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5화 (85/127)

十八장. 새로운 시작. (3)

내렸던 눈이 그쳤지만 쌀쌀한 바람이 분다.

혹독한 환경이었지만 듬성듬성 자란 나무 사이로 대충 헝겊으로 치부만 가린 고블린들이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아다녔다.

이들 고블린은 무리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없어 주로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이 어슬렁거리던 고블린의 몸에 정확히 꽂혔다.

“꾸엑!”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고블린.

이를 본 다른 고블린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놈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방금까지만 해도 없었던 활을 든 인간들이었다.

탁! 타닥!

경사면을 민첩하게 내려온 갑사들은 멈추는 것과 동시에 화살을 날렸다.

“키에엑!”

“카악!”

정확하게 날아드는 화살에 고블린들을 계속해서 쓰러졌다.

상황이 이리되자 살아남은 고블린들은 부랴부랴 본거지 쪽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된다!”

“네!”

고블린들이 도주하는 방향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김태진을 필두로 스무 명의 병사들이 목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전에 은밀히 고블린들의 배후로 숨어들어와 은신하던 그들은 창과 검으로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든 적을 처치했다.

푹.

철저하게 확인사살까지 하며 토벌대는 주변을 사주 경계했다.

“다들 수고했다.”

“토포사 나리.”

상호는 대완구를 운용하는 포수, 그리고 총병들을 거느리고 뒤이어 합류했다.

이로써 부상자와 그들을 후송하는 인원을 뺀 나머지 오십 여명의 대원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일꾼 놈들이 있는 것으로 봐선 드디어 놈들의 소굴이 가까워진 것 같다.”

지금까지 산 두 개를 넘으면서 몇 번이나 고블린들과 조우했다.

드디어 본거지가 가까워졌다는 말에 저마다 다양한 표정을 보였다.

“정말로 그 작전대로 하시는 겁니까?”

“물론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을 해보심이 어떻습니까?”

남준은 상호에게 이리 간언했다.

이미 작전의 내용을 전해들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만약 일이 잘못 되면 토포사 나리는······.”

“알고 있다.”

상호는 자신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남준의 말에 옅은 미소를 보였다.

상호가 세운 작전은 간단했다.

본거지를 발견하면 그곳에 상호 단독으로 침투하여 몬스터 게이트를 파괴한다.

이를 통해 고블린의 증원을 막아 다음에 치를 토벌전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갖는다.

이것이 상호가 노리는 바였다.

하지만 이 작전대로 한다면 남준의 염려대로 상호의 위험 부담이 무척 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적진 한가운데에 나 홀로 침투하는 것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이지.”

“그러면 차라리 수하 몇 명이라도 데리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 산을 보게. 적의 눈에 띄지 않고 진입하려면 저기 보이는 절벽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겠는가.”

“······.”

상호가 가리킨 곳은 맨 몸의 사람이 그냥 오르기 힘든 깎아지는 절벽이었다.

산 도처에 있는 고블린들의 눈에 들키지 않고 산 깊숙한 곳에 침투할 수 있는 길은 저기뿐이었다.

상호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자네들은 자네들대로 해줘야 할 일이 있지 않나.”

상호가 침투를 무사히 할 수 있도록 남은 토벌대는 산의 고블린들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몬스터 게이트를 파괴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할 테니 자네는 부하들을 잘 챙겨주게.”

“···알겠습니다.”

“아울러 한 번 더 당부하지만 결코 정면으로 싸우면 안 되네. 어디까지나 고블린들을 바깥으로 유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이렇게 상호는 남준에게 토벌대의 지휘를 일임하고 단독으로 산의 절벽을 오르게 되었다.

“후! 가볼까.”

상호는 약 60m 정도 되어 보이는 절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절벽을 맨 손으로 올라야 하는 만큼, 갑옷을 일체 벗고 각궁과 화살을 가득 담은 활 통에 검 한 자루만 챙겨 오를 준비를 했다.

