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七장. 구원자. (3)
상호와 가토 기요마사는 서로를 직시했다.
첫 대면이었지만 두 사람 다 상대가 보통의 존재인 것을 알아보았다.
“설마 내가 이런 유명한 인물과 싸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아까 전에 일어났던 기현상은 네 놈의 소행인가. 물을 움직이는 능력이라니, 상당히 재밌는 능력을 가졌구나."
“가토 기요마사, 미안하지만 당신은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당신이 가진 그 능력이 더 이상 인간들의 전쟁에 쓰이게 놔둘 수는 없거든.”
“조선인, 얌전히 무릎 꿇는다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내 가신으로 삼아주겠다.”
서로 다른 언어로 상대에게 말하였다. 통역이 없기에 말의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 눈빛 그리고 목소리를 통해서 그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내 서로 코앞까지 다다르고,
“핫!”
“요오!”
상호가 아래서 위로 장검을 휘두르고 가토 기요마사가 위에서 아래로 왜도를 휘둘렀다.
콰가가각!
두 사람이 서 있던 지면에 금이 좌르륵 갈라지고 성벽이 크게 흔들렸다.
“지진이다!”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지?”
조선군도 왜군도 모두 이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 주변의 분위기는 지금 상호에게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근력을 올렸군.’
겨우 막았지만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상호는 가토 기요마사가 7단계까지 끌어올린 힘이 ‘근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뒤로 이탈했다.
“힘에서는 무리지만 이러면 어떨까!”
말과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무한.
그의 움직임에 가토 기요마사는 재빨리 방어 자세를 취했다.
콰득!
상호가 내지른 발차기에 가토 기요마사의 갑주가 박살나면서 왼쪽 팔이 부러졌다.
“역시 다른 능력은 대략 3단계 수준인가.”
상호는 가토 기요마사의 움직임, 그리고 육체의 강도를 통해 그 수준을 파악해냈다.
맞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군.”
상호는 놀랍게도 부러진 팔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생’ 스킬은 극히 얻기 힘든 스킬로 체력을 소모하여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탱커를 자처하는 헌터라면 누구나 1순위로 갖고 싶어 하는 스킬을 저 자가 갖다니. 솔직히 샘나는 걸.”
지금껏 코어를 모아왔다면 스킬의 힘을 얻을 수 있는 <푸른색 코어>도 얻었을 게 분명하니 스킬을 쓰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저 스킬 외에 어떤 스킬을 가졌을 지다.’
상호는 그것을 대비하며 재차 빠르게 움직였다.
역시 상호의 움직임을 쫓지 못하는 가토 기요마사.
그런데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파캉!
상호의 휘두른 검을 왜도로 막아낸 가토 기요마사가 곧장 힘으로 밀었다.
그 힘이 밀린 상호는 곧장 성벽 쪽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칫!”
충돌 직전에 몸을 앞으로 숙여 성벽에 발로 착지한 상호는 이내 폭발적인 기세로 다시 가토 기요마사를 향해 날아갔다.
콰앙!
충격에 성벽 일부가 무너지는 속에서 상호는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고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투캉!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가토 기요마사의 왜도는 상호의 일격을 막아냈다.
“소용없다!”
가토 기요마사는 붉은 기운을 온 몸으로 방출하며 상호를 다시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크게 위로 떠올랐던 상호는 좀 떨어진 곳에 무사히 착지했다.
“골치 아프게 됐네.”
상호는 가토 기요마사가 발휘하는 붉은 기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피의 욕망’ 스킬.
전투를 할수록 힘과 체력, 민첩 모두가 급격히 올라가는 스킬이다.
지속 시간이 길어지면 스킬이 풀린 이후에 몸에 걸리는 부하가 커져 전투 불능이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단기간 동안에 기존 능력을 월등히 끌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스킬이다.
‘저 스킬이 발동된 이상, 속도로 몰아붙이는 것도 어렵겠네.'
상호는 붉은 기운을 피워내는 가토 기요마사에게서 천천히 거리를 두었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지.”
가토 기요마사는 왜도를 비스듬히 내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것을 보면서 상호는 초조히 기다렸다.
이 때!
쿠콰카카캉!
성벽 바깥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그것에 놀란 가토 기요마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야?”
이 순간을 상호는 놓치지 않았다.
“가랏!”
상호는 즉각 ‘수룡창’을 만들어 그대로 날렸다.
하지만 가토 기요마사의 왜도는 그것을 간단히 분쇄했다.
“통할 것 같으냐!”
가토 기요마사는 그리 소리치며 상호를 치고자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또다시 들려온 굉음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콰아아앙!
지금 들린 소리 역시 성벽 바깥, 진주성 동쪽, 왜군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들려왔다.
본대에 뭔가 일이 생긴 게 확실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
가토 기요마사는 상호를 강하게 노려보더니 이와 같이 말했다.
“결착은 다음에 내도록 하자.”
그리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에 다른 왜병들도 부상자를 챙기며 성문 너머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상호는 가토 기요마사와 왜군이 철수하는 것을 그냥 놔두었다.
