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99화 (99/127)

二二장. 최강의 괴수 대 왜군. (3)

오우거의 주변엔 이미 한바탕 살육이 벌어져 있었다.

시체를 땅에 떨어트리고 오우거가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는 쪽을 본다.

그러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쿵. 쿵.

점차 속도를 내면서 육중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막, 막아라!”

왜장 중 한 명이 혼이 반쯤 나간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이에 조총병들이 줄 지어 서서 달려오는 오우거를 향해 일제사격을 가했다.

타타탕!

정면에서 쏟아지는 총탄은 오우거의 피부조차 뚫지 못하고 도로 튕겨나갔다.

“크워어어!”

오우거는 성인 몸통만한 팔뚝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거리를 좁혀왔다.

마침내 병사들이 있는 곳까지 달려온 오우거가 팔을 좌우로 크게 휘저었다.

“으아악!”

“컥!”

비명과 함께 여럿의 병사가 공중을 날아올랐다.

이에 가까이에 있던 왜병들은 겁에 잔뜩 질려 떨리는 손길로 창을 오우거 쪽으로 내밀었다.

“크워!”

오우거는 마치 수수깡 부러뜨리듯 창대를 부러뜨리고 한 명의 머리를 잡아 마치 간단히 부쉈다.

그 광경에 창을 내밀었던 왜병들은 바지에 소변을 지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악!”

그런 왜병들은 발로 짓밟으며 오우거는 앞으로 다시 걸었다.

이러한 놈의 코는 계속해서 벌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흘러온 유인제의 향기를 맡는 행동이었다.

“누가 저 괴물을 막을 자가 없는가!”

누군가가 소리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살려줘!”

“슈텐도지다! 슈텐도지가 나타났다!”

겁에 질린 왜병들은 무기를 버리고 뒤돌아 도망치기 급급했다.

개중엔 왜국에서 아주 유명한 오니인 슈텐도지의 이름을 불러대는 자도 있을 정도였다.

수십 명이 살해당하고 수백 명이 도주하는 초유의 상황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활을 다오!”

“주, 주군?”

가신에게서 장궁을 받은 고니시 유키나가는 말을 몰아 오우거에게로 다가갔다.

이때, 오우거는 난폭한 기세를 한층 더 드러내며 도망치던 병사들의 몸을 찢고 짓밟으며 살육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 오우거를 보며 고니시 유키나가는 말을 달리면서 시위를 당겼다.

그가 쏘아올린 화살은 정확히 오우거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크워!”

화살은 오우거의 왼쪽 뺨에 살짝 박혔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큰 타격은 아니었지만 오우거가 무적의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시켰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고작 괴물 하나에 쩔쩔맬 것인가! 당장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워라!”

그런 다음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허리에 찬 왜도를 뽑았다.

그대로 오우거를 향해 돌격하려는 것처럼 고니시 유키나가의 행동에 그의 가신들은 대경질색하며 분분히 나섰다.

“주군께서는 몸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여기는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방금까지만 해도 오우거의 기세에 겁을 먹었던 무사들이 고니시 유키나가 앞에 나섰다.

이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짐짓 만류당해 물러나는 모습으로 뒤로 물러났다.

워낙 실감나서 다른 사람은 몰랐겠지만 지금 보여준 고니시 유키나가의 모습은 휘하 무사들과 병사들로 하여금 싸움을 포기하지 않게끔 만들려는 일종의 연극이었다.

애당초 상인 출신으로 무예가 썩 대단하다고 할 수 없는 고니스 유키나가가 정면으로 오우거와 싸울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겁먹을 것 없어!”

“좌우로 산개해서 놈의 빈틈을 노리는 거다!”

어쨌든 고니시 유키나가의 뜻대로 싸울 의지를 갖게 된 무사들은 오우거를 사이에 두고 빙 둘러 포진했다.

그렇지만 지금 오우거에게 있어 이들 무사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오직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게 하는 감미로운 향기가 저 앞쪽에서 바람을 따라 흘러오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크워어어!”

오우거는 분노를 포효로 표출하며 두 팔을 높게 들더니 그대로 땅을 후려쳤다.

겨울이라 마르고 굳은 땅이 부서지면서 일순간 지진 비슷하게 진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으윽!”

“땅, 땅이 흔들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는 무사들을 향해 오우거가 대뜸 뛰어올랐다.

거대한 덩치로 서넛의 무사를 한 번에 깔아뭉갠 오우거는 곧장 옆쪽에 있던 무사들을 손으로 잡아채 집어 던졌다.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날아가는 자를 볼 겨를은 없었다.

무사들은 살기 위해서 오우거를 향해 갖가지 무기를 들고 덤볐다.

“죽어어엇!”

처절한 외침과 함께 무사 한 명이 장창을 들고 돌격했다.

하지만 그 자의 돌격은 불쑥 날아든 오우거의 팔에 간단히 막힐 따름이었다.

갑옷이며 투구며 죄다 박살나 시체와 함께 날아가는 모습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누구 자랑스러운 일번 창이 될 것인가! 무사의 혼을 보여라!”

이러한 독려에 이번엔 3명의 무사가 한꺼번에 창을 꼬아들고 각각 다른 방향에서 돌격했다.

이에 오우거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무사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크악!”

공격당한 무사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사이에 다른 두 명의 무사가 창을 오우거의 몸에 꽂는데 성공했다.

다만 문제는 워낙 오우거의 몸이 튼튼한 까닭에 두 무사가 준 상처는 오우거에겐 상처 축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크워어!”

그래도 아픔은 느낀 것일까.

