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六장. 의주로 압송되다. (1)
상호의 토벌대는 휴식을 마치고 남은 몬스터 둥지를 토벌해나갔다.
이런 와중에도 틈틈이 진주성의 전투에 대한 소식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 드디어 왜군들이 물러났다고.”
“참으로 대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꾸러뜨린 왜장만 수백이고 병졸까지 합하면 산 하나를 이룰 정도이니 말입니다.”
“곽 장군께서도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군.”
“성을 지키는 이들만 하겠습니까. 그래도 장군이 아니었다면 성을 포위한 왜군이 쉬이 지쳐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보고를 전해온 전령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약 3만에 달하는 왜군은 진주성을 포위하고 맹렬한 공격을 펼쳤다.
약 나흘간이나 이어진 맹공에도 김시민 장군을 필두로 왜군의 십분의 일에 불과한 3천의 병력은 성을 지켜내었다.
여기에 경남 단성에서 김준민, 전라 능주에서는 최경회 같은 의병장들이 의병을 모아 왜군 배후를 치니 왜군은 앞뒤로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특히 의병장 중에서 가장 큰 활약을 펼친 것은 곽재우 장군이었다.
곽재우는 직접적으로 왜군을 공격하기보다 산에서 횃불을 켜 많은 수의 원군이 온 것처럼 속이고 1만의 대군이 곧 도착할 것이라는 거짓 선전을 하는 등 심리전에 주력했다.
이 작전은 주효하게 먹혀 들어갔고 왜군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적지 않게 일조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섬멸하기 위해 분리되어 온 왜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쳐 승리도 거두었다.
이때, 곽재우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마치 여러 곳에 동시에 있는 것처럼 꾸며 왜군을 크게 혼란시키는 활약을 펼쳤다.
‘곽재우 장군을 보내기를 역시 잘한 것 같네.’
일단 자신이 아는 역사대로 조선의 승리로 진주성 싸움이 끝난 것에 안도하는 상호였다.
그러다 문득 김시민 장군에 대한 게 궁금해졌다.
진주성 전투 말미에서 왜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것은 이미 아는 바였다.
그럼에도 곽재우를 통해 김시민을 살리려고 하지 않은 것은 인위적으로 너무 역사를 비틀면 그 뒤의 역사 진행이 달라져버려 이후 역사를 안다는 이점을 살릴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시민 장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게 우선이니깐.’
그래도 못내 신경쓰였던 터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을 지키던 아군에게 큰 피해는 없었답니까? 가령 누가 전사 했다던가 말이죠.”
“글쎄요. 제가 알기론 마지막 밤 공격을 받았을 때 꽤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고 듣기는 했지만 성의 지휘관 중 누가 전사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상호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을 깨고 김시민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어째서 그가 살아남은 거지?’
이미 역사가 개변되어 그 작용으로 살아남은 것일까.
일부러 방관까지 했음에도 일이 이렇게 상호로선 난처할 따름이었다.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김시민의 생존이 앞으로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역사를 원래대로 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으로선 그의 생존이 역사에 최소한으로 영향을 미치는 쪽으로 가길 바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상호나 조선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아무튼 진주성 전투가 끝났으니 곧 머지않아 곽재우도 이곳으로 복귀하게 될 것이었다.
전령을 보내고 상호는 잠시 혼자 생각에 잠겼다.
“이곳의 몬스터는 거의 정리가 되었으니 이제 여기는 곽재우 장군에게 맡기고 다른 지방으로 넘어가야지.”
다음 상호가 생각하는 지역은 경주 지역이었다.
비록 왜군의 점령지지만 몬스터들의 활동이 그곳에서도 꽤 많이 일어나고 있어 왜군보다 앞질러 토벌을 해야만 했다.
“곽재우 장군에게 말해서 빌린 병사들은 당분간 내가 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해야겠다.”
본래 함께였던 일행뿐만 아니라 함께 몬스터 토벌을 해온 인원들은 반수가 능력자이고 또 전원이 몬스터와의 싸움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지금껏 여러 의병장들을 도우면서 인원을 빼내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협력을 구할 의병을 찾기가 힘들기에 잠시 병력을 빌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뭐 경주 땅에도 소규모로 항전을 펼치는 의병들이 있을 테니 그들도 모아 토벌을 펼치면 되겠지.”
일단 곽재우의 의병 부대가 돌아오려면 며칠은 더 걸릴 터, 그 때까지는 아직 도처에 잔존한 몬스터 둥지를 소탕해나가면 될 터였다.
“나리!”
“응?”
바깥에서 율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방 안에 앉아 있던 것도 지루하던 차였기에 상호는 대답 대신 직접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바깥에 나가보니 율이 상당히 당황해하는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닌가.
평소 침착한 그녀가 저렇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처음 본 상호는 눈썹을 살짝 치켜 들며 의문을 가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 그것이···조정에서 금부도사가 내려왔어요.”
“금부도사?”
낯선 단어에 상호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그를 위해 율이 추가로 설명해주었다.
“의금부의 종 5품직의 관원이에요. 보통 형을 집행하거나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한다구요.”
“······.”
율의 설명에 상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조정에서 직접 금부도사가 내려왔다는 것이 의미하는 게 뭔지 상호도 눈치챈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상호는 놀라기는 했지만 비교적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예측했기 때문이다.
“나리, 일단 상황이 심상치 않아요. 일단 몸을 피하고 나중에 세자 저하를 통해 자세한 상황을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금부도사 일행의 분위기를 먼저 보고 온 율은 일단 이렇게 권해왔다.
