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95화 (95/127)

二一장. 평양성 전투. (3)

전투가 끝나고 복귀하는 조명 연합군의 모습은 출진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

“으, 으으.”

지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걷는 병사들.

그들 사이로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부상자들도 잔뜩 있었다.

숙영지에 도착하고 부상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분주히 치료가 이뤄졌다.

“다리를 잘라야 할 것 같군.”

“그, 그런.”

“오래 두면 상처가 썩어 몸까지 망가질 것이야.”

부상자들을 살피는 의원들 중에는 놀랍게도 내의원 소속의 허준도 있었다.

우연찮게 구호소를 지나다 그를 발견한 상호는 그에게 다가갔다.

“의원 나리!”

“아니 자네가 여기에 어떻게?”

“어명을 받고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의원 나리께서 어째서 이런 전장에 있는 것입니까?”

“내가 자청했네.”

“네?”

뜻밖의 대답에 상호는 당황했다.

허준은 내의원에서도 그 실력을 입증 받아 차기 어의 후보를 꼽히는 의원이었다.

그랬기에 상태에 중했던 신성군을 직접 치료하였던 것이다.

그런 엘리트 코스를 밟던 그가 위험한 전장에 나온 것은 상호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억울한 죄를 뒤집어썼음에도 이 나라의 백성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요괴들을 소탕하고자 하는 자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네. 그래서 나의 의술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전장에 나온 것이네.”

“아니 그래도 나리 같은 뛰어난 솜씨를 가진 의원께서 이런 위험한 곳에 오는 것은 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군대에 종군까지 하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이 된다.

혹시나 전쟁터에서 허준이 죽기라도 하면 후일 만들어질 ‘동의보감’은 영영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되지 않는가.

상호는 허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이곳까지 온 그를 돌려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윽!”

“나리, 환자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킵니다.”

“잠깐 비켜보게.”

허준은 상호와 대화하다가 말고 의녀를 밀쳐낸 다음 환자를 살폈다.

환자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고 각혈을 하였다.

“이대로 있으면 숨이 끊길 것이야.”

허준은 긴급한 상황이기에 위험한 혈에도 망설임 없이 침을 놓으며 환자의 상태를 돌리고자 힘썼다.

역시 명의라 불릴 만큼 그의 침술은 조금의 막힘도 없이 완벽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환자를 살리기는 어려웠다.

바로 이 때!

“잠시 내가 봐도 되겠소?”

“스님께서 말이오?”

허준은 자신의 옆으로 온 승려를 보았다.

그런 그에게 상호는 말했다.

“믿고 맡기셔도 됩니다.”

“으음.”

상호의 말에 허준은 사명대사에게 부상자를 맡겼다.

이에 가볍게 합장을 하고 사명대사는 상처 부위에 손을 얹고 힐링 스킬을 펼쳤다.

환한 빛과 함께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보고 허준의 눈은 커질만큼 커졌다.

“천지신명이시여······.”

“쉿! 의원 나리, 이 능력을 본 것은 아무쪼록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알, 알겠네.”

허준은 부상을 낫게 하는 신비한 힘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은 눈치였지만 상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한 사람의 치료를 끝낸 사명대사는 아직 여기저기서 고통 받는 부상자들을 보고는 말했다.

“나는 이곳에 남아 최대한 많은 이들을 치료해야겠네.”

“대사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대신 제가 주의한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 잘 알고 있네.”

이미 능력을 가졌을 당시에 능력을 사용할 때의 주의할 점을 알려준 바 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당부를 다시 한 것이다.

상호는 구호소를 나와 할당받은 막사에 당도했다.

그런데 그 앞엔 먼저 갔던 남준이 서 있었다.

“토포사 나리.”

“무슨 일이지, 남 군관?”

“김응서 장군께서 나리를 찾으십니다.”

“나를?”

“아무래도 오늘 전투 중에 나리가 활약했다는 내용을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상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찬밥 신세로 만들더니 전공을 세우니깐 바로 태도를 다르게 하다니.

솔직히 별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직급 상 위에 있는 인물이 부르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

“장군께 인사드립니다.”

“그대가 그 유명한 선인인가?”

상호를 막사 안에서 맞이한 김응서는 빈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자리에 앉자 먼저 김응서가 술잔을 내밀었다.

“한 잔 하겠나?”

“아 네.”

거절한 이유는 없었기에 주는 술을 감사히 받았다.

그렇게 한 잔씩 마시고 먼저 김응서가 입을 열었다.

“오늘 싸움에서 자네와 자네의 부대가 돌파구를 만들어낸 덕에 왜군의 포위망이 느슨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네.”

“살 길을 찾다보니 우연찮게 된 일입니다.”

“허허, 겸손하군. 솔직히 말하면 난 자네의 부대가 이 전투에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리라 생각했네.”

“···그렇습니까?”

“신통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일개 야인이 이끄는 수십의 병력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싶었지.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 다르게 자네들은 그 적은 숫자로도 큰 공을 세워냈지.”

“과찬이십니다.”

대답은 이렇게 하지만 뒤늦게라도 자신들을 인정해주니 내심 기쁜 상호였다.

이런 그를 보며 김응서는 말했다.

“이번 평양성 탈환은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네.”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전투에서 자네의 부대가 부디 우리 군의 선봉에 서주게.”

“선봉에 말입니까?”

위험한 임무를 떠넘기려는 것일까?

