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6화 (86/127)

十八장. 새로운 시작. (4)

“카아앗!”

고블린 로드는 손에 든 지팡이 끝으로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지팡이가 들어간 자리에서 나무 넝쿨들이 대량으로 자라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뻗어나갔다.

“이런!”

그 상황을 본 상호는 가슴이 철렁였다.

그렇지만 상호가 쏜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넝쿨 사이의 좁은 틈을 통과해냈다.

“꾸엑!”

게이트 안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던 고블린 중 하나가 운 없게도 날아온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한쪽 눈을 꿰뚫은 화살을 본 다른 고블린이 무심코 손으로 그것을 뽑아냈다.

“키익?”

발광을 거듭하는 화살촉을 보는 고블린의 고개가 갸웃하는 그 순간!

번쩍!

화살촉에서부터 눈부신 섬광이 뿜어지고 게이트 너머에 대폭발이 일어났다.

“크아앗!”

“케엑!”

게이트 안에서 이쪽으로 나오려했던 무수한 고블린들이 그 폭발에 휩쓸렸다.

잠시 뒤, 폭발에 의해 불안정해진 게이트가 급격히 수축을 일으키면서 그 안에 만들어진 길도 사라져갔다.

“크아앗!”

아직 게이트를 빠져나오지 못한 고블린들이 수축되는 빛 저편에서 아우성치는 모습이 여실히 보였다.

차원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 끊겨졌으니 저들은 영원히 차원의 틈새에 갇히게 되리라.

“하하, 성공했다.”

상호는 게이트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약간의 차원석만 남은 것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에 반해 졸지에 자신들이 넘어온 게이트를 잃고 만 고블린들의 반응은 참담했다.

“크으으으.”

특히 게이트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을 가진 고블린 로드는 폭발의 후폭풍에 의해 날아든 파편으로 부서진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가뜩이나 매부리코에 흉악스런 얼굴은 분노로 더욱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카우타 차라!”

고블린 로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에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은 크게 몸을 떨었다.

“완전히 열 받았네.”

상호는 지금 느긋이 이 자리에 있을 상황이 아님을 깨달고 후다닥 몸을 일으켜 부리나케 반대편으로 뛰었다.

그것을 본 고블린 로드는 다시 소리쳤다.

“타훌! 브라차 루카!”

그 목소리에 고블린들은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칫 로드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쏟아질까 두려웠기에 평소보다 그 움직임은 훨씬 기민했다.

무려 백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쫓아오는 상황.

상호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소굴을 탈출 하기 위해 최단 거리로 질주했다.

“카아앗!”

“저리 꺼져!”

상호는 앞을 가로막는 고블린을 단숨에 베어 쓰러뜨리고 달리는 속도는 전혀 늦추지 않고 내달렸다.

아직 고블린들의 소굴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미 주변은 토굴 안쪽에서 소란을 알고 나온 고블린들로 북적거렸다.

“제길, 저리 꺼져!”

저돌적인 돌파를 해오는 상호를 향해 고블린들이 달려들었지만 모조리 칼에 베이거나 휘두르는 팔에 얻어맞아 좌우로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쇄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달리는 상호의 등 뒤로 화살이 빠르게 접근했다.

“큭!”

순간, 이것의 기척을 느낀 상호는 뛰던 것을 멈추고 황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다.

슈슈슛!

“이런, 빌어먹을!”

상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화살 비를 보고 부리나케 가장 가까운 토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화살 세례를 피한 상호와 안쪽에 아직 남아 있던 고블린들이 잠시 눈을 마주쳤다.

“······.”

“······.”

잠시 침묵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상호와 고블린들.

상호는 고민할 것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안을 정리한 뒤에 바깥을 조심스레 살폈다.

“이렇게나 빨리 혼란을 잠재우고 졸개들을 움직여 날 뒤쫓아 오다니. 고블린치곤 제법인데.”

적을 칭찬하기만 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런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화살 세례를 피하면서 탈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놈들이 마음껏 화살을 쏘게 만들지 못하게 해야겠다.”

상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활과 화살을 꺼낸 뒤에 토굴 입구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앗!”

기합과 함께 시위를 놓자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활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고블린의 가슴팍에 정확히 꽂혔다.

상호가 나오자 다른 고블린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쉽게 맞아줄 성 싶으냐!”

