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三장. 조선의 반격! (3)
세 번째로 행주산성 공략에 나선 장수는 총사령관인 우키타 히데이에였다.
그는 구로다 나가마사의 제안을 받아 머리 위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누각을 급조했다.
이렇게 세운 누각 위에서 사격을 개시하니 조선군에서 피해가 생겨났다.
“저 누각들을 향해 총통 화력을 집중시켜라!”
“옛, 장군!”
권율의 명령에 따라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서 공여 받은 천자총통들이 일제히 누각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쾅! 콰앙!
폭발과 함께 누각들이 허물어지고 그 위에 있던 왜병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저기 대장기가 보이옵니다.”
“좋다! 당장 저 대장기 주변을 집중적으로 노려라.”
우키타 히데이에의 대장기를 발견하고 이내 화포의 화력을 그쪽으로 집중시켰다.
“으악!”
“위험합니다!”
포격에 주변에 있는 무사와 병사들이 쓰러지자 우키타 히데이에의 낯빛은 창백해졌다.
하지만 총사령관으로서 결코 겁을 먹고 피할 수 없다고 피할 수 없기에 그는 대장기 근처를 떠나지 않고 산성을 바라봤다.
쾅!
“앗! 부교 어르신께서 다치셨다!”
포격에 그만 함께 다시 전선으로 나온 이시다 미츠나리가 부상을 입었다.
행주산성에 날아드는 포화는 왜군에겐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우키타 히데이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적의 화포와 활은 무한정이지 않다. 계속해서 압박하면 조선 놈들의 힘이 빠질 것이니 물러서지 말고 계속 공격해라!"
이러한 명령에 따라 4진과 5진이 각각 산성의 동쪽과 서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불화살을 날려라!”
4진의 지휘관인 왜장 킷카와 히로이에는 목책을 향해 불화살을 날리게 했다.
쏟아지는 불화살에 목책이 불이 붙었다.
“에잇!”
“빨리 불을 꺼!”
미리 남쪽 강에서 많은 물을 떠놓고 준비해둔 덕에 조선군은 빠르게 화재를 제압했다.
한 편, 서쪽으로 밀고 올라간 5진의 모리 히데모토는 승병들을 상대로 싸움을 펼쳤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외우며 용맹하게 싸우는 승병들.
이들은 끊임없이 올라오는 왜병들을 향해 석회가루를 뿌렸다.
“으악, 내 눈!”
“이게 뭐야!”
바람을 타고 흘러온 석회 가루에 왜병들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화살을 쏘고 창을 찌르니 5진 역시 쉽게 돌파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전투는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조선군이 방어를 잘 해나가는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반나절의 시간이 흐르고 점차 조선군은 지쳐갔다.
“떠그럴! 계속 막아도 끝이 없네.”
“이봐! 입을 놀릴 여유가 있으면 얼른 한 놈이라도 더 죽여!”
“이런 화살이 다 떨어졌다.”
“나도 다 쏴버렸어.”
계속된 공격을 막는 과정에 화살과 총통의 포탄, 화약이 많이 소진되었다.
이렇게 되니 화살 대신 준비한 돌이 던져 올라오는 왜병을 맞추고 적이 쓰던 창과 칼을 주워 육탄전을 펼치는 상황이 되었다.
불리한 세에서 싸우는 조선군에게 더 고난이 닥쳤다.
마지막까지 대기하였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병력이 공세에 가담했다.
“진격하라!”
“와아아!”
이들은 승병들이 주로 배치된 서쪽 능선을 치고 올라왔다.
워낙 왜군의 숫자가 많았고 급기야 목책까지 왜병들이 대거 도달했다.
“죽어라!”
“이얍!”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지고 무수한 시체가 땅에 나뒹굴었다.
승병과 조선군 병사들은 그야말로 악바리처럼 올라오는 왜병들을 막았다.
하지만 수적 열세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와아아!”
“적이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막아라!”
성벽이 뚫릴 위기에 황급히 갑사들이 성벽 위로 올라가 열심히 화살을 날리고 다른 자들은 끓는 물과 돌이 아래로 마구 던졌다.
이러한 상황에선 지휘관도 가만히 지휘만 하지 못했다.
“장, 장군?”
“이리 주거라.”
끓는 물을 준비하는 곳에 직접 온 권율이 가마솥을 들고 성벽까지 움직였다.
이런 열성적인 모습에 다른 장수들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일선에 뛰어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군의 상황은 불리해져갔다.
“장군, 화살과 화약이 거의 떨어져갑니다.”
“갑사들에게 일러 정확히 적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거리에 올 때에만 화살을 쏘게 하라. 그리고 화약을 많이 쓰는 천자총통은 발사를 멈추고 지자총통과 승자총통에 화약을 더 집중시켜라.”
“네!”
지시를 내렸지만 권율의 표정을 밝지 못했다.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이 상태라면 반나절도 못 가 고갈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권율은 충청감사 허욱을 찾아 물었다.
“경기 수영에서 물자를 보급한다고 했는데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송구합니다만 아직 강 쪽에 배가 보이지 않습니다.”
왜군이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물자 보급을 요청했던 바였다.
수성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화살 등을 물자를 지금 배를 통해 받을 수 있다면 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약속했던 경기 수영의 맹선은 강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한 편, 상호도 뭔가 일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왜군에게 함락될 것처럼 보이는 행주산성의 상황도 그렇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분명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이쯤에서 배로 화살을 보급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아무리 봐도 강에서 배가 오는 낌새가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상황이 잘못 되어가는 게 분명했다.
‘물자를 보급하기로 한 배에 문제가 생겼나?’
막연한 짐작이었지만 이러한 상호의 추측은 정확했다.
