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一장. 평양성 전투. (1)
상호는 윈디고에게 점령당한 마을을 구하고 빙산으로 변한 산 깊숙이에서 윈디고 로드를 처단하고 게이트를 파괴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도 평안북도 일대에 있는 몬스터 게이트들을 차례차례 파괴하며 몬스터들의 영역을 줄여나갔다.
그리고 현재.
콰쾅!
큰 폭발이 일어난 직후에 바위 뒤로 몸을 숨겼던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게이트가 있던 자리엔 파괴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차원석을 채집해볼까.”
상호는 게이트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서 소량의 차원석을 채집했다.
이렇게 승리를 통해 몬스터 게이트를 파괴했지만 토벌대도 그만큼 희생을 치렀다.
“으으.”
“조금만 참아.”
여기저기서 신음하는 부상자들이 있었다.
모두 코볼트 무리와의 격렬한 전투를 치른 결과였다.
“사상자는 어떻게 나왔지?”
“다섯이 죽고 열한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
윈디고 토벌부터 계속해서 희생자가 나왔지만 이번 토벌의 피해가 가장 컸다.
특히 부상자 대부분은 열악한 조선의 의료 기술 때문에 대부분 합병증 등으로 사망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상호로선 토벌 경험을 쌓은 귀중한 인재를 고작 그런 이유로 잃는다는 게 무엇보다 아쉬웠다.
‘이럴 때는 사명대사가 가진 치료 능력 같은 게 필요한데.’
유일하게 치료의 능력을 받은 사명대가가 이곳에 있다면 지금 죽어가는 자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터였다.
아니면 하다못해 트롤의 피만 있다면 어떻게든 힐링 포션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허나 안타깝게도 숱하게 몬스터 토벌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트롤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막상 마주친다고 해도 재생력이 강하고 덩치도 인간보다 훨씬 큰 트롤 같은 강력한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일은 상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상호는 부상자들이 들것에 실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며 아쉬움에 이렇게 말했다.
“최대한 부상자들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봐.”
“안 그래도 인근에 실력 좋다고 소문난 의원들을 수소문에 집결지 불러놨습니다.”
“미리 준비해놓다니 잘했군. 그럼 명나라 인간들하고 같이 있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윈디고 토벌 때 호되게 혼이 난 위청홍은 그 뒤로 싸움에 나서지 않고 늘 안전한 지역에서 대기하였다.
말로는 감찰관인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이여송 장군에게서 받은 임무를 수행할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사실은 몬스터가 두려워 그것과 싸우는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임을 상호나 다른 토벌대 사람들도 다 눈치채고 있었다.
뭐 상호로선 이것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수거한 코어의 숫자는 총 몇 개지?”
“아홉 개입니다.”
“그럼 저쪽에게는 다섯 개만 넘겨주는 것으로 하지.”
상호는 그리 말하며 빨간색 코어 한 개와 푸른색 코어 세 개를 따로 챙겨 짐 보따리에 넣었다.
이러한 행동을 빤히 보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남준이 말했다.
“시체가 분해되면 부산물도 전부 수거해 놓겠습니다.”
“아아, 부탁하지.”
상호는 신뢰어린 시선으로 남준을 보았다.
처음에는 감시의 목적으로 곁에 붙었고 또 불신을 갖고 대했기 때문에 껄끄러운 관계였다.
그렇지만 토벌을 함께 하면서 서로간의 신뢰를 쌓는데 성공했고 네 명의 군관들이 진심으로 따르게 했다.
덕분에 이제는 자신과 이항복이 가진 생각과 계획을 은밀히 알려주고 그 협력도 받을 수 있는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그런데 나리.”
“뭐 또 내게 할 말이 있나?”
“이렇게 계속해서 명군에게 조공을 한다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남준은 위청홍에게 넘겨줄 몬스터 코어를 보며 이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 그의 의문에 상호는 이를 드러내는 미소를 보이며 답변했다.