“흡차!”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무려 5m나 높은 곳에 매달린 상호는 돌출된 부분을 짚으며 위로 올랐다.

그러다 매달릴 구석이 없는 곳에서는 손을 썼다.

퍽!

“됐다!”

손으로 긁어도 약간의 흠집만 날 정도로 단단한 암벽이 맨손에 의해 파인다.

거기에 손을 넣어 몸을 지지하면서 위로 오르니 아주 빠른 속도로 절벽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상호가 그렇게 절벽 정상에 거의 다다를 쯤, 산 아래쪽에서 폭음이 들렸다.

그 소리는 대완구의 발포 소리였다.

“딱 정확한 타이밍에 시작해주었군.”

저 정도 폭음이라면 산에 있는 고블린들이 자극받아 쫓아 나올 게 확신했다.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라고 했으니 고블린들을 유인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도 서둘러야지.”

잠시 쉬었던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정상까지 당도했다.

다행히 적의 기척은 없었고 그대로 위로 올라와 주변을 살폈다.

상호는 소나무가 잔뜩 자란 산속을 보았다.

“일단 산의 지형을 볼 때, 가능성이 있던 곳은 산 중턱 부분이다. 그럼 우선은 아래로 내려가는 게 옳을 것 같네.”

이렇게 판단을 내리고 상호는 전력으로 나무 사이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때, 상호가 달리는 흡사 한 마리의 표범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엇?”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서 한 소나무 뒤로 몸을 숨기는 상호.

그가 그런 것은 무장한 고블린 넷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긴 제대로 온 것 같네.”

상호는 저 고블린들이 본거지를 지키는 놈들임을 한 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문제는 저 고블린들 때문에 앞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돌아갈 시간 따윈 없어. 저 놈들이 경보할 여유를 주지 않게끔 속전속결로 해치운다.”

상호는 이렇게 결정하고 등에 맨 활 통에서 각궁과 화살을 꺼냈다.

그런 다음 수풀과 나무를 은폐물로 삼아 조금씩 접근해가며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우선 한 마리.”

작게 중얼거리며 상호는 시위를 놓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나무 사이를 빠르게 가르고 날아가 선두에 섰던 고블린에게 정확히 명중했다.

“쿠아라!”

“카오!”

눈앞에서 동족이 죽자 세 마리의 고블린은 주변을 경계했다.

퍽!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다시 날아온 화살이 또 한 마리를 거꾸러트렸다.

그러자 남은 두 마리는 서로 눈치를 보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게 둘 것 같아.”

상호는 등을 보인 표적을 향해 연거푸 화살을 날렸다.

꽤 먼 거리고 나무 같은 장애물이 많았지만 ‘매의 눈’과 능력치의 보정에 갈고 닦은 궁술 실력까지 더해진 상호의 활은 결코 표적을 놓치지 않았다.

“휴, 성공했군.”

네 마리 모두 거꾸러뜨린 상호는 다시금 서둘렀다.

곧 나무들이 뜸해지고 탁 트인 지대가 나왔다.

바로 그곳엔 고블린들의 본거지가 있었다.

“크, 역시나 규모가 상당하군.”

여러 겹으로 깔아둔 방책과 곳곳에 뚫린 토굴이 눈에 들어왔다.

“잠자리로 쓰는 토굴을 저 정도로 뚫어댄 것을 보면 이 무리의 숫자는 적어도 천 마리는 넘겠군.”

이 숫자는 상호가 예상했던 것과 거의 일치하는 규모였다.

이 정도 무리라면 로드를 제외하고도 최소 열 마리 이상의 상위 개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컸다.

“로드는 보나마나 남았을 테고 상위 개체 중에 골치 아픈 능력을 가진 놈이 없기를 빌 수밖에.”

상호는 주변 지형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는 바로 침투를 개시했다.

“킁!”

나무 방책 앞에서 보초를 서는 고블린들 중 하나가 코에 막힌 농축된 콧물을 바닥에 내뱉는다.

