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9화 (89/127)

十九장. 명군의 참전. (3)

연회장의 분위기를 띄우며 상호는 몇 가지 재주를 더 보인 후에 힘을 거뒀다.

그리고는 선조와 이여송이 앉은 자리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별 볼 일 없는 소인의 재주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이것뿐이더냐.”

기대와 다른 구경거리에 살짝 실망한 이여송이 말했다.

이를 역관을 통해 전해들은 상호는 일부러 더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인의 힘으로는 보일 수 있는 게 이것뿐입니다.”

상호가 이리 말하며 나오자 이여송은 자신이 수하들이 앉은 쪽을 보며 말했다.

“저 자가 정말로 그 선계에서 왔다는 선인인가. 소문과 다르게 신통력이 대단하지 않군 그래.”

“제가 본 신통력은 저 자의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장군.”

명의 장수들 중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그는 앞서 요동 부총병 조승훈으로 앞서 조선을 돕기 위해 선발대로 출병한 바 있었다.

왜군의 힘을 얕보고 평양성 공략을 시도했다가 절반에 가까운 병력을 잃고 도로 만주로 돌아갔다가 이번에 다시 본대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다친 자의 상처를 말끔하게 낫게 할 뿐만 아니라, 장사라고 보기 힘든 중이 괴력을 발휘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지금 조승훈이 말하는 이들은 능력자들은 바로 사명대사와 그 휘하에 있는 승병들이었다.

묘향산의 사태를 해결하고 평양성에 있는 관군을 돕기 위해 나섰던 이들 승병들은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다.

상호와 한 약조가 있어 가진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불가피하게 능력을 쓸 때가 있었고 그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퍼저 조승훈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조승훈이 패장으로 만주로 도망쳐 갔다가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 사실을 이여송에게 알린 게 지금 일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이여송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역관을 통해 선조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이대로 끝내면 아쉬울 것 같으니 한 번 저 선인과 소장 휘하의 무관과 겨루기 시켜봄이 어떻겠습니까.”

“대련을 말인가?”

“그렇습니다.”

“자네 뜻대로 하게나.”

선조의 승낙이 떨어지자 이여송은 자신을 호위하는 호위 무관 중 한 명을 내보냈다.

상황을 전해들은 상호는 그를 보며 속으로 이리 생각했다.

‘젠장, 대충 보내주지. 이제는 저 자와 싸워야 하나.’

잘 단련된 몸과 행동거지를 봤을 때, 상당한 무인으로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호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한 방에 보낼 수도 있겠지만···능력을 숨겨야 하니 적당히 상대하다가 끝내야겠다.’

최대한 짜고 치는 싸움이 아닌 것처럼 꾸며 아슬아슬하게 이길 요량이었다.

“그래, 좋다. 바라는 대로 재롱을 떨어주지.”

상호는 다른 이의 귀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걸음을 옮겼다.

대련은 맨 손으로만 치루고 어느 쪽이 먼저 항복하는가가 승패를 가르는 방식이었다.

“훗.”

갑옷과 투구를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상대편이 비웃음을 섞은 웃음을 내보였다.

이러한 도발에 상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자, 시작해라.”

이여송의 말에 연회장 한쪽에서 대기하던 악단 쪽에서 신호 삼아 징을 울렸다.

탓!

먼저 움직인 쪽은 명군 측 무인이었다.

“하앗!”

거리를 줄이며 무인은 날카롭게 주먹을 앞으로 찌르듯 날렸다.

외야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번개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상호한테는 하품이 나올 정도를 느린 움직이었다.

‘그냥 피해도 되겠지만······.’

상호는 주먹이 닿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기다렸다가 슬쩍 몸을 비틀었다.

타격점이 빗겨나면서 주먹의 위력은 감쇠했다.

“우윽.”

하나도 안 아프지만 상대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아픈 듯 신음을 흘리며 구겨진 표정을 짓는 상호.

이를 본 상대는 기세를 올리며 다시금 팔을 크게 휘둘러왔다.

“흡!”

팔로 그것을 막고 상호는 왼다리로 발차기를 날렸다.

이를 피해 상대가 물러났기에 다시 다리를 내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 손바닥으로 상대의 가슴 한가운데를 때렸다.

상호의 입장에서 그냥 가볍게 툭 치는 정도였지만 상대에겐 그게 그렇지 않았다.

“크헉!”

상호는 신음을 뱉으며 뒷걸음질 치는 상대를 보고 아차 싶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상대는 독기 품은 눈빛을 취하며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휴우, 다행이네.’

안도의 표정을 짓는 상호.

이 모습에 자신을 얕잡아보는 것이라고 오해한 무인은 중국어로 뭐라뭐라 소리쳤다.

물론 그 의미를 알 리 없는 상호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다시금 공방은 이어졌다.

화려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무인은 진지하게 상호를 상대로 밀어붙였다.

팽팽한 대결처럼 보였지만 이는 상호가 반쯤 유도한 결과였다.

‘하암, 슬슬 끝내볼까.’

속으로 하품을 하면서 상호는 간격을 좁혔다.

이에 상대는 재빨리 주먹을 뻗어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끔 시도했다.

하지만 상호는 그 주먹을 가볍게 흘려보내며 품 안으로 파고들어 턱을 올려 쳤다.

“컥!”

워낙에 빠른 손놀림이라 무인은 반응할 사이도 없이 그대로 얻어맞고 공중으로 떴다가 이내 쓰러졌다.

상호는 그것을 보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어떻게 된 거지?”

“허어!”

두 사람이 밀착된 바람에 마지막 일격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쓰러진 무인이 의식을 완전히 잃은 것으로 승패가 갈렸다는 사실을 알 따름이었다.

