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八장. 새로운 시작. (1)
상호가 조정의 명에 따라 조직된 토벌대를 이끌고 싸울 첫 번째 상대로 택한 것은 삭주 땅의 몬스터는 고블린 무리였다.
장계에 따르면 2~300마리 수준의 무리로 몇몇 고을을 공격했다고 나와 있었다.
상호는 이번에 지휘할 병력이 몬스터와의 싸움 경험이 전혀 없는 인원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무리하지 않고 본거지를 향해 차근차근 접근하면 나타나는 고블린을 사냥하는 전술을 선택했다.
고블린들의 영역이라 의심되는 지역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예상대로 고블린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크카캇!”
“카앗!”
산등선을 따라 약 100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소리를 지르며 토벌대를 향해 돌격해왔다.
그것을 본 상호는 한 손을 높게 들며 외쳤다.
“대형을 방어 대형으로 갖추고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
상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지시에 따라야 할 병사들은 어물쩍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들에게 있어 지휘관은 상호가 아니라 네 명의 군관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반응에 상호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뭣들 하는 거냐! 어서 대형을 갖춰라!”
“네, 나리!”
군관 유길준이 나서자 그제야 병사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움직였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상호는 분노를 느꼈다.
“이것들 봐라.”
하지만 지금은 분노를 표출할 때가 아니었다.
전투가 이제 목전에 왔기 때문이다.
“방패를 들어라!”
척! 척!
“살수는 실수 없이 근접해오는 요괴들을 척살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우선 방패를 든 팽배수가 앞 열에 서고 그 뒤에 창을 든 살수가 배치되었다.
“갑사들과 총통수들은 사격 준비를 하라! 그리고 포수들은 비격진천뢰를 준비해라.”
군관 유길준의 명령에 뒤에서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정예라 할 수 있는 갑옷을 입은 갑사들과 본래는 승자총통을 썼으나 노획한 조총으로 무기 변경을 최근 한 총통수들이 좀 더 높은 위치에서 열을 갖추고 적을 쏠 준비를 취했다.
이러는 사이에 고블린들은 50보 안까지 접근했다.
“방포하라!”
본래 상호가 내려야 할 명령이지만 그가 나서기도 전에 군관 남준이 발사 명령을 내렸다.
펑! 펑!
조선 시대 박격포 격인 대완구에서 폭음과 함께 비격진천뢰들이 고블린들이 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바로 폭발하지 않고 구르는 비격진천뢰.
이것을 지나치며 고블린들이 빠르게 토벌대 쪽으로 달려왔다.
‘큭! 너무 빨라!’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던 상호는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타이밍이 너무 빠르다는 것에 속으로 탄식을 터트렸다.
저래선 적이 다 지나치고 난 다음에야 터질 게 뻔하다.
쾅! 쾅!
역시나 예상대로 비격진천뢰는 고블린들이 거의 다 지나갈 쯤이 되어서야 폭발했다.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고블린들은 이제 10보 앞까지 접근했다.
“큭, 늦었다.”
“어서! 놈들을 향해 쏴라!”
생각보다 빠른 고블린들의 움직임에 군관과 병사 모두 혼란에 빠졌다.
군관 김태진과 군관 백준수는 부랴부랴 병사들을 다그쳐 화살과 총탄을 쏘게 했다.
이에 갑사들은 물소의 뿔로 만든 각궁으로 힘껏 시위를 당겼고 조총을 든 총통수들도 심지에 불을 붙여 총탄을 발사했다.
“케엑!”
“키이익!”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에 몇몇 고블린이 쓰러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살은 보다 멀리 날아가거나 엉뚱한 곳에 떨어져 큰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게다가 총통수들이 쏜 총탄도 첫 전투라 보니 제대로 조준되어 날아간 게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고블린 중 어설프게 만든 활을 든 녀석들이 쏜 화살이 토벌대 병사들을 위협했다.
“아악, 내 발등!”
