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4화 (84/127)

十八장. 새로운 시작. (2)

급박한 판국에 겨우 토벌대의 지휘권을 되찾은 상호는 ‘매의 눈’으로 겨우 포착할 만큼 멀리 있었던 고블린 라이더 무리가 벌써 절반이나 거리를 좁혀온 것을 보고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제길, 괜한 시간만 빼앗겼군.’

이대로라면 방어 대형을 다 갖추기 전에 고블린 라이더들이 먼저 당도할 게 분명했다.

“나라도 나서서 시간을 벌어야지.”

“토포사 나리?”

“내 일은 걱정 말고 적이 당도하기 전에 대형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해.”

군관들을 향해 이리 외치고 상호는 고블린 라이더들이 오는 방향으로 홀로 뛰어나갔다.

앞으로 나간 것은 공격이 가능한 거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대략 40마리 정도인가.”

준비를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부딪치면 이쪽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상호는 우선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수룡시’를 허공에 생성했다.

“어라?”

아무래도 인근에 쌓인 눈에서 수분을 얻은 탓일까.

지금 만들어진 ‘수룡시’는 반쯤 얼다 만 형태였고 차가운 냉기도 갖고 있었다.

“뭐 상관없지.”

고블린 라이더를 막을 수만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약 스무 발에 달하는 ‘수룡시’는 공중에서 점차 얼음처럼 변하였다.

“가랏!”

상호는 충분히 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일제히 ‘수룡시’를 앞으로 날렸다,

속도가 붙으면서 점차 빨라진 ‘수룡시’들은 강풍에 의해 더 얼어붙었고 숫자 얼음 화살처럼 변했다.

퍽!

“카아악!”

“깨갱!”

얼어붙음으로서 관통력 대신 파괴력을 얻은 ‘수룡시’에  다이아 울프나 그 위에 탄 고블린 모두 비명을 지르며 눈밭 위를 나뒹굴었다.

선두가 무너지자 뒤따르던 다른 고블린 라이더들은 그들을 피해 좌우로 흩어졌다.

“산개한다고? 그리 쉽게는 다가오지 못할 거다.”

이렇게 말하며 상호는 다시 한 번 ‘물의 속성력’을 발휘했다.

이번에는 수룡시’ 같은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그저 고블린 라이더들이 향하는 방향의 지면에 살짝 물웅덩이를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캐앵!”

힘차게 달리던 다이어 울프가 갑자기 자빠져 지면을 구른다.

비단 한 마리만 그런 게 아니라 뒤따르던 다른 몇 마리도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아까 물웅덩이는 바닥의 눈과 섞여 진창이 되었고 미끄러지기 쉬운 환경이 되었는데 그 위를 빠르게 달리려 했으니 저런 참사가 나온 것이다.

“꼴좋다.”

상호는 속도가 확 떨어진 고블린 라이더들을 보며 만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최소의 힘만으로 충분히 목적을 달성하였다.

“저쪽도 준비가 다 된 것 같군.”

상호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드디어 방어 대형을 완성되었다.

더 이상 힘을 쓰지 않고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온 상호는 남준을 보고 말을 꺼냈다.

“짧은 시간 동안에 훌륭히 대형을 구축해줘서 고맙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전과 다르게 남준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방금 전에 상호가 놀라운 신통력으로 몰려오는 적들의 진격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것을 보고 꽤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한 태도 변화에 내심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명령을 하달했다.

“비격진천뢰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다 됐나?”

“네.”

“좋아, 내가 명령할 때까지는 결코 발사해선 안 되네.”

저번 전투 때의 일을 상기시키듯 말하는 상호를 보며 남준을 필두로 군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100보 앞까지 왔습니다!”

고블린 라이더를 관측하던 병사가 소리쳐왔다.

이에 상호는 갑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기수는 노리지 말고 타고 있는 늑대만 노리도록.”

“네!”

상호의 지시에 열 명 정도 되는 갑사들은 신중히 시위를 당겼다가 놨다.

