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三장. 조선의 반격! (2)
행주산성을 공략하러 출정한 왜군의 면모는 화려했다.
제 8군의 지휘관인 우키타 히데이에가 총사령관을 맡고 제 3군의 지휘관인 구로다 나가마사, 6군의 지휘관 고바야카와 다카카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대신해 정벌군 전체를 감독하고 전황 보고를 왜로 직접 전달하는 부교(奉行)를 맡은 이시다 미츠나리 등 중요 장수들이 모두 참전했다.
여기에 본래 역사대로라면 고니시 유키나가가 참전해야 할 테지만 그는 상호의 암습으로 전사했고 그 휘하 1군도 거의 전멸하였기에 여기엔 참가하지 않았다.
약 2만 4천의 병력은 한양을 출발해 행주산성까지 진격해왔다.
이에 반면 행주산성의 병력은 의병까지 포함해도 적에 비해 월등히 열세였다.
하지만 권율은 산성을 포기하고 후퇴하는 대신, 목책을 단단히 세우고 화차와 화포를 배치해 일전을 준비했다.
1593년 1월 10일.
원래 역사보다 약 한 달 빠른 시점에서 왜군은 행주산성에 있는 조선군을 포위했다.
“장군, 왜군들이 진형을 모두 갖춘 듯 보입니다.”
“그런 것 같군.”
차가운 겨울바람이 강하게 불어옴에도 망루 위를 내내 지키던 권율이 아래를 보며 말했다.
압도적으로 많은 적의 군세.
망루 아래서 활과 창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벌벌 떠는 게 단순히 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권율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병사들이 많이 두려워할 것이다. 제장들에게 일러 병사들을 격려케 해라.”
“네, 장군.”
“그리고 화포와 신기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통제에 따라 발사될 수 있도록 유의케 하라.”
곧 닥쳐온 결전을 두고 권율은 평정심을 유지했다.
지난 며칠 간 병사들을 독려하며 이곳 산성을 정비하고 적과 싸울 전략을 치밀하게 세웠다.
처음부터 패배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싸워 이길 생각으로 준비했기에 권율로선 그것을 믿고 싸울 뿐이었다.
“적이 움직입니다.”
산 아래서 왜병들이 마치 개미가 대열을 이루고 이동하는 형상으로 움직였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 3천에 달하는 숫자였다.
“적의 대장기에 석전치부소보라 적혀 있습니다.”
눈이 좋은 병사가 대장기의 한자를 확인하고 보고했다.
위의 이름은 바로 이시다 미츠나리의 한자 이름이었다.
“북을 울려라.”
“옛!”
전투가 임박하자 권율은 북을 울려 병사들을 고무케 했다.
둥! 둥!
웅장한 북 소리와 함께 산성 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어디 올라와 보랑께! 싹 다 조져 줄 것이여!”
“옳지!”
병사들은 두려움을 떨치고자 일부러 큰 소리를 뻥뻥 질렀다.
한 편에선 병장기를 갖춘 승병들이 경을 외우며 심기일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목책 뒤로 몸을 숨긴 조선군 병사들은 석회와 투석, 끓는 물을 준비하였다.
이윽고 1진으로 편성된 왜군이 바로 아래까지 근접해왔다.
무수한 깃발을 세운 왜군은 곧 옆으로 길게 포진하고 조금씩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방포해선 안 된다. 군령이 떨어지기 전에 화포를 쏘거나 화살을 날리면 즉각 참수할 것이다.”
권율은 아래쪽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오는 왜군의 동향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숨이 막혀도 아직 충분한 살상 거리까지 오지 않은 왜군을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먼저 공격한 쪽은 산비탈을 따라 올라온 왜군이었다.
타타탕!
격렬한 총성과 함께 첫 번째 목책 주변으로 총탄이 빗발쳤다.
“으윽!”
“악!”
대부분은 나무 목책과 앞에 세운 방패가 막아줬지만 일부 총탄은 그 너머까지 날아가 병사들의 몸에 박혔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부상자들을 승병들이 다가가 지혈하고 후방으로 이송했다.
타타탕!
이런 가운데, 교대한 조총병들이 제 2사를 가했다.
고개조차 들 수 없는 맹렬한 사격에 조선군 병사들은 욕지기를 입으로 연신 뱉어내며 몸을 최대한 숙일 따름이었다.
“좋아, 3열 앞으로!”
아래선 세 번째 조총병대가 앞으로 나와 위로 사격 자세를 취했다.
왜군은 이런 순차사격으로 쉬지 않고 사격하면서 거리를 좁힐 심상이었다.
하지만 권율은 이런 왜군의 전법을 그냥 간과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신기전을 쏘아라!”
“깃발을 올려!”
권율의 지시에 따라 신기전을 다루는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깃발이 높고 올라갔다.
치이익!
점화된 수십 발의 신기전이 일제히 발사된다.
퍼버버벙!
쏘아진 무수한 신기전이 포물선을 그리며 왜군에게 쏟아졌다.
“으아악!”
“살려줘!”
한 명의 몸을 꿰뚫고 뒤에 있는 자까지 박히는 위력이었다.
이런 화살이 무작위로 수십 발이나 떨어지니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막 발사하려던 조총병들도 발포하지 못하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에이잇!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자세를 잡아라!”
중간 지휘관인 무사들이 닦달을 하였지만 계속해서 날아드는 신기전 때문에 조총병들은 제대로 집단 사격을 해내지 못했다.
상황이 이리되자 이시다 미츠나리는 전법을 바꿔 전군을 서둘러 목책까지 돌진하는 수를 썼다.
“돌진이다!”
“와아아!”
