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六장. 2차 진주성 전투. (3)
"적이 성벽을 넘지 못하게 막아라!"
"반드시 여기를 사수해야 한다!"
필사적으로 성벽을 지키고자 하는 조선군!
하지만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수만의 왜군이었다.
연못들이 있어 접근이 어려운 북쪽과 강이 흐르는 남쪽 때문에 왜군은 오로지 동쪽에서만 공격해왔다.
전에도 이러한 지형적 우세와 후방에서의 의병 활약 덕분에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진주성이지만 이번만큼은 매우 어려웠다.
일단 적병의 숫자가 많다는 것과 앞서 치러진 매복 작전의 실패가 아군의 사기를 꺾은 점도 있지만 그보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콰앙!
“으아악!”
“성, 성문이!"
단 한 번의 일격에 두꺼운 성문에 금이 갔다.
화포라도 쏜 것일까?
하지만 믿기지 않게도 이것은 단 한 사람이 내지른 창격이 만든 결과였다.
"저 자를 막아!"
"화포를 저 자에게 향해라!"
성벽 위의 조선군들이 가리킨 것은 검은 갑주를 입은 무장, 가토 기요마사였다.
어떻게든 그의 행동을 막기 위해 다수의 왜병들을 막는데 쓰던 지자총통을 그 한 사람을 향해 겨눴다.
퍼엉!
쏘아진 포환이 가토 기요마사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날아간 포환은 믿기지 않게도 가토 기요마사의 손아귀에 붙잡혀 멈춰 섰다.
"허억!"
"포환을 맨 손으로 막다니."
인간 같지 않은 능력에 조선군은 경악했다.
이렇게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리를 피하지 않은 가토 기요마사는 창을 힘껏 뒤로 당겨 한 번 더 찌르기를 펼치고자 했다.
“그렇게는 안 된다, 이 놈!”
노호와 함께 성루에서 한 인물이 뛰어내렸다.
그는 바로 의병장 김천일이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가토 기요마사가 있던 자리에서 큰 폭풍이 일어났다.
“하하하!”
웃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가토 기요마사.
그는 김천일이 내리친 철퇴를 팔뚝으로 막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선의 능력자, 어디 그 실력을 볼까.”
왜어로 말한 가토 기요마사는 그대로 김천일을 뿌리쳤다.
마침 김천일이 날아오자 왜병들이 그를 죽이고자 창을 찔러갔다.
하지만 김천일이 허공에 대고 철퇴를 한 번 휘두르자 그 일대로 보이지 않는 힘의 파동이 덮쳐졌다.
김천일이 가진 스킬인 ‘파동’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우아아악!”
“커억!”
비명과 함께 나뒹구는 왜병들 사이로 김천일이 착지했다.
곧 김천일은 가토 기요마사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다시 묵직한 철퇴를 들었다.
“내가 오늘 여기서 네 놈을 죽이고 뼈를 묻겠다!”
결사의 각오로 달려드는 김천일!
그는 철퇴를 중심으로 파동을 모아 그대로 가토 기요마사에게 달려갔다.
“죽어랏!”
철퇴가 허공을 때린 순간에 파동이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가토 기요마사가 있는 지점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가토 기요마사는 그 파동을 정면으로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왜도를 들어 달려온 김천일의 가슴을 힘껏 베었다.
“분, 분하다.”
피를 흘리며 김천일은 그대로 쓰러졌다.
이렇게 의병장 중 한 명이자 이곳에 있는 능력자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김천일이 전사하였다.
“큭!”
“참으셔야 합니다.”
김천일이 홀로 가토 기요마사를 상대하러 갔다는 보고에 다른 곳을 수비하다 이곳까지 달려온 고인후였다.
하지만 한 발 늦고 말았고 뒤늦게나마 김천일의 원수를 갚고자 가토 기요마사에게 가려는 것도 주변 측근들의 만류에 이루지 못했다.
