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2화 (82/127)

十七장. 왕자를 구하라. (3)

얼마나 잠을 잤던 것일까.

개운할 정도 실컷 잔 상호는 마침내 눈을 떴다.

“어라? 옥사가 아니네.”

상호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비위생적인 옥사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뜨끈뜨끈한 온돌이 있는 방에서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주변을 보다 이부자리를 들추니 상처 부위를 다시 치료하고 반듯하게 붕대를 감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상을 입었다고 해서 이런 호의를 베풀 것 같지는 않은데.”

상호는 팔과 다리에 묶여 있던 쇠고랑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문득 어젯밤 싸움이 떠올랐다.

“신성군은 상태가 좀 좋아졌으려나."

상호는 우선 자신이 구한 신성군을 걱정했다.

신성군의 목숨이 곧 상호의 목숨과 직결되니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덜컥.

“깨어났군.”

“의원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허준이었다.

아마도 다시 치료를 해준 것도 그인 것 같아 보였다.

“신성군 마마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상호는 일단 신성군의 안부부터 물었다.

이에 허준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안심하게. 원기 회복 좋은 약을 올리고 밤새 간호를 하니 파리한 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네. 적어도 오늘이나 내일이면 의식을 돌아오실 것 같네.”

“그렇습니까?”

상호는 그 말에 진심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 든 의문이 떠올랐고 다시 질문을 꺼냈다.

“제가 어떻게 이런 방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까? 전 당연히 옥사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부상자를 어찌 옥사로 보내겠는가. 내가 인빈 마마께 자네를 편안한 곳에서 치료를 할 수 있게끔 부탁드렸네.”

허준의 이런 부탁에 그렇지 않아도 신성군을 구했다는 사실에 상호에게 큰 호감을 가진 인빈 김씨는 바로 선조에게 가서 이러한 것을 부탁했다.

다행이 선조로부터 허락이 떨어졌고 상호는 내금위 무관들이 사방에서 보초를 서는 별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군요.”

“이러하니 너무 걱정 말고 자리에 편히 누워 있도록 하게.”

“네.”

상호는 허준의 말에 따라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런 상호의 옆에 앉은 허준이 침통을 꺼내고 치료를 시작했다.

헌데 치료를 위해 붕대를 푼 허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하룻밤 사이에 상처가 이렇게나 아물다니.”

“몸 하나는 튼튼하죠, 제가.”

체력 능력을 강화하기 되면 상처 회복 속도도 빨라지게 된다.

어제 쉐이드에게서 얻은 <붉은색 코어>의 힘으로 체력을 5단계까지 강화했었다.

한층 더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넘은 덕분에 의원인 허준이 놀랄 만큼 찔린 상처가 아물 수 있었던 것이다.

“실로 놀랍군 그래. 하지만 어제 많은 피를 흘렸고 또 겉만 아물었을 뿐, 상처 내부는 아직 제대로 나은 게 아니네.”

“네, 네.”

“일단 침을 놔준 뒤에 흘린 피를 빠르게 보충할 수 있는 약재를 쓸 터이니 다른 일일랑 걱정 말고 푹 쉬도록 하게.”

“그런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주변 상황이 걱정되어 그럴 수가 없군요.”

상호는 누워 침을 맞으면서 말했다.

이에 허준은 잠시 침을 놓던 손길을 멈추더니 말했다.

“어제 일로 주상 전하께서 대신들을 모아 얘기를 나누는 중이라고 들었네.”

“정말입니까?”

하마터면 얼굴과 몸 곳곳에 침을 꽂은 상태임에도 일어날 뻔 했다.

그런 상호를 보며 허준이 다시 말했다.

“나야 말단 의원이라 그곳에서 어떤 얘기가 오고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자네 처우를 놓고 대신들을 모은 것을 봐선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글쎄요.”

허준의 말처럼 이롭게 일이 돌아가면 다행이겠지만 확신은 아직 금물이었다.

상호는 과연 조정 회의에서 어떤 얘기가 오고갔을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랬기에 허준이 치료를 끝내고 나가고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반가운 이가 찾아왔다.

“늦어서 미안하네.”

“대감!”

상호는 누워 있다가 갑자기 방문한 이항복을 보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항복이 손으로 만류한 바람에 그냥 상체만 일으켜 앉았다.

그런 상호를 보며 이항복이 먼저 말을 꺼냈다.

“크게 다쳤다고 하여 염려했는데 다행히 상태가 나빠 보이지 않는군 그래.”

“허준 의원께서 특별히 신경 써준 덕분에 빨리 나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 다행이군.”

“그보다 대감, 아까 듣기론 어젯밤의 일로 주상께서 조정 대신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편전 회의가 열렸다는 것을 벌써 알다니. 확실히 자네 말대로 어제 일로 주상 전하께서 대신 모두를 부르셨네.”

“보아하니 거기서 제 신변에 대한 결정도 이야기된 것 같은데. 저한테 내용을 들려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편전에서 이뤄진 회의에 대한 내용은 사실 상호가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항복은 개의치 않고 그 내용을 들려주었다.

“주상 전하께서는 대신들을 모아놓고 먼저 별궁에까지 요괴가 침범한 것에 대해 크게 지탄하셨네.”

“애당초 요괴의 위험성을 간과한 것은 주상 전하가 아니십니까?”

상호는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모른 척 했으면서 이제 와 요괴의 존재가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이 있는 의주 별궁에도 있다는 사실에 큰 두려움을 느껴 뒤늦게야 이 문제를 공론화한 선조의 태도가 그저 치졸하다고 내심 생각할 따름이었다.