“훗, 그 점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네? 그게 무슨 말이신지?”
“저들이 갖는 능력자는 숫자만 많을 뿐, 그 깊이는 현저히 낮을 거거든.”
상호는 이여송 측의 요구에 따라 몬스터 코어의 쓰임새를 알려주었다.
이때, 그는 한 가지 주의를 주었다.
“이 보옥의 힘을 평범한 인간이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6개월, 그 기간 동안에는 다른 보옥의 힘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빼놓지 않았다.
“만약 욕심을 부려 기간보다 빠르게 또 다른 보옥의 힘을 취하려 한다면 몸이 부서질 것입니다.”
확실한 죽음을 경고하는 말.
이렇게 했으니 이 충고를 저버리는 일을 벌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만약 경고를 무시하고 저지른다면 내가 오히려 곤경에 처하겠지만··· 귀한 몬스터 코어를 자칫 낭비할 수 있는 그런 무모한 시도는 현재로서는 함부로 못하겠지.’
사실 이 모든 얘기는 상호가 지어낸 말이었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경고한 것은 명군의 능력자가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약을 두게 하면 숫자만 많을 뿐, 상호나 그를 따르는 능력자보다는 현저히 약한 능력자만 명군이 갖도록 할 수 있다.
이것은 향후 명군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상호의 포석이었다.
산을 내려가면서 상호는 남준에게 말을 건넸다.
“다음 이동지가 어디였지?”
“이곳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차호산입니다.”
“오늘 쉬고 내일 쯤 출발하면 모레에 당도할 수 있겠군.”
“충분히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오늘은 아래 마을에서 푹 쉬고 내일 떠나자고.”
“네.”
상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행군과도 다름없는 토벌 일정 속에 간간히 있는 휴식은 이들에게 있어 단비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쉴 때면 상호가 어떤 수단을 써서든 병사들에게 충분한 고기와 술을 안겨줬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윽고 토벌 전에 집결지로 삼았던 마을에 당도했다.
마을엔 산 위의 코볼트에게 고통받던 마을 주민 말고도 위청홍 일행이나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인원이 있었다.
그런데 떠날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전혀 뜻밖의 인물이 상호를 맞이했다.
“대사?”
“오래만입니다.”
상호가 마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명대사였다.
파앗!
환하고 따스한 빛이 나타나니 찢어진 상처가 급격하게 아물어진다.
놀라운 기적을 본 다리를 다친 병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탄성을 터트렸다.
“아아.”
“피를 많이 흘렸으니 그것을 보충할 수 있게 든든히 먹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부상자의 치료를 마친 사명대사는 합장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줄곧 지켜본 상호는 슬쩍 눈짓을 해보이며 먼저 걸음을 뗐다.
이에 사명대사는 뜻을 눈치채고 조용히 그 뒤를 따라 사람 없는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이윽고 두 사람은 방에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상호였다.
“어떻게 이곳에 오신 겁니까, 대사.”
“자네가 이곳에서 요괴들을 토벌한다는 얘기를 풍문을 들었네. 해서 나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이곳에 온 것이지.”
“아니 승병 부대를 이끌고 왜군과 싸우셔야 할 분이 어찌 저를 도우러 온단 말입니까?”
“그것이라면 걱정 말게. 다 허락을 받고 할 일이니.”
사명대사는 스승격인 서산대사와 함께 승병들을 이끌고 평양성 전투에 참가하며 의병 활동을 펼쳤다.
전투가 끝난 뒤에는 백성을 구휼하고 타지에서 오는 승병들을 훈련시키며 관군과 함께 다음 평양성 공략 때를 기다렸는데 그 와중에 상호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에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허락을 받고 잠시 승병부대를 떠나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명의 지원군이 도착한 이상, 우리 승병이 나설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왜군보다 백성들을 위협하는 요괴 토벌이 더 급선무라 생각해 이런 결정을 내렸네.”
