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7화 (87/127)

十九장. 명군의 참전. (1)

1592년 12월 6일.

영하 20도를 웃도는 추운 날씨에 압록강 일대가 꽁꽁 얼어붙었다.

강이 얼어붙기만 기다리던 북쪽에 주둔 중이던 명군이 드디어 출정할 수 있는 좋은 시기였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명군은 강이 완전히 얼어붙고도 내내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명군의 반응에 선조는 다급히 사신으로 이덕형을 급파했다.

“대 명국의 총사령관이신 이여송 장군을 뵈옵니다.”

“어서 오시게나.”

막사로 들어온 조선 사신들을 의자에 앉은 채 맞이한 이는 4만여 명의 명군을 총지휘하는 명의 장수 이여송이었다.

갑옷을 입고 턱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여송이 먼저 말을 건넸다.

“조선 사신들이 날 찾아온 연유가 무엇인가?”

“저희 조선국 국왕의 말씀을 전하고자 왔습니다.”

반쯤 허리를 숙였던 이덕형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이에 이여송은 거드름을 피우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어디 한 번 들려주게.”

“저희 국왕께서는 명나라의 원군이 조속히 압록강을 건너 왜군을 무찌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해서 강이 얼어붙은 지 며칠이 되었음에도 원군이 움직이지 않는 까닭을 알아보고자 소신을 보낸 것입니다.”

“흠, 우리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려는 것이오?”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조선의 사정은 알겠지만 우리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네.”

조선의 위기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 이여송의 태도에 이덕형은 내심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당장 명군의 지원군이 없으면 언제 다시 북상할지 모르는 왜군을 막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감정을 숨기고 사정조로 다시 말했다.

“저희 조선군은 지금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런 시국에 대체 그 사정이 무엇이온데 대명 제국의 군대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까?”

“흐음.”

이여송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것을 보는 이덕형의 마음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이여송은 말했다.

“지금 우리 군이 조선 땅에 출정하지 않은 것은 최근 여태껏 본 적 없는 해괴한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네.”

“그, 그것은······.”

이덕형은 보급이나 다른 문제를 꺼낼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생뚱맞게도 몬스터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이여송을 보며 적잖게 당황해했다.

그런 이덕형을 보며 이여송은 다시 말을 꺼냈다.

“조정의 대신인 그대가 이 이야기를 전혀 모른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네.”

“분, 분명히 각지에서 그런 목격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그 일과 출병을 연기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어찌 상관이 없는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득시글거리는 조선 땅에 황제 폐하의 군대를 보낼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여송의 말은 분명 타당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조선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이덕형으로선 이런 명군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장군께서 무엇을 염려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일 뿐입니다.”

“기우라고?”

“정체불명의 요괴들이 나타난 곳은 대단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관군도 아닌 의병들에 의해 토벌이 될 정도로 그 세가 약하니 설령 마주친다 해도 명군의 위세 앞에 힘 한 번 못 쓰고 격퇴될 것이 분명합니다.”

“흠,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여송은 이덕형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출병을 연기하는 것을 바꾼 생각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를 본 이덕형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뭔가 바라는 게 있구나.’

직접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까지 가 어렵게 지원군을 이끌어낸 바 있는 이덕형은 이여송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음을 간파했다.

그것이 뭔지 알아내고 협상을 이끌어내야 비로소 이 문제가 해결될 게 확실했다.

하여 이덕형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말을 꺼냈다.

“그런 우려 때문에 출병을 연기하신다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칫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나 않을까 그게 염려스럽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이여송이 반응을 보이자 이덕형은 짐짓 별 생각 없이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번 출병을 위해 황제 폐하께서 상당히 무리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껏 출병을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북경에서 장군을 왜군이 겁나 군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오해하지 않을까 싶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뭣이!”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드는 말에 이여송이 바로 노기를 드러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이덕형은 재빨리 고개를 조아리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것이 아님을 저나 저희 조선국 국왕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북경에 있는 대신 중 장군께 불만이 가진 자들이 그런 말을 할까 그게 염려되어서 드린 조언일 뿐입니다.”