“어서 뒤로 빼.”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 고블린 무리가 방패를 든 팽배수들과 격돌했다.
“으윽!”
“무슨 힘이 이렇게······!”
상호가 미리 교육했음에도 어린 아이만한 체구라고 내심 고블린의 힘을 우습게 본 팽배수들은 방패를 통해 전해져오는 강한 힘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일렬이었던 대열은 순식간에 들쑥날쑥해지고 틈새가 생기자 그 사이로 고블린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비집고 들어왔다.
“캬아!”
“죽어라!”
그래도 명색이 정예병이라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겁먹고 도망치지 않고 무기를 휘두르며 응전했다.
뒤에 있던 살수들이 창으로 비집고 들어온 고블린의 몸을 찌르고 팽배수들도 환도로 방패 너머에 있는 고블린을 마구 베니 돌격의 기세가 차츰 줄어들었다.
이 틈에 팽배수들은 좌우의 동료와 간격을 다시 맞추며 대열을 정비했다.
“이 더러운 괴물들아, 각오해라!”
“내 칼을 받아라!”
네 명의 군관들은 왕을 지키는 내금위 소속답게 저마다 빼어난 무예 솜씨를 뽐내며 고블린들을 베었다.
이들의 실력을 본 병사들은 사기는 단번에 올랐다.
이렇듯 방어를 잘 이뤄내며 좌우에서부터 적을 참살하니 처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블린들은 도망치다가 참살당할 따름이었다.
새로 구성한 토벌대의 첫 승리가 눈앞에 있었지만 이를 보는 상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완전히 제멋대로군.’
지금 싸움에서 상호는 명령 한 번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구경만 했을 뿐이었다.
토포사이자 지휘관인 상호는 쏙 빼고 네 명의 군관들과 병사들은 제멋대로 싸운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순순히 명령을 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이렇게까지 날 무시할 줄이야.’
상호는 아까도 전투가 시작될 상황이라 참았던 분노가 속에서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와아아!”
“요괴도 별게 아니군.”
승리를 거둔 병사들은 크게 좋아했다.
하지만 마냥 승리를 축하할 상황은 아니었다.
전원이 찰갑을 입고 있어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자는 거의 없었지만 전투 속행이 어려울 정도의 자잘한 부상을 입은 이들이 스무 명이나 되었다.
거기다 소지한 화약도 무분별한 방포로 삼분지 일이나 써버렸다.
‘이런 소모가 큰 승리는 결국 다음 싸움에 임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래가지고 본거지까지 토벌할 수 있을까?’
상호가 봤을 때, 이 승리는 반쪽 짜리에 불과했다.
솔직히 조정의 입김이 들어간 이번 토벌대는 상호의 마음이 차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특수 능력인 ‘강제 지휘’로 부대를 그냥 통제해 움직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 방법은 지휘관을 신뢰하고 따라야만 그 영향력을 받는다는 능력의 약점 때문에 쓸 수가 없다.
하여 상호는 다음 싸움을 치르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 명의 군관을 불러 모았다.
“방금 전의 싸움에서 내 명령이 없었는데 귀관들은 멋대로 움직였다. 왜 그리 한 건지 그 연유가 듣고 싶은데?”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리 하였소.”
남준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 없이 이리 말했다.
지금 이 대답은 그렇지 않아도 심기가 불편했던 상호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지?”
“적을 완벽히 물리치지 않았소.”
“물리치기야 한 것이지. 귀관들은 아까 싸움에서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모르나.”
“······.”
이어진 상호의 말에 남준은 반박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대신해 김태진이 말했다.
“토포사 나리가 말씀하는 바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병사들을 조련한 저희입니다. 때문에 굳이 토포사 나리를 번거롭게 하지 않고 저희 선에서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하!”
끝까지 반성도 없이 자기네가 정당하다고 떠드는 군관들의 행동이 상호를 더 화나게 했다.