자신의 몸에 창을 꽂은 두 무사를 향해 오우거가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주먹이 내리친 뒤에 남은 건 머리가 몸통에 파묻힌 시체 두 구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공격에 성공한 것에 고무된 무사들이 일제히 덤벼드니 오우거도 제자리에서 몸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서둘러라!”

이때, 한 무리의 왜병들이 열을 지어 싸움터에 도착했다.

그들은 일반적인 조총보다 몇 배나 큰 대조총을 들고 왔다.

일반적인 탄환보다 몇 배나 큰 탄환을 날리는 대조총은 왜군이 총통 대신 쓰는 대물 병기였다.

이것이라면 충분히 오우거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하고 고니시 유키나가가 부하를 풀어 이 무기와 이를 다루는 병사들을 불러온 것이다.

치이이익.

대조총 하나에 서넛의 병사가 달라붙어 장전을 마치고 땅에 비스듬하게 세운 뒤 화승에 불이 붙었다.

“사격이 시작된다! 그러니 어서 놈에게 물러나라!”

사격이 이뤄지기 직전에 경고가 있었다.

이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무사들은 뒤도 안 보고 오우거에게서 도망쳤다.

사방팔방 달아나는 무사들의 움직임에 오우거가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십여 정의 대조총이 큰 반동과 함께 탄환을 발사했다.

200보 거리를 날아간 탄환 중 몇 발은 빗나갔지만 일부는 오우거의 몸에 상처 입히는데 성공했다.

“크워어어!”

포효하며 비틀거리는 오우거.

이에 대조총을 다루는 병사들은 황급히 재장전을 서둘렀다.

“빨리! 빨리!”

“어서 장전 해!”

떨리는 손길로 화약을 재다보니 흘리는 게 태반이었다.

굼뜬 손길을 억지로 재촉하는 왜병들을 향해 오우거가 살기를 뿜어내며 돌진하였다.

“목숨을 걸고 막아라!”

“절대 놈이 가게 둬선 안 된다!”

유일하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준 대조총을 지키기 위해 무사며 병사며 할 것 없이 오우거를 막고자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차처럼 오직 앞을 향해 돌진하는 오우거 앞에선 그들은 마른 낙엽처럼 날아가 내동댕이쳐질 뿐이었다.

“우아악!”

쿠앙!

비명과 굉음이 연신 들려오는 곳에서 꽤 떨어진 곳의 수풀 속.

그 안엔 상호가 조용히 은신하고 있었다.

“오오, 제대로 벌어지는 걸.”

예상대로 오우거가 활약해주고 있어 안심이었다.

지금 오우거에게 고니시 유키나가를 호위하던 병력 대부분이 붙어있고 다른 곳에서도 지금 몬스터들과 고니시 군이 한참 맞붙고 있다.

바로 지금이 고니시 유키나가를 죽일 절호의 기회였다.

“저기 있군.”

상호는 ‘매의 눈’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포착했다.

그의 주변엔 가신 몇 명과 수십도 안 되는 병사만 있을 뿐이었다.

“최대한 접근을 해서 한 번에 끝장을 본다.”

눈에 띄는 ‘물의 속성력’을 쓰지 않고 접근한 다음에 가져온 각궁으로 저격을 하는 게 상호의 작전이었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가는 상호.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 때문에 어느 누구도 상호의 존재를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이쯤이면 되겠지.’

상호는 활 통에서 각궁과 화살 한 대를 꺼냈다.

밤의 어둠도 거리도 ‘매의 눈’ 능력을 가진 상호에겐 큰 장애가 아니었다.

미리 고니시 유키나가가 어떤 갑옷을 입고 있는 지 확인했던 바, 정확히 표적을 노릴 수 있었다.

‘이걸로 역사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여태껏 간접적으로 역사를 바꿔왔지만 지금처럼 직접 역사를 바꾸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상호의 손은 망설임으로 떨렸다.

“후우.”

상호는 스스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내뱉었다.

한다고 했으면 할 수밖에 없다.

“맞아라.”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마침내 힘껏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쉬이잉!

활을 떠난 화살은 빠르게 백마에 탄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상대는 이 화살을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성공이다.’

상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확신했다.

그런데 하늘의 장난일까.

“쿠어어어!”

여태까지 들은 것 중 가장 큰 오우거의 포효가 바로 이 순간에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그 바람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탄 말이 놀라면서 앞 말을 번쩍 들었다.

이 때문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간 화살은 살짝 빗나가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상호는 자신의 화살이 빗나간 것을 보고 탄식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오우거가 소리를 지른단 말인가.

“화살?”

“주군, 괜찮으십니까?”

방금 화살이 코앞으로 스쳐지나간 것을 고니시 유키나가는 다분히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 주변의 가신들도 자신의 주군이 방금 노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그 주변을 에워쌓다.

“쉽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판에 일이 틀어져버리네.”

상호는 사람의 벽에 가려진 고니시 유키나가를 보며 혀를 찼다.

지금 저격이 실패했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에잇!”

상호는 연달아 화살을 날려 벽을 만드는 자들을 쓰러뜨렸다.

무시무시한 힘이 담긴 화살은 갑주를 꿰뚫고 입은 자를 절명케 했다.

하지만 몇 명을 처치해도 오히려 더 많은 자들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앞을 지키니 이러한 공격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상호는 텅 빈 활 통과 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검을 뽑았다.

“여기서 어떻게든 그 자의 목을 베고 돌아간다.”

결연한 각오를 다지며 상호는 숨어있던 장소를 뛰쳐나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는 곳으로 돌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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