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五장. 마도구를 제작하다. (3)
몬스터 토벌을 통해 얻어낸 전리품은 상당했다.
앞서 치른 우포늪 토벌 이후로 <붉은색 코어>는 더 얻지 못했지만 능력을 올릴 수 있는 <푸른색 코어>만 20개 넘게 획득했다.
“최형득, 이 양반의 담력은 제법이었지. 그리고 영규 이 친구도 행동이 빠릿빠릿하고 싸움에 임하는 태도가 나쁘지 않았어.”
상호는 획득한 코어를 자신이 눈여겨 본 인원들에게 아낌없이 분배했다.
그 결과, 열 명에 이르는 이들이 새로운 능력자가 되었다.
새롭게 능력자가 된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도록 훈련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하루 정도는 거점을 두고 휴식을 취했다.
“자신의 한계까지 힘을 낸다는 느낌으로 몸을 움직여라.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존에 내지 못했던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네.”
아직 몬스터 코어의 힘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인원들을 훈육하는 것은 기존에 먼저 능력자가 된 임충이나 율 같은 이들이었다.
임충이나 율은 그 동안 꾸준히 몬스터 코어의 힘을 받아들였다.
합계 10단계, 중점으로 올린 능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4단계까지 도달한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꾸준히 수련을 해왔다.
그러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베푸니 후진들의 성장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잘 해주고 있네.’
본래라면 상호도 저기에서 가르침을 줬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그는 할 일이 많았다.
“한 번밖에 없는 기회니 꼭 성공해야지.”
상호는 자신이 즐겨 쓰던 활과 손바닥 크기의 독침을 가지런하게 놓았다.
우선 상호는 독침을 절개해 안의 독 샘을 끄집어내었다.
조금씩 방울져서 흘러내리는 독액을 활대에 조심스럽게 뿌렸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상호는 양 손을 앞으로 내민 다음 파장을 흘려보냈다.
우웅.
기묘한 공명음과 함께 바닥에 놓은 활이 떨리기 시작했다.
실패한다면 어렵게 얻은 소재는 물론이고 이곳에서 와서 오랫동안 사용했던 손때 묻은 활도 잃을 것이었다.
‘제발, 성공해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상호는 파장을 신중하게 흘려보냈다.
이윽고 활에서 눈부신 광채가 뿜어졌다.
“성공했다!”
상호는 자신도 모르게 방 안에서 환호를 터트렸다.
그리고는 독액을 뿌렸던 활을 망설임 없이 들었다.
“후후.”
이제 이 활에는 만티코어의 마력이 깃들어 쏘는 화살에 강력한 독을 심게 되었다.
만티코어의 독은 커다란 황소도 1분이면 절명시킬 만한 꽤 강력한 독이라 몬스터 대부분에게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정도의 무기라면 현대에서도 수천만 원을 호가할 터였다.
물론 그런 가치보다는 앞으로 치를 싸움에서 이 무기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게 더 중요했다.
“지금까지 너무 능력에만 의존하는 바람에 싸우다가 위기에 처했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상호가 비장의 무기로 만든 차원석 탄환은 대형 몬스터를 상대로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제한적인 무기였다.
그에 반해 이 활은 언제 어디서든 유용하게 쓸 수 있고 또 어디를 맞추든 상대를 확실하게 처치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무기였다.
“이름은···절명의 활이라 붙이자.”
노린 목표는 반드시 숨을 끊게 만드는 활이니 이러한 이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상호였다.
새로운 장비도 손에 넣은 상호의 능력은 처음 조선에 왔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여기에 와서 모든 능력을 인간이 가지는 한계선을 뛰어넘었고 물의 속성력을 다루는 법도 제법 늘어난 덕에 여태까지 모든 싸움은 이겨올 수 있었지.”
네 가지의 능력 모두 4단계를 돌파했고 그 중, ‘근력’과 ‘정신력’은 5단계에 오른 상태였다.
