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六장. 2차 진주성 전투. (2)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부대가 진주성을 향해 단독으로 출격하자 우키다 히데이에는 그냥 두고 보지 못하고 다급히 부대를 모아 5만의 병력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이러한 왜군의 움직임은 곧 세작들을 통해 진주성에 있는 조선군에게 전해졌다.
“장군, 아직 바람이 찹니다.”
“다들 일하는데 어찌 나만 쉬겠는가.”
지난 번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완쾌된 게 아님에도 김시민은 두정갑과 투구까지 차려입고 일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대군이 다시 한 번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한 번 이 성에서 대승을 거뒀고 또 그 때 지휘하였던 김시민이 있었기에 성의 병사들은 전혀 사기가 떨어지지 않고 방어 준비에 열심이었다.
이런 가운데, 속속 지원군으로서 각지의 관군과 의병들이 당도했다.
“어서 오시게.”
“절도사 영감.”
고인후는 자신을 문 앞까지 나와 반겨주는 김시민의 모습에 황송해했다.
그를 필두로 그의 형인 고종후와 김천일의 부대까지 합해 총 4천의 의병들이 진주성에 입성하였다.
이로써 진주성을 지키는 병력은 총 8,000여 명이 되었다.
“가등청정의 군대가 먼저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믿을 수 없으나 그 자의 신통력이 실로 무시무시하다고 하여 그대들을 부른 것이네.”
김시민은 고인후를 통해 몬스터의 존재와 몬스터 코어를 통해 힘을 얻는다는 얘기를 접한 바 있었다.
그랬기에 가토 기요마사의 소문이 상당히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고인후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저희도 최대한 서둘렀으나 안타깝게도 미처 당도하지 못한 병력이 많아 송구스럽습니다.”
“아닐세. 자네들이 와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네.”
당초 고인후는 약 7천에 달하는 의병들을 모으려 했다.
그러나 김덕령을 비롯한 몇몇 의병장들은 사정이 생기거나 거리가 멀어 제때 당도하지 못해 지금의 병력만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관군도 사정은 비슷했다.
도원수가 된 권율은 진주성이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서둘러 남진을 주청했지만 명군의 반대를 맞이해야 했다.
오로지 의기로만 합류한 몇몇 지방관들만 이끌고 온 병력 말고는 지원군은 없는 실정이었다.
왜군의 공격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고인후의 합류가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곧 김시민은 지휘관들이 모아 작전 회의가 열었다.
주어진 정보를 갖고 어떻게 성을 수비할지 논의하는 이 자리에서 고인후가 발언했다.
“절도사 영감,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방금 전에 들려주신 정보에 따르면 왜군의 본대와 가등청정의 부대는 약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 떨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가등청정의 부대를 쳐서 그들부터 격퇴하고 이후 본대를 상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고인후의 주장에 김시민은 턱수염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육전에서 조선군은 성을 지키는 수성일 경우가 아니면 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따라서 성을 나가서 싸우자는 고인후의 제안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다 할 수 있었다.
고인후는 곧바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설명했다.
“후발대로 오는 왜군의 본대와 가등청정의 힘이 합쳐지면 막는 게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노리고 각개격파를 해서 이쪽의 부담을 줄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말은 일리가 있네. 하지만 가등청정의 부대도 만만치 않은 세력이야. 그들을 야지에서 맞아 싸운다면 승산이 높지가 않아.”
“저도 정면에서 싸운다면 힘들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해서 적이 오는 진격로에 매복을 하여 기습 공격을 펼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복 작전 말인가?”
“네. 적은 아마도 우리가 방어에 유리한 성을 두고 굳이 바깥으로 나와 응전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충분히 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소관도 찬성입니다."
다른 의병장들과 관군의 장수들도 작전에 찬성했고 고인후의 설득은 결국 김시민의 뜻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매복 작전을 실행하기로 했다.
장소는 진주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선학산으로 정해졌고 고인후를 대장으로 오천의 병력이 그곳에 매복을 하게 되었다.
남쪽으로 남강이 있어 동쪽에서 오는 왜군은 반드시 선학산의 말띠고개를 지나야 했다.
고인후는 부대를 둘로 나눠 고개를 위아래로 포위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가운데, 고인후가 따로 일단의 인원을 모아 작전을 알렸다.
“들어라. 우리의 기습으로 적이 혼란에 빠지면 분명 가등청정이 자신이 가진 신통력으로 돌파구를 열려고 할 것이다. 그 전에 너희들이 나서서 그 자의 움직임을 막아야 할 것이다.”
“예, 장군.”
고인후의 주변에 모인 오십 여명의 인물들.
수천의 의병 중에서도 인품과 무력을 평가해 우수함을 인정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적게는 2단계에서 많게는 4단계까지 능력 강화를 받았고 또한, 그 중 여덟 명은 저마다 다른 스킬을 갖고 있었다.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가등청정의 능력은 본관보다도 월등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결코 전공에 욕심을 내지 말고 최대한 안전을 최우선하며 그자의 움직임만 막아야 할 것이야.”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고인후의 당부에 따라 능력자 의병들이 가토 기요마사를 붙드는 동안에 휘하 부대를 최대한 섬멸하고 마지막에 가토 기요마사를 처단한다는 게 작전의 내용이었다.
제아무리 가토 기요마사가 강하다고 해도 혼란에 빠진 부대를 두고 제대로 싸우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고인후의 부대는 숨죽여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기 옵니다.”
무수한 깃발을 펄럭이며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선학산 동쪽 기슭에 나타났다.
고인후의 예상대로 척후를 먼저 보내지 않고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는 그대로 고개를 넘고자 했다.
