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8화 (88/127)

十九장. 명군의 참전. (2)

추워진 날씨 속에 귀환한 상호와 토벌대는 환영식은 고사하고 돌아오자마자 별도의 장소에서 사실 상 구금당했다.

이는 신성군에게 닥쳤던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취하는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상호는 선조가 자신을 믿지 않아 이러한 조치를 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대접을 받을 것 알고 있었어도 기분은 썩 좋지 않군.”

며칠을 산을 누비다가 따뜻한 구들장이 있는 방에서 쉬게 되었어도 썩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바로 다음 토벌도 준비해야 하는데 얼마나 더 이렇게 있어야 하나 갑갑해하던 차에 상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바로 이항복이었다.

“대감 나리가 절 직접 찾아오시다니.”

“귀환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조정 일이 바빠 이제야 왔네.”

“이렇게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상호로선 이항복의 방문은 아주 기꺼운 일이었다.

조정에서 유일하게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이항복에게서 조정의 사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자네가 가져온 승전보는 조정의 대신들에게도 큰 충격을 일으켰네.”

“그거 의외군요.”

“아무래도 이곳 의주와 가까운 삭주 땅에 무척 위협적인 요괴 무리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

“하긴 그렇겠군요.”

상호는 살짝 비꼬듯 대답했다.

만약 의주와 가깝지 않은 곳이라면 과연 대신들이 이만큼 반응을 보였을까.

상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비틀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누르며 이항복 앞에서 이러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래도 이번에 그런 무리를 큰 피해 없이 소탕한 것에 대해 좋게 보는 대신들도 있다네.”

“···전하는 어떻습니까?”

“전하께서는 그리고 인근 지방에 대한 조사를 더 세밀히 하라 명하셨네.”

“그뿐입니까?”

솔직히 잘했다는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호 자신은 물론이고 토벌대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솔직히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호의 내색에 이항복은 겸연쩍은 표정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하의 어심이 완전히 돌려지기엔 시간이 너무 짧지 않은가. 앞으로 계속해서 충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분명 전하께서도 자네를 다르게 보실 것이네.”

“그렇게 되면 좋겠군요.”

상호는 큰 기대를 담지 않고 대답했다.

어쨌거나 조정이 이번 일을 통해 몬스터의 위협을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아 그리고 제가 전리품으로 가져온 보옥은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당초 이번 토벌에서 활약한 자들에게 나눠줄 예정이었지만 먼저 선조에게 전리품을 보여야 한다는 이항복의 뜻에 따라 그것을 양도했던 바였다.

곧 다시 몬스터 토벌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한 시라도 빨리 코어들을 돌려받고 싶었다.

헌데 이 말을 들은 이항복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그것을 본 상호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후우! 정말로 자네에게 면목 없네.”

“대감 어른?”

“사실 지금 이곳을 찾은 것도 이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네.”

진심으로 미안함을 드러내는 이항복의 태도만 봐도 뭔가 일이 아주 안 좋게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 말 않는 상호를 향해 이항복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은 어제 낮에 압록강 너머에 있는 명 지원군 진영으로 갔던 사신이 돌아왔네.”

“······.”

“그런데 그쪽에서 서둘러 도강을 하는 조건으로 우리 땅에 나타나는 요괴들의 신통력을 전부 자신들의 것으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 조건을 걸어왔네.”

상호는 이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애초에 명나라에서도 몬스터 코어의 능력을 알면 그것을 빼앗으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바였다.

어떻게 벌써 그 정보를 입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명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납득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 화가 나는 것은 다른 쪽에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얻은 힘을 순순히 전부 그들에게 바칠 생각인 것입니까?”

“···나 또한 왜군을 무찌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신통력을 우리 군을 위해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네. 하지만 명 측에서는 우리가 이 힘을 갖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어 자칫 양국 간에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네.”

“그렇다 해도 이번 토벌에서 획득한 것을 그들에게 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십니까?”

“후우, 일부 대신들이 이번에 얻은 전리품을 이여송 장군 측에 보내 그의 기분을 만족케 해야 보다 빨리 원군이 올 것이라고 얘기하였고 그것에 전하의 어심을 움직인 까닭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네.”

“하아?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나라의 전력이 되는 그것을······.”

“어쩌겠는가. 전하의 어명이 떨어졌으니 시행할 수밖에.”

이항복의 말에 상호는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안에서 삭여야만 했다.

이렇게 되면 이번에 얻은 전리품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몇 개는 따로 빼놓는 것인데.’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선택을 했으니 달리 방법은 없었다.

이런 상호에게 이항복은 아울러 이 말도 전했다.

“명 측에 신통력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은 자네뿐이 없네. 곧 명의 지원군이 의주에 도착하면 그들에게 시연을 보이고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됐는데 뭘 마다하겠습니까. 다만 명군이 오기 전에 이 한 가지를 대감께서 이 점만은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보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힘은 나라간의 균형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것입니다. 이를 가지려는 명의 입장에서 조선 땅은 노다지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명에서 우리 조선을 노릴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명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조선을 쳐들어온 왜도 그렇고 북쪽의 거란, 여진족도 쟁탈전에 참가하겠죠.”

“우리 조선이 저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란 얘기인가.”

“네.”

이항복은 상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이해했다.