상호는 빠르게 옆으로 달려 화살을 피하면서 계속해서 등 뒤의 활 통에 화살을 꺼내 날렸다.

“카악!”

상호의 연사에 고블린들이 연달아 쓰러져갔다.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조준할 겨를도 없이 대강 짐작으로 화살을 날리는 데도 높은 명중률이 나왔다.

이게 가능한 것은 높은 민첩 능력에서 비롯된 손재주 보정 덕분이었다.

피잉!

하지만 모든 고블린이 그렇게 당하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카앗!”

상호가 날린 화살을 간단히 피해낸 상위 개체, 고블린 투사는 그대로 역습으로 화살을 날렸다.

쇄애액!

파공음을 내며 날아드는 화살!

“쳇!”

피하기엔 너무 빠른 화살이었다.

그나마 한 발 빠르게 몸을 비틀어 화살을 뒤로 날려 보낼 수 있었지만 화살이 날아가면서 생긴  풍압에 가슴 옷섶이 찢기고 그 사이로 가는 상처가 생겨 피를 살짝 흘리게 되었다.

“상위 개체라 그런지 위력이 어마어마한데.”

게다가 활을 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이런 위력적인 화살을 날리는 놈을 등 뒤에 두고 달아나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핫!”

상호는 기습적으로 화살을 날렸다.

빠르게 허공을 가른 화살이 고블린 투사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허나, 놈이 냉정하게 한 발 옆으로 피하는 바람에 화살을 헛되이 뒤로 빗나갔다.

“쯧!”

상호는 실패한 것에 혀를 차며 재차 화살을 쟀다.

그런데 그 사이에 화살을 다시 장전한 고블린들이 화살을 쏴대는 통에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수룡의 가호!”

상호는 마땅한 피할 곳이 찾지 못해 대신 허리에 맨 물통의 물과 인근의 눈을 모아 물의 벽을 펼쳤다.

역시나 눈을 섞어서인지 반고체 형태로 만들어진 벽은 화살들을 모두 막아냈다.

“자, 다음은 내 차례다.”

상호는 자신의 지배 하에서 벽이 되어준 방대한 양의 물을 그대로 공격 수단을 삼았다.

무리를 해서 최대한 많은 ‘수룡시’를 만들어 날리니 활을 쐈던 고블린 중 태반이 쓰러졌다.

파앙!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고블린 투사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수룡시’를 자신의 화살로 맞추는 진기명기를 보여주며 그 실력을 과시했다.

“고블린 주제에 별 것 다하는군.”

이리 혼잣말을 하는 상호는 이미 고블린 투사를 ‘매의 눈’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화살을 쏜 고블린 투사는 무방비였다.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칠 상호가 아니었다.

쇄액!

“크엑!”

날아간 화살은 고블린 투사의 목젖이 있는 곳에 박혔다.

고블린 투사는 두 손으로 박힌 화살대를 부여잡고 비틀대다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휴우, 겨우 해치웠네.”

상호는 까다로웠던 적의 시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은 시체에서 몬스터 코어를 회수할 시간 여유는 없었다.

‘아쉽지만 포기해야지.’

남겨진 몬스터 코어는 아마 고블린 중 하나가 삼킴으로서 그 힘을 계승받게 될 것이다.

상호는 헌터로서 이 사실을 잘 알지만 지금은 탈출이 더 중요하기에 코어 회수는 포기하고 바로 등을 돌려 다시 달렸다.

“카아앗!”

“벌써 퇴로를 차단한 건가. 제길, 그래서 처음부터 둘이 한꺼번에 나타나지 않았던 거군.”

“크르르.”

상호는 검과 방패를 들고 졸개들 앞에 선 고블린 투사에게서 아까 놈 못지않은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편, 뒤쪽에서도 고블린들이 상호를 쫓아 오고 있었다.

“피할 방법은 없는 것 같네.”

상호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앞으로 달리면서 고블린 투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길게 끌면 부하들에게 포위되고 만다. 단 일격! 그것을 놈을 없애야 한다.’

상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활 대신 다시 잡은 검을 힘껏 쥐었다.

타닷!

발을 굴러 단숨에 거리를 좁힌 상호의 검이 빠르게 뻗어나갔다.

“크랏!”