거기다 ‘물의 속성력’을 다루는 역량도 많이 발전해 ‘수룡시’나 ‘수룡창’, 그리고 여러 능력을 추가로 개발해냈다.
거기다 <황금색 코어>로 얻게 된 다른 세계의 영웅 능력까지.
지금의 상호는 현대의 헌터들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럭저럭 일류 수준은 된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혼자가 아닌 토벌대원들과 다 같이 힘을 모아 싸우는 게 몬스터 토벌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지만 그래도 몬스터들을 힘으로 압도하면서 전세를 이쪽으로 끌어줄 만한 능력자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소규모의 몬스터 토벌이라면 괜찮지만 규모가 커지는 Ⅲ단계 몬스터 게이트부터는 헌터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만한 ‘영웅’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보통 특급이라고 불리는 위치에 있는 헌터들이 탱커나 돌격대장 격인 어택커를 맡으면서 이러한 영웅이 되어주었다.
슬슬 시간이 꽤 흘러 Ⅲ단계 게이트가 나타날 가능성이 생겼고 또한 앞서 포섭한 의병들을 포함해 몬스터 토벌에 가담하는 인원의 규모가 늘어난 만큼, 위의 역할을 맡아줄 만한 능력자가 필요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
토벌대를 수족처럼 부리며 그들로 하여금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하게 하는 커맨더를 맡으면서 몬스터들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전장에서 발휘해내는 영웅을 같이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상호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류로 묻혀 지내던 현대와 다르게 이곳에서만큼은 조선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 힘과 역량으로 역부족이지.”
적어도 두세 단계 정도 모든 능력을 강화하고 어떤 몬스터든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스킬이나 장비가 더 있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맡고 있는 토벌대장, 커맨더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는 자칫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무모한 행동은 지향해야만 한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준비될 때까지라도 대신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후보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강력한 힘과 내금위 무관으로서 오랫동안 수련한 무예를 가진 임충.
집안 대대로 전수된 검술을 여성의 몸으로 익히고 빠른 몸놀림과 빼어난 검술로 지금까지 많은 공을 세운 율.
이 두 사람 중 한 명이 지금보다 더 경험을 쌓는다면 충분히 영웅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노유명, 그 친구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
뒤늦게 합류했지만 능력자가 아닌 상태에서도 몬스터를 손쉽게 처치하던 노유명도 앞으로 계속해 능력을 쌓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으음, 여기까지 생각한 김에 좀 더 누가 앞으로 영웅의 역할을 할 만한지 검증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후보자 중 한 명을 빨리 골라야 그에게 좀 더 집중해서 투자를 하는 편이 앞으로 몬스터 토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영웅’을 빨리 나오게 하는 방법이었다.
해서 상호는 바로 오늘 마음에 둔 세 사람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해가 질 쯤.
화롯불을 사방에 밝힌 관청의 마당에 상호와 임충이 서로를 마주보며 서있었다.
먼저 상호가 웃는 낯으로 이렇게 말했다.
“서로 그동안 바빠서 각자의 실력을 비교할 기회도 없지 않았습니까. 해서 간단히 대련이나 하자고 임 무관을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저로서는 기쁜 일이군요. 안 그래도 이 토포사의 강함을 직접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임충은 싫은 기색 없이 답했다.
아마도 그 역시 상호와 한 번 제대로 대련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서로 봐주기 없고 능력도 쓰는 것으로 하지요.”
“좋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능력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상호는 허리의 검을 뽑아 몸의 앞쪽으로 검을 내세웠다.
“시작하지요.”
“그럼.”
임충 또한 검을 비스듬하게 뽑아내 자세를 취했다.
서로 간에 눈을 마주치며 수읽기에 들어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탓!
먼저 선수를 치고 움직인 것은 상호였다.
“흐읍!”
임충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보 앞까지 다가온 상호를 피해 뒤로 몸을 날렸다.
이런 그를 향해 상호가 휘두른 검이 아슬아슬하게 날아들었다.
