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05화 (105/127)

二三장. 조선의 반격! (5)

“아, 자네인가.”

목소리에 흠칫 놀라 손을 거뒀던 허준이 상호를 보고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상호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다른 사람은 보지 않았으니 걱정 마십시오.”

“허허, 그렇군.”

“그보다 결심을 하신 겁니까?”

벌써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생명력을 잃고 죽어버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을 죽여 그 생명력을 갈취하는 것에 내심 반발했던 허준이 이렇게 마음을 바꾼 것엔 큰 결심이 있는 게 분명했다.

상호의 시선에 허준이 속마음을 털어놨다.

“내내 망설였네. 아무리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해도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을 옳은 것인지 말이네. 하지만 오늘 유정 스님의 모습을 보고 크게 깨우쳤네.”

“사명···아니 유정 스님을 보고 말입니까?”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는 승려가 아무리 다른 나라의 사람이고 또 적이라고 해서 살인하는 게 쉽겠는가.”

“그야 그렇죠.”

이 시대의 승려들은 구국 정신만으로 승려로서 지켜야 할 계율을 깨고 싸움터에 나선 것이다.

물론 사명대사도 마찬가지고 아군을 살리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주저치 않았다. 바로 오늘도 그러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니 내가 내키지 않는다고 수단을 가리면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으려한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네. 그래서 이렇게 죄 없는 나무를 희생하여 사람을 살리고자 마음먹은 것이네.”

“분명 스러진 생명도 살아난 자의 일부가 되는 것을 기뻐할 겁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허허, 그리 말해 고맙군.”

허준은 웃으며 말하곤 구호소로 향했다.

구호소에 있는 많은 환자 중 당장이라도 숨이 끊길 것 같은 중환자의 옆에 허준이 자리 잡았다.

‘방법은 알려줬지만··· 과연 허준은 그것을 제대로 행할 수 있을까.’

지금 보통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능력자가 기감이 향상된 상호는 허준의 손에 강력한 생명의 기운이 모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기운을 부상자에 전달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을 흘려내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맥이 아주 약하군.”

잠시 진맥을 한 허준은 그 손을 부상자의 가슴 명치 부분에 가져가댔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이 광경을 상호는 차분히 지켜봤다.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어.’

상호는 허준의 손에서 부상자의 가슴 쪽으로 생명의 기운을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환자에서 흘러간 기운은 기경팔맥을 따라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잠시 뒤.

“쿨럭!”

방금까지 의식도 없고 숨도 거의 쉬지 못하던 자가 격하게 피가 섞인 기침을 한 번 내뱉더니 힘겹게 눈을 떴다.

비록 사명대사처럼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지만 부상자의 원기를 회복시켜 반쯤 죽은 자를 다시 회생시킨 것이다.

허준의 성공에 내심 기뻐하며 상호가 말했다.

“살아난 겁니까?”

“원기만 회복되었을 뿐이네. 어서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고 상처를 봉합해야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네.”

“잠깐 그게 문제라면 대책이 있습니다.”

상호는 허준의 말에서 번뜩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서 사명대사와 허준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내가 부상자의 원기를 집어넣고.”

“그 다음 소승이 상처를 치료하단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기존의 방식보다 더 적은 힘만 소모될 겁니다.”

“자네가 말한 방식이 훨씬 효율적일 것 같군.”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소승은 상관없소이다.”

아직 구호소엔 수십 명도 넘는 중환자가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서로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두 사람이었다.

이후, 그들의 노력으로 생사의 기로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살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왔다.

물러난 뒤로 왜군은 물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 산 아래에 머물렀다.

이것은 보급 선단의 출현에 저녁 무렵에 왜군이 후퇴하는 본래 역사와는 다른 부분이었다.

“으으, 졸리네.”

“나도 마찬가지야.”

낮 동안에 전투로 병사들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잠들고 싶지만 아래에 있는 왜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젠장! 저것들 언제 물러나려나.”