당장이라도 분노로 부들거리는 주먹으로 후려치고 싶다.
‘진짜 내 입지가 이러지만 않으면 반쯤 죽여 놨을 텐데.’
감시자 격으로 붙여놓은 군관들을 해코지 하면 그것은 선조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같다.
그리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게 수포가 되니 참을 수밖에 없았다.
“···앞으론 내 지시가 나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도록.”
“예, 알겠습니다.”
대답은 들었지만 과연 그 약속을 지킬지 알 수 없었다.
한 차례 습격 이후로 부상자들 중에서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인원은 돌려보내고 계속해서 고블린들의 영역 깊숙이 들어갔다.
하늘에선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온 세상이 새하얗게 되었다.
“음?”
상호는 새하얀 설원 한가운데서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매의 눈’을 활성화해 지금까지 먼 곳까지 감시하던 상호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 대규모 고블린 무리가 포착되었다.
“젠장!”
상호의 입에서 갑자기 거친 소리가 나왔다.
이번에 몰려오는 고블린 무리는 아까의 고블린 무리와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크왕!”
“커허엉!”
달려오는 고블린들은 하나 같이 대한 늑대를 타고 있었다.
“고블린 라이더라니.”
세력이 큰 고블린 무리는 다이어 울프라 불리는 저쪽 세계의 늑대를 길들여 탑승물로 쓴다.
저런 고블린 라이더가 대거 나타났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썩을, 최소 Ⅱ단계 게이트가 활성화되었다는 얘기잖아.”
애초에 Ⅰ단계에서 나타난 고블린 무리라고 상정하고 이번 토벌을 계획한 상호로선 지금 이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한 편, 상호보다 조금 늦게 고블린 무리를 발견한 네 명의 군관들은 사색이 되었다.
“기마라니?”
“아니 기마가 아니라 늑대에 탄 것이지 않나.”
“그게 그거지!”
“이보시오, 토포사 나리. 처음 얘기와 다르지 않습니까?”
상호는 분명 고블린들이 저렇게 늑대를 조련해 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몬스터와 싸울 때는 언제든 상정한 상황과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그런 상황이 되면 침착하게 이쪽의 지시에 충실히 따라달라고 말은 한 바 있다.
그것을 벌써 잊기라도 한 듯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당장 잘못을 따져오는 군관들의 행동은 상호의 눈살을 찡그리게 했다.
“···일단 병사들을 진정시킨 다음에 적에 맞서 싸울 수 있게 이곳에 원형진을 구축한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응전하실 생각이십니까?”
“불가합니다. 적은 늑대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이런 허허벌판에서 싸운다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군관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엄폐물 하나 없이 설원 한복판에서 늑대에 탄 고블린 라이더와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런데 경험 많은 상호가 그것을 모를까?
이미 상호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싸울 대책을 세운 뒤였다.
“빌어먹을.”
하지만 그 대책도 휘하 토벌대원들이 제대로 따라줘야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상호는 자신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불복하는 군관들의 태도에 더 이상 참지 않고 과격한 수단을 쓰기로 했다.
스르릉!
“윽!”
“무슨?!”
난데없이 상호가 칼을 겨누자 군관들은 반사적으로 검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이런 그들에게 상호는 일갈했다.
“잘 들어. 여기서 등을 보이고 달아나면 저것들이 그냥 순순히 보내줄 것 같아? 숨을 곳으로 찾아 가기도 전에 따라잡혀서 등부터 갈기갈기 찢겨질 거다!”
“그, 그것은······.”
“늑대 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이번엔 내 지시에 따라라. 만약 그러고 싶지 않다면 말해. 당장에 편한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줄 테니깐.”
“진심이오?”
“거짓말을 하는 것 같나?”
적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단순히 떠보기로 이런 말을 꺼낼 상호가 아니었다.
군관들은 매서운 기세의 상호와 점차 가까워지는 고블린 무리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명에 따르겠소.”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결국 그들은 상호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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