 안쪽으로 전진했다.
그 뒤를 율을 비롯해 다섯의 대원들이 학익진을 펴듯 흩어져 따르면서 각자 손에 익숙한 병장기로 근처에 있는 왜군들을 베며 달렸다.
이렇게 내부를 헤집고 다니며 혼란을 가중시키니 당장 지휘관들이 떼죽음 당한 상황에서 하급 무사나 일반 병사들은 이렇게 떠들어댔다.
“조선군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이냐!”
“적이 사방에 있다!"
"적의 규모는 얼마인 것인가!"
“어서 퇴각해야 돼!"
“무슨 소리! 주군을 죽인 적을 두고 도망친다는 것이냐!”
공황 상태인 왜군에게 고작 십수 명의 상호 일행이 마치 수백 명의 병력으로 오인되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에서 왜군은 제대로 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사실 상 전멸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때,
두두두두.
연못의 가장자리에 난 소로를 따라 수백 기의 기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횃불에 의지해 달려왔다.
왜군 본진에서 이변을 알고 급히 기병부터 보낸 것이다.
‘생각보다 빠른 걸.’
무한은 검을 휘둘러 주변의 왜병을 쓰러트리면서 남쪽 하늘을 보았다.
만약 왜군이 진주성으로 어떤 움직임을 취했다면 그곳에 있는 유길준이 신호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신호가 아직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왜군은 진주성이 비었다는 사실과 피난민의 움직임을 알지 못한 게 분명했다.
“이쪽의 예상대로 되어가는군.”
슬슬 이곳을 이탈할 때였다.
상호는 주위에서 싸우는 율과 다른 대원들과 함께 재빨리 철수했다.
워낙 휘젓고 다닌 덕분에 뒤에서 조총을 쏘거나 추격해오는 병사도 없어 신속하게 정해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 무사한가.”
“예!”
습격에 참가한 전원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상호는 바로 말을 타고 움직였다.
그런데 피난민들이 대피하는 서쪽이 아닌 진주성 쪽으로 달리는 게 아닌가.
이것은 피난민들에게 시간을 벌기 위한 또 하나의 계략을 실행하기 위한 미리 정해둔 행동이었다.
지원군으로 온 것은 가토 기요마사 휘하 2군에 속한 나베시마 나오시게라는 왜장이었다.
그는 초토화된 지역과 전멸된 부대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기 조선군입니다!”
“이익! 놈들이 성에 들어가기 전에 잡는다!”
“하잇!”
아군을 궤멸시킨 조선군을 향한 분노에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바로 추격을 명령했다.
이에 수백 기의 기병은 맹렬한 기세로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하앗!”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열려진 성문으로 상호 일행이 쏜살같이 들어간 것이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돌파한다!”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아직 닫히지 않은 성문을 보고 더욱 부대 속도를 올렸다.
잘만 하면 성내로 진입해 낮에 못 다한 성 함락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추측은 적중했다.
성문이 채 닫히기 전에 선두의 기병들이 안쪽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성내를 제압해라! 가차 없이 모두 죽여도 상관없다!”
“조선 놈들을 찾아!”
거침없이 성으로 들어오는 기병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성 위에서는 아무런 반격도 없었다.
게다가 안에 들어온 기병들을 반긴 것은 불빛 하나 없는 적막한 성내의 모습이었다.
“묘하게 조용한 게 뭔가 수상합니다.”
“성 안이 마치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분위기이지 않은가.”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안 좋은 낌새를 느끼고 부대를 멈춰 세웠다.
이 때, 가까운 초가집의 지붕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쫓아오느라 수고 많았네.”
“큭! 함정이었나.”
상호의 모습을 보고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바로 이 상황이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곧장 병력을 성 바깥으로 후퇴시키려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상호는 왜군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 순간!
성문의 위쪽이 무너지더니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아니?”
“너희는 여기서 모두 죽어줘야겠다.”
미리 공작해 성문을 무너뜨린 상호는 발이 묶인 왜군을 보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아래에 미리 준비된 항아리에서 물줄기가 치솟아 화살의 형태를 취했다.