심각해진 이항복은 상호에게 의견을 구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조선 땅은 지금 더 아비규환이 될 것이네.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명의 눈을 피해 그들보다 더 많은 힘을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조정과 그리고 주상 전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이것은 은밀히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상호는 이항복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말한 계획은 면밀히 따지면 국왕인 선조를 속이는 것이었다.

자칫 반역 행위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을 병조판서나 되는 이항복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사실 낮았다.

그래도 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면 생각을 바꿔 주리라 믿고 이렇게 말을 것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이항복이 입을 열어 말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책임질 테니 자네가 알아서 해보게.”

“감사합니다, 대감!”

상호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해했다.

이에 이항복은 미소를 짓지 않고 대신 엄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대신 이 건에 대해서는 나와 자네만 아는 것으로 하지. 그리고 당장은 병사들에게 힘을 나눠줘선 안 되네.”

“알고 있습니다.”

비록 이번 토벌을 통해 신뢰를 얻었다지만 기본적으로 남준을 비롯한 군관들은 상호를 감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조정의 결정에 반하고 힘을 나눠줬다간 바로 들통 날 게 분명하니 당분간은 일부 몬스터 코어만 은밀히 빼내서 보관만 해야 할 터였다.

이후 상호는 이항복과 함께 이 부분에 관해 몇 가지 약속을 정했다.

“내일이면 진상품을 갖고 사신이  가서 우리 측의 입장을 전할 것이네. 그러면 곧 명군이 이곳 의주로 올 것이니 다음 토벌 계획은 그 뒤로 미뤄주겠나.”

“그리 하죠.”

자리를 일어나는 이항복을 보고 상호도 일어났다.

상호는 막 떠나려는 이항복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대감, 보옥 말고 이번에 획득한 부산물도 명 측에 바치기로 했습니까?”

“그 늑대 가죽 말인가? 아니 그것은 진상될 예정이 없네.”

“그렇군요. 그럼 그것이라도 제게 넘겨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일이네.”

이 말에 상호는 기쁨의 미소를 취했다.

몬스터 코어의 힘으로 능력자를 늘리는 것은 어렵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으로 토벌대의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방법이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신을 다시 보낸 지 며칠도 되지 않아 4만의 명군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로 들어왔다.

선조는 직접 별궁 밖으로 나와 이여송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커흠.”

일국의 국왕이 서서 마중을 하는데도 이여송은 타고 있던 말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 무례한 태도에 뒤에 도열한 대신들 중 일부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마침내 말에서 내린 이여송은 선조 앞으로 가서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조선의 국왕께서 직접 나와서 소장을 반겨주니 감사하외다.”

“황제 폐하의 뜻을 받들고 우리 조선을 구원하러 온 원병을 어찌 소홀히 대접하겠는가. 내 이여송 장군과 수하 장수들을 위해 연회를 마련했으니 마음껏 주시게.”

“하하, 감사합니다.”

당연하다는 듯 이여송은 조선 측에서 연 연회를 받아들였다.

전란 중이고 또 몽진해온 신세면서 명군을 준비한 연회는 무척이나 호화스러웠다.

명 측 장수들과 조정 대신들이 참가한 연회가 한참 무르익던 가운데, 선조 옆에 앉은 이여송이 이런 말을 꺼냈다.

“요괴들을 토벌하고 신통력을 얻은 자가 있다가 들었소. 한 번 그 자의 능력을 보고 싶은데 괜찮겠소이까?”

“장군, 차후에 자리를 만들 테니 그 때 보심이 어떨지요.”

이여송이 꺼낸 뜻밖의 제안에 이항복은 급히 말했다.

하지만 이여송은 고집을 피웠다.

“이제껏 볼 수 없는 놀라운 재주라 들었소. 그런 흥미 있는 구경거리가 있으면 이 연회 자리가 더욱 흥이 날 것 아니겠소?”

“장군의 말대로 하게.”

선조는 이항복에게 상호를 데려올 것을 명했다.

이러한 어명에 이항복은 작게 한숨을 쉬고 상호를 부르게 했다.

잠시 뒤, 상호는 연회장에 도착했다.

‘제길, 구경거리나 되어야 하다니.’

마지못해 이 자리에 온 상호의 심기는 아주 불편했다.

어명만 아니라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저 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흐음, 보기엔 별반 우리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군.”

천막 아래에 의자에 앉아 이여송은 거드름을 피며 상호를 훑어보았다.

상호는 선조와 이여송이 있는 쪽을 향해 싫지만 큰 절을 올렸다.

“자, 어디 그 신통력이라는 것을 보여봐라.”

이여송의 말은 역관을 통해 번역되어 상호에게 전해졌다.

이에 상호는 이를 악물며 이여송을 노려보았다.

‘날 이런 광대 노름을 하게 만들다니. 언젠가 꼭 이 빚을 갚아주마.’

정 보고 싶다면 보여주지.

상호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물의 속성력’을 끌어올렸다.

“오오!”

“이럴 수가!”

허공에 주먹만 한 물 구슬이 떠오른 것을 보고 명 측의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상호는 땀을 흘리며 그것을 천천히 움직여갔다.

처음 보는 자들은 감탄했지만 사실 지금 상호가 보이는 재주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너희에게 내 진짜 실력을 보여줄 것 같아.’

명군은 그에게 있어 방해되는 경쟁자에 불과했다.

상호는 일부러 작은 재주를 선보였고 그나마도 힘든 척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 있는 모두는 이런 상호의 꿍꿍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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