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73화 (73/127)

十五장. 마도구를 제작하다. (2)

며칠 간, 상호가 이끄는 토벌대는 경상도 일대를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토벌해갔다.

화악산에 있던 오크 둥지를 섬멸하고 금호서원의 서생들을 몰살시킨 구울 무리도 색출해 처치했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인근 고을에서 소문이 퍼졌는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환영하기에 이르렀다.

“어서들 오시오!”

“아이구, 우리 마을을 구해주실 분들이 오셨어.”

몬스터의 습격에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들은 두 손을 번쩍 들며 환대했다.

이번에 찾은 마을은 곽재우가 수집한 정보와는 별개로 근방으로 지나가던 중에 소식을 접하고 들린 곳이었다.

해서 상호는 우선 마을을 습격한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했다.

“얼굴이 흡사 사람처럼 생겨서니 겁나 죽는 줄 알았소.”

“양씨 아저씨네 초가를 그냥 무너뜨리고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저쪽으로 날아갔당께요.”

“문짝을 콱 뚫고 들어온 것은 커다란 전갈 꼬리이었는디. 그것이 그냥 덮쳐 부려 우리 마누라를 꿰어 잡아갔당케.”

목격자들의 말을 종합한 결과, 상호는 몬스터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만티코어.

사람의 얼굴을 가진 사자 머리에 전갈 꼬리를 가진 마수가 이 마을을 습격한 범인이었다.

‘만티코어라면 하나의 게이트에서 보통 한 마리 내지 서너 마리가 나온다. 하늘을 날고 맹독을 지닌 꼬리를 가졌다는 점을 빼면 큰 어려움은 없을 터, 이번 기회에 놈이 가진 독침을 획득해야겠다.’

‘만티코어의 독침’은 사출 무기 종류의 마도구를 제작할 때 쓰인다.

어차피 토벌한 몬스터지만 기왕이면 가치가 높은 몬스터면 좋겠다고 생각한 상호로선 만티코어는 나쁘지 않은 사냥감이었다.

“놈들은 매일 해가 뜨기 전 시간에 마을에 찾아와 가축이나 사람들을 잡아간다고 한다. 그러니 우선 이곳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날아온 놈들을 잡고 온 방향을 따라 살펴서 전이문을 찾아 파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토벌대의 실질적인 리더인 상호를 보좌하며 암묵적으로 토벌대의 2인자 역할을 하는 임충까지 동의하니 결정은 바로 이뤄지게 되었다.

우선 마을 주민들을 잠시 마을 밖으로 피난시키고 남은 소와 돼지가 있는 축사 부근에서 매복하고 밤 동안 기다렸다.

졸음과 싸우면 밤을 지낸 토벌대는 어느덧 동쪽 산마루 위로 어렴풋이 햇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시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오늘은 놈들이 안 올 모양인가 봅니다.”

곁에서 긴장으로 눈도 못 붙이고 밤을 샌 조인환이 허탈해하며 말했다.

그 말에 짚단 속에 반쯤 몸을 파묻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상호 역시 오늘은 허탕을 쳤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쉬이이잉!

바람이 날카롭게 부는 소리가 나더니 광풍이 위쪽에서 불기 시작했다.

“모두 소리를 낮춰.”

상호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다들 잔뜩 긴장하며 입을 한 일자로 다문 상태였다.

잠시 뒤, 볏단으로 만든 축사의 지붕을 뜯고 만티코어가 돼지들을 낚아채기 위해 착지했다.

“지금이다!”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상호와 토벌대원들은 일제히 몸을 숨겼던 장소를 뛰쳐나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만티코어는 발 아래에 잡아둔 돼지를 놔두고 황급히 날아올랐다.

그렇지만 놈이 날려는 순간,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무형의 참격이 놈의 한쪽 날개를 베어냈다.

“잘했어, 율!”

상호는 포스를 운용해 원거리 참격을 날린 율에게 말을 전하며 격하게 추락한 만티코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우선 가장 먼저 처치해야 할 것은 가장 위협이 되는 꼬리 부분이었다.

“아자아!”

상호는 단단한 껍질로 지켜지는 꼬리의 관절 사이를 노리고 일격을 날렸다.

체액이 뿌려지고 꼬리는 잘려 바닥에서 요란하게 꿈틀거렸다.

“크와아앙!”

꼬리가 잘린 고통으로 포효하는 만티코어.

그런 놈을 향해 사방에서 창이 찔러져갔다.