“가랏!”
상호가 날린 20여 발의 ‘수룡시’가 말 위에 탄 기병들의 몸을 관통했다.
병장기가 아닌 물로 된 화살에 부하들이 당하자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상호를 지목하며 명령했다.
“저 녀석을 죽여!”
이에 일부 기병이 화살을 날려 지붕 위의 상호를 떨어트리고자 했다.
하지만 화살 정도에 쉬이 당할 상호가 아니었다.
“이런 걸로는 날 못 잡지.”
제자리서 자신에게 날아온 화살을 손으로 한 움큼 붙잡은 상호는 계속해서 ‘수룡시’를 만들어 날려댔다.
계속해서 피해가 커지자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말 고삐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다른 성문을 찾아 탈출한다! 어서 길을 열어라!”
“옛!”
지시에 따라 기병들은 황급히 움직였다.
상호는 그것을 보고도 딱히 손을 쓰지 않았다.
두두두두.
어둠 속에서 정신없이 달리는 기병들.
그들이 가는 앞에는 밧줄이 낮게 깔려 있었다.
“히이잉!”
“으아아악!”
말이 고꾸라지면서 위에 타고 있던 기병들도 낙마했다.
이 모습이 뒤따라 달리던 자들은 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바로 이때를 노리고 좌우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컥!”
“매복이다!”
다급히 화살을 피해 말을 되돌리는 기병들.
그들의 앞으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라!”
그를 발견하고 한 기마무사가 대뜸 장창을 들고 돌격했다.
이를 보고도 피하지 않던 인물은 곧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쿠당탕!
인물은 그대로 자신의 몸을 가지고 달려온 말을 직접 막아냈다.
충돌 결과, 놀랍게도 말과 그에 타고 있던 기마 무사가 하늘을 날아 거꾸로 땅에 처박혔다.
“자자, 덤벼라.”
군관 김태진은 ‘강철화’ 스킬로 별 상처 없는 자신의 몸을 믿고 거침없이 기병들 사이로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여기서 좌우 골목에서 다른 토벌대 대원들도 뛰어드니 순식간에 난전이 펼쳐졌다.
물론 전원이 능력자인 대원들을 상대로 기병의 이점을 살릴 수도 없고 오도가도 못하게
된 나베시마 나오시게 휘하 왜군은 일방적으로 처발릴 뿐이었다.
“죽어라!”
“항, 항복하겠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고 겨우 살아남은 수십 명의 기병도 뒤따라 항복하였다.
이에 상호는 이들을 결박케 하고 막 합류한 유길준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왜군 전 병력이 성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래? 가토 기요마사는?”
“깃발을 통해 선두로 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좋아.”
여기까지는 작전대로 잘 흘러가주었다.
지금쯤이면 약 3시간 전쯤에 성을 떠난 피난민들도 꽤 멀리까지 이동했을 터였다.
상호는 데리고 갈 수 없는 포로들을 적당한 곳에 가두게 하고 인원을 모았다.
“지시한 대로 성 곳곳에 불을 일으켰습니다.”
기병과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던 인원들이 와서 보고했다.
“수고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가토 기요마사가 바램대로 움직이길 바라며 마지막 장소로 이동하는 것뿐이다.
“빨리 가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해야 하니 다들 서둘러라.”
“예!”
일각의 시각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하여 상호는 대원들을 이끌고 서둘러 서쪽 성문을 통해 성을 탈출했다.
잠시 뒤, 왜군은 진주성으로 진격해왔다.
“불을 꺼라!”
“예!”
“나베시마는 어디 있나?”
“여기 찾았습니다!”
선봉으로 들어온 가토 기요마사는 형편없는 몰골로 붙잡힌 자신의 수하를 보게 되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군!”
“.......”
자신의 가신이 이렇게 당한 모습을 본 가토 기요마사는 분노를 느꼈다.
수하 가신이 당한 것은 곧 그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놈들을 쫓는다!”
“네!”
가토 기요마사와 수하 기병 수십 기는 그렇게 상호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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