“크흠!”

“어쨌든 장군께서도 황명을 받고 이 먼 곳까지 오셨는데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마음을 돌리셔 우리 조선국을 도와주십시오. 그리만 해주시면 저희도 최대한 장군과 장군의 군대가 무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덕형은 먼저 적당히 마음을 격동시킨 다음 이여송이 바라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말로 그가 진정 바라는 게 뭔지 알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수완은 확실히 통했다.

마침내 이여송이 진의를 밝히게 된 것이다.

“나도 여기까지 와서 조선을 돕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내 요청만 받아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압록강을 건너 평양까지 진격하겠네.”

“장군께서 바라시는 게 무엇입니까?”

“조선 땅에 나타난 요괴들을 사로잡아 황제 폐하께 진상하려고 하네. 그러니 조선 측에서 종류 별로 요괴를 잡아 우리에게 넘겨주게.”

“······!”

“그리고 또 하나, 아직 중원에서는 요괴가 나타났다는 말이 없지만 그렇다고 안심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요괴 토벌에 우리 측 사람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해주게.”

이여송의 요구에 이덕형은 잠시 생각으로 손익 계산을 했다.

두 가지 조건 모두 조선 측으로서도 큰 부담이 없었다.

이 정도는 들어줘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답변하려던 찰나, 이여송이 다시 한 가지 더 요구를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괴 토벌 이후에 가질 수 있는 신통력의 정체를 밝히고 그것 일체를 우리 명 제국에 넘기게.”

“장, 장군.”

이덕형은 마지막 요구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여송은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이번에 앞서 파병되었던 조승훈 장군이 알려오더군. 조선군 중에 신비한 능력을 쓰는 자들이 있다고 말이야.”

“······.”

“그 소문이 흥미로워 내 직접 이에 대해 알아봤네. 그 능력을 가진 자들은 모두 요괴를 토벌한 전적이 있고 그 후에 능력을 가졌더군. 그것은 필경 요괴로부터 뭔가를 얻어 신통력을 발휘한 것일 테지.”

이여송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미 상호의 일로 능력의 존재를 알고 있던 이덕형은 지금 이여송이 진짜 노리는 게 이것임을 눈치챘다.

그런 이덕형을 향해 이여송이 말했다.

“신통력의 실체가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힘을 소국인 조선이 갖기 보다는 우리 명 제국이 갖는 게 옳지 않겠는가.”

“그것은······.”

“잘 생각해서 결정하길 바라네. 나와 내 군대가 상대해야 할 적은 마땅히 섬의 오랑캐들이 되어야지 않겠나.”

이덕형은 이여송의 마지막 말에 흠칫했다.

은연중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조선이 명에 불순한 마음을 품은 것으로 간주하여 적으로 인식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덕형은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이여송에게 물었다.

“이것은···황제 폐하의 뜻이기도 한 겁니까?”

“아직까지는 북경까지 이야기가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아마 소식을 들으시면 황제 폐하도 큰 관심을 갖지 않겠나?”

이여송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공을 삼기 위해 일부러 이 사실을 북경에까지 아직 전하지 않았다.

이덕형은 이러한 조건에 바로 즉답할 수 없었다.

“돌아가서 전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논의를 한 뒤에 결정 사항을 다시 와서 전해드리겠습니다.”

“나야 언제가 되든 상관없지만 조선의 사정이 촉박하니 서두르는 게 좋을 걸세.”

“예, 장군.”

이렇게 이덕형은 명군의 진영을 다시 떠나 압록강을 또 건너게 되었다.

“하아앗!”

기합과 함께 휘둘러진 검에 강건하게 버티던 고블린 투사의 머리가 쪼개진다.

앞을 가로막던 고블린 투사를 쓰러뜨린 상호는 120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고블린 로드를 노려보았다.