어차피 이번 싸움은 상대인 가토 기요마사의 힘을 파악하기 위한 전초전이었기 때문이다.
'내 예상을 웃도는 강함이었어. 하지만 약점도 극명하게 있으니 그것을 노리고 작전을 짜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다음에야말로 가토 기요마사를 쓰러트릴 것을 작심하는 상호였다.
한 편, 밖으로 나온 가토 기요마사는 놀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성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본대가 있던 곳엔 커다란 구덩이가 두 개나 남겨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기 중이던 병력 중 수백 명이 말 그대로 증발하고 그 수의 몇 배나 되는 병사는 충격파에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총사령관인 우키다 히데이에와 주요 장수들이 있던 지휘부에 직격이 떨어지지 않아 이들 중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토 기요마사는 바깥에 있었던 무사 중 한 명을 불러다 자초지정을 파악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그, 그것이······. 성의 함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포 소리가 나더니만 커다란 빛과 굉음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화포라고? 조선 놈들의 화포가 확실한 것이냐?”
“분, 분명히 화포의 발포 소리였습니다.”
“크윽.”
가토 기요마사는 화포가 이런 엄청난 위력을 냈다는 말을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조선 놈, 뭔가를 가지고 왔구나.”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만의 군대가 포위한 성으로 자신만만하게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인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이미 진주성을 공격했던 왜군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주군, 우키다 공께서 철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할 수 없지. 군을 물린다."
“예!”
힘을 얻은 이후로 부쩍 호전적이게 된 가토 기요마사가 행여 성에 대한 공격을 고집할까봐 걱정했던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들은 안도의 표정을 보이며 서둘러 병력을 수습했다.
이렇게 왜군은 임시로 성에서 좀 떨어진 평야로 후퇴하였고 성에 있던 사람들은 약간이나마 목숨을 부지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왜군이 후퇴하고 진주성의 군민들은 서둘러 성문을 보강하고 다시 있을 침입에 대비했다.
하지만 처음 병력의 삼분지 일도 남지 않은 병력과 거의 소모된 물자로는 다음 있을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가운데, 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누구나 믿고 따르던 김시민의 죽음이 알려지자 모두가 비통해했다.
“장군!”
“흐흐흑.”
바로 눕혀진 김시민의 시신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통곡했다.
상호는 그런 사람들 뒤에 서서 눈을 감은 김시민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운명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전쟁터에 최후를 맞이하였구나.’
김시민 같은 유능한 장수가 전사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마지막까지 죽음으로 항전할 생각이었던 김시민과 달리, 상호는 성을 버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라도 쪽으로 피신시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토포사 나리.”
“수고 많았어, 남 무관.”
상호는 막 성으로 복귀한 자신의 수하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들은 빈 손이 아니었다.
도수운반하기에는 무겁기 짝이 없는 불랑기포를 무려 2문이나 들고 온 것이다.
“그것을 들고 움직이느라 꽤나 힘들었지?”
“신통력으로 육체를 강화한 덕에 그렇게 운반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나리께서 주신 그 포환, 실로 엄청난 위력을 내더군요.”
“당연하지.”
상호는 남준에게 상륙하는 즉시 성으로 오지 말고 성 외곽에 있는 왜군 본진을 향해 포를 쏘라고 지시했었다.
물론 단순한 포환이라면 공격하나마나한 효과를 낼 뿐이다.
하여 상호는 자신이 만든 차원석 포환을 건네주고 그것을 폭주시키는 방법을 남준에게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남준을 비롯한 토벌대원들은 아슬아슬하게 사정거리가 되는 위치까지 은밀히 접근했고 두 발의 발사로 목적한 바를 달성한 것이다.
“그나저나 성 안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병사들도 많이 전사했지만 성문과 성벽도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부서졌으니 다음 공격에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나도 잘 알고 있어. 일단 자네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왜군의 동향을 감시하면서 최대한 후퇴할 때 쓸 수 있는 물자를 확보해줘.”
“알겠습니다.”
“아참! 허 의원과 사명대사는 어디 계시지?”
“이미 두 분은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렇군.”
따라 불러다가 말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이어 상호는 줄곧 곁을 떠나지 않았던 율에게 말했다.
“율도 어서 가서 허 의원께 진찰 받도록 해.”
“전 괜찮습니다.”
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상호는 그 말에 속지 않았다.
“아까 가토 그 자와 일대일로 싸우면서 다친 것 알아.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
“하지만 다른 중한 환자들도 있는데 어찌 제 한 몸을 먼저 살필 수 있나요.”
“바보 같은 소리! 율, 너는 지금 이 전투에서 가장 귀중한 전력이란 말이야. 앞으로 가토 그 자와 싸워야 하는데 만전의 상태가 아닌 채로 싸울 생각이야?”
“···알겠사옵니다.”
상호가 이렇게 말하니 율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율을 허준이 있는 곳으로 보내놓고,
“그럼 이제 그를 만나볼까.”
상호는 용케도 불타거나 침수되지 않은 한 초가집에 있는 고인후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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