콰앙!
“성문이 무너졌다!”
“내벽으로 후퇴하라!”
진주성은 동쪽으로 총 2겹의 성벽으로 되어 있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왜병들을 피해 수백 명의 조선군들은 내벽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 이상이 추격해오는 왜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마침내 수세에 몰린 조선군을 두고 왜군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오후 3시.
따뜻한 봄 날씨가 무색하게 진주성은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장군.”
“마지막까지 저항을 멈춰서는 안 된다.”
김시민은 성루에 서서 의연하게 말했다.
이제 마지막 성벽까지도 잃으면 진주성에 있는 몇 만의 백성들까지 모두 목숨을 잃을 처지였다.
이미 패배는 돌이킬 수 없고 도망칠 곳도 없었다.
그랬기에 최후까지 분연히 싸울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저도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소관도 따르겠습니다.”
비단 이런 각오는 조선군 군졸들만 한 게 아니었다.
“우리도 싸우겠슈!”
“내게 칼을 주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싸울 의지를 불태웠다.
심지어 소년이나 노인까지도 말이다.
“모두 고맙구나.”
결언한 모습을 보이는 모두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게 김시민으로선 통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곧 그는 고인후를 불렀다.
“향후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저 가등청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도 자네는 살아야 하네. 남쪽 강가에 조각배를 준비해두었으니 그것을 타고 탈출하게.”
“어찌 저만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만 고인후는 김시민의 말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그를 보며 김시민이 재차 말했다.
“앞날을 생각하게. 저 괴물 같은 자가 앞으로 이 전쟁에서 얼마나 큰 위협이 되겠는가. 그를 막으려면 자네와 같은 신통력을 가진 자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줘야 하는 것일세.”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없더라도 가등청정을 쓰러트려줄 무사가 있으니 말입니다.”
“전에 말했던 그 천인을 얘기하는 건가.”
“네.”
고인후는 상호의 얼굴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비록 자신이 막지 못하더라도 상호라면 분명 가토 기요마사를 막아줄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아직 전 포기한 게 아닙니다. 비록 패전을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등청정, 그 자의 팔 하나라도 잘라 그의 능력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자네······.”
고인후는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가토 기요마사의 팔 하나를 뺏을 작정이었다.
그런 각오를 보이는데 김시민도 더는 그에게 탈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해가 질 쯤, 진주성 최후의 전투가 개시되었다.
타타탕!
빗발치는 총탄에 조선군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선군 병사들은 과감히 몸을 일으켜 화살을 쐈다.
“에잇!”
“이야압!”
일반 백성들도 자발적으로 성벽에 와서 돌을 던졌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왜병들을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토 기요마사가 이번엔 선두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제길!”
기껏 죽을 각오로 가토 기요마사를 상대하려 했건만 그의 모습이 어디서도 보이지 않자 고인후가 억울함에 찬 욕지기를 입 밖에 내뱉었다.
곧 그는 서슬 퍼런 눈빛을 하며 중얼거렸다.
“오냐! 네 놈이 나타나게 해주마.”
고인후는 손에 든 장검을 뽑아들고 검집은 그대로 뒤로 던져버렸다.
그것은 더 이상 검을 집어넣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각오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를 따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여섯 명의 능력자들이 행동을 같이 했다.
“우아아악!”
“죽어라!”
이미 성벽까지 왜병들이 넘어온 상황이었다.
성벽을 넘은 왜병 중 일부가 문을 열기 위해 그쪽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이 놈들!”
그들을 향해 고인후가 바람이라 된 양 몸을 날렸다.
호쾌한 검 놀림에 수 명의 왜병들이 그대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에잇!”
고인후를 향해 창을 찌르는 왜병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고인후의 몸에 창을 닿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어느새 그들의 뒤편에 선 고인후는 뭉텅이로 몰려드는 왜병을 보고 검을 뒤로 크게 젖혔다.
