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三장. 조선의 반격! (1)
평양성 전투가 끝나고 퇴각하던 고니시의 1군이 하룻밤 만에 전멸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왜군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그렇지 않아도 명군의 참전으로 위기감을 느끼던 왜군은 전선을 후퇴시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왜군 6만여 명의 병력이 한양에 모였고 이여송은 기세를 타고 개성을 점령하고 파주까지 진출했다.
곳곳에서 전개된 기병끼리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고 이여송의 본대는 고양 인근의 벽제관에 당도했다.
“내 직접 한양에 제일 먼저 들어가겠다.”
“장군, 그것은 위험합니다.”
느닷없이 이여송이 이런 뜻을 밝히니 휘하 제장들은 기겁하며 만류했다.
포병과 대규모 병력을 대동하는 것도 아니고 고직 천여 명의 기병만 데리고 먼저 한양에 가겠다고 하니 이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여송은 자신만만했다.
“흐하핫!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데리고 가는 병사들은 정예병이니 말이다.”
이렇게 이여송이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사실 천여 명의 기병 중 백여 명의 병사들은 몬스터 코어로 각성한 능력자였던 것이다.
한 명의 능력자 병사가 열 명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믿고 대범하게 구는 이여송을 휘하 장수들은 막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여송은 본대보다 앞서 한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은 오만했다.
“공격해라!”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매복해 있던 왜군 병력이 그의 부대를 기습한 것이다.
왜군의 병력은 약 4천이었고 대부분이 조총병이었다.
타타탕!
“컥!”
“으악!”
밀집된 조총병 부대의 일제 사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달려오던 능력자 병사들을 거꾸러트렸다.
제아무리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져도 시대적으로 앞선 무기인 조총을 집단으로 운용하는 군대 앞에선 그저 죽어나갈 뿐이었다.
먼저 기병 대부분이 기습적인 일제사격에 당하고 뒤이어 호위대 격인 능력자 병사들이 나섰지만 모두 격퇴되자 이여송은 그제야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고 도주하고자 했다.
“적의 지휘관이 저기 있다!”
“대장기를 쫓아라!”
왜군 기병대가 달아나는 이여송을 쫓기 시작했다.
이런 추격을 당하는 이여송 주변엔 찰떡처럼 딱 붙어있는 5인의 무관들이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왜군 기병대를 보더니 서로 눈빛 교환을 했다.
그러더니 한 무관이 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쿠드득.
“어엇!”
“뭐야, 우아악!”
갑자기 잘 달리던 기병들이 말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진다.
선두 대열이 이렇게 되자 연쇄 작용이 일어나 뒤따르던 기병들도 급정지를 하다 말이 날뛰는 바람에 낙마하거나 혹은 말과 넘어졌다.
이러한 혼란을 야기한 것은 바로 땅에 솟구친 손 형태의 돌이었다.
이것은 ‘물체 변형’이라고 부르는 스킬이었다.
또 다른 무관 역시 자신이 가진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가 발휘한 스킬은 ‘실명’ 스킬이었다.
“히이잉!”
눈이 먼 말들이 미친 듯이 날뛰니 기수들은 안장에서 떨어져 지면을 굴렀다.
이렇게 단순히 신체의 능력을 올리는 게 아니라 특수한 능력, 스킬을 가진 호위 무관들 덕에 이여송은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이후에 부하 장수인 양원이 이끌고 온 지원군이 나타나니 남은 왜군은 한양으로 철수했다.
이 일로 이여송은 기껏 모은 능력자 병사 중 반수를 잃었다.
그 때문일까.
이여송은 더 이상 싸우려 들지 않고 다시 평양까지 병력을 후퇴시켰다.
이러한 그의 결정은 곧 명군과 협력하여 한양을 치고자 행주에 주둔 중이던 권율 장군의 군대에게 큰 위기를 맞이하게 했다.
