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1화 (81/127)

十七장. 왕자를 구하라. (2)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것이냐?”

“제대로 설명을 해보게.”

방금 상호가 한 말을 인빈 김씨나 허준 모두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반응에 상호는 잠시 낮은 한숨을 내뱉고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다시 설명했다.

“제가 방금 말한 쉐이드라는 존재는 그림자에 숨어 사람을 공격하는 요괴입니다.”

“정말로 왕자의 상태가 저 지경이 된 게 요괴의 행위란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선조로부터 한 번 밑져야 본전이니 왕자를 상호에게 보이자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극구 반대했던 인빈 김씨는 이러한 상호의 설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네 놈이 우리를 속이려고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게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상호는 정색하며 화내는 인빈 김씨를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그만큼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다. 분명히 지금 왕자의 몸이 이렇게 된 것은 쉐이드의 소향이야.’

상호 본인도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쉐이드에 대한 지식은 갖고 있었다.

쉐이드는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특수한 형질을 가진 존재였다.

스스로 2차원의 그림자에 동화될 수 있는 쉐이드는 극히 드물게 다른 몬스터 무리가 몬스터 게이트를 넘어올 때 같이 동반해 이쪽 세계로 넘어온다.

그리고는 바로 적대적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근처에 온 인간의 그림자에 들러붙어 몬스터 게이트의 영역 바깥으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간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온 쉐이드는 본격적으로 사람을 바꿔가며 자신의 숙주가 된 인간의 생명력을 갈취한다.

이 때문에 처치가 곤란하고 민간인 피해도 많이 나 위험한 몬스터로 분류되기도 했다.

‘어떻게 왕자의 그림자에까지 쉐이드가 오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토록 생명력이 빨린 것을 봐선 꽤 오래 전에 놈이 붙은 게 분명하다.’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신성군이 모든 생명력을 잃고 죽는 것이 하루나 이틀 뒤가 될 지도 몰랐다.

상호는 이러한 것까지 모두 소상히 이야기했다.

“그, 그럴 수가!”

상호에게 조금도 믿음을 주지 않았던 인빈 김씨도 이어진 설명에 차츰 말을 믿기 시작했다.

한 편, 의원인 허준은 다른 무엇보다 왕자의 상태를 두고 이런 질문을 꺼냈다.

“허면 그 요괴를 무찌른다면 왕자님을 살릴 수 있는 것인가?”

“원인인 요괴를 제거하고 제대로 몸의 원기를 회복시킨다면 분명 왕자 마마의 상태를 낫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원기를 불어넣는 약재를 써도 호전이 되지 않더니 원인이 그거였군.”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당장 원인인 쉐이드를 퇴치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늦고 맙니다.”

상호는 인빈 김씨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늦을 수 있다는 말은 인빈 김씨의 마음을 완전히 돌렸다.

“뭐든지 해도 좋으니 부디 우리 왕자를 살려 내다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자신의 금쪽같은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인빈 김씨가 간절하게 말했다.

이에 상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하지만 쉐이드를 잡으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했다.

“놈은 사람의 그림자뿐만 아니라 사물의 그림자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닐 수 있는 요괴입니다. 게다가 조심성도 많아 놈을 끌어내 잡는 게 쉽지 않죠.”

“자네는 요괴 퇴치의 전문가라 들었네. 분명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알고 있죠.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몇 가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호의 말을 듣고 흘린 눈물을 옷고름으로 훔치던 인빈 김씨가 말했다.

“무엇이든 말만 해라. 필요한 것들을 내가 준비하도록 시키겠다.”

“그러면······.”

왕자의 상태나 현재 상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그렇기에 상호는 더욱 실수 없이 이번 일을 성공시켜야만 했다.

밤이 되고 신성군은 초롱불을 머리맡에 두고 파랗게 질린 채 잠들어 있었다.

초롱불이 일렁이는 가운데, 그 빛에 비쳐 만들어진 그림자 또한 살짝 흔들렸다.

그런 미미한 변화만 보이던 그림자가 갑자기 길게 늘어진다.

