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장. 혹한의 위기. (2)
사망자가 한 명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두 무사히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추, 춥······.”
“어서 담요를 가져와!”
온 몸이 꽁꽁 얼어붙어 두 발로 서 있지도 못하게 된 위청홍과 그 수하들은 거의 초죽음 상태였다.
급히 병사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 쪽으로 데려갔지만 당분간 일어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저 작자들이 리타이어해주면 나야 고맙지.”
상호는 이제야 홀가분하게 토벌에 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드러냈다.
적의 정체도 알았고 이제 토벌을 어떻게 할지 판단해야 할 때였다.
“여기가 놈들의 본거지는 아니지만 세력 확장으로 장악한 거점인 게 확실하다. 우선 여기에 있는 놈들부터 토벌하고 그 본거지를 쫓는 게 최우선이라고 본인은 판단하는데 귀관들의 생각은 어떻지?”
“토포사 나리의 뜻을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 요괴들을 어떻게 토벌할 지라고 생각합니다.”
“소관의 생각도 같습니다. 우리야 나리가 주신 신묘한 옷 덕에 추위를 거의 느끼지 않고 평소처럼 활동할 수 있었지만 일반 병사들은 저 안에서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오래 버티지도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마을 내부의 환경은 보통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병력을 데리고 마을 내부로 돌입해 전투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상호는 곰곰이 생각하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이번에 가져온 보급 물자 중에서 동물 기름이 있지 않나?”
“있기는 합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화공을 쓰는 것은 어때?”
“화공 말입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합니다만······.”
장기간에 걸쳐 여러 곳의 몬스터들을 토벌할 작정이었기에 이번 출발 때 최대한 많은 물자를 챙겼다.
개중엔 화공을 전개할 때를 대비해 준비한 동물 기름도 있었다.
분명 기름을 이용해 인화한다면 지독한 한파라 할지라도 쉽게 강한 불길을 일으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준은 말했다.
“저희가 보유한 기름은 총 두 통입니다. 이 정도 양 갖고는 마을 전체에 화재를 일으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나도 그 점은 알고 있어. 해서 난 함정을 파서 놈들을 유인하는 쪽으로 작전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되겠습니까? 애초에 마을 안에 있는 요괴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어떻겠습니까?”
군관 중 백준수가 상호와 남준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다.
자칫 무례하게 비칠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상호에겐 그것을 중요하지 않았다.
“얘기해 보게.”
“네. 아까 마을에서 싸울 때 안 것인데 놈들은 눈을 통해 우리의 움직임을 보는 것보다 귀로 반응하며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백준수의 말에 상호도 윈디고의 특징 하나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상호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미처 말 못한 게 있는데 윈디고는 자네 말처럼 시각이 거의 없지만 청각이 매우 뛰어난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괴다.”
“역시 그랬군요. 그렇다면 놈들의 뛰어난 청각을 역이용해서 놈들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작전을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호오.”
상호는 백준수의 의견에 꽤 흥미를 느꼈다.
한 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남준이 상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눈보라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적어도 눈보라만 없으면 요괴들을 소탕하는 게 한결 수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 그 부분은······.”
상호는 마을 내부에만 일어나는 강력한 한파가 자신의 주변에 냉기를 일으킨다는 윈디고의 특성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저 현상은 윈디고들이 한 곳에 모여 생긴 현상이다. 그런 만큼 놈들의 숫자만 대폭 줄여도 저 눈보라와 한파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다.”
“아.”
“좋아, 한 번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보자고.”
“네!”
상호는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네 명의 군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완성시켰다.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또 위청홍과 그의 수행원들이 참견하지 못하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작전은 바로 개시되었다.
“자, 빨리! 시간이 없다!”
“넷!”
병사들은 눈보라가 치는 경계까지 이동해 함정을 준비했다.
“그럼 이쪽의 준비를 맡기겠다.”
“예, 토포사 나리.”
상호는 남준 등 다른 군관들에게 함정 설치와 전투 준비를 일임하고 홀로 마을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지금 저 안쪽의 혹독한 환경에서 능력자가 아니면 유인 작전을 펼칠 수 없기에 군관들의 만류에도 부득불 우겨 단독으로 침입하기로 한 것이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아아.”
상호는 모두의 걱정스런 시선을 받으며 마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뚜벅뚜벅.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놈들이 슬슬 따라붙는군.’
상호는 보이진 않아도 기척으로 주변에 윈디고들이 슬금슬금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디서든 갑자기 공격이 올 수 있는 상황.
다이어 울프 가죽 옷 덕에 추위에 따른 감각 둔화가 상대적으로 덜하다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약화된 만큼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사박.
“······.”
걸음을 옮기던 상호가 갑자기 멈춰 섰다.
멈춘 그의 두 눈동자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향한 순간!
“핫!”
상호는 기합과 함께 세찬 눈보라를 향해 검을 힘껏 그었다.
그러자 갈라진 눈보라 너머로 베인 윈디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
상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빠르게 몸을 돌리면서 검을 힘껏 찔렀다.
막 상호를 소리 없이 덮치려 했던 윈디고가 푸른 액체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 정도에 당할 것 같으냐.’
상호는 기습을 계속 물리치며 마을 중앙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곳엔 아까 상대한 바 있던 상위 윈디고가 있었다.
“크크크.”
“···마치 날 기다렸다는 반응이구나.”