“크와앙!”

“쳇, 다른 놈들인가.”

하늘 위에서 두 마리의 만티코어가 빠르게 하강해왔다.

상호는 그것을 보고 재빨리 ‘수룡시’를 발동했다.

퍼억!

명중했지만 잠시 비틀거릴 뿐,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 다들 산개해!

상호는 힘을 담아 외쳤다.

그 목소리에 반응한 토벌대원들은 생각보다 먼저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그 덕에 만티코어의 강습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쏴라.”

멀지 않은 곳에서 임충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하늘에 뜬 만티코어를 향해 화살과 탄환이 날아들었다.

이 중 몇 발이 만티코어를 맞췄고 곧 두 마리 중 하나는 한 민가의 마당에 떨어졌다.

‘저쪽은 임 무관에게 맡긴다.’

맨 처음의 놈은 숨이 거의 끊어진 상황.

상호는 아직 하늘에 떠있는 놈을 떨어뜨리기로 마음먹고 행동에 들어갔다.

“수룡시!”

하늘을 나는 놈이 상대이기에 한 발보다는 여러 발의 수룡시를 동시다발적으로 날렸다.

커다란 덩치와 다르게 만티코어는 날아드는 물의 화살을 피해 이리저리 빠르게 비행했다.

“하아앗!”

포스의 힘으로 단번에 초가집 지붕 위로 뛰어오른 율이 횡으로 크게 검을 긋자 무형의 참격이 다시 한 번 하늘을 향해 뻗어나갔다.

이 기척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까.

만티코어는 참격이 날아오는 궤도를 피해 급상승을 시도했다.

“어림없지!”

상호는 그것을 막고자 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화살은 만티코어의 왼쪽 눈에 박혔다. 뒤이어 바로 무형의 참격이 앞 다리 중 하나를 베고 지나가니 만티코어는 고통 속에 추락하게 되었다.

“또 다른 놈들은 없는 건가?”

상호는  추락한 지점으로 토벌대원들이 몰려가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매의 눈’으로 상공을 샅샅이 살폈다.

다행이도 하늘에는 더 이상 적으로 보이는 물체는 떠 있지 않았다.

마을에 나타난 3마리의 만티코어 모두를 피해 없이 토벌하였고 이제 남은 것은 몬스터 게이트와 그것을 지키는 로드뿐이었다.

“저쪽 산자락 너머에서 왔습니다.”

“하루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거리군.”

마을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로 만티코어의 영역이 존재했다.

상호는 곧장 마저 토벌을 하기 위해 이름 모를 산으로 출발했다.

만티코어는 음습한 곳을 좋아하기에 산 높은 곳보다는 햇빛이 별로 들지 않는 골짜기 안쪽을 중점으로 수색했다.

그 결과, 마침내 몬스터 게이트와 만티코어 로드를 찾을 수 있었다.

“덩치는 아까 놈들과 다르지 않은데요.”

“그래도 얕봐서는 안 돼. 놈이 어떤 능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으니깐.”

바위 뒤에 숨어 상호와 율은 게이트 앞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만티코어 로드를 살폈다.

다행이 아까 토벌한 놈들이 함께 무리를 이루는 개체 전부였었는지 주변엔 다른 만티코어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걸 쓸 차례가 온 것 같은데.”

그동안 틈틈이 만든 마도구는 꽤 여러 종류였다.

그 중에는 구울을 사냥해 얻은 ‘구울의 손톱’을 가공해 만든 ‘마비의 연고’가 있었다.

“이것을 화살촉에 바르는데 절대 손에 닿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명심하도록.”

“네.”

상호는 궁사들에게 연고를 나눠주며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

‘마비의 연고’에 조금이라도 닿는다면 적어도 이틀 정도는 꼼짝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고를 바른 화살을 시위에 걸고 상호를 비롯한 다섯 명의 골라진 궁사들이 신중히 만티코어 로드를 조준했다.

‘맞아라.’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며 상호는 화살을 날렸다.

이어 다른 궁사들도 동시에 화살을 날리니 누워 있던 만티코어 로드가 벌떡 일어났다.

“크왕!”

만티코어 로드가 포효하자 놈을 중심으로 돌풍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날아간 화살 모두 엉뚱한 곳으로 빗겨나갔다.

“칫! 바람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진 건가.”

하늘을 나는 놈이 바람까지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골치 아픈 일이었다.

