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五장. Ⅲ단계 게이트. (3)
약 100마리의 좀비 비스트를 쓰러트리며 무사히 유인 작전을 마친 상호와 토벌대는 산성에 복귀했다.
그들을 쫓아 몰려온 언데드들과 당초 산성이 있는 방향으로 오던 언데드들이 합류하니 가히 엄청난 집단이 형성하였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건가."
밤의 어둠 속에 언데드들의 신음을 듣는 것만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자 언데드들이 산성을 향해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푹!
위로 올라오던 좀비의 가슴에 굵은 나무 기둥이 박힌다.
산 곳곳에서 비스듬하게 세운 날카롭게 깎아둔 나무 말뚝들은 지성이라고는 거의 없고 오직 생기에 이끌려 움직이는 언데드들의 숫자를 줄여주는 무기가 되어주었다.
“어서 공격해!"
"저것들이 여기까지 오게 하지 마라."
성벽 아래까지 좀비들의 모습이 보이자 명군 무관들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이에 미리 한가득 준비한 굵직한 돌들을 던졌고 또한 밤하늘에 불화살들이 줄지어 날아갔다.
퍽!
돌에 머리가 으깨지고 바닥에 쓰러지고 불화살에 상체가 타들어간다.
순식간에 선두의 좀비들이 장작이 되거나 박살이 나 도로 시체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좀비들은 계속해서 전진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때,
쇄애액!
“으악!”
“화살이 날아온다!”
아래서 날아든 화살에 명군 병사들은 혼비백산하며 몸을 숨겼다.
불빛 아래로 뼈만 남은 채 절그럭거리며 스켈레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좀비와 다르게 무기를 다룰 수 있었고 다 낡은 장궁으로 화살을 날린 것이다.
이러한 스켈레톤 궁병의 엄호 아래 좀비들이 성벽 아래로 몰려들었다.
“헉! 놈들이 기어 올라온다!”
좀비들이 성벽을 향해 달라붙으면서 곳곳에 좀비들이 만든 무더기가 생겨났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끼리 짓밟아가며 위로 오르는 좀비들의 기세에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공포에 질렸다.
화르륵!
갑자기 불을 밝히기 위해 성벽 위에 놓았던 화로가 좀비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순식간에 번지는 불은 많은 숫자의 좀비들을 태워갔다.
“정신들 차려!”
상호는 명군 병사들을 향해 싸늘하게 말을 내뱉었다.
방금 화로를 아래로 내던진 그는 언데드들을 막기 위해 단단히 무장한 채였다. 또한 거리가 한참 떨어진 적을 멸한 능력도 아낌없이 쓸 작정이었다.
“수룡시!”
어둠 사이를 날아간 여러 발의 ‘수룡시’가 정확하게 스켈레톤 궁병들의 머리통을 부순다.
여기에 율도 포스가 깃든 화살로 거드니 아래서 날아오는 화살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영차!”
“여기도 쏟아 부어!”
더 이상 위험이 없게 되니 성벽 위가 다시 부산해졌다.
불붙은 장작과 건초, 그리고 기름이 좀비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계속 쏟아진다.
어느새 아래는 불바다가 되었고 접근하던 좀비들은 멈추게 되었다.
“일단 불이 꺼질 때까지는 시간을 벌었군."
시체 타는 냄새가 다소 역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싸움이 순조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을 부수기라도 하듯 언데드 측이 새로운 전력을 내세웠다.
쿵. 쿠웅.
저 멀리서부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더니 시체가 한데 뭉친 것 같아 보이는 비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보미네이션까지도 나오셨나.”
상호가 어보미네이션라 부른 거대한 시체 덩어리는 고름을 흘리며 성벽 쪽으로 접근해왔다.
놈의 괴력이라면 낡은 성벽도 위태로울 터!
서둘러 막을 필요가 있었다.
“수룡시로는 어림도 없겠네. 그렇다면!”
상호는 어보미네이션을 막기 위해 ‘수룡시’보다 위력이 강한 ‘수룡창’을 전개했다.