상호는 음산하게 웃는 상위 윈디고를 노려보았다.
아마 이 놈이 게이트를 떠날 수 없는 로드를 대신해 이 마을을 장악한 윈디고들을 이끄는 게 분명했다.
“마침 잘 됐군. 나도 네 녀석을 처치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차였다.”
상호는 유인 작전에 방해가 될 저 놈을 먼저 없앨 요량으로 검을 치켜들었다.
“으어어어!”
고개를 쳐들며 소리치는 상위 윈디고.
그 순간!
놈의 주변에서부터 아까 봤던 얼음 고드름들이 무수히 만들어져 상호에게로 날아들었다.
“흥!”
그것을 본 상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까는 명 측의 인물들 때문에 마음껏 쓸 수 없었지만 보는 눈이 없는 지금이라면 마음껏 실력을 뽐낼 수 있다.
“수룡시!”
상호가 만들어낸 물의 화살이 얼음 고드름들을 일제히 요격해냈다.
정확하게 숫자를 맞춰 ‘수룡시’를 만들었던 상호는 그대로 있지 않고 부서져 떨어지는 얼음 파편 사이로 과감히 몸을 던졌다.
“받아라!”
외치면서 빠르고 강하게 검을 내지르는 상호.
상위 윈디고는 양팔을 교차하여 검을 막고자 했다.
단단한 몸뚱이를 믿고 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큰 실수였다.
파각!
검은 단번에 팔을 절단했다.
“크엑?”
“지금 건 피했어야지.”
비웃으며 상호는 검을 재차 휘두르려 했다.
위기에 몰린 상위 윈디고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재차 얼음 고드름을 만들어내 상호에게 날렸다.
“질리지도 않고 같은 수냐!”
상호 역시 ‘수룡시’를 계속해서 만들어내 날아드는 얼음 고드름을 족족 요격했다.
그렇게 하면서 거리를 좁힌 상호가 일격을 취하려는데 이번엔 다른 윈디고들이 방해했다.
“칫!”
상호는 대장을 지키며 쓰러지는 윈디고를 보며 혀를 찼다.
그 사이에 상위 윈디고는 임시로 얼음으로 자신의 팔을 만들고 흉악한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으어어어!”
그리고는 냉큼 달려와 칼처럼 만들어진 두 팔을 사정없이 휘둘러댔다.
상호는 그것을 피하면서 아래서 위로 간격을 잡아 검을 빠르게 출수했다.
가슴팍에 검이 훑고 지난간 긴 상처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 정도엔 상위 윈디고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호는 목을 노리고 오는 팔을 피해 아래로 몸을 숙이더니 곧장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거리를 벌렸다.
“하앗!”
이때, 상호는 ‘물의 속성력’을 전력으로 펼쳐 상위 윈디고가 있는 자리엔 물기둥이 솟구치게 했다.
한 번 솟아오른 물기둥은 곧 주변의 한파에 의해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말 그대로 온전한 기둥 형태로 얼어붙었는데 그 안에 상위 윈디고가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흥! 자기의 능력에 자기가 당한 기분이 어떠냐.”
‘얼음의 속성력’을 쓰고 종족 자체가 냉기와 가까운 윈디고가 얼음에 갇혀 당한 것은 상당히 역설적인 일이었다.
아무튼 주변 환경을 이용해 까다로운 적을 물리친 상호는 이제 유인 작전을 펼치기 위해 준비한 것을 꺼냈다.
“자, 신명나게 소리내볼까.”
상호가 꺼내든 것은 한민족 전통의 악기인 꽹과리였다.
콰쾅콰쾅!
상호가 힘껏 막대로 꽹과리를 치자 천둥소리처럼 큰 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으어어!”
“아아아아!”
여기저기서 이 소리에 반응하는 윈디고의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청각이 민감한 만큼 큰 소리가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후훗.”
상호는 연신 꽹과리를 울리면서 왔던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윈디고들이 일제히 그를 잡고자 뛰기 시작했다.
‘좋아, 따라와라.’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에 윈디고들이 득실거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계획대로 유도가 되자 상호 또한 힘을 내 더욱 꽹과리 소리를 울려 퍼트렸다.
“저기 오신다!”
그렇게 유도를 하여 함정이 있는 곳까지 달려오니 어느새 간단한 진지까지 갖추고 대기하고 있는 우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호는 계속 소리를 내면서 함정을 피해 우군이 있는 진지로 들어갔다.
한 편, 그의 뒤로 족히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윈디고들이 달려왔다.
“지금이다!”
“쏴라!”
명령에 갑사들이 불화살을 앞으로 쏘았다.
그것들은 곧장 날아가 기름을 흠뻑 묻힌 건초 더미에 꽂혔다.
화르르륵!
미리 준비한 대로 불길은 일대에 빠르게 퍼져갔다.
“으어어어억!”
그 안에 갇힌 윈디고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팔을 휘저으며 불길을 피하려는 윈디고들. 하지만 사방에 불이 있어 퇴로는 없었다.
결국 한 마리도 남지 못하고 모두 불태워져 죽어갔다.
“와아아!”
“이겼다!”
적이 섬멸되자 모두가 승리의 환호성을 터트렸다.
윈디고가 몰살당하자 아까까지만 했던 세차게 불던 눈보라도 한파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게 되어 꽁꽁 얼어붙었던 마을은 다시 따스한 햇살 아래에 드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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