이어 그림자 안쪽에서 검은 형체가 손부터 삐져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은 괴기스럽기 짝이었다.

온 몸이 칠흑처럼 새까맣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텅 빈 공동만 있는 쉐이드는 그림자에서부터 몸을 쭉 늘려 신성군의 얼굴 위로 머리를 가져갔다.

그러더니 입을 크게 벌리며 신성군의 입에서부터 생기를 빨아들이고자 했다.

“지금이다!”

상호의 외침과 함께 사방의 벽, 아니 임시로 만든 짚단 벽이 뒤로 쓰러지고 사방에 자리한 화롯불의 불빛이 신성군이 누워있는 이부자리를 밝혔다.

“수룡시!”

모습을 드러낸 쉐이드를 향해 상호가 날린 ‘수룡시’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불빛 때문에 신성군 주변에는 그림자가 사라진 상태였다.

퍼억!

그림자 없이는 달아날 구석이 없는 쉐이드는 그대로 수룡시에 얻어맞아 신성군 위에서 떨어졌다.

“역시 짐작대로였군.”

상호는 방금 전 앞으로 뻗은 팔을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만에 하나 자신이 말한 게 아니라면 어쩌나 노심조차하며 기다렸던 바였다.

그랬기에 쉐이드의 등장은 그로선 반갑기까지 했다.

‘제아무리 그림자를 통해 신출귀몰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몬스터라도 이런 함정에서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할 거다.’

상호는 쉐이드를 잡기 위해 이와 같은 준비를 해뒀다.

이와 같이 안했다면 밤에만 은밀히 움직여 희생자의 생기를 빨아들이는 쉐이드를 그림자 밖으로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정말로 요괴가 나왔잖아.”

“어찌 해야 합니까?”

“일단 경거망동하지 마라.”

상호와 함께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수십 명에 달하는 군졸들은 그야말로 우왕좌왕했다.

처음 보는 몬스터의 존재도 존재지만 지금 쉐이드가 있는 곳에 신성군이 있어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쪽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호는 원형으로 놓인 화롯불 안쪽으로 홀로 진입했다.

불을 등진 그의 등 뒤로 그림자가 생기자 그렇지 않아도 숨을 곳을 찾던 쉐이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호가 있는 쪽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걸려들었군.’

상호는 자신을 향해 오는 쉐이드를 노려보았다.

실체가 있지만 쉐이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기보다는 유령과 비슷한 존재였다.

‘놈은 생물체가 아니다. 그 점을 간과하면 큰 코 다쳐!'

상호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헌터 의무 교육 시간 때 졸면서 들었던 쉐이드에 대한 정보만 믿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기에 눈앞의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닥쳐온 상황에서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하아앗!”

기합과 함께 내지른 검이 칼바람을 거세게 일으킨다.

단숨에 어깨부터 가슴 아래까지 검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쉐이드는 죽지 않았다.

“이런!”

상호는 몸이 갈라진 채로 자신의 머리 위로 뛰어넘고자 하는 쉐이드의 움직임에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이대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게 내버려두면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만다.

“하앗!”

상호는 자신의 그림자로 들어가려는 쉐이드를 단숨에 베어냈다.

그러자 쉐이드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상호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코어?!”

방금 베인 자리를 통해 언뜻 드러난 붉은색 코어가 보였다.

파앗!

“크으윽!”

물러난 쉐이드가 자신의 몸을 날카로운 촉수 형태로 만들어 상호에게 뻗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피했지만 몸 여기저기를 베이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저 요괴를 토벌하는데 가세한다.”

“요괴가 더 이상 주상 전하가 머물고 계신 곳에 있도록 둘 수는 없다.”

명색이 국왕을 곁에서 지키는 내금위에 소속된 무관이라 그런지 혼란에서 빠르게 벗어나 쉐이드를 상대하고자 결의했다.

당장이라도 안쪽으로 진입할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자 상호의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

‘댁들이 나서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분명 내가 말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지.’