고블린 투사는 날아드는 검에 맞서 방패를 내밀었다.

금속으로 된 원형 방패는 가공한 힘이 담긴 검격을 받고 크게 우그러졌다.

하지만 그것의 주인인 고블린 투사는 전혀 물러나지 않고 바로 동시에 반격을 꾀했다.

“크윽.”

재빠르게 피했지만 어깨 쪽에 살짝 칼날이 스쳤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는 일.

‘진짜 공격은 이것이다!’

애초 고블린 투사가 방패로 검을 막을 것은 예상했던 바였다.

상호는 자신이 준비한 진짜 공격을 펼쳤다.

“수신의 철퇴!”

상호의 외침은 조금 전에 달리면서 암암리에 발휘한 ‘물의 속성력’을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일거에 엄청난 양의 물을 만들어내 그것을 하나의 철퇴처럼 휘두르는 기술.

이 새로운 기술의 효과는 강력했다.

“꾸엑!”

앞에서 날아든 응집된 물의 타격에 고블린 투사가 하늘을 날았다.

몸통을 세게 때린 물의 위력은 거의 공성추로 때린 것과 같아 고블린 투사는 눈과 코, 입에서 피를 쏟으며 10여 미터나 날아가 쓰러졌다.

그런데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라앗!”

상호는 물줄기를 여럿으로 나눠 다른 고블린들까지 한꺼번에 쳤다.

위력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철퇴를 휘두르는 수준의 위력이 나오는 물줄기의 강타에 고블린들은 속절없이 당하였다.

삽시간에 태반의 고블린이 물에 홀딱 젖은 채로 나자빠져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그런데 상호도 숨을 크게 헐떡이긴 마찬가지였다.

새로 개발한 이 기술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에 그만큼 ‘물의 속성력’을 많이 일으킬 필요가 있었던 데다가 바로 능력을 발휘하려고 무리한 탓에 정신력을 거의 써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직···몸은 쌩쌩해.”

더 이상 능력은 쓰는 것은 무리지만 아직 뛸 수는 있다.

상호는 어지러움을 이겨내며 열린 길을 따라 달렸다.

그렇지만 산 아래로 바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유인 작전을 펴던 토벌대를 계속 뒤쫓던 무리 중 일부가 다시 본거지를 지키러 산 위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지.”

상호는 방향을 바꿔 산 위쪽으로 달렸다.

아까 자신이 올라왔던 절벽으로 내려갈 생각은 했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컹! 컹!”

다이아 울프를 탄 고블린 라이더를 필두로 추격대가 뒤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상호는 이에 더욱 속도를 내 산길을 질주했다. 하지만 다이어 울프의 달리는 속도는 그것보다 빨랐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고블린들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만에 숨이 턱 끝까지 차는 경험을 하며 처음 산으로 올라왔던 곳까지 당도했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무래도 느긋하게 절벽을 따라 내려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고블린들이 바로 지척까지 뒤쫓아 왔기 때문이다.

“꿀꺽.”

상호는 절벽 아래를 보고 침을 삼켰다.

휙!

그런 상호를 향해 나무 사이로 단창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쫓아온 고블린 라이더가 던진 창이었다.

“까짓 해보지 뭐.”

창을 피한 상호는 그대로 아래로 몸을 던졌다.

“큭.”

강한 바람을 맞으며 아래로 떨어져갔다.

이대로 떨어지면 묵사발이 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될까 보냐!’

상호는 자신의 두 손을 아래로 뻗었다.

이미 한계지만 기절해도 좋다는 각오로 양손으로 물줄기를 뿜어냈다.

촤아아앗!

뿜어지는 물의 수압에 의해 낙하 속도가 순간적으로 줄었다.

‘조금만 더······!’

가까워지는 지면을 보며 힘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한계였고 핑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과 동시에 손에서 나가던 물줄기도 뚝 끊기고 말았다.

“으아아악!”

상호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수압으로 몸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바로 아래가 아닌 나무가 자란 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기적적으로 나뭇가지에 걸릴 수 있었다.

“에고, 살았다.”

상호는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나뭇가지에 기댔다.

단독으로 나서서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고블린 무리에게 큰 타격을 주는데 성공했다.

조정의 명에 의해 두 번째 토벌대를 결성한 것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친다면 이 첫 성과는 결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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