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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07화 (107/127)

二四장. 재회. (1)

실로 몇 주 만에 다시 본 율의 모습에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런 상호를 보며 율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어, 어. 그보다 율이 여기에 어떻게 온 것이야?”

“···그야 당연히 나리를 만나 뵙기 위해서지요.”

“뭐라고?”

상호로선 이 상황이 황당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은 어찌하고 율 혼자만 덜렁 배를 타고 왔단 말인가.

묻고 싶은 게 태산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전투 후의 뒷일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일단 자세한 사정은 여유가 생기고 듣겠어. 혹 임 무관이나 다른 사람이 같이 안 온 건가?”

“사정 상 저 혼자만 오게 되었어요.”

“그렇구나. 지금은 나를 도와다오.”

“네, 기꺼이.”

율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포로와 부상자를 산성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해가 서서히 떠올랐다.

햇살이 비치면서 행주산성 일대에는 간밤의 치열한 전투가 남긴 참혹한 흔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셀 수 없이 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진 산 중턱 사이로 조선군 병사들은 생존자를 찾아다녔다.

“시체를 찢어 나뭇가지에 걸어라!”

“옛, 장군!”

왜군에 대한 적개심으로 권율은 이런 명령을 내렸다.

자신들의 가족, 동료를 잃은 바가 있기에 병졸들은 그 명령을 기꺼이 따랐다.

한 편, 상호는 한 번 부상자를 옮긴 뒤에 비척거리며 구호소를 나왔다.

“으윽, 율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러기에 너무나 피곤해 몸조차 가누기가 힘들었다.

흐릿해지는 정신.

상호는 몇 걸음 채 못 가고 그대로 땅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정신이 잃고 잠들었을까.

“으, 으음.”

신음과 함께 상호는 눈을 다시금 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맨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대체 내가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할 일이 많은데 그냥 정신을 잃고 그대로 잠들다니. 이러한 사실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천막 안이다. 아무래도 누가 쓰러진 것을 데려다가 눕힌 모양이다.

“누가 나를 여기로 옮긴 거지?”

“깨어나셨나요, 나리.”

의문은 생각보다 금방 풀렸다.

놋쇠로 된 대야에 물을 받고 수건을 챙겨 천막 안으로 율이 들어온 것이다.

“율이 날 여기로 옮긴 거야?”

“네. 나리께서 갑자기 의식을 잃어 의원 나리에게 데려갔었습니다. 다행히 심신이 매우 고되어 잠시 의식을 잃은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 편히 쉬실 수 있는 이곳에 모신 것이에요.”

“그런 건가.”

쓰러진 자신을 이래저래 신경 써 준 것이 고맙기만 한 상호였다.

한 동안 못 본 사이에 율은 뭐랄까,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그냥 소녀라고 생각했는데.’

본래부터 차분한 성품이었지만 오랜 만에 다시 본 율에게서는 한결 정숙해지고 성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율에게서는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곧 헤어진 이후에도 몬스터를 사냥해 다수의 몬스터 코어를 자신의 힘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열심히 힘을 쌓은 것 같구나.”

“···한시라도 더 빨리 강해지기 위해 나리가 가르쳐주신 대로 행했을 뿐이에요.”

“지금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많다.”

상호는 아까는 못했던 얘기를 지금 이 자리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율이 혼자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그것부터 질문했다.

“소식도 없이 이곳까지 혼자 온 까닭이 뭐야?”

“나리께 전할 얘기가 있어요.”

“전할 얘기? 혹 남쪽에 남겨둔 이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예.”

힘겹게 떨어지는 율의 말에 상호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간 겨를이 없어 제대로 신경 못 썼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기다니.

“어서 말해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실은······.”

율은 무거운 목소리가 상호가 없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상호가 의주로 압송되고 난 뒤로 임충은 상호의 당보에 따라 몬스터 토벌을 계속해나가고자 했다.

“전 나리에게 가겠어요.”

“그건 안 된다.”

상호의 안전을 염려한 율은 압송된 상호를 지키기 위해 혈혈단신으로라도 의주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임충이 이것을 만류했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의주에서 별 탈이 없을 것이다.”

“하오나, 나리! 의금부에서 직접 체포해갔어요. 그것은 즉 대역죄를 지었다는 누명을 씌운 게 분명합니다.”

“진정해라.”

평소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격한 율의 반응에도 임충은 화내지 않았다.

끝까지 그가 설득하였기에 결국 율은 떠나는 것을 보류했다.

그리고 얼마 뒤,

“정말로 토포사 나리께선 무탈하신 건가요?”

“여기까지 목숨을 걸고 왔는데 거짓을 얘기하겠는가.”

이항복이 보낸 사람은 상호의 무탈함을 전했다.

적어도 가장 걱정하던 일이 잘 되었고 율은 조금은 걱정을 덜며 몬스터 토벌에 임할 수 있었다.

임충은 곽재우 부대와 함께 경상대 일대의 몬스터 둥지를 토벌해갔다.