“오늘이야말로 네 녀석 모가지를 따주마!”

상호는 이리 말하며 고블린 로드를 향해 전력질주로 달렸다.

이를 본 고블린 로드는 지팡이로 지면을 때려 전에도 보였던 넝쿨 소환을 해냈다.

“또 같은 수냐!”

이 패턴은 이미 여러 번 겪었기에 상호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순간 검광이 번뜩이고 빠르게 다가오던 가시달린 넝쿨들이 조각나 바닥에 떨어졌다.

“이깟 잡초, 죄다 썰어주지!”

“저희도 돕겠습니다.”

남준이나 김태진 같은 군관들과 병사들로 무기를 휘두르며 옆에서 도왔다.

하지만 고블린 로드가 소환하는 넝쿨의 숫자는 줄긴 커녕 오히려 더 늘어났다.

“아악!”

“제길, 찔렸어.”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넝쿨 가시에 찔리고 상처입는 자들이 늘어났다.

“에잇, 수룡창!”

상호는 고블린 로드를 향해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날아간 물의 창은 넝쿨 몇 가닥만 자를 뿐이었다.

“칫! 상성이 좋지 않으니 효과가 별로야.”

애초 식물에겐 물의 능력은 맞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팔뚝 굵기의 넝쿨들이 상호의 주변을 휩쓸었다.

“크윽!”

넝쿨에 반쯤 감긴 상호는 신음을 흘렸다.

투구에 두정갑을 걸쳤지만 날카로운 가시는 그 안까지 찔러왔다.

“토포사 나리!”

“어서 나리를 구해라!”

상호의 위기를 본 남준과 다른 군관들이 가세했다.

“넝쿨을 잘라라!”

“에잇!”

상호는 다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가까이와 넝쿨들을 베어낸 준 덕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많던 넝쿨도 전부 다 토막내지고 고블린 로드는 무방비가 되었다.

“이제는 정신력이 딸려서 부를 수 없는 모양이지?”

“크르르.”

“그만 죽어라.”

상호는 토막 난 넝쿨을 짓밟으며 고블린 로드에게 달려갔다.

고블린 로드가 지팡이를 내밀어 방어를 취해보지만 상호가 내지른 일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단숨에 지팡이와 함께 고블린 로드의 몸까지 베어졌다.

“크아악!”

“잘 가라.”

상호는 피를 뿜는 고블린 로드를 향해 다시 검을 휘둘러 놈의 목을 잘랐다.

이로써 장장 나흘에 걸쳐 삭주 땅의 고블린 토벌도 끝이 나게 되었다.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

지치고 부상 입었지만 모두가 기쁨의 함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개중엔 상호를 보고 연호하는 자들도 있었다.

“적의 대장을 쓰러뜨리시다니 멋지십니다!”

“역시 대단하셔!”

처음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반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혼자서 적 소굴로 들어가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이후 나흘 동안에 게이트를 잃고 혼란에 빠진 고블린 무리를 조금씩 분열시켜 각개격파 해 별 피해 없이 승리를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이 있었기에 이제는 병사들 한 명, 한 명에게까지 큰 신뢰를 받게 된 것이다.

“말씀하신 것들을 전부 모아왔습니다.”

“수고했어.”

전투가 끝나고 군관 김태진과 몇 명의 병사들을 시켜 몬스터 코어와 마력이 남은 몬스터의 일부를 모아왔다.

이번 전투로 얻은 것까지 합한다면 <푸른색> 몬스터 코어 두 개, <붉은색> 몬스터 코어가 열한 개, 그리고 다이어 울프 가죽 여덟 장을 전리품을 얻었다.

‘이 정도면 고생한 보람은 있는 셈이지.’

이제 이걸로 네 명의 군관과 끝까지 잘 싸워준 병사들을 능력자로 각성시킨다면 다음 전투는 보다 수월하게 치를 수 있을 터였다.

“자, 그럼 돌아가지.”

“네!”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상호와 토벌대는 다시 의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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