“하아앗!”
기합과 함께 내지른 검을 따라 검풍이 일어난다.
이렇게 일어난 바람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것에 닿은 것들을 모조리 베었다.
이는 고인후가 ‘바람의 속성력’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괴, 괴물이다!”
“물러나!”
고인후와 그를 따르는 능력자들의 활약에 성벽을 넘는 대부분의 왜병이 쓰러졌고 나머지도 밖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왜군을 물리친 것도 잠시, 새로운 적들이 또 쏟아져 와 공격해왔다.
“우오오!”
고인후는 그들을 맞아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의 검에만 베인 시체가 무더기를 이루고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왜병들은 그를 쓰러트리기 위해 멀리서 조총을 쏘기도 했다.
휘이잉!
하지만 그 때마다 고인후가 일으킨 바람이 돌풍이 되어 총탄을 멈추게 했다.
“성문을 사수하라!”
김시민 역시 검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지휘해 왜군을 막아섰다.
하지만 아직 부상에서 완쾌된 게 아니었던 그는 빠르게 쇠약해졌다.
타앙!
그런 그를 향해 한 발의 총탄이 날아들었다.
“윽.”
“장군!”
김시민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것을 본 부장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정확히 심장이 있는 곳을 총격 당했기에 그는 이미 절명한 뒤였다.
"크흑, 장군!"
눈물을 흘리는 부장.
여기저기서 열심히 싸우던 병사들과 그들을 돕던 백성들이 죽어갔다.
"헉, 헉!"
홀로 백 명도 넘는 적병을 벤 고인후는 능력을 과도하게 써 정신력이 고갈되었고 또한 육체적으로도 지쳤다.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었지만 그는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커헉!"
그와 함께 싸우던 능력자들이 차례대로 쓰러져가고 이제 그만 남았다.
이 때, 성문이 열리면서 바깥에서 다수의 왜군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그 중엔 왜군의 총사령관인 우키다 히데이에도 있었다.
우키다 히데이에는 고인후를 보고 말했다.
"저 자는 생포해라."
"예?"
"저 자의 능력, 그 실체를 반드시 알아야겠다."
우키다 히데이에는 이번 전투를 통해 가토 기요마사가 보인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에 공포를 느꼈다.
'저 힘은 위험하다.'
비록 지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수한 다이묘들이 서로 세력을 다투던 전국시대였었다.
그랬기에 가토 기요마사의 능력은 충분히 경계해야 했다.
만약 마음만 먹는다면 저 힘으로 지금 관백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반기를 들고 다시금 전국 시대를 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키다 히데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염려해서 이런 걱정을 하는 게 아니다.
만약 향후 왜국에 난세가 찾아온다면 한 사람의 다이묘로서 저 가토 기요마사로부터 자신의 영지를 지킬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힘의 근원이 뭔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여기 전투에 참가한 다른 다이묘와 무장들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반드시 죽이지 말고 산 채로 잡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조총이나 활을 쓰지 않고 무사들이 직접 나서서 고인후를 제압하고자 했다.
이에 고인후는 타인의 피로 피범벅이 된 상태로 멈추지 않고 싸웠다.
하지만 차륜전으로 공격해오는 무사들의 움직임에 결국 힘이 다했고 누르는 힘에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저 자를 통해 신통력의 비밀을 밝혀내어 그 힘을 취한다면······."
우키다 히데이에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쿠구구궁.
"음?"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에 우키다 히데이에는 놀라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로 갑자기 들린 소리에 반응했다.
"아앗!"
이 때! 한 왜병이 위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였다.
그 손가락을 쫓아 고개를 치켜든 우키다 히데이에.
"헉!"
그는 놀란 나머지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그가 본 것은 놀랍게도 하늘 높게 솟구친 물기둥이었다. 그리고 그 위엔 두 사람의 인영이 햇빛을 뒤에 두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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