“하아, 저야 대사께서 함께 하면 든든하긴 합니다만······.”
생각지도 못한 사명대사의 합류.
회복 능력을 가진 그의 합류는 분명 기쁜 일이었다. 다만 의병장으로 활약해야 할 사명대사가 이쪽으로 온 부분이 찝찝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온 사람을 내칠 수는 없는 일!
상호는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저야 대사께서 함께 한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나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사명대사의 합류로 구명하기 힘들다고 여겼던 부상자 여럿을 살려냈다.
또한 비교적 부상이 가벼웠으나 싸움에 참가하기 힘들었던 인원들이 다시 전력으로 합세하였다.
이런 사명대사의 능력을 본 남준이나 다른 군관들도 합류를 기꺼이 환영했다.
상호가 바라던 회복 담당이 생기고 이후의 토벌은 전보다 한결 쉬워졌다.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면서 연달아 토벌을 개시했는데 다행히 삭주 땅에서처럼 Ⅱ단계 이상의 몬스터 게이트는 발견되지 않았고 몬스터도 윈디고와 같은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들도 만나지 않았다.
모처럼 순조로운 행보를 걷던 상호와 그의 토벌대.
하지만 이러한 행보에 제동을 거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다.
그 일은 바로 어명을 갖고 온 금부도사를 접견한 일이었다.
“우리보고 평양성 전투에 합류하라는 겁니까?”
“그렇다.”
상호는 어명을 직접 말로 전달한 금부도사를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그 시선에 잠시 움찔했지만 곧 금부도사는 평정을 가장하며 답했다.
“이것은 분명 주상 전하께서 직접 하명하신 일이네.”
“···하지만 아직 토벌해야 할 요괴가 많이 남았습니다. 당장 이곳에만 해도 족히 삼백 마리가 넘는 홉고블린들이 둥지를 틀고 있단 말입니다.”
“커흠! 그 홉고블린인가 뭔가 하는 것은 조만간 명군이 와서 토벌할 것이다.”
“뭐라고요?”
아직 이여송이 별도로 병력을 내서 토벌대를 조직한 것을 모르는 상호로선 금부도사의 지금 말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금부도사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는 따질 수 없었다.
“제길!”
설마 이렇게 빨리 요괴 토벌에 직접 나설 줄은 몰랐다.
상호는 분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흥분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런 그에게 사명대사가 말했다.
“명에서 신통력을 최대한 많이 거둬들이기 위해 손을 쓴 것 같네.”
“그렇겠죠.”
이때, 같이 상황을 겪은 김태진이 상호처럼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어찌 조선을 구원하러 왔다면서 왜군을 상대하는 전장이 아닌 다른 곳에 병력을 내보내는 것인지 납득이 안 갑니다.”
“자네 말이 맞아. 조정에서 이렇게 명군이 멋대로 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본 건가.”
또 다른 군관인 백준수도 분노를 드러냈다.
명군은 어디까지나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온 것이다.
사사로운 목적을 갖고 군대를 나눈 것은 조선 조정의 뜻에 반하는 행동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말 한 번 못하고 명군이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둔 것은 그만큼 선조나 조정이 명군의 눈치를 살핀다는 뜻이 되었다.
다들 이러한 것을 알고 분노를 표했지만 이런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를 일부러 평양성으로 보내는 것도 하나라도 더 자기네가 몬스터 코어를 취하기 위해서겠지.’
따로 몬스터 코어를 챙기는 것이 들켜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보다 많은 인원으로 단기간에 몬스터 코어를 확보하기 위해 명군이 병력이 나눈 탓에 평양성 공략에 필요한 전력이 약화되어 그것을 채우기 위해 상호와 그 휘하 토벌대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아무튼 상호로선 어명으로 내려온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토벌은 중지하고 명령대로 평양성 공략에 참가하는 수밖에.”
“크윽.”
감정을 추스르고 담담히 말하는 상호를 보며 다른 자들도 울분을 삼키며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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