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90화 (90/127)

二十장. 혹한의 위기. (1)

갑작스레 나타난 적을 확인한 상호가 다른 이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내가 있는 쪽으로 모여!”

“네!”

이제는 상호의 말에 재깍 움직일 정도로 그를 따르게 된 4인의 군관들은 재빨리 상호 곁으로 모여 서로 등을 맞댔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상황 판단을 못한 위청홍은 상호 쪽을 보며 소리쳤다.

“저것들은 대체 뭔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야?”

“쯧! 눈치도 없이 떠들기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럴 여유는 없을 것 같다.”

상호는 검은 형체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말했다.

마침내 눈보라 사이로 적은 그 모습을 드러내며 공격해왔다.

쉬아아앗!

“어딜!”

상호는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새하얀 팔을 보고 검을 들어 자신을 지켰다.

서리가 잔뜩 낀 것 같은 울퉁불퉁한 새하얀 피부, 동공이 빈 것처럼 보이는 흰자 없는 새까만 눈.

이 외형을 통해 상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윈디고였구나!”

현대에선 윈디고 또는 윈터 와이트로 불리는 몬스터.

주로 북미 지역에 나타나는 몬스터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존재의 무서움은 익히 알고 있는 상호였다.

“이제야 이 마을이 이렇게 되어버린 게 이해가 가는군.”

윈디고는 심장까지 얼어붙게 할 만큼 냉기를 자신의 주변에 일으키며 자신의 신체에 닿는 것을 모조리 얼어붙게 만드는 몬스터이다.

마을 전체가 냉기의 눈보라에 휩쓸린 것도 마을 주민들이 특별한 외상도 없이 서서 얼어붙어 죽은 것도 전부 윈디고의 특성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 윈디고의 손을 막은 상호의 칼이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치잇!”

상호는 힘을 줘 칼을 떼어냈다.

그러면서 윈디고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다들! 놈들에게 닿는 것을 주의해라! 섣불리 접촉하면 여기 있는 얼음 동상처럼 되어버린다!”

“접촉하면 안 된다니······.”

“하지만 적을 쓰러트리려면 붙어 싸워야 하거늘. 어찌 거리를 두고 싸우라는 건지.”

실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다보니 주변을 포위하고 조금씩 접근하는 윈디고를 빤히 보고도 손을 쓰지 못했다.

“사방에 적이다.”

“큭! 이래서는 손도 못 써보고 당하고 말거야.”

손도 못 쓰고 당할 위기였다.

이때, 과감하게 행동을 결정한 이가 있었다.

“여기서 어물쩍거리면 모두가 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앞에 나서 퇴로를 열겠습니다.”

“이봐, 무모한 짓을 말게!”

“괜찮습니다!”

김태진은 다른 군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윈디고를 향해 돌격했다.

털옷의 가호 덕에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전혀 약해진 모습 없이 달린 김태진이 윈디고를 향해 힘껏 환도를 내리그었다.

그런 일격이 날아옴에도 윈디고는 무방비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퍼걱.

검격은 확실히 제대로 들어갔다.

“말도 안 되는, 검이 박혀들어가지가 않아?”

김태진은 자신이 내리친 일격이 상대의 어깨를 제대로 베지 못한 것을 보고 경악해했다.

이런 가운데, 윈디고의 몸에 생긴 상처에서 피 대신 걸쭉한 푸른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 액체는 액체 질소처럼 무척 낮은 온도여서 순식간에 상처를 얼렸다.

그리고 그 상처에 박힌 칼날을 따라 냉기를 전파했다.

“어서 검을 놔!”

“어엇!”

만약 상호가 달려와 김태진의 손을 손잡이에서 떼어내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지금 꽁꽁 얼어붙은 환도처럼 김태진도 얼어붙었을 것이다.

우드득.

윈디고는 자신의 몸에 붙들린 얼어붙은 환도를 힘을 줘서 떼어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접근해왔다.

“괴, 괴물!”

일련의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위청홍은 다분히 겁에 질려 접근하는 윈디고들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떠밀었다.

“어서 저것들을 막지 뭣들 하느냐!”

“하, 하오나!”

“당장 저것들을 없애!”

상관의 명령에 그의 수하들은 마지못해 무기를 뽑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뽑지 못했다.

“이런! 검집의 이음새가 얼어붙어서 검이 안 뽑혀!”

“이익!”

계속된 한파에 방치했으니 얼어붙는 게 당연했다.

속절없이 무기를 뽑지 못하는 위청홍의 수하들에게로 윈디고가 가까워졌다.

“허억!”

가장 앞에 있던 자가 윈디고의 손에 붙잡혔다.

머리를 잡힌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금방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다.

“흐아아앗!”

“살, 살려줘.”

겁에 질린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은 위청홍의 수하들이었다.

윈디고는 그런 그들을 향해 다시금 손을 뻗었다.

“······.”

상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윈디고를 견제하면서 곁눈질로 위청홍 쪽의 상황을 보았다.

방금 전, 그가 마음먹었다면 희생된 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내심 생각하는 게 있어서였다.

‘여기서 몬스터에게 희생되었다고 하면 조선 조정이나 명군 측에서도 쉽게 추궁하진 못하겠지. 아예 이 기회에 저들이 사라졌으면 좋겠군.’

안 그래도 어떻게 위청홍 일당을 처리할까, 고민하던 차였기에 지금은 상호에게 있어 호기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호의 속내를 모르는 남준이 나서게 되면서 일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노오옴!”

남준은 위청홍을 구하고자 그의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환도로 윈디고의 목을 쳤다.

하지만 그의 힘으론 윈디고의 목을 치는 것은 무리였다.

“크읏.”

목에 댄 칼날을 따라 냉기가 퍼져올라온다.