놈이 딴 짓을 하는 틈을 타 상호는 최대한 소리죽여 신속하게 움직였다.

사삭.

빠르게 이동하는 상호를 향해 보초를 서던 고블린이 고개를 돌렸다.

“······?”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고블린은 다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좋아, 안 들켰다.’

이런 쪽으론 영 재주가 없어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너무나 쉽게 성공하는 게 아닌가.

‘능력이 올라간 덕에 톡톡히 보는군.’

더욱이 대부분의 고블린이 토벌대를 쫓아 나간 덕에 침투하기가 편했다.

자신감이 붙은 상호는 도처에서 일을 보는 고블린들을 두고 계속해서 은밀히 이동해나갔다.

철저하게 고블린들의 시야에 걸리지 않게 동선을 맞춰 움직였기에 그 어떤 고블린도 상호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크라아!”

“이크.”

난데없이 괴성이 들려와 상호는 본능적으로 제자리에서 납작 엎드렸다.

잠시 상황을 보니 딱히 들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소리는 분명 저쪽에서 들렸지.”

상호는 조심스럽게 앞쪽으로 기어갔다.

앞은 언덕이었고 밑에서 뭔가가 행해지는 듯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상호가 언덕 끝에 도착해 본 것은 나무로 만든 가면을 쓰고 지팡이를 든 고블린이 몬스터 게이트 앞에서 뭔가 의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블린 로드인가.”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게 가면 쓴 고블린이 고블린 로드임을 짐작케 했다.

그런데 여기에 놈뿐만 아니라 호위 역할을 두 마리의 상위 개체와 스무 마리 남짓의 고블린이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의문을 갖던 상호는 갑자기 앞에서 뿜어지는 빛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빛은 몬스터 게이트의 중심부에서부터 나타났는데 점차 커지면서 본래 게이트를 몇 배로 확장시켰다.

그 빛의 안쪽에서는 뭔가 검은 형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것은?”

검은 형체는 빛으로 된 길을 따라 차츰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제야 상호는 그것들이 저쪽 세계에서 넘어오는 고블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젠장, 하필 이 때 전송이 이뤄지다니.”

게이트 너머로 보이는 고블린의 형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림잡아도 수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만약 저것들이 전부 넘어온다면 다음 토벌은 그만큼 힘들어진다.”

지금 바로 몬스터 게이트를 파괴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어떻게 게이트를 파괴할 지에 대한 것이었다.

애당초 허점을 찔러 몰래 게이트 근처에 가서 폭파를 시도할 참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달려들 수도 없고······.”

크게 고민하던 상호는 주머니에서 게이트를 파괴하기 위해 준비한 차원석 조각을 꺼냈다.

이것은 붙잡혀 의주로 압송될 때부터 주머니에 내내 갖고 있던 것으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였다.

크기는 작지만 폭주를 시킨다면 충분히 게이트를 파괴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 터였다.

“맨 손으로 던지면 너무 불확실해. 아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이 때, 생각난 게 바로 등에 맨 활과 화살이었다.

상호는 화살촉을 빼고 그 자리에 차원석을 끼워 넣었다.

“좋아, 신중하게.”

차원석의 폭주를 위해 힘을 불어넣었다.

바로 폭발하기 직전까지 이능을 섞은 차원석을 보고 나서 그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실수없이 한 번에 맞춰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엎드린 자세에 앉아 쏴 자세를 취했다.

거리는 약 70보 정도.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카아!”

이때! 호위로 있던 고블린 투사 중 하나가 상호를 발견했다.

일순간 모든 고블린들의 시선이 상호에게 꽂혔다.

“늦었어!”

이렇게 말을 내뱉으며 상호는 당긴 시위를 그대로 놓았다.

그러자 화살은 상호를 떠나 곧장 환한 빛을 뿜는 몬스터 게이트를 향해 쏜살같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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