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二장. 최강의 괴수 대 왜군. (2)
상호는 우선 오우거의 동향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다행히 놈은 상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갓 사냥한 멧돼지 시체를 들고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휴우.”
상호는 자신이 오우거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멀어져가는 오우거를 두고 그 뒤를 살금살금 쫓기 시작했다.
놈의 둥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크르릉.”
마침내 한 동굴 입구에 당도한 오우거는 그대로 털썩 안더니 들고 온 멧돼지를 생으로 찢어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몰래 훔쳐보면서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이 일대에 세 개나 되는 무리가 있는데 그 무리들이 서로 다투지 않을뿐더러 세력도 작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
홉고블린, 오크, 코볼트들은 무리 지어 덤벼도 감당이 안 되는 적인 오우거를 이웃지간으로 두고 있다.
아마 놈들은 주기적으로 오우거에게 털리는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 놈에게 굴종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호는 확인을 마치고 안전한 곳까지 일단 물러났다.
“계획을 대폭 수정해야겠는걸.”
상호는 자신이 발견한 세 무리의 몬스터 근거지 위치와 오우거의 둥지 위치를 지도에 표시했다.
그리고는 탁 트인 위치에서 바람이 부는 방향과 일대의 지형지물을 확인했다.
“바람의 방향은 다행히 나쁘지 않아. 우선 일차적으로 이 지점에 먼저 살포하고 다음으로 이곳과 이곳에 뿌리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최대한 세 몬스터 집단과 오우거가 서로 중간에 충돌하지 않고 고니시 군 대열을 덮치게끔 설계해야했다.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해냈다.
“후, 됐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거나 하는 돌발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작전 성공 확률은 높았다.
“저들도 벌써 저만큼 왔구나. 이제 시간이 별로 없는 걸.”
상호는 산 정상 부분에서 고니시 군이 오는 것을 보았다.
신속한 일처리가 필요했다.
“잠시도 쉴 틈을 안 주네.”
아무리 초인에 준하는 체력을 가진 상호라도 연이은 강행군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 없기에 허벅지를 주먹으로 강하게 두들겨 힘을 내게 하고 다시금 산등선을 따라 힘차게 질주해갔다.
펄럭.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을 상징하는 깃발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거칠게 나부낀다.
평양성 전투에서 많은 병력을 잃고 약 7천의 병력만 남은 고니시 군의 왜병들은 지친 걸음으로 힘겹게 길을 걸었다.
“후방에서 추격해오는 움직임은 없는가?”
백마에 탄 고니시 유키나가는 후방을 신경 썼다.
이여송과 협상을 통해 무사히 평양성을 나오기는 되었지만 언제든 약속을 깨고 조명 연합군이 뒤를 치고 올지 모르기에 방심은 결코 할 수 없었다.
“주군.”
“뭔가, 고토.”
고니시를 모시는 가신 중 한 명인 고토 스미하루는 살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 명나라의 장수 말을 믿으십니까?”
“우리와 휴전을 하고 싶다는 말을 말하는 건가?”
“예, 솔직히 너무 믿기 어려운 일인지라······.”
비밀리에 주고받은 밀서를 통해 평양성 철군에 관한 것만 의견을 주고받은 게 아니었다.
이여송은 자신과 명군이 온 이상, 이길 길이 없으니 양자 간의 무의미한 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선에서 강화를 하자는 뜻을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고니시 유키나가로선 이 제안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정면을 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본토에 계신 관백께서는 일찍이 조선 반도는 열흘이면 함락할 것이라 했지만 지금 상황이 어떤가.”
“······.”
“점령지에선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우리 군을 공격하고 있고 바닷길은 막혀 보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네. 결국 제일 선두로 진격하던 우리 군은 취했던 성을 잃고 패주하고 있지 않은가.”
“주군께서는 몇 배나 많은 적을 두고 고립무원에서 싸우신 것이 아니십니까. 그리고 아직 조선 반도엔 십만이 넘는 우군이 있습니다. 그러니 쉽게 조선과 명에게 패배할까요?”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가진 식량이 부족해 하루 두 끼에서 한 끼만 음식을 먹는 실정이다.
더욱이 겨울이 찾아오면서 일반 병졸들은 추위에 고통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곡식이 비축된 전라도를 함락하려던 진주성 공략이 실패하고 아울러 수군의 이순신이 무서워 서해는 고사하고 부산포에 아군의 수군이 꽁꽁 숨은 작금의 상황에선 왜군의 전력이 모두 모여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확신하고 있었다.
“어쨌든 3군의 구로다 나가마사 부대와 합류하고 이후에 이여송 측과 다시 한 번 접촉해 볼 것이야.”
“본토에 계신 관백께 먼저 보고를 드리지 않고 말입니까?”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전쟁을 순순히 끝내지 않으려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여송과의 협상은 일단 은밀히 진행한 다음,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지는 시기가 되면 그 때 보고를 할 생각이었다.
이러한 것까지 가신이 밝힐 마음은 없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령을 내렸다.
“날이 저물기 전에 구로다의 부대와 합류해야 하니 길을 서둘러라.”
“옛, 주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명령이 하달되고 고니시 군은 좀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겨울이다 보니 해가 짧았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지체할 여유는 없으니 이대로 행군을 계속한다.”
추격을 염려해 고니시 군은 대열 곳곳에 횃대를 들어 길을 밝힌 채 야간 행군을 이어갔다.
긴 행군 탓에 지친 병사들은 무기를 지팡이 삼아 걸음을 옮겼다.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정말이지 힘들어서 더는 못가겠어.”
“이봐, 무사 나리들한테 베이고 싶어. 어서 잔말 말고 걸어.”
병사들은 힘든 티를 팍팍 내며 마지못해 걸었다.