하지만 상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 할 수는 없어.”
“나리!”
“자칫 나 때문에 광해군 마마에게 죄가 대신 갈 수도 있어. 그리고······.”
가장 큰 후원자인 광해군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히게 되면 향후 의병들의 협력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러니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지금은 조정의 뜻에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그들은 어디 있지? 안내해줘, 율.”
“하지만 만약 잘못 되기라도 하시면 저는······.”
“걱정 마. 그럴 일은 아마도 없을 테니 말이야.”
상호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율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며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후 지금 지내는 관청의 정문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붉은 색 관복을 입은 금부도사와 그를 수행하는 나졸 몇 명이 이쪽의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용케도 왜군 점령지까지 저런 차림으로 왔다고 생각하며 상호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임충을 발견한 상호가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임 무관님, 사람들을 물려주십시오.”
“어찌 오신 겁니까.”
임충는 낮은 목소리로 상호에게 말했다.
그 역시도 상호가 이 자리에 나타나지 말고 잠시 몸을 피하기를 원했던 모양이었다.
이에 상호는 쓴 미소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피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으음.”
“그리고 제가 없는 동안에 이곳의 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괜히 저와 함께 간다면 같은 죄로 취급당할 겁니다. 그리고 이곳의 일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데 그냥 떠날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임충은 상호의 뜻에 따라 토벌대원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제야 대화할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상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정에서 오셨다고요?”
“그러하다. 그대가 이상호라는 자이렷다.”
“그렇습니다.”
방금까지 분위기가 위축되었던 금부도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압적인 태도로 발설했다.
물론 상호는 여기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주상 전하의 어명을 전할 것이니 의복을 단정히 하고 예를 갖춰라.”
“미안하지만 본인은 이곳의 예를 잘 모르니 대신 어떻게 하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허어! 천출도 아는 것을 모르다니.”
“이야기 듣고 온 것 아니었소? 나는 이곳의 사람이 아닌데 말이오.”
“허튼 소리! 자신이 선계에서 온 선인이라는 둥 그런 사특한 말로 세자 마마를 속이더니 이제는 주상 전하의 명을 받들고 온 나를 속이려 드는가!”
이러한 반응에 상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숫제 사기꾼 취급 받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애써 그런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말했다.
“믿든 안 믿든 상관은 없지만 방식을 모른다는 것은 정말이오.”
“···주상 전하가 계신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엎드린 채로 내가 말하는 주상 전하의 말을 경청하면 된다.”
“알겠소.”
상호는 금부도사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곧 납작 엎드린 상호를 보며 금부도사는 가져온 두루마기를 옆으로 펼치고 준엄한 목소리로 어명을 대행해 읽기 시작했다.
“죄인을 들어라. 전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에 감히 짐을 대신해 나라를 지키는 전쟁을 이끄는 세자를 속이고 사사로이 관직을 취한 그 죄를 용서할 수가 없노라. 이에 과인은 죄인을 직접 문초할 것이니 이에 순순히 따르도록 하라.”
“······.”
어떻게 예상한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애초에 광해군이 관직을 내릴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직접 당하니 기분이 참 더러웠다.
“뭣들 하느냐. 당장 이 자를 추포해라.”
“넷!”
금부도사의 지시에 뒤에 서 있던 나졸들이 나서서 포승줄로 상호를 묶었다.
묶인 상호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깟 포승줄 따위는 단번에 힘을 줘서 풀어낼 자신이 있지만 참기로 했다.
“어서 가자.”
“네.”
앞장 서는 금부도사를 따라 나졸들이 거칠게 상호를 일으켜 세우며 뒤를 따랐다.
관청 밖으로 나가는 상호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이구, 저 나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데려가십니까.”
“우리를 괴롭히던 괴물들을 토벌해준 고마우신 분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상호를 붙잡아가는 것을 보고 탄식을 터트리며 길을 막았다.
그러자 금부도사는 성을 내며 칼을 뽑아 들고 이렇게 소리쳤다.
“어허! 감히 주상 전하의 명을 수행하는 우리를 방해할 셈이냐. 어서 썩 물러나라!”
“퇫! 우리가 왜군한테 겁박을 받고 요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조정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그것을 들은 금부도사는 노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어느 놈이 감히 조정에 대해 험담 하느냐!”
“······.”
“이 놈들이 왜놈들이 항복하더니만 임금을 우습게 보는구나. 어디 역적으로 죄를 물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거의 협박에나 다름없는 금부도사의 말에 마을 주민들은 겁을 먹고 주춤 물러났다.
이때, 관청 쪽에서 임충이 나오면서 금부도사에게 말했다.
“이보게. 어찌 힘없는 백성들을 그리 핍박하는가.”
“흠흠.”
금부도사는 내금위 소속의 무관인 임충에게까지는 함부로 하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에 돌렸다.
한 편, 임충과 같이 밖으로 나온 율은 어느 틈엔가 상호가 있는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리, 부디 몸 성히 돌아오셔야 돼요.”
“그래.”
상호는 율의 내민 손을 한 번 꽉 쥐어주었다.
그러나 둘의 작별 인사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분위기를 보고 서두르려는 금부도사의 뜻에 따라 포승줄을 잡은 나졸이 상호를 앞으로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그럼 다녀올게.”
상호는 추포되어 가는 상황이었지만 금방 어디 볼 일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인 것 마냥 태연하게 작별의 말을 전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러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율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지도 않고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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