그것을 본 남준이 흠칫하던 그 순간.

“비켜.”

상호는 남준을 밀치고 대신 환도를 잡았다.

“하아앗!”

기합과 함께 환도를 움직이니 윈디고의 목은 단숨에 잘라졌다.

이를 본 남준은 자신의 옆에 선 상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토포사 나리.”

“자네들 힘으론 놈들을 벨 수 없다.”

상호는 그리 말하며 원래 자신이 쓰던 검으로 또 다른 윈디고를 베어 넘겼다.

무예를 익히고 몸을 단련한 군관들조차 제대로 베지 못할 만큼 얼음처럼 단단한 윈디고의 신체도 초인의 경지에 접어든 상호의 힘 앞엔 간단히 베여졌다.

“놈들은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죽이기 힘들다. 불이 약점이니 그것으로 놈들의 신체를 태우는 게 최선이다.”

“불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지금 여기에 불은······.”

상호의 설명에 남준은 난처함을 드러냈다.

이런 강한 눈보라 속에서 불씨를 피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횃불쯤은 금방 꺼질 것은 알아서였다.

상호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은 우리 쪽이 너무 불리하다. 일단 본대와 합류해 다시 작전을 짜 토벌을 재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저 또한 찬성입니다.”

철수를 결정지었지만 문제는 여기를 빠져나갈 방법이었다.

한 걸음 조차 떼기 힘들게 하는 눈보라와 그 숫자를 알 수 없는 윈디고를 뚫고 마을 바깥까지 무사히 나갈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낮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저 자들을 윈디고에게 재물로 던지는 것인데······.’

상호는 벌벌 떨며 군관들 등 뒤에 숨은 명나라 인물들을 힐끗 보았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런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기엔 헌터로 굴러먹은 세월이 너무 길다.

하지만 대놓고 일을 저지르자니 남준을 비롯해 군관들의 눈이 부담스러웠다.

“쳇, 할 수 없지.”

상호는 왔던 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앞에서 길을 열 테니 절대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라.”

“예, 나리!”

탈출을 위해 상호가 앞장 서 길을 뚫고자 달렸다.

그런 그를 막고자 윈디고들이 움직였다.

“하아앗!”

기합과 함께 상호가 검을 휘두르니 윈디고들은 단숨에 쓰러졌다.

하지만 이 눈보라 속에는 드러났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윈디고들이 존재했다.

더욱이 개중에 몬스터 코어를 품은 상위 개체도 존재했다.

파바밧!

“이런!”

상호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얼음 고드름을 보고 급히 손을 놀렸다.

휘두르는 검을 따라 고드름들은 부서졌다.

다행이랄까, 이 공격은 선두에 선 상호에게만 집중된 덕에 뒤따르던 이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크크크.”

“쳇! 귀찮은 녀석이 있군.”

상호는 앞쪽에 유독 다른 윈디고보다 존재감을 과시하는 윈디고를 보며 혀를 찼다.

저걸 뚫고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택했다.

파바밧!

눈보라를 가르며 상호의 일격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검이 번뜩일 때마다 윈디고들이 쓰러져갔다. 하지만 ‘얼음의 속성력’을 쓰는 윈디고 상위 개체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파바밧!

이번에는 정면에서 얼음 고드름이 쏟아졌다.

“제길!”

이번에도 검으로 연신 날아드는 고드름을 힘겹게 쳐내는 상호였다.

본래라면 간단히 ‘물의 속성력’을 써서 방패를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위청홍이 있어 그 수단은 쓸 수 없었다.

핏!

부순 고드름 조각이 팔 언저리를 스친다.

“으아아앗!”

상호는 뒤에 있는 부하들을 생각해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고드름을 부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검의 간격에 들어서고 능력을 발휘하는 윈디고를 향해 전력을 다한 검격을 날렸다.

“킥킥!”

다른 윈디고와 다르게 고위 윈디고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뒤로 폴짝 뛰어 공격을 피해냈다.

상호는 멀찍이 떨어진 초가집 지붕 위로 피한 놈을 노려보았다.

“피해? 너, 나중에 두고 보자.”

지금은 놈을 처치하는 것보다 여기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상호는 놈이 능력을 쓰거나 다시 덤벼올 가능성을 생각하며 앞에 방해되는 윈디고를 베면서도 놈에게서 주의를 놓치지 않았다.

“······.”

상위 윈디고는 이러한 상호의 견제 때문인지 더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 상호에게서 내내 눈을 떼지 않으며 그의 얼굴을 기억하였다.

“조금만 더 힘내라.”

“저희는 괜찮습니다만···위 도사가 너무 지쳐있습니다.”

“진짜 골칫거리군.”

상호는 뒤에 처져 이쪽 군관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걸음을 옮기는 위청홍을 보며 말했다.

아직 마을 바깥까지는 좀 더 가야했다.

지금도 초가집 안쪽과 집 사이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윈디고가 나오는 상황에 미적거릴 여유는 없었다.

‘할 수 없지.’

부하들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지금은 위청홍을 구해줘야 할 것 같았다.

상호는 앞에 더는 적이 없어지자 뒤쪽으로 돌아가 위청홍과 상태가 안 좋은 한 명을 각각 옆구리에 끼었다.

“무, 무슨······.”

“잠자코 얌전히 있어.”

상호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고 다시 앞으로 날듯이 뛰었다.

놀라운 힘으로 둘을 들고도 앞서 먼저 뛰어가는 일원들을 재친 상호는 제일 먼저 눈보라가 급격히 약화되는 마을 바깥까지 당도했다.

그런 상호를 쫓아 나머지 인원도 무사히 탈출했다.

“으어어어.”

윈디고는 눈보라가 약한 지점을 두고 더 이상 추격해오지 않고 다시 마을 안쪽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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