“잠깐이라도 눈이라도 붙이면 좋으련만.”

“고생이 많구나.”

푸념하던 병사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화들짝 놀란 병사들은 뒤를 돌아보고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장, 장군님!”

“에구구.”

“허허, 너무 긴장할 것 없다.”

권율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풀지 못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낮에 전투를 하다 도망치거나 군율을 어긴 자를 직접 권율이 나서서 베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율이 일부러 최전방까지 온 것은 단순히 제대로 경계를 서고 있나 감시하러 온 게 아니라 낮 동안 열심히 싸웠던 병사들을 격려를 하기 위함이었다.

“하루 종일 싸웠으니 많이들 피곤할 것이다.

“아닙니다요.”

“그래도 이 전투에서 확실히 이기기 위해 조금만 더 힘내주길 바란다.”

권율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친히 어깨에 손을 얹어 주었다.

그러한 행동 하나만으로 병사들의 사기는 적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과연 조선의 위기를 구한 명장답구나.’

권율을 따라 진지 순회에 나선 상호는 왜 위인이 후대에까지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권율은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일반 병사들뿐만 아니라 주인을 따라 산성에 싸우러 온 노비까지 빼놓지 않고 격려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밤이 야심해졌지만 누구 하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적진 동향을 누구보다 훤히 파악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암시’ 스킬을 가진 군관 유길준이었다.

“음?”

한참 왜군 진지를 응시하던 유길준은 어떤 움직임을 감지해냈다.

좀 더 세밀하게 살핀 뒤에 그는 지휘 막사로 곧장 달려갔다.

“보고 드립니다. 왜군 진지 쪽에서 은밀히 병력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야습을 펼치려는 모양이군.”

왜군이 포기하지 않고 재차 공격을 감행할 것을 예측했던 권율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야습에 대비해 준비도 철저히 해둔 터였다.

“적은 우리가 모르리라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려 왜군을 한 놈이라도 더 쳐 죽여 향후 한성 탈환에 나설 아군과 명군의 수고를 덜게 해야 할 것이다.”

“넷!”

싸워 이긴다는 생각이 아닌 한 명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게 권율과 그 휘하 무장들의 결의였다.

상호는 여기에 동참할 마음은 없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조선군의 완벽한 승리이기 때문이다.

“긴긴 밤이 될 것 같네.”

하늘에 뜬 달을 보며 혼잣말을 한 상호는 자신과 휘하 토벌대 대원들이 맡은 방어 지점으로 향했다.

그가 맡은 지점은 야습해올 왜군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해올 위치였다.

상호는 전투에 앞서 모두에게 말을 전했다.

“자네들이 가진 힘은 다른 인간보다 강해 열 명의 적도 능히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왜군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들과 질릴 정도로 싸워 왔지.”

“흐흐.”

“하긴 왜놈들보다 그 오크라는 놈들이 더 살벌했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말이 들렸다.

상호의 말에 다소 긴장이 풀린 것이다.

“각자 죽지 말고 오는 적들만 막아다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뿐이다.”

나름 권율을 따라 해본 것인데 과연 잘 한 것일까.

상호는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살짝 걱정했다.

“나리 덕에 여기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나리만 있다면야 오늘도 못 살아남겠습니까.”

“암요! 괴물들에 비하면 섬나라 오랑캐는 우리 상대가 안 되지.”

병사들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리 덕분에 얻은 능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가진 신통력으로 날아오는 총탄은 죄다 막아 보이죠.”

군관들 또한 투지를 불사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호는 자신의 격려가 생각보다 훨씬 잘 통한 사실에 내심 기뻐하며 횃불 아래 보이는 모두의 얼굴을 면면히 보았다.

“다들 고맙다. 함께 살아남아보자.”

“예!”

이것으로 야음을 틈타 기습하려는 왜군을 맞이할 준비는 끝났다.