아까 전투와 다르게 세밀한 지시를 받은 갑사들은 자신들의 활 솜씨를 십분 발휘해 다이어 울프의 미간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콰당!

표적이 된 다이어 울프 중 네 마리가 머리에 화살을 꽂고 달려오던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지금이다!”

상호의 지시에 포수들은 재빨리 대완구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폭음과 쏘아진 비격진천뢰는 넘어진 다이어 울프들의 앞쪽에 정확히 떨어졌다.

“카아앗!”

“아우우우!”

앞서 달려간 동족들이 넘어져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도 다른 고블린 라이더들은 돌격을 멈추지 않고 그 위를 뛰어넘었다.

바로 그 순간, 바닥에 구르던 비격진천뢰의 심지가 다 타들어가고 폭발이 일어났다.

“케에엑!”

무수한 파편이 뿌려지면서 비명과 함께 또다시 고블린 라이더들이 쓰러졌다.

돌격의 기세가 죽었지만 그래도 고블린 라이더들은 방패와 창이 내밀어진 대열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으악!”

“버텨라!”

방패에 부딪치는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몸무게를 가진 다이어 울프를 막기 위해 2,3명의 팽배수가 힘을 합쳐야만 했다.

콰득!

거대한 앞발이 내리쳐지면서 강철 방패가 우그러지고 그것을 든 팽배수가 바닥에 쓰러졌다.

“어서 구해!”

“우아악!”

쓰러진 동료를 구하려 했지만 그보다 다이어 울프의 앞발이 더 빨랐다.

밟힌 병사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구조를 요청했다.

“으르르릉.”

“이런, 육시랄!”

주변 병사들은 도와주고 싶어도 이빨을 드러낸 다이어 울프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비켜라.”

“나리!”

이때, 남준을 비롯한 군관들이 나섰다.

“이깟 늑대 따위.”

내금위에 있으면서 삼각산에서부터 내려온 호랑이가 경복궁에 들어왔을 때 그것을 토벌한 적도 있었다.

그런 만큼 이들 군관들은 다이어 울프를 겁내지 않았다.

“하앗!”

먼저 공격을 취한 것은 군관 중 가장 젊은 유길준이었다.

정면으로 달려 들어간 그를 향해 다이어 울프의 주의가 쏠렸다.

거의 근접한 상황에서 유길준은 바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이를 쫓아 다이어 울프의 머리가 돌아가고 유길준의 뒤를 따라 달려온 백준수가 철퇴로 머리를 강타했다.

“캐앵!”

충격에 머리를 땅에 처박는 다이어 울프.

하지만 이 순간 놈의 등에 올라타 있던 고블린이 창을 높게 들어 백준수를 찌르고자 했다.

푹!

창을 내지르려던 고블린의 이마 한 가운데에 화살이 꽂혔다.

그것을 쏜 것은 바로 상호였다.

“한동안 안 쏴서 감각을 잊었을까봐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던 것 같네.”

상호는 혼잣말을 하며 전장을 살폈다.

군관들이 가세하니 무너질 상황이었던 진형이 겨우 버티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난전이 될 것이었다. 그리 되면 당연히 이쪽이 불리했다.

그 전에 전세를 역전시킬 패를 써야 했다.

“이제 그대들의 차례다.”

“···예, 토포사 나리.”

상호의 말에 대답하는 이들은 조총을 무기 삼은 병사들이었다.

미리 상호에게 언질을 받았던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내며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고 심지에 불을 붙였다.

“가자!”

“우아아아!”

조총을 든 병사들은 돌연 앞으로 질주하였다.

그들이 향한 곳엔 창과 방패에 막혀 전진을 못하고 있는 고블린 라이더들이 있었다.

바로 팽배수 뒤까지 달려온 이들은 그대로 조총의 총구를 다이어 울프에게 들이밀었다.

타타탕!

마침내 격발이 이뤄졌다.

“캐앵!”

영거리 사격이었기에 100%의 명중이었다.

