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六장. 2차 진주성 전투. (1)
1593년 3월 11일.
상호가 북방에서 몬스터와 고군분투하는 동안, 왜군은 한양에서 철수한 후로 계속해서 후퇴해 부산으로 집결했다.
조명 연합군이 언제 남하해올 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왜군의 모든 지휘관들이 급히 대책 회의를 열었다.
과거 동래부사 송상현이 지내던 관청에 모인 왜장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관백께서는 어찌 답을 주셨습니까?”
한양에서 퇴각이 있고 난 직후에 총사령관인 우키다 히데이에는 현 일본국의 통치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철군을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보냈다.
그 답신은 바로 최근에 당도했는데 우키다 히데이에의 표정이 침통한 것을 봐선 좋은 대답은 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본토로의 철퇴는 불가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소."
"그게 무슨! 지금 이곳의 사정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오?"
"당연히 그리했소. 하지만 관백께서는 이곳의 심각성을 전혀 알아주시지 않는 것은 나보고 어쩌겠소.”
“끄응.”
"더불어 조명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남하해오기 전에 조선 남부를 확고히 점령하여 우리의 세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말씀도 있었소."
“그 말인 즉, 경상도와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하란 말씀이십니까?”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공격을 하라는 주문에 다들 기막혀 했다.
이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전라도를 빼앗기 위해 지난 번 진주성을 쳤다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소. 아직 그 진주성엔 김시민과 수천의 병력이 버티고 있는데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진주 대첩을 이끈 김시민은 본래 역사와 다르게 지금까지 버젓이 살아있었다.
비록 전투 중 부상을 입었지만 그동안 몸을 회복하며 진주성의 방어를 더욱 굳건히 하였기에 전라도로의 진격은 무척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 사시을 모르지 않았지만 우키다 히데이에는 한숨을 섞으며 말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적어도 관백께 우리가 뜻을 받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진주성 정도는 함락시켜야 하지 않겠나.”
“······.”
우키다 히데이에의 말에 몇몇이 움찔했다.
그들은 전투에 제대로 참가하지 않는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처벌을 받은 다이묘들이었다.
확실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시늉이라도 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 좌중에 있던 나가오카 다다오키가 말했다.
“지금 우리 군은 심각한 지경에 빠져 있소. 알다시피 제대로 보급이 이뤄지지 못해 북쪽 진격했던 병력 다수가 기근에 시달렸고 아울러 혹독한 겨울 추위에 동상을 입은 자들이 태반이오. 자칫 잘못하면 행주성의 일이 반복될 것이외다.”
“그러면 어쩌자는 것이오!”
“차라리 수군으로 전라도 후방에 상륙해······.”
“하! 그것이야말로 자살 행위라는 것은 모르시오? 지금 바다에선 이순신이 눈에 불을 키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지금 왜군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이순신이었다.
오죽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직접 수전 금지령이 내려졌을까.
덕분에 부산포에 있는 수백 척의 배는 제대로 바다에 나가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후우, 적어도 고니시 공이 있다면 좋은 생각을 들려주었을 텐데······.”
우키다 히데이에는 앞서 전사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단순히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지략을 뽐내 적을 막는 그의 능력이 이 상황에서 필요했기에 우키다 히데이에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 때,
“형편없이 지고 와서 다들 겁들이 많아진 것 같구려.”
흑색 갑주를 입은 왜장이 입을 여니 모두의 시선이 그에 향했다.
그렇게 큰 체격은 아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를 통해 무척 커 보이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무장은 조소를 지으며 다른 왜장들을 보았다.
그가 바로 제 2군의 지휘관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조선 침공의 선봉에 섰던 가토 기요마사였다.
“말이 심하시오, 가토 공!”
“내가 뭐 틀린 말 했소이까.”
“자네 역시 함경도에서 패전하여 물러나지 않았나!”
거드름을 피우는 가토 기요마사의 행태에 한 다이묘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에 가토 기요마사는 순간 기세를 내뿜으며 그를 직시했다.
“흐읍!”
상대 다이묘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을 흘렸다.
마치 맹수와도 같은 위압에 몸이 저절로 그리 된 것이다.
‘저것이 가토 공의 신통력인가?’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어찌 저런 기세를 인간을 내뿜을 수 있단 말인가.’
가토 기요마사가 놀라운 신통력을 함경도와 강원도를 지나오면서 터득했고 그 힘으로 경상도 일대에서 날뛰던 의병들을 크게 대패시켰다는 소문은 이미 여기 참가자 전원에게 알려진 바였다.
안 그래도 적으로 상대하는 의병 중에 비슷한 신통력을 보이는 자들이 있어 가토 기요마사가 어떻게 그 신통력을 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다이묘도 많았다.
하지만 가토 기요마사 본인은 물론, 그 휘하 무사들도 그에 대한 비밀을 함구하고 있어 실체를 아는 자는 없었다.
잠시 후, 상대를 위압하던 기세를 거두고 가토 기요마사가 말했다.
“이 몸이 직접 나서 진주성을 함락해보이겠소.”
“잠깐만! 설마 가토 공의 부대만으로 진주성을 치겠다는 것이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우키다 공.”
“아무리 가토 공의 부대가 용맹하더라도 진주성은 그리 쉽게 함락시킬 수 있는 성이 아니오. 일단 군이 준비되는 대로······.”
“필요 없소!”
큰 소리로 대답하며 가토 기요마사는 앉은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모두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일주일! 일주일 안에 진주성을 함락시켜보이리다.”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고 가토 기요마사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명군의 참전으로 왜군이 대거 후퇴를 한 시점에서 전라도의 조선군은 그냥 한가로이 있지 않았다.