카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끼리 충돌했다.
이 순간, 대기가 진동하였고 그로인해 없던 바람이 일어났다.
“으라아!”
상호는 그대로 기세를 타고 계속해서 정면으로 검을 휘둘렀다.
4단계의 ‘민첩’ 능력을 가진 이답게 평범한 사람이 봤다면 그 움직임을 읽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휘둘러댔기에 임충은 반격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근력’에서만큼은 상호에게 비등하기에 날아드는 검을 정확하게 맞받아치면서 점차적으로 자신의 검술 흐름에 상호의 검을 섞어 다음 공격을 예측하기 쉽도록 만들어갔다.
채앵!
“이런.”
임충의 의도에 의해 예측당한 공격을 펼쳤던 상호는 예상치 못한 역습을 받았다.
때문에 아래서 위로 오는 검을 피하며 급급히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역시 검술로는 상대는 안 되는구나.’
검술을 가르쳐준 스승 격인 임충에게 도저히 검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상호의 움직임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쫓아오는 임충과 거리를 두며 상호가 검을 쥐지 않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수룡시!”
허리에 찬 물통에서 물이 나와 화살을 형태를 이루며 날아갔다.
갑옷도 뚫을 만큼 위력이 나오는 ‘수룡시’를 망설임 없이 날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임충을 믿기 때문이었다.
파앗!
검광이 번뜩이자 ‘수룡시’가 무수한 물방울로 변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반 화살보다도 빠른 ‘수룡시’를 정확히 포착해 검으로 베어낸 것이다.
“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예 벨 줄이야.”
상호는 예상을 뛰어넘는 임충의 솜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다시금 거리를 좁힌 임충이 기회를 잡고자 했다.
근접전이 된다면 다시 자신이 불리해질 터였다.
‘다시 한 번 간다.’
이번에는 한 발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발을 만들어냈다.
급소를 피하고 관통력을 줄인다.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세밀한 조절을 단번에 해냈고 곧 허공에 띄워진 ‘수룡시’들이 달려드는 임충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순간, 눈앞에서 임충의 모습이 번쩍하고 사라졌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임충이 이 상황에서 ‘점멸’ 스킬을 쓸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한 바였다.
‘점멸’ 능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사용자의 스킬 숙련도와 역량에 달라지지만 대략 10미터에서 30미터 사이였다.
아직 능력이 미숙한 임충이라면 10미터가 한계였지만 방금 전에 둘 사이의 거리는 채 10미터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검을 자신의 뒤쪽으로 휘둘렀다.
챙!
역시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상호의 눈이 닿지 않는 위치로 도약해 온 임충은 날아든 검을 가까스로 받아냈다.
이내 두 사람은 맞붙은 검을 떼며 자세를 바로 했다.
“하하, 아슬아슬했네요.”
“대단하십니다. 설마 제 의도를 읽으신 겁니까?”
“그쪽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은 했죠. 하지만 저야 능력의 특성을 알기에 알았던 것이니 다른 상대와 싸울 때는 지금처럼 사각으로 들어가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충고, 감사히 듣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실력 검증을 한 셈이었다.
승패를 판가름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이 이상 하면 누구 하나 다칠 것 같아 이쯤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럼 다음은······.”
상호는 다른 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릴 사람을 만나러 바로 움직였다.
이번 상대는 바로 율이었다.
“제가 어찌 나리와 실력을 겨뤄보겠습니까.”
“서로 간에 실력을 가늠해보자는 것이니 그런 신경은 쓰지 않아도 돼.”
“하오나······.”
“율도 무인으로서 나와 실력을 가늠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아.”
상호의 말에 율은 움찔했다.
그것을 본 상호는 웃으며 말했다.
“서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한 번 제대로 해보자, 율.”
“···네, 나리.”
이윽고 마음을 굳힌 율은 상호를 향해 처음으로 검을 빼들게 되었다.
과연 율은 어느 정도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것인가.
새삼 기대하며 상호 또한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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