상호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처치하고 나갈 때처럼 비밀리에 다시 숙영지로 복귀했다.
다행히 그의 부재를 눈치챈 자는 없었다.
이후 김응서 장군 휘하의 부대에 있으면서 다시 몬스터 사냥에 나갈 기회를 엿봤다.
그런데 이 와중에 명군이 벽제관에서 패배하고 황급히 평양으로 퇴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꼴좋군.”
같은 편이라지만 장차 적일 될 수도 있는 명군이 당했다니 내심 고소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걱정할 일이 있었다.
‘이 다음이 바로 행주대첩이었지?’
역사가 달라졌다지만 돌아가는 상황 상, 명군의 기세를 꺾고 퇴각시킨 한양의 왜군이 지금 점령한 한양을 보다 굳건히 지키기 위해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 부대를 노릴 게 분명했다.
본래 역사에서는 고작 4천의 병력으로 3만에 달하는 왜병을 크게 무찌른다.
큰 변수가 없다면 이대로 될 가능성은 컸다.
‘으음, 그렇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깐.’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이상, 행주산성에서의 싸움을 조선군으로 대승이 되게끔 이쪽에서도 손을 쓸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상호는 바로 김응서 장군을 찾아갔다.
“자네와 자네의 부대가 행주산성으로 가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저희라면 지금 이 부대에서 빠져도 큰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저와 제 휘하 병사들이라면 미약하게라도 권율 장군의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상호의 요청에 김응서는 심사숙고 끝에 허락해주었다.
조정, 선조의 허가 없이 멋대로 부대 이탈을 하면 안 된다는 게 걸림돌이었지만 그것은 이렇게 해결할 수 있었다.
“자네와 자네 부하들은 계속해서 나와 함께 개성 일대에 잔류한 왜병을 소탕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임무를 하고 있다고 장계를 올리겠네.”
“감사합니다.”
상호를 위해 거짓 장계를 올린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응서가 이렇게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권율 대감은 지금 우리 조선군에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시네. 마음 같아서는 나 또한 휘하 부대를 이끌고 왜적들로부터 장군을 지키고 싶지만 조정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야 하기에 그럴 수가 없네. 하여 자네가 나를 대신해 대감을 지켜주게나.”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상호는 굳게 다짐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후 휘하의 군관들을 소집해 이러한 사실들을 전달했다.
“전 나리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위기에 처한 아군을 구하는 일인데 어찌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행주산성에 있는 같은 조선군과 백성들을 지키는 일이기에 네 명의 군관들은 전원 상호의 뜻에 동참했다.
거기에 병사들도 뜻을 모으니 바로 출발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뜻하지 않은 동행인이 끼어들었다.
“나도 같이 가겠네.”
“글쎄,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명대사에게 상황을 알리고 함께 가기 위해 구호소를 들렸다가 그만 허준에게도 행주산성을 향해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말았다.
허준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자신도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전투가 벌어지면 다친 자들이 많이 생길 것이네. 그러면 의원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할 것 아닌가.”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저희가 산성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한양의 왜군이 행주산성 쪽으로 벌써 향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온 터라 느긋하게 갈 형편이 안 되었다.
그런 만큼 단련되지도 않은 의원을 데리고 간다는 선택은 상호로선 쉽게 할 수 없었다.
“절대 자네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네. 부디 내가 행주산성에 가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게 도와주게나.”
“하아.”
간곡한 허준의 말에 상호도 꺾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허준까지 함께 행주산성으로 가게 되었다.
은밀히 준비를 끝낸 상호와 휘하 병사들은 야심한 밤에 길을 떠났다.
먼저 향한 방향은 남쪽이 아니라 서쪽이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행주산성 쪽으로 향하고자 부두가 있는 지역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이것들 받게.”
“이것은?”
“행주산성에서의 전투에서 도움이 될 걸세.”
길을 가는 와중에 상호는 네 명의 군관과 대원들에게 그간 모아놓은 몬스터 코어를 나눠줬다.