곧 진격해올 조명 연합군과의 연대를 위해 병력과 물자를 확보하고 왜군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살폈다. 그리고 한 편으론 후방에 나타난 몬스터들을 토벌하여 뒤를 든든히 했다.
그러한 일의 중심엔 의병장 고인후가 있었다.
“방포하라!”
몬스터 게이트를 향해 지자총통들이 불을 뿜었다.
연이은 폭발에 게이트 근처에 진을 오크들과 그들을 통솔하는 오크 로드는 적지 않게 타격을 받았다.
거기다 게이트 자체도 타격을 받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쿠어어어!”
분노한 오크 로드의 포효가 일대를 뒤흔든다.
하지만 사방을 포위한 조선군 병사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쏴라!”
각궁을 든 갑사들이 화살을 쏘고 왜군에게서 노획한 조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사격했다.
잇따라 쓰러지는 오크들이었지만 워낙 맷집이 튼튼하기에 일부는 병사들이 있는 곳까지 돌격해왔다.
“하압!”
갑자기 오크들의 앞으로 땅이 솟구쳐 오른다.
이로 인해 오크들의 움직임이 멈칫하자 이번에는 창 한 자루가 저절로 하늘을 날아와 한 오크의 몸을 뚫고 반대편으로 지나갔다.
“이야압!”
“각오해라!”
여기에 보통 장정은 감히 들고 휘두를 엄두도 못 낼 언월도나 강철 도리깨를 든 무사들이 달려와 오크들을 참살하였다.
스킬을 가진 능력자와 능력 강화를 이룬 능력자들이 오크들을 막는 사이, 또 한 번 지자총통들이 불을 뿜었다.
콰앙!
“전이문을 파괴했다!”
“이대로 요괴 우두머리를 토벌하자!”
몬스터 게이트가 마침내 파괴되고 고인후를 따르는 병사들은 일치단결해서 오크 로드까지 처단했다.
하나의 산을 점령하고 인근 고을을 약탈하고 살육을 반복하던 오크 무리는 이렇게 토벌되었다.
“다들 수고 많았네.”
“여기 전리품입니다.”
“이번에는 꽤나 수확이 있군.”
부관이 가져온 다섯 개의 몬스터 코어를 보며 고인후는 흡족해했다.
전장 정리가 끝나고 고인후의 부대는 인근 고을에 마련한 숙영지로 복귀했다.
그런데 그곳에 전령 한 명이 도착해 있었다.
“진주성에서 왔다고?”
“예, 병마 절도사 나리께서 절 보냈습니다.”
진주성에서의 승리 이후 진주 목사에서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로 제수된 김시민은 현재 조선 남부에서 활동하는 조선군 육군, 의병의 실질적인 사령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
부친인 고경명 뒤를 이어 전라도 의병의 중심에 있는 고인후 역시 김시민과 긴밀하게 협조하며 왜군의 방비와 몬스터 토벌에 힘써오던 터였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부산포에 집결한 왜군 부대 중 가등청정의 부대가 진주성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가등청정의 부대라고?”
고인후는 전령의 말에 적지 않게 놀랐다.
다른 왜장들도 아니고 얼마 전에 곽재우의 부대를 소수의 기병만으로 격파한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진주성을 노린다는 게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절도사께서는 가등청정이 엄청난 신통력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염려하시어 급히 장군께 도움을 청하고자 절 보낸 것이옵니다.”
“알겠네. 바로 부대를 정비해서 진주성을 가겠네.”
“감사합니다, 장군.”
고인후가 이렇게 빨리 결단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소문대로 가토 기요마사가 강력한 능력자라고 하면 그를 막기 위해선 능력자들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장 그들을 모아야겠군.”
고인후 산하에 있는 여럿의 의병 부대는 지금 전라도와 경기도 일대에 흩어져 몬스터 토벌에 힘을 쏟고 있었다.
물론 이들 부대에는 고인후의 조력을 통해 능력을 깨우친 능력자들이 있었다.
고인후는 곧장 여러 통의 서찰을 작성하고 사람을 불렀다.
“호열, 있는가.”
“예, 나리.”
고인후를 따르는 의병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게 고인후는 말했다.
“지금 당장 이 서찰을 형님과 김덕령 장군, 김천일 장군들에게 전하도록 해라.”
“어찌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진주성이 위험할 것 같다.”
“예엣?”
“시급을 다투니 어서 서둘러 보내라.”
“알겠습니다. 바로 튼튼한 말과 믿을 만한 자로 해서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안 호열이라는 사내는 서찰을 받아들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가고 고인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앞에 놓인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혼잣말을 했다.
“곽재우 장군이 보낸 서신이 사실이라면 성벽을 방패삼아도 그 자의 용력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의 힘에 성벽이 쉽게 무너지고 방어가 약화된다면 아주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고인후 본인도 6단계까지 각성을 이루고 스킬도 한 가지 가진 상당한 능력자이지만 위에 언급한 일은 해내지 못한다.
고인후와 동등한 능력자인 곽재우가 당해낼 수 없었던 천재지변과도 같은 힘을 가토 기요마사가 가졌다면 수십의 능력자가 달려들어도 그를 쓰러트리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이럴 때, 그가 곁에 있다면 크게 든든할 것인데.”
자신에게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상호의 존재가 고인후로선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없는 사람을 찾을 만큼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고인후를 토벌을 갓 마친 뒤였지만 서둘러 진주성으로 부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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