하지만 김응서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위험한 임무를 맡긴다는 것은 잘 아네. 하지만 그대의 신통력과 출중한 실력을 가진 자네 부대라면 충분히 왜군들을 무찌르고 길을 열어줄 것이라 믿네.”

“최선은 다해보겠습니다.”

진심으로 이쪽을 믿어주는데 못한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아 어쩐다.”

자신의 막사로 들어오며 상호는 난감해하며 중얼거렸다.

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위험한 임무에 앞장서려 하니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야 괜찮겠지만 병사들이 걱정이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후일 몬스터 토벌을 다시 원활하게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자신이 다음 전투 때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호였다.

“으그그극.”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돌아오니 온 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다.

상호는 갑옷을 벗고 그대로 누웠다.

“으으, 시원한 맥주가 먹고 싶다.”

새삼 21세기의 물건이 떠오른다.

상호는 그렇게 가물가물해진 현대 시대에 있던 시절을 떠올리며 점차 잠에 빠져들었다.

“와아아아!”

“기습이다!”

바깥에서 일어난 소란에 막 잠들기 직전이었던 상호가 고개를 쳐들었다.

겨우 잠들 수 있다 싶었는데 깨버린 터라 그의 감정은 몹시 흥분된 상태였다.

“도대체 이 밤중에 무슨 난리야!”

밖으로 나온 상호는 곧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새벽이 되고 성에 있던 왜군이 밖으로 나와 야습을 감행한 것이다.

“벌써 안까지 침입해온 건가? 경계를 서던 자들은 뭘 한 거야?”

상호는 아비규환이 된 숙영지를 보면서 화를 냈다.

상대적으로 평양성 쪽에 다 가깝게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이 기습한 왜군의 첫 번째 상대가 되고 말았다.

워낙 은밀히 움직여 접근했고 미리 침투한 왜병에 의해 경계병이 죽어나가 미처 대응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야앗!”

말을 탄 무사가 막사 사이로 달리며 긴 창을 들어 조선군 병사 한 명이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말 머리를 돌렸다.

“이런, 이쪽으로 오나.”

상호는 자신을 향해 말을 달려오는 기마무사를 노려보았다.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딜!”

상호는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창을 피하면서 창대를 붙잡았다.

순간 말이 엇갈려 뒤로 달려갔지만 그 위에 타고 있던 무사는 붙잡힌 창이 움직이지 않은 바람에 그대로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헛차!”

상호가 창대를 든 손을 아래로 힘껏 내리니 무사는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나리!”

“다들 벌써 준비를 끝냈나?”

그 짧은 사이에 무장을 갖춘 남준을 비롯한 토벌대 대원들이 상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상호도 갑옷을 챙겨 입고 활과 검을 휴대한 다음 주위의 상황을 살폈다.

“아무래도 왜군이 야습을 해온 것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큰 피해는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대로라면 내일 공격이 곤란해질 것 같다. 피해가 확대되기 전에 기습해온 왜군을 서둘러 격퇴하자고.”

“예!”

상호는 야습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싸움에 가세하였다.

사방에서 왜군이 붙인 불이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군영 안으로 들어온 왜군과 조선군이 격돌하고 있었다.

“쳐라!”

“와아아!”

싸움에 끼어든 토벌대 대원들이 왜병들을 상대했다.

고작 수십 명이 끼어든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식은 보란 듯이 깨져나갔다.

파강.

“으윽, 발이 안 떨어져!”

“뭐야 이건?”

거미 몬스터인 ‘셀롭’에게서 얻은 거미줄을 토대로 만든 끈끈이 덫이 왜병들의 발을 꽁꽁 묶었다.

이렇게 발이 묶인 왜병들은 간단히 쓰러뜨리며 토벌대 대원들은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것을 본 왜병들이 달려와 창을 찔렀다.

“아앗?”

“크크, 소용없어!"

왜병 한 명이 찌른 창이 토벌대 대원이 장비한 갈색의 흉갑을 뚫지 못하고 옆으로 빗겨나간다.

마찰력을 최소로 하는 앙크헤드의 껍질을 갖고 만든 흉갑을 뚫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강한 힘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상호가 만든 몬스터 부산물을 이용한 아이템을 이것저것 갖춘 토벌대 병사들은 파죽지세로 왜군들을 무찔러갔다.

“에잇!”

이 틈에 상호는 남들 모르게 물을 소환해 화재가 난 곳을 진화해갔다.

그러면서 틈틈이 화살을 날려 말을 탄 무사들만을 저격하니 야습을 한 왜군들은 점차 혼란에 빠졌다.

결국 절반의 성공도 못 거둔 채 야습을 해왔던 왜군은 평양성으로 철수했다.

“어서 불을 꺼라!”

“화약을 안전한 곳을 서둘러 운반해!”

전투가 끝나고 다들 분주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물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피해 자체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사상자는 수백에 불과했고 군영 내의 물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낮의 전투를 하고 밤에도 전투를 치르고 만 조선군은 큰 피로를 떠안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음 날 예정되었던 공성전을 미루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총사령관인 이여송은 딱 잘라 이렇게 말했다.

“공격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야습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았기에 명군 측은 아쉬운 게 없었던 것이다.

싫든 좋든 명군, 이여송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처지이기에 김응서와 여러 조선군 장수들은 싫은 소리 하지 못하고 휘하 군대에 출진을 준비케 했다.

그리고 해가 뜨면서 둘째 날, 평양성 공격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