1만 5천에 달하는 남은 왜군 중 야습의 선두에 선 것은 킷카와 히로이에와 2천의 병력이었다.

산성이 있는 곳까지는 나무가 거의 없는 개활지였기에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산성 가까이에 접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야습을 위해 창날에 검은 재를 묻히고 갑옷도 최소화한 이들은 몸을 최대한 낮춰 불탄 목책 대신 새로 보강된 목책 근처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하지만 이미 행주산성의 조선군은 이들을 움직임을 모두 꿰뚫고 있는 바였다.

“기다려라.”

두정갑을 입은 장수의 말에 병사들은 초조함을 느끼며 가만히 몸을 숨겼다.

최대한 가까이 오도록 내버려둬야 했다.

100보··· 50보··· 30보.

숨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뒤쪽에서 권율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군, 공격하라!”

이에 참호를 파고 그 안에 숨어 있었던 조선군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낮 동안의 전투로 거의 대부분의 화살을 소진한 이들은 대신 송진으로 뭉치게 한 짚 더미를 쥐불놀이 하듯 멀리 던졌다.

불이 붙어 날아간 이것들은 왜군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으아악!”

“누가 도와줘.”

삽시간에 몸에 불이 붙은 왜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구했다.

이 때, 신기전이 위쪽에서 떨어져내려 다수의 왜병을 살상하고 불씨를 더욱 키웠다.

야습을 하려다가 오히려 역습을 맞게 된 왜군은 적잖게 혼란에 빠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선군은 백병전을 하기 위해 돌격했다.

물론 그들 중엔 상호와 토벌대 인원도 있었다.

촤아앗!

한 번에 베인 3명의 왜병이 쓰러지는 것을 지나치며 상호는 불씨가 남은 땅 위를 달렸다.

이런 그를 따라 능력자인 토벌대원들이 창, 태도, 편곤 같은 무기를 들고 날뛰어대니 왜병들은 변변찮은 반격 한 번 못하고 일방적으로 쓸려나갔다.

그리고 이 기세는 다른 조선군에게도 전파되어 본래라면 불리했을 백병전이지만 왜군을 압도하는 전개를 만들어냈다.

상황이 예상 밖으로 되자 왜군 사령관인 우키타 히데이에는 황급히 나머지 전 병력을 움직여 행주산성을 공격케 했다.

1만 3천의 대군이 한 번에 밀려오자 권율은 바로 물러나라는 신호를 북 소리로 전달했다.

“쯧! 적장이 바로 코앞이었는데.”

상호는 거의 모든 병력을 잃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킷카와 히로이에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했다.

다행히 이 시점에서 휘하 중에 죽은 자는 없고 약간 다친 자만 둘 있었다.

“물러나자.”

“예.”

다시 조선군은 성 바로 목책까지 물러났다.

그리고 인해전술 식으로 몰려오는 왜군 본대와 다시금 맞붙었다.

“이거나 받아라!”

토벌대원들은 가까이 온 왜병들을 향해 무슨 가루를 뿌렸다.

낮에 승병들이 썼던 석회 가루와 다르게 노란 가루인 이것은 토벌대가 일전에 토벌한 적이 있는 몬스터 ‘모스맨’의 날개 가루였다.

순수 재료 상태지만 효능은 확실했다.

“억!”

“몸이 저려.”

몸에 살짝 마비를 일으키는 가루를 맞은 왜병들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로인해 정체가 생기고 왜병들은 한데 뭉쳤다.

“모두 이거나 먹어라!”

상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왜병이 밀집한 곳을 향해 다수의 ‘수룡시’를 날렸다.

“으아악!”

“커헉!”

‘수룡시’에 몸이 관통당한 왜병 수십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다.

“화살인가?”

“조심해라!”

어두운 밤이고 또 워낙 빨리 ‘수룡시’를 눈치챈 자는 거의 없었다.

상호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낌없이 정신력을 소모하여 계속해 ‘수룡시’로 몰려오는 왜군들을 쓰러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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