갑주를 입은 무사들이 용맹하게 선두에 서자 그 뒤를 따라 병졸들이 장창을 들고 목책을 향해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거리가 약 150보까지 근접했을 때, 조선군은 또 다른 화차를 내세웠다.
“지금이다!”
타타타탕!
화차에 실린 수십 정의 승자총통에서 일제히 탄환을 전방으로 날렸다.
이 공격에 선두로 달려오던 무사와 병사 대부분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에이잇! 겁 먹지 말고 올라가라!”
왜도를 들고 멈칫하는 병사들을 다그치는 무사를 향해 한 갑사가 시위를 당겼다.
화살 대신 시위엔 대나무 통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시위를 놓자 통 안에서 작은 화살이 아주 빠르게 날아갔다.
그것은 바로 편전 혹은 애깃살이라 부르는 화살이었다.
“커···커윽.”
무사의 목을 관통한 편전의 위력은 과연 대단했다.
눈으로 쫓기 어려운 편전이 하급 지휘관인 무사들을 중점적으로 저격하니 더욱 왜군의 진격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상황이 좋지 않자 총사령관인 우키타 히데이에는 바로 2진을 투입했다.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올라오는 3천의 병력.
이들은 앞서 1진이 진격한 위치까지 금방 당도했다.
“에잇!”
“죽어라!”
숫자가 늘어나 더 가깝게 오는 왜군을 맞아 조선군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필사적으로 싸웠다.
화살을 쏘고 승자총통을 총을 쏘다가 안 되면 주변에 쌓아둔 돌을 던졌다.
거기다 아래쪽으로 펄펄 끓는 물을 붓기도 했다.
“아악!”
끓는 물을 뒤집어 쓴 왜병이 화상을 입고 몸부림치다가 위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왜병들은 목책 바로 코앞까지 근접했다.
“이거나 먹어랏!”
이에 조선군 병사 중 몇이 화포에서 쓰는 포탄 같은 것을 던졌다.
처음엔 굴러오는 것을 보고 놀라 물러났던 왜병들이었다.
“불발탄인가?”
“에잇! 이런 것 따위에 겁먹지 말고 어서······.”
퍼엉!
주변에 있던 무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체는 폭발했다.
사실 그 구체는 지연 폭탄이라 할 수 있는 비격진천뢰였다.
이러한 무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인근의 왜군은 터져 나오는 철 조각에 맞아 죽거나 다쳤다.
“크윽!”
2진의 지휘관으로 전선에 나온 구로다 나가마사는 목책을 넘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침음했다.
이미 1진에 속했던 병사 대부분은 전투력을 상실해 사실 상 궤멸 상태였고 2진 또한 큰 피해를 입고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철수한다.”
결국 구로다 나가마사는 군의 후퇴를 선택했다.
이에 1진의 지휘관인 이시다 미츠나리도 함께 후퇴를 결정지었고 처음엔 6천이었다가 지금은 2천도 채 되지 숫자만이 겨우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반면, 조선군의 피해는 경미했다.
“승리했사옵니다, 장군!”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곧 저들은 다시 들이닥칠 것이니 긴장을 풀지 말도록.”
“예!”
권율의 말에 휘하 장수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1차 공격은 조선군이 무사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왜군은 포기하지 않고 산성의 거센 방어에 대응해 새로운 전법을 구사해 재차 공격을 펼치고자 했다.
행주산성의 전투가 이미 벌어졌지만 상호 일행은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상호와 그 휘하 병력은 부두에서 한 척의 배를 빌릴 수 있었다.
그 배를 타고 강화도 쪽으로 해서 한강을 거슬러 행주산성까지 가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가던 중에 배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파주 인근에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서두르자.”
“네!”
배에서 내린 곳에서 행주산성까지는 직선거리로만 45리에 이르는 거리였다.
다행히 평야 지대라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하루는 꼬박 강행군해야 했다.
“헉! 헉!”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역시나 예상대로 제일 이 강행군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허준이었다.
그나마 현대인이 아닌 늘 걷는 게 일상인 조선 시대 사람이어서 이만큼이라도 쫓아올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잡고 지치지 않는 활력을 기원하십시오.”
상호는 허준을 위해 이제 거의 남지 않은 <푸른색 코어>를 건넸다.
체력 능력을 향상시킨 허준은 다시 기운을 차려 강행군을 수행했다.
이렇게 꼬박 달려도 하루 걸릴 거리를 8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벌써 시작된 모양이군.”
상호는 예민한 청각으로 포 소리를 들었다.
왜군이 행주산성을 포위하기 전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왜군이 진을 치고 있어 산성으로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으음.”
남쪽의 강을 따라 산성 가까이에 가지 않는 한, 무수한 왜군들을 뚫지 않고서는 산성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산성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바깥에서 공격해봤자 고작 수십 명이서 할 수 있는 것은 게릴라전뿐이다.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기엔 우리 병력이 너무 적어.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역으로 당해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신체 능력을 강화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압도적인 숫자 앞에선 당해낼 재간이 없다.
괜히 공격한답시고 깔짝대다 대규모 적에게 포위되면 모두 죽임을 당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이대로 지켜봐야만 하는 겁니까?”
“···일단은 상황은 좀 지켜보자고.”
다행이 행주산성에 있는 조선군은 아직 굳건해보였다.
상호가 볼 때, 굳이 이 싸움에 개입하지 않아도 조선군이 버텨 이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저 전투에 뛰어들 필요는 없는 일이지.’
애당초 여기에 온 것은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르는 변수를 우려해서다.
그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일단 전투 경과를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상호와 그 휘하 병력은 왜군 본대가 있는 곳에서 약 1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출진하라!”
“와아아아!”
상호들의 존재를 아직 모르는 왜군 측에서 다시 한 번 행주산성 공략을 위해 제 3진이 출진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