그런데 이 때, 소리 없이 한 명이 길 옆쪽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다들 지친 상태고 또 주변이 어두컴컴해서 그 사실을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읍!”
계속해서 대열에서 사라지는 병사들.
대열 사이사이가 비게 되니 자연스레 앞뒤의 간격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나리, 앞쪽이 보이지 않습니다.”
“쯧, 어서 대열에 합류해야 하니 구보 속도를 올려라.”
“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사를 따르는 수십 명의 병사들은 길을 서둘렀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앞의 대열을 만날 수 없었다.
“이런!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잖아.”
“여기가 어디지?”
이렇게 중간에 이탈된 집단만 해도 여럿이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게 한 사람의 행동에 의해 이뤄진 일임을.
‘몬스터들이 올 때까지 시간만 적당히 벌 생각으로 한 건데. 생각보다 더 효과적이네.’
상호는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고니시 군을 바라봤다.
간단히 대열에서 몇 명을 솎아내 빼내고 대열 안쪽에 은밀히 들어가 길을 다른 길로 유도한 것만으로 행군 대열을 붕괴시킨 것이다.
“슬슬 앞쪽에서 이변을 알아챘겠지.”
상호의 예상대로 선두로 가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후위에 생긴 혼란 소식을 접하고 군을 멈추고 흩어진 병력을 수습했다.
한 밤 중이었기에 쉽사리 부대를 모으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을 방출하며 나타났다.
푸확!
“크아악!”
“카앗!”
비명과 고함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홉고블린들은 방패와 검을 들고 왜병들 사이로 뛰어들어 살육을 펼쳤다.
“괴물이다!”
“오니다, 오니!”
생전 몬스터를 본 적 없는 왜병들은 인간과 다른 홉고블린의 외모만 보고 두려움에 빠져 도망치기 급급했다.
이에 지휘관 격인 무사들은 어떻게든 부대를 유지하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이잇! 도망치지 말고 싸워라!”
“상대는 오니입니다. 어찌 싸울 수 있단 말입니까.”
“에이잇! 싸우지 않고 도망가면 참수할 것이다.”
무사들은 도망치는 병사들의 목을 직접 베며 병사들을 홉고블린들에게 내몰았다.
결국 도망칠 길이 없어진 왜병들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자신들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오는 홉고블린들을 향해 창을 찔렀다.
까앙.
찔어든 창은 모두 홉고블린이 가진 강철의 원형 방패에 막혔다.
오직 본능과 살의에만 의존하여 무차별적인 돌진만을 하는 고블린이나 오크와 달리, 홉고블린들은 대열을 갖추고 착실하게 날아드는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는 주춤하는 왜병들을 향해 낮게 파고든 다음, 손에 든 검으로 상대를 죽였다.
“적을 섬멸해라!”
“하앗!”
이때, 남쪽에서 한 무리의 기마무사들이 당도했다.
공격이 펼쳐지고 있다는 전갈을 받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보낸 병력이었다.
기마무사들은 그대로 측면에서부터 홉고블린들을 격파하며 전진했다.
상당한 피해를 본 홉고블린들은 일단 기마무사들을 피해 분분히 흩어졌다.
“이것들이 소문으로 듣던 그 요괴들인가.”
기마무사들을 이끌고 온 왜장 오무라 요시아키는 땅에 쓰러진 홉고블린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쉬리릭!
밤하늘에서 파공음이 들리더니 멈춰 선 기마무사들을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으악!”
“어디서 날아온 화살이냐?”
일부의 무사와 말이 화살이 쓰러지는 가운데, 오무라 요시아키는 화살을 쏜 적을 찾고자 했다.
곧 그의 눈에 녹색 피부의 괴물들이 들어왔다.
“또 다른 괴물?”
“취이잇!”
강건한 체격을 가진 오크들이 우악스러운 돌격으로 오무라 요시아키와 기마무사들을 덮쳤다.
또한, 다른 쪽에서도 코볼트들이 대열을 습격하니 삽시간에 고니시 군 전체가 전투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어떻게든 부대를 모아 피해를 줄이려 노력했다.
“주군, 일단 몸이 피하심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부하들을 두고 어찌 혼자 살 길을 간단 말인가.”
“적이 코앞까지 왔습니다.”
지금 고니시 유키나가의 곁에는 겨우 1,500여 명의 병력뿐이 없었다.
나머지는 저마다 흩어져 몬스터 집단과 전투를 펼치는 중이었다.
“쿠어어어어!”
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크기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히이잉!”
“워워!”
갑자기 놀라 날뛰는 말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황급히 말의 고삐를 꽉 쥐었다.
이런 가운데,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는 쪽으로 향하던 코볼트 무리가 겁에 질려 황급히 다른 방향으로 내뺐다.
그리고 잠시 뒤.
“으아아악!”
멀리서 비명이 들리더니 뭔가가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쿵.
“말?”
놀랍게도 저 멀리에서 날아온 것은 한 마리의 말이었다.
마치 투석기로 쏴 던져진 것처럼 날아온 그것을 보고 모두가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명령을 내렸다.
“불을, 방금 말이 날아온 쪽으로 불을 피워라.”
“아, 알겠습니다.”
적의 정체를 알기 위해 궁병들로 하여금 불화살을 날리게 했다.
날아간 불화살들이 지면에 떨어져 일대의 풀을 태우면서 미약하지만 그 주변이 밝아졌다.
“어, 어······.”
“허업.”
불빛 사이로 나타난 거대한 괴인의 모습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모든 자들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발견한 오우거는 고개를 쳐들며 다시 한 번 포효했다.
“쿠어어어엇!”
그것은 곧 이뤄진 사투를 알리는 신호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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