내심 명군 측의 일방적인 태도가 불만이었던 선조는 이 승패를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여송에게 이리 말했다.

“참으로 박진감 넘치는 대련이었지 않소, 이여송 장군.”

“그런 것 같군요, 전하.”

이여송은 자신의 부하가 당했다는 사실에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조에게 대답했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상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만 물러나게.”

“예, 예.”

상호는 내관의 말에 설렁설렁 대답하면서 연회장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마지막으로 이여송 쪽을 바라봤다.

‘이여송, 당신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지금은 공통의 적이 있기에 잠시 놔둘 뿐이다.

만약 앞으로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든 제거할 뿐이었다.

떠들썩한 연회가 벌어지고 이틀이 지났다.

선조는 당장이라도 명군이 평양성 탈환에 힘써줄 것을 바랬다. 하지만 이여송은 미적거리며 출발을 미뤘다.

이런 명군과 달리, 상호는 조정에 올라온 장계를 통해 파악된 몬스터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출발 준비를 끝마쳤다.

인원도 확충하고 보급도 소홀함 없이 채웠다. 그럼에도 상호의 기분은 내내 저기압이었다.

그가 그런 것은 명군 차림의 인원 다섯 명이 토벌대 속에 끼어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저들을 꼭 데리고 가야 합니까?”

“이 또한 명군 측이 제시한 조건이네.”

“···저들의 신변까지는 책임지지 못합니다. 알다시피 요괴와의 전투는 워낙 위험하니 말입니다.”

상호는 낮게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이 말엔 숨겨진 그의 진의가 있었다.

이항복은 이러한 상호의 말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어깨를 가볍게 두들길 뿐이었다.

불편한 관계가 되는 명군의 참관자들까지 해서 200명이 넘는 병력이 평안북도 태천군으로 향했다.

“이것 참 실로 신묘하군요. 이렇게 추운 날씨인데도 전혀 추위를 타지 않으니 말입니다.”

“쉿, 목소리를 낮추게.”

군관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백준수의 말에 남준이 꾸짖듯 말했다.

지금 뒤를 따라 말을 몰고 있는 명군 무관들의 의식해 그런 것이었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 상호는 자신이 만든 가죽 옷을 내려다보았다.

직접 다이어 울프의 가죽을 세공해 만든 이 옷은 영하 20도 아래인 현재 날씨에도 추위를 느끼지 않게 해준다.

‘마침 겨울에 다이어 울프의 가죽을 손에 넣은 것이 참 다행인 일이지.’

시간도 충분해 일곱 벌의 가죽 옷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을 상호 자신과 중간 지휘관인 네 명의 군관에게 나눠줬다.

덕분에 눈보라가 치는 먼 길을 가면서도 체력을 온존할 수 있었다.

“잠시 병사들을 위해 쉬고 가지.”

“알겠습니다.”

상호는 뒤따르는 병사들을 생각해 두 시간마다 휴식 시간을 부여했다.

그렇게 길을 떠나온 지 삼 일 째 되는 날, 장계를 보낸 태천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휘이이잉!

“으윽!”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관청이 있는 마을 입구에 당도한 토벌대를 맞이한 것은 숨결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냉풍이었다.

지금까지도 추운 날씨였지만 이렇게까지 차가운 바람이 분 적은 없었다.

“병사들이 더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일이 벌어진 느낌이 드는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날씨는 비정상이었다.

상호는 더 이상 병사들이 전진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자신과 그리고 저 차가운 바람에도 버틸 수 있는 다이어 울프의 가죽 옷을 입은 군관들만 데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에 반대를 하는 자가 있었다.

“잠깐, 우리를 두고 간다는 것인가?”

신경질적인 눈매를 가진 무관, 위청홍은 참관인으로 따라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호는 덜덜 떨면서 이렇게 말하는 위청홍을 짜증 섞인 눈빛으로 보다가 고개를 돌려 남준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유일하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남준은 위청홍에게 말했다.

“지금 마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어 잠시 정찰을 가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굳이 참관 측에서 따라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수는 없지!”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위청홍을 막지 못했고 결국 그도 함께 데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상호는 늑대 머리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마을로 진입했다.

휘이이잉!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바람은 더더욱 매서워졌다.

길 좌우로 있는 집들은 온통 새하얗게 얼어있었고 인기척은 전혀 있었다.

“아무리 북방 땅이 춥다고는 하지만, 마을 전체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춥다니.”

“이상합니다. 마을로 오기 전만 해도 이런 날씨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뒤따르는 김태진과 유길준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마을 안과 바깥이 이렇게 날씨가 틀린 것은 무척이나 기이한 일이었다.

상호는 이것이 몬스터에 의한 현상임을 거의 확신했다.

“앗! 저길 보십쇼.”

“사람인가?”

제대로 앞을 볼 수 없는 눈보라 앞쪽으로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보였다.

마을 주민이라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간 군관들은 실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은 사람이었지만 모두 하나같이 얼려져 꼿꼿이 세워진 시체였기 때문이었다.

“으윽.”

“어떻게 이런 일이······.”

다들 공포에 질린 표정을 생생히 담고 죽어 있는 시체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상호만은 냉철하게 시체의 상태를 살피고 이들이 죽은 이유를 알아냈다.

‘그냥 얼어 죽은 게 아니라 뭔가의 공격에 달아나던 중에 그대로 얼어붙어 죽은 것이다.’

냉기를 다루는 몬스터가 이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을 해쳤다는 게 거의 확실했다.

상호는 이러한 짓을 벌일 만한 몬스터를 떠올려보려 했다.

하지만 그가 그리 할 필요는 없었다.

스스슷.

휘몰아치는 눈보라 너머로 검은 형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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