이런 상호의 속내를 모르는 이항복이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은가. 이제라도 주상 전하와 요괴 토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대신들이 그 위험성을 알았으니 말이야.”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안 그래도 자네에 대한 처우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네.”

이항복과 그리고 류성룡은 불가사의한 능력을 사용하는 요괴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해 잘 아는 자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호의 사면을 거듭 주장했다.

반면에 일부 중신들은 아무리 그래도 이미 처형을 선고받은 중죄인을 사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격한 논쟁이 벌어진 가운데, 선조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내심 상호의 능력을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들인 광해군의 영향력을 깎기 위해 자신이 내린 처분을 물리자니 제왕으로서 품위가 손실된다고 생각해 방관을 한 것이었다.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자네에 대한 사면이 성사되었네.”

“···사면에 따른 조건도 있겠지요?”

상호는 바로 기뻐하는 대신, 냉정하게 되물었다.

그러한 상호의 반응에 이항복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선 자네가 가진 힘을 조정에서 선별한 인원에게도 부여해줘야 하네.”

“······.”

상호는 잠시 이항복의 말에 침묵했다.

몬스터 코어를 확보해 군관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야 나쁠 것은 없었다.

다만 조정이나 선조를 생각하면 그 힘이 온전히 몬스터 토벌에만 집중되지 않고 전쟁에 능력자들을 투입할 것이라는 게 염려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은 당장에 없을뿐더러 설령 지금 막는다손 치더라도 결국 흐름이 그렇게 될 게 뻔했기에 상호로선 알고도 이 부분은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조가 상호에게 건 제약은 또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허락되지 않은 자들에게 능력을 전수하거나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되네.”

“그 말인 즉, 더 이상 의병들에게 관여하지 말라는 얘기로군요.”

“의병들을 이끄는 의병장들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관군 휘하에 들어오게끔 조치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아직 각 의병 부대가 지방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그들에게 너무 큰 힘을 주는 것을 주상 전하나 조정 대신 대부분이 경계하고 있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이미 능력에 대해 알려준 의병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네. 하지만 요괴 퇴치와 왜군의 점령지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우고 있어 그들에 대해 조정에서도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네.”

“아, 네.”

과연 그럴까.

상호는 자신이 아는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른 일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의병장들이 제대로 공을 인정받지 못한 사실을 떠올리며 이항복의 말을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지금이야 왜군을 막고 요괴를 퇴치하는데 도움이 되어 내버려두고 있지만 나중에 언제 토사구팽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토사구팽의 대상엔 나도 있을 게 분명해.’

상호는 이미 선조나 조정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면서 훗날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암암리에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면이 이뤄지고 상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렇지만 바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선 선조가 요구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몬스터 코어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남준이라 하오.”

“내금위 과의교위인 김태진이다.”

“유길준이외다.”

“백준수라고 하외다.”

광해군에게 부여받았던 관직이나 요괴 토포사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상호는 자신과 함께 토벌을 할 네 사람의 군관과 마주하였다.

모두 임충과 같은 내금위 소속 군관으로 선조가 직접 뽑은 자들이었다.

바로 이들이 선조의 명에 따라 능력자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었다.

‘동시에 내 감시역일 테고 말이야.’

그랬기에 서로 간에 불편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들 말고도 150명의 정예병이 토벌대에 들어왔다.

개중에는 전문으로 화약을 다루는 총통위 소속의 병사들도 있었다.

화포와 군마를 쉽사리 내줄 만큼 지원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호는 불안하기만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야.”

상호는 조선 시대에 맨 처음 와 고블린 토벌을 하던 때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몬스터 토벌은 완전 초짜인 이들을 데리고 일을 하려니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난하게 고블린이나 코볼트가 좋겠지.”

비능력자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인 고블린이나 코볼트를 처음 표적으로 삼았다.

조정으로 올라온 많은 장계 중에 섞여 있는 몬스터 목격 정보 중에서 대상으로 삼을 만한 정보를 찾았다.

“대충 이 정도인가.”

지금 있는 평안도 지방에서만 추렸음에도 고블린이나 코볼트를 목격한 것으로 의심되는 건수를 5건이나 추릴 수 있었다.

“그럼 우선은 이곳이다.”

상호가 첫 번째 선택한 곳은 의주에서 멀지 않은 삭주였다.

결정을 내리고 상호는 병조판서인 이항복에게 찾아갔다.

“삭주 땅에 나타난 요괴를 첫 번째로 소탕하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올라온 장계의 정보도 정확한 것 같고 지금 꾸린 토벌대의 수준으로 상대하기에도 적절한 수준이라 생각되어 그리 결정했습니다.”

“경험 많은 자네의 말이라면 틀린 게 아니겠지. 내 주상 전하께 재가를 올리겠네.”

“감사합니다.”

본래라면 상호가 직접 선조에게 명을 받아야 옳았다.

하지만 선조는 국문 때 이후로 한 번도 상호를 만나지 않았다.

거리를 두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상호로선 그게 더 기꺼운 일이었다.

“그리고 대감.”

“또 할 말이 있는가.”

“전에 제가 부탁드린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내 하인을 직접 시켜 창녕으로 내려 보냈네. 아직 당도는 못했겠지만 무사히 도착하면 자네의 소식을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이러한 말을 들으니 새삼 안심이 되었다.

토벌에 큰 도움이 되는 율이나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겠지만 상호는 그러지 않았다.

‘선조나 조정의 뜻대로 움직이는 이 토벌대에 그들을 합류시킬 수는 없지.’

상호는 의병들에게 능력에 대해 비밀리에 알려주고 요괴와 싸우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당초 자신이 세운 계획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율과 임충에게 자신의 역할을 위임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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