그러면서 전라도에 있는 고인후의 의병 부대와 연락을 취하면서 보다 많은 숫자의 능력자를 키워냈다.

“소문에 따르면 명나라 군이 곧 국경을 넘을 것이라 하네.”

“그래서 왜군 병력들이 대거 한양 쪽으로 집결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렇지. 그래서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일세.”

곽재우는 대부분의 왜군이 한양 쪽으로 집중된 지금이야말로 경상도 일대의 왜군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그리고 그 싸움에 임충과 토벌대의 전력도 함께 하기를 원했다.

임충은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직 태백산맥 중심부엔 다수의 요괴 소굴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큰 우환이 남을 것입니다.”

“물론 나도 요괴의 위험성을 잘 아네. 하지만 이런 호기를 놓친다면 왜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질 것이네.”

계속된 곽재우의 설득에 결국 임충은 그의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곽재우는 우선 그간 상당한 병력이 진을 치고 있어 건들지 못한 대구 땅을 공격하고자 했다.

왜군의 보급 물자가 내리는 부산포와 한성 사이를 잇는 한 가닥의 보급로.

그것을 끊는다면 향후 있을 조명 연합군의 반격에 큰 도움이 되리라.

이에 곽재우 휘하 의병 3,000과 다른 지역에서 합류한 의병 1,000이 더해 4,000의 병력으로 대구 공략에 들어갔다.

“공격해라!”

“와아아!”

상대는 겨우 2,000 남짓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정예라 할 수 없는 잡병이었다.

반면 의병 측은 무려 5단계나 능력 각성을 이루고 ‘분신’ 스킬까지 가진 곽재우나 6단계 능력 각성에 ‘점멸’ 스킬을 가진 임충을 필두로 능력자들이 무려 오십 명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이들이 앞에 나서서 적을 몰아치니 의병 부대는 큰 피해 없이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큰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장군! 동북 방향에서 왜군 기마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숫자는 몇이고 지휘관은 누군지 확인했는가?”

“약 500 정도의 기병이고 선두 깃발엔 가등청정加藤清正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곽재우는 적이 왜 제 2군의 사령관인 가토 기요마사라는 사실을 알고 적지 않게 흥분하였다.

그도 그럴게 가토 기요마사는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었으며 또한 왕자를 붙잡는 것을 비롯해 많은 해악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잡을 절호의 기회였기에 곽재우는 망설이지 않고 가토 기요마사의 기마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대패하여 대부분의 병사를 잃고 말았어요.”

“잠, 잠깐만.”

상호는 율이 전한 말이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전원 기병이라고 해도 곽재우 장군 측의 병력이 무려 8배나 많은 상황이다.

거기다 능력을 강화한 능력자들까지 있는데 패배했다니.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대패한 이유가 뭔데?”

“그것은···상대 휘하에 우리와 같은 능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뭐라고?”

상호는 그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가토 기요마사 휘하에 설마 몬스터 코어를 통해 능력을 강화한 능력자가 있단 말인가.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자세히 말해봐.”

“적 기병 자체는 평범했어요. 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적장, 가등청정은 마치 산조차 부술 것 같은 강력한 힘을 펼치며 우군을 학살했어요.”

“···임 무관이나 너 만큼이나 능력이 강화되었다는 거야?”

“예. 그 자를 막기 위해 임 무관님과 제가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겨우 시간을 끄는 게 전부였어요.”

“······.”

가토 기요마사는 흡사 여포의 재래라도 되는 것처럼 혼자서 의병 부대를 휘저었고 수백 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나마 임충과 율이 분신 능력으로 덤볐다가 단 일합에 격파당한 곽재우를 구출하고 시간을 벌지 않았다면 그나마 나머지 병력도 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로 가등청정은 우리 부대를 계속해서 추격해왔고 지금은 겨우 은신처에 300명 남짓만 숨어 지내는 형편이에요.”

“그래서 내게 도움을 구하고자 온 것이구나.”

“네.”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상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율과 함께 경상도 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다시 평양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안 그러면 자신을 배려해준 김응서 장군이나 이항복 대감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되고 아울러 선조의 불신이 더욱 깊어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선택이기에 상호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당장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리.”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상호는 구원을 처하는 곽재우와 임충들을 바로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단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이것은 결코 포기가 아니었다.

“이번 전투로 왜군의 주요 전력이 상당부분 피해를 입었다. 그러니 남쪽에 있는 왜군도 한가롭게 의병 소탕에 힘을 쏟을 겨를이 없어지겠지.”

“숨어있는 아군이 당장을 안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마 그럴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은 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전망으로 동료들의 생존을 기대해야 한다는 상호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않게 할 거다.”

상호는 평양성으로 가자마자 이항복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그들을 도우러 바로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할 생각이었다.

설령 선조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더라도 이번 행주 대첩을 통해 조명 연합군은 곧장 한성을 탈환하고 남쪽으로 쭉쭉 진격할 것이기에 그 기회를 이용해 도우러 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반드시 구해내겠어.”

상호는 단순히 전력을 잃는다는 의미를 떠나 소중한 동료를 구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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