거센 수류를 일으키며 뻗어나가는 물의 창!
그것은 그대로 어보미네이션의 비대한 몸체에 적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격을 막지는 못했다.
“그럼 이번엔 머리를 부순다!”
집중하고 ‘매의 눈’으로 정확히 어보미네이션의 머리를 노리고 재차 ‘수룡창’을 전개했다.
노린 대로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고 머리를 잃은 어보미네이션은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후우!”
두 번 연속으로 ‘수룡창’을 전개하니 머리가 띵해진다.
머리를 흔드는 상호의 귀에 다시금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맨 처음 한 마리가 다인 게 아닌 모양이다.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어보미네이션들은 상호의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기 충분했다.
게다가 몬스터 코어를 가진 상위 개체로 보이는 구울과 스켈레톤이 무리를 이끌고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수룡창으로 다 쓰러뜨리기는 무리겠네.”
뭔가 다른 공격 수단이 필요했다.
이 때, 상호의 눈에 아래로 던지려고 준비한 돌이 들어왔다.
보통 장정도 두 손으로 겨우 들 정도로 무거운 돌이지만 상호에겐 한 손으로 들 정도의 무게였다.
“흐읍!”
힘을 모은 다음에 그대로 전력을 다해 돌을 어보미네이션 중 한 마리에게 던졌다.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돌은 그대로 어보미네이션의 머리를 짓뭉갰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네.”
상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연이어 돌을 수십 미터 바깥까지 투사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힘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도 도울게요.”
“어 부탁해.”
상호는 자신을 도우려는 율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호리호리한 여인의 몸이지만 율 역시도 상호만큼 괴력을 뿜을 수 있었고 그녀의 일격에 또 한 마리의 어보미네이션가 주저앉았다.
휘익!
이렇게 두 사람이 던지는 돌이 어보미네이션들을 차례대로 격파해 놈들의 접근을 막았다.
하지만 그들을 방패삼아 성문 쪽으로 접근한 구울이 입을 크게 벌리고 녹색 가스를 방출하면서 상황이 변하였다.
가스가 닿은 성문과 성벽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부식 가스인가?”
코어의 힘을 빌린 능력이 분명했다.
거기에 또 한 마리의 상위 개체인 장검과 방패를 든 스켈레톤 워리어가 날듯이 성벽을 따라 달려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닌가.
놈은 곧 흉광을 텅 빈 동공 안쪽에서 뿜어내더니 놀라운 검술로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베어나갔다.
이를 본 상호는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아래에 있는 놈을 맡을 테니 율과 다른 사람들은 저 녀석을 맡아.”
“예!”
“알겠습니다.”
상호의 말에 율과 남준이 대답과 함께 스켈레톤 워리어에게로 달려갔다.
그들을 믿고 상호는 부식 가스로 통로를 열려고 하는 구울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밧줄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토벌대 휘하 병사는 상호의 말에 밧줄을 꺼내보였다.
상호는 그것을 성문 위에 자리한 누각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그 밧줄을 잡고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낙하했다.
“구어어어!”
상호를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부식 가스를 내뿜는 구울.
두꺼운 현대식 방호복을 입지 않는다면 살과 뼈가 분리될 수도 있는 유독한 가스였다.
하지만 상호는 자신의 몸을 에워싸는 거대한 물방울을 만드는 것으로 가스로부터 자신을 지켰다.
서컥!
상호는 내려오는 기세를 이용해 그대로 구울을 양단하였다. 그리고 가스를 없애기 위해 몸을 지키던 물을 주변으로 퍼트렸다.
촤아아앗!
사방이 젖어버리고 가스가 사라졌다.
“우어어.”
“딱딱.”
땅에 선 상호를 노리고 언데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에잇!”
상호는 힘껏 ‘물의 속성력’을 방출해 큰 물살을 땅에 만들어 덮쳐오는 언데드들을 떠내려가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다음에 잽싸게 구울의 가슴을 절개해 몬스터 코어를 회수하고 다시 밧줄을 타고 성문 위로 기어올랐다.