지금 불빛이 사방에 있는 이곳엔 그림자라고는 상호의 그림자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 사람이 뛰어든다면 그만큼 그림자가 늘어날 테고 쉐이드에게 도망칠 구멍만 늘려주는 꼴이 될 터였다.

“할 수 없지!”

방해꾼들이 나서기 전에 쉐이드는 잡는다.

상호는 이리 결정하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촤라락!

검은 촉수가 무수히 뻗어와 진로를 가로막는다.

“으아앗!”

상호는 팔로 머리만을 보호하며 그대로 전진했다.

팔뚝과 허벅지, 복부가 촉수에 찔림으로서 격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능력치를 올려 강화시킨 육체는 치명상만은 피할 수 있게 해주었고 고통에 따라 아드레날린 분비는 더욱 행동을 촉진시켜주었다.

“베어도 소용없다면!”

상호는 지근거리에서 최대한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쉐이드는 그런 상호를 노리고 앞뿐만 아니라 좌우, 그리고 후방까지 자신의 촉수를 늘려 공격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놈보다 더 빠르게 보통 사람의 눈으론 쫓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손을 움직인 상호가 먼저 쉐이드의 몸에서 코어를 빼냈다.

촉수의 날카로운 끝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떨어진 채 멈춰 있다.

그러더니 곧 형체가 유지하고 못하고 먼지처럼 부서져 내렸다.

“휴, 아슬아슬했네.”

몬스터 코어를 먼저 발견해 그것을 손으로 빼내 탈취한다는 게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아주 조금만 더 늦었다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었을 것이다.

“으윽.”

상호는 잠시 동안 격하게 이뤄졌던 아드레날린 분비가 끝나면서 온 몸의 고통이 다시금 밀려오자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지금 그가 입은 부상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왕자 마마!”

“어서 처소로 모셔라!”

싸움이 끝나니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내관과 궁녀들이 달려와 누워있는 신성군을 챙겼다.

이 와중에 누구도 상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제길, 더럽게 아프네.”

조선 시대에 떨어지고 나서 입은 부상 중 가장 큰 부상이었다.

당장 찔린 부위에서 나오는 피부터 지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다 과다출혈로 죽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하던 상호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바로 허준이었다.

“어서 눕게.”

“의원 나리께서는 신성군 마마한테 가야하는 것 아닙니까?”

상호는 처소로 모셔진 신성군의 상태를 진찰해야 할 허준이 자신에게 온 것에 대해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에 허준은 상호의 상처를 면밀히 보면서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금 중한 환자가 여기에 있네.”

허준은 지혈을 위해 약초를 상처에 바르고 무명천을 덧댔다.

과연 명의라 후대에 불리는 이답게 신속하고 처치도 완벽했다.

“참봉 나리,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지금 인빈 마마께서 찾으십니다.”

“곧 가겠다고 전하게.”

허준은 인빈 김씨를 모시는 상궁의 부름에도 아랑곳 앉고 상호의 치료를 끝마쳤다.

그런 다음에야 신성군이 있는 곳으로 가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준을 향해 누운 채로 상호가 말했다.

“쉐이드를 처치했으니 더 이상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왕자 마마가 호전되는 것은 온전히 의원 나리에게 달렸습니다.”

“내 최선을 다해 살릴 것이네. 그러니 자네는 염려 말고 푹 쉬게나.”

“후후, 의원님만 믿겠습니다.”

허준의 솜씨를 믿기에 상호는 안심하고 뒷일을 맡길 수 있었다.

대자로 누운 채 하늘을 보며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왕자를 구했다. 이랬는데 당장 처형시키지는 않겠지.’

이번에 왕자를 구한 것은 자신이 가진 능력과 지식이 이만큼이나 유용하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아무리 의심이 많고 능력에 대해 경계를 하는 선조라 할지라도 득 보다 실이 많은 게 아니라 반대로 실보다 득이 많다고 여기게 되면 국왕으로서 분명 판단을 바꿀 것이라 판단했기에 이렇게까지 한 것이다.

‘아아,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피를 많이 흘린 탓일까.

상호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대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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