다이어 울프가 탄환에 맞아 쓰러지자 기수들도 덩달아 바닥에 나뒹굴었다.

“죽어!”

“케에엑!”

살수들의 창이 여지없이 고블린의 몸을 관통한다.

힘겹게 막던 적이 사라지니 기세를 탄 병사들은 그대로 대형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진격했다.

“캬투라!”

이를 보고 고블린 라이더들은 황급히 다이어 울프의 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속도를 내서 달려온 살수들의 창이 타고 있는 다이어 울프의 몸을 찌르는 게 한 발 빨랐다.

무너지는 고블린 라이더들.

겨우 방향 전환에 성공하고 뒤로 빠져나가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상호와 갑사들이 쏜 화살은 그들을 거꾸러트렸다.

전투는 끝났다.

사실 상 기병과 다름없는 고블린 라이더를 상대로 허허벌판에서 모두 몰살시켰다.

분명 대승이라고 할 수 있지만 토벌대가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크으, 제기랄.”

김태진은 다이어 울프에게 물린 팔목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싸움 막판에 무리해서 적을 상대하다가 그만 다친 것이다.

“사망 여덟에 중상자가 열셋, 그리고 계속해서 싸울 수 없는 자가 스물 둘입니다.”

“으음.”

남준의 보고에 상호는 침음을 흘렸다.

토벌대 병력의 삼분의 일이 죽거나 다쳤다.

이 정도면 토벌대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봐야 했다.

이에 남준은 상호에게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병사들의 피해가 크니 일단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남준의 말에 상호는 이렇게 답했다.

이 말에 옆에 있던 백준수가 다소 거친 목소리를 냈다.

“이 상황에서 계속해서 토벌을 강행하시겠다는 말이오?”

“왜 안 되나?”

“무리인 게 당연하지 않소! 이미 두 번이나 싸워 이런 피해를 입었는데.”

“그렇다고 목표한 것을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지.”

상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얼핏 들으면 무모할 수 있는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상호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고블린 라이더까지 부리는 무리라면 이미 상당한 세력을 이뤘을 게 분명하다. 이대로 방치하면 의주까지 위태롭게 되니 한시라도 빨리 처리를 해야 돼.’

다른 몬스터보다 유독 숫자가 불어나는 속도가 빠른 고블린은 시간을 두고 놔두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수천에서 어쩌면 수만 마리가 되는 고블린들이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날뛰게 되면 당장 선조가 있는 의주가 위기에 처하게 될 터였다.

‘선조나 조정이 내게 한 일을 생각한다면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만···그랬다간 진짜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또 애꿎은 수백, 수천의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 어떻게든 막아야지.’

이것이 바로 상호가 토벌을 강행하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군관들은 반대의 입장을 접지 않았다.

“부상자들끼리만 보낼 수 없으니 그 만큼 숫자를 빼야 합니다. 그리 되면 겨우 오십 남짓의 인원만으로 토벌을 해야 하는데 위험이 너무 큽니다.”

“확실히 정면 돌파는 무리가 있지.”

남준의 말에 상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남은 고블린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로드를 비롯해 상위종들이 다분히 있을 가능성이 컸다.

율이나 임충이 같이 있었다면 모를까, 정면으로 싸운다면 승산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토포사께서는 무슨 복안이 있으신 겁니까?”

“훗, 한 가지 작전이 있지.”

마냥 대책 없이 부하들을 사지로 끌고 갈 만큼 무책임하지 않다.

그래서 상호는 더 이상 누구 하나 죽거나 다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전을 이미 생각해 두었다.

“토포사께서 승산이 있다고 하신다면 작전에 따르겠습니다.”

“남 무관, 고맙다.”

“아직···나리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까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명백히 토포사 나리의 지휘 덕분이었던 바, 그 능력을 믿고 따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군관 중 최선임자인 남준이 자신의 뜻을 따라준다는 확답을 얻은 것만으로도 상호로선 든든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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