“괜찮으십니까?”
“아아, 그래.”
상호는 위에서 손을 내미는 병사와 대화하며 맡겨두었던 스켈레톤 워리어는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했다.
좁은 성벽 위에서 율이 앞서서 스켈레톤 워리어와 한참 싸우고 있었다.
투캉!
율이 내지른 일격을 받은 방패가 적지 않게 우그러진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스켈레톤 워리어는 빠르게 찌르기로 율을 노렸다.
“······!”
생각보다 뛰어난 상대의 검술에 율은 한 발 물러났다.
그런 그녀를 돕고자 배후에서 남준이 검을 찔러 들어갔다.
챙!
검이 부딪치고 스켈레톤 워리어는 졸지에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우와, 물러서!”
“비켜, 비켜!”
셋이서 뒤엉켜 싸우면서 움직이니 성벽 위에 있던 명군 병사들은 말려들지 않게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아래에 대한 방비가 소홀해졌고 다시금 언데드들이 탑을 쌓아 올라올 시도를 펼쳤다.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인지한 율이 결심을 세웠다.
“나리, 잠시 실례를 하겠어요.”
지금 율에게 있어 남준은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무례를 무릅쓰고 그를 뒤로 밀치고 오롯이 단독으로 스켈레톤 워리어를 상대하였다.
위험을 불사하고 과감하게 오는 율을 향해 스켈레톤 워리어가 거의 동시라고밖에 볼 수 없는 빠른 연속 베기를 펼쳤다.
이를 맞아 율은 감각적으로 포스를 운영해 보이지 않는 방패를 만들어 검격을 막아내고 동시에 검을 그어 스켈레톤 워리어의 두 다리를 베었다.
“가각?”
코어의 힘이 영향을 줘서 보통 검으론 베기 힘든 단단한 정강이 뼈였지만 포스가 깃든 일격에는 간단히 잘릴 따름이었다.
다리를 잘린 스켈레톤 워리어는 성벽 안쪽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쫓아 율이 몸을 날렸다.
“하앗!”
율이 아래로 내리찍은 일격은 땅에 쓰러진 스켈레톤 워리어의 머리를 산산조각 내기 충분했다.
이렇게 성을 지키는데 위협적인 존재들이 모두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뜰 쯤 되니 더 이상 움직이는 시체는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네.”
“나리 말씀대로에요.”
대지에 누운 시체들의 모습만 아니면 충분히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밤새도록 싸웠기에 상호도 율도 적잖게 지쳤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피로는 오죽할까.
하지만 여유 있게 쉬면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럼 여기에 전장 정리를 할 소수 병력만 남기고 바로 제 1거점으로 이동합시다.”
“지금 바로 말인가?”
“새로운 무리가 움직이기 전에 서둘러 거점 확보해야 합니다.”
상호는 이렇게 유청홍을 설득시켜 1천 남짓의 병력을 움직여 미리 정해두었던 제 1거점까지 향하게 했다.
산성에서 약 6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름도 없는 작은 야산.
야산의 나무를 벌목하여 간이로 목책을 세우고 방어를 굳혔다.
“진짜로 시간 안에 해낼 줄이야. 다들 진짜 열심히 했네.”
이동하는데 반나절, 목책을 세우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이 정도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일정에 맞게 해내준 병사들의 노고에 박수를 칠 만 했다.
“자, 두 번째 싸움이다. 이번엔 과연 그 데스 나이트가 나타나줄까.”
강력한 상급 몬스터의 존재.
멀리서밖에 본 적 없는 그 존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자신과 율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데스 나이트가 나타날 때를 대비했다.
그리고······.
턱.
설원 한 복판에 서서히 나타난 언데드의 군세.
기존의 무리가 좀비 위주였다면 이번의 무리는 창칼로 무장하고 군대처럼 일사정렬하게 대오를 갖춘 스켈레톤들의 군대였다.
이들의 선두엔 상호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데스나이트가 해골마에 탑승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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