평양성 전투에서는 명군의 지켜보는 눈이 있어 주저했지만 행주산성에서는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기회에 토벌대의 전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모두에게 나눠줄 정도라 다행이군.’
고니시 유키나가를 암살하고 돌아오는 길에 왜군을 공격하는데 써먹은 몬스터 무리의 로드들을 처치하고 얻은 것도 있어 수량이 되었다.
총 38명의 병사에게는 <붉은색 코어>를 지급하고 남준을 비롯한 네 명의 무관에겐 <붉은색 코어>말고도 스킬을 얻을 수 있는 <푸른색 코어>도 주었다.
“나리도 받으시지요.”
“나, 나도 말인가?”
“유정 스님의 회복 능력도 이 보옥의 힘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어쩌면 의원 나리께서도 그런 비슷한 힘을 가질 지도 모릅니다.”
“으음.”
상호의 설득에 허준은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알겠네. 모두를 돕고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니 나도 기꺼이 협력하지.”
이렇게 허준까지 <푸른색 코어>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상호는 이들이 과연 어떤 스킬을 가질지 사뭇 기대했다.
‘내 기회까지 양보하였으니 좋은 스킬을 가졌으면 좋겠군.’
상호가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에 다섯 사람은 몬스터 코어의 힘을 완전히 받아들이는데 성공했다.
처음 능력을 통제해 발휘한 것은 군관 김태진이었다.
“몸, 몸이······!”
“놀랄 것 없어. 자네가 얻은 능력은 음···강철화라는 능력이다.”
본래 이름은 아이언 스킨인 이 스킬은 말 그대로 몸을 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스킬이다.
이 상태가 되면 창칼로는 전혀 상처를 입힐 수 없기 때문에 근접전에서 탱커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
"이것 좀 보십시오!“
또 다른 군관인 백준수가 자신의 손을 내밀어보였다.
왼손에 있던 물건이 돌연 오른손으로 옮겨지는 게 보였다.
“전송 스킬이네.”
“네?”
“인근의 물건을 생각만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스킬이라고 보면 된다.”
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유용할 수도 있는 스킬이었다.
이외에도 두 명의 군관이 얻은 스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남 군관은 암시 스킬이고 유 군관은 은신 스킬인가.“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암시’ 스킬이나 몬스터나 사람의 감각을 속이고 몰래 돌아다닐 수 있는 ‘은신’ 스킬도 나쁘지 않은 스킬이었다.
그리고 강력하고 범용성도 뛰어난 속성력 스킬보단 이와 같이 눈에 띄지 않는 소소한 스킬이 당장 능력을 가진 것을 감춰야 하는 군관들의 입장에선 더 나을 지도 몰랐다.
“의원 나리께서는 어떤 스킬을 얻으셨습니까.”
“내가 이런 능력을 갖다니······.”
“네?”
“아무래도 나는 그릇된 힘을 얻은 것 같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상호의 되물음에 허준은 설명 대신 근처의 나무로 다가갔다.
곧게 자란 나무에 허준이 손을 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검은 기운 같은 게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이건?”
상호는 나무가 급격히 생기를 잃고 잎을 무수히 떨어트리는 것을 보았다.
허준이 얻은 스킬은 바로 ‘생명력 갈취’ 스킬이었다.
“생명이 죽이는 힘이라니. 의원으로서 어찌 이런 힘을 쓰겠는가.”
허준은 자신이 얻은 힘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분명히 다른 생물의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의원에겐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호의 생각은 달랐다.
“나리, 이 능력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능력을 통해 생물을 죽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살릴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상호는 이 스킬을 가졌던 헌터 한 명과 알고 지냈었다.
그 헌터는 헌터 그룹에서 맡은 보직이 바로 ‘힐러’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생명력 갈취’ 스킬을 색다르게 운용하여서였다.
그 방식을 알고 있는 상호는 허준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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