초장부터 아까운 도구만 소비해버린 꼴이 되었다.

게다가 이쪽을 알게 된 만티코어 로드가 박쥐 날개처럼 생긴 날개를 퍼덕거리며 머리를 이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크와아앙!”

“수룡시!”

상호는 빠르게 날아오는 만티코어 로드를 향해 기술을 날렸다.

하지만 물의 화살은 만티코어 로드의 몸 주변에 펼쳐진 바람 장벽을 뚫지 못했다.

콰드득!

앞발이 땅을 내리치니 땅이 갈라졌다.

그 공격을 피해 몸을 굴린 상호를 대신해 율이 달려가 검을 만티코어 로드의 안면 쪽에 내리그어갔다.

“꺄악!”

앳된 비명과 함께 율이 왔던 방향으로 튕겨졌다.

바람 장벽을 이루는 바람이 한순간 강해져 내려쳐지는 검과 그것을 쥔 율을 밀쳐낸 것이다.

이어 만티코어 로드는 앞발을 크게 휘둘러 율이 있는 곳을 내리쳤다.

“율!”

“전 괜찮사와요.”

만티코어 로드 다리 너머로 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를 구한 것은 바로 임충이었다.

“어서 일어나라.”

“네.”

임충은 율을 일으키지 않고 곧장 만티코어 로드를 바라보곤 그를 향해 달렸다.

무모하게도 정면으로 돌진하는 임충을 향해 뒤쪽에서 전갈 꼬리가 서서히 들려졌다.

“크왕!”

앞으로 꼬리가 길게 뻗어나가 임충을 노렸다.

독을 뚝뚝 떨어지는 독침이 막 임충의 가슴을 꿰뚫는가 싶던 그 순간, 갑자기 임충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것은 곽재우가 보였던 ‘분신’ 능력으로 만들어진 분신이 공격받아 사라질 때와는 다른 그야말로 종적을 알 수 없는 사라짐이었다.

푸확!

임충이 나타난 지점은 놀랍게도 만티코어 로드의 등 위였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동이었지만 단 한 명은 답은 알고 있었다.

‘역시 점멸 능력, 근접 딜러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니깐.’

상호는 부러움이 다분히 섞인 생각을 하며 검을 깊숙이 찔러 넣는 임충을 보았다.

저번에 획득한 두 개의 <푸른색 코어> 중 나머지 한 개를 받게 된 임충은 그것을 통해 스킬을 얻었다.

그 스킬은 바로 단거리 공간이동을 하게 해주는 ‘점멸’ 스킬이었다.

따로 블링크라는 이름도 있기는 하지만 한국 헌터들은 위의 이름으로 자주 부르는 이 스킬은 헌터들 중에서도 근접전을 주로 치르며 몬스터의 약점을 노려 단숨에 숨통을 끊어야 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킬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스킬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근접 딜러를 맡는 헌터의 대우가 달라질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뭐 마도구 제작도 만족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부럽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구 날뛰는 만티코어 로드의 위에 타 있던 임충이 그만 떨어진 것이다.

파앗!

다행이 임충은 추락 직전에 다시 한 번 ‘점멸’ 능력을 써서 다치지 않고 무사히 피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임충에 의해 공격받아 주의가 흩어져 바람장벽이 사라진 지금이 끝장을 낼 찬스였다.

마침 상호의 눈에 아까 쏘았다가 명중하지 못하고 떨어진 화살이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에잇!”

상호는 달려가면서 손을 뻗어 땅에 떨어진 화살을 잡았다.

바람장벽이 다시 생성되려는지 점차 맨티코어 로드의 주변의 바람이 강해지고 있었다.

“으라아아!”

기합과 함께 바람을 단번에 돌파한 상호의 눈앞에 괴수의 몸이 드러났다.

맨 손으로 화살대를 꽉 쥐고 있는 힘껏 그것을 몸뚱이에 박아 넣었다.

“크와앙!”

난데없이 옆구리를 찔린 맨티코어 로드는 펄쩍 뛰었다.

놈이 날뛰기 전에 먼저 뒤로 피한 상호는 모두에게 언령으로 지시했다.

= 다가가지 말고 대기해라.

공격을 자제시키고 상호 본인도 멀찍이 물러나 하늘로 올라가는 맨티코어 로드를 바라보았다.

잠시 비틀거리며 올라가던 맨티코어 로드는 갑자기 빳빳하게 굳어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였다.

화살촉에 묻혔던 ‘