“신호가 있을 때까지 절대 공격을 해선 안 된다.”
“예!”
고인후의 지시에 은폐를 한 병사들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초조하게 왜군이 정해진 위치로 오기를 기다렸다.
갓 정오를 지난 시간.
제법 날씨가 따뜻해져 행군하는 왜군들의 걸음을 가벼웠다.
고개의 정상 부분까지 오는데 왜군은 전혀 매복을 눈치채지 못했다.
‘저 자가 가등청정인가.’
고인후는 대열 중간쯤에서 기마무사들과 함께 말을 모는 가토 기요마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검은 갑주에서 붉은 귀신 가면을 쓴 모습은 은연중에 흉흉함을 풍겼다.
‘조금만 더 오도록 해야 한다.’
왜군의 후미까지 공격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왜군이 고개를 반쯤 넘을 쯤!
“효시를 쏴라.”
“옛!”
피이잉!
소리가 나는 화살인 효시가 연달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수풀로 위장하였던 조선군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고 왜군을 향해 공격을 쏟아냈다.
휘리릭!
무수한 화살비가 쏟아지자 많은 왜병들이 쓰러져갔다.
“매복이다!”
왜군은 즉각 양 옆에서 쏟아지는 화살 비에 대응해 최대한 밀착하고 방패 뒤에 몸을 숨겼다.
곧 조총병들의 사격이 개시되고 활을 쏘던 조선군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삐이익!
이 때, 또 한 번 효시가 하늘로 쏴 올려졌다.
그러자 지금 기습 공격을 하는 조선군보다 훨씬 왜군 쪽에 가깝게 숨어 있던 능력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라, 바람이여!”
‘바람의 속성력’을 가진 자가 일으킨 바람이 앞에 있는 왜군들을 날려버린다.
“우오오!”
‘거대화’ 스킬로 급격히 몸이 부풀어 무려 보통 사람의 2배나 되는 몸집이 된 능력자가 앞에 있는 식량을 실은 수레를 그대로 집어던지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 뒤를 따라 다른 능력자들도 내달리는데 그들이 향한 곳엔 바로 가토 기요마사가 있었다.
“주군을 지켜라!”
“아니 너희들을 물러나라.”
자신을 지키려는 가신들을 뿌리치고 가토 기요마사는 능력자들이 오는 쪽으로 말을 몰았다.
맨 처음 그에게 접근한 하얀 도포를 입은 양반 출신의 의병은 고인후가 사전에 했던 주의를 무시하고 자신이 얻은 힘만 믿고 검을 내세우고 달려들었다.
푸욱!
창날이 몸을 관통하면서 하얀 도포는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했다.
“약하구나. 고작 이 정도 힘으로 이 몸을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귀신 가면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그것은 평소와는 다른 사특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뒤,
귀신 가면의 눈 부분에서 짙은 혈광이 뿜어져 나오고 가토 기요마사가 한순간 사라지듯 몸을 날려 단번에 의병 사이로 당도했다.
“물, 물러나······.”
다급한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붉은 기운이 서린 창이 크게 휘둘러지고 그 궤적에 걸린 대여섯의 능력자들의 머리가 날아갔다.
마치 야수처럼 날뛰기 시작한 가토 기요마사를 상대로 모든 능력자들이 달려들었지만 움직임을 막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 이럴 수가!”
고인후는 마치 항우나 여포가 전장에서 날뛰는 것처럼 가토 기요마사를 보며 침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자신보다 강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설마 수십 명의 능력자들을 상대로 저렇게 압도적으로 싸울 줄은 상상도 못했던 터였다.
게다가 자신의 부대가 공격받는 상황인데 가토 기요마사는 전혀 그것을 수습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싸움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다.
“내가 가야겠다.”
“안 됩니다, 장군.”
고인후가 가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급히 막았다.
그 사이에 가토 기요마사를 상대하던 능력자들의 숫자는 어느새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바람이여!”
강력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댔지만 가토 기요마사의 걸음은 멈추지가 않았다.
곧 바람을 가르며 창이 날아와 ‘바람의 속성력’을 펼치던 능력자의 몸을 관통했다.
“우라질!”
창을 던져 빈손이 된 가토 기요마사를 향해 ‘거대화’ 스킬을 쓴 능력자가 단번에 달려들었다.
그의 거대한 손이 몸을 붙잡기 직전, 가토 기요마사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대로 짓눌러주마!”
본래부터 살던 고을에서 유명했던 장사 출신에 ‘근력’만 3단계 강화를 하였다. 거기다가 스킬의 힘으로 몸집까지 키웠으니 충분히 짓누를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크헉!”
장사는 자신의 손가락이 반대 방향으로 꺾이는 것을 보고 경악하는 눈빛을 취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뭉개진 상대의 손을 놓고 수도로 목을 후려쳤다.
그러자 머리는 자리를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안 되겠다. 어서 후퇴 명령을!”
고인후는 귀한 능력자들을 모두 잃을까 염려해 다급히 후퇴의 신호를 보내게 했다.
이것은 그의 부대에 큰 악영향을 미쳤고 이후 왜군의 반격을 고스란히 받게 만들었다.
“모조리 죽여라!”
“주군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지금껏 볼 수 있었던 가토 기요마사의 믿을 수 없는 신위에 사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은 왜군들은 서쪽으로 물러나는 조선군을 뒤쫓아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고인후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어떻게든 퇴각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상황은 매우 좋지 못했다.
결국 살아서 진주성까지 후퇴하는데 성공한 것은 고인후를 비롯해 수백 명 남짓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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