물론 왜군의 소행은 아니었다.
서해 바다만큼은 왜 수군의 존재는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바다엔 또 다른 위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다 몬스터였다.
전에 상호가 한양에 압송될 때도 그랬지만 서해 바다 곳곳에 게이트가 생겨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개중에는 바다보다 강에 주로 사는 어류형 몬스터도 존재했다.
이러한 몬스터의 존재를 모르고 한강을 거슬러 가려 했던 두 척의 보급선은 습격을 받아 한 척은 크게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러했기에 두 척의 보급선 모두 제 때 행주산성에 당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길!”
아무리 기다려도 강 위에 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계속 기다려도 되는 걸까?
상호는 다시 행주산성 쪽의 상황을 보았다.
“안 좋아. 이대로 있으면 성이 함락되겠어.”
산 위에 세워진 산성이라는 큰 이점을 갖고 있다고 해도 보급을 못한 채 계속 싸우면 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보급선을 기다려 그것을 통해 행주산성의 싸움이 역전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가서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는 편이 지금이라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상호는 결단을 내렸다.
“적의 후방을 쳐서 혼란을 일으킨 다음 곧장 성을 돌파한다.”
“······.”
“······.”
이미 다들 각오한 바, 찬반의 의견을 내는 대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씩 끄덕였다.
이어 상호는 사명대사와 허준을 보며 말했다.
“산성까지 가는 길에는 안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두 분은 이곳에 남으셔서 후일을 도모해주십시오.”
“소승은 승려의 몸이지만 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살계를 범한 몸일세. 무예도 비록 뛰어나지는 않지만 익혀 이 몸 하나 지킬 자신이 있으니 같이 가겠네.”
“나도 같이 가겠네. 자네 덕에 얻은 힘으로 결코 짐이 되지 않고 따라가겠네.”
두 사람 다 뜻이 확고했기에 더 만류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전원이 함께 행동하기로 하고 숨어있던 곳을 벗어나 왜군 진형 쪽으로 움직였다.
“아군이 이기는 것 같은데.”
“저 성을 뺏으려고 엄청 죽었다는데, 우리까지 차례가 오지 않아 다행이야.”
후방을 지키는 왜병들은 임무에 충실하지 않고 전투가 벌어지는 산 쪽을 보고 있었다.
서컥.
‘은신’ 스킬을 써 은밀히 다가간 남준이 검으로 그들을 베어 넘겼다.
“가지.”
상호를 필두로 인원들은 왜군 진형 내로 은밀히 침투했다.
다들 전투가 벌어지는 쪽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행동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약을 보관한 장소를 찾아보게.”
“알겠습니다.”
조총 부대가 쓰는 화약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절대 발각되지 않는 남준의 몫이었다.
“좀 더 혼란을 키우려면 이것도 써볼까.”
상호는 봇짐에서 또 다른 것을 꺼냈다.
이번엔 꺼낸 것은 오크의 어금니로 만든 귀걸이였다.
이것은 근력을 보강해주지만 착용자를 흥분시키는 부작용이 있는 매직 아이템이었다.
“자, 얌전히 있어라.”
상호는 귀걸이를 말에 착용시켰다.
이윽고 제일 먼저 남준이 들어갔다가 나온 화약 보관소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쾅!
“무슨 일이야?”
“불이다, 불이야!”
갑작스런 폭발에 후방에 남아있었던 왜군들이 우왕좌왕했다.
“히이잉!”
이에 안 그래도 쉽게 흥분하게 되었던 귀걸이를 찬 말들이 보다 강해진 힘으로 몸부림쳐 묶여있던 말뚝을 단번에 뽑아내곤 마구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서 말을 붙잡아!”
“아니 일단 불부터 꺼야 돼.”
“불길이 다른 곳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집니다!”
한 병사의 말처럼 불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상황이 이러니 다들 산 쪽으로 달려가는 상호 일행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군인가?”
“근데 차림새가 왜 저러지?”
밑에서 오는 상호를 본 왜병들이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달려온 상호의 검에 베여 더 이상 의문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앗!”
앞으로 갈수록 산성을 공격하기 위해 위로 오르는 왜병들과 더 마주쳤다.
상호는 제일 앞에서 달려가며 보이는 족족 왜병을 베어 쓰러트렸다.
“앗! 저 자들 아군이 아냐!”
“뒤에 적이 있다!”
뒤늦게 상호 일행을 안 왜병 일부가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편, 뒤에서도 불을 지르고 혼란을 야기한 게 상호와 토벌대라는 것을 알고 많은 숫자의 병사가 추격해오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내 뒤를 따라라.”
“네!”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였다.
산성까지 도달하려면 헤아릴 수 없는 적병을 넘어야만 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도착하려면 내가 분발해야 돼.’
상호는 원래 쓰던 검 말고 왼손에 또 한 자루의 검을 들고 가파른 산비탈을 마치 평지라도 되는 것 마냥 뛰어 올랐다.
그 모습에 경악하는 왜병들.
하지만 그 중 조총을 든 몇몇 자가 달려오는 상호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이 정도 사격으론 날 못 맞추지.’
달리는 방향을 바꿀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날아오는 총탄에 타이밍을 맞춰 검을 휘두르면 될 뿐이었다.
티잉!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총탄이 주변 나무에 박혔다.
“헉! 총탄을 검으로 가르다니!”
“막, 막아라!”
범상치 않은 상호의 존재에 왜병들은 일단 겁부터 먹었다.
탓!
한 번 발을 구른 것만으로 높이 올라간 상호가 단번에 왜군 사이에 착지했다.
“헛!”
“뭐야?”
놀라는 왜병들 사이로 상호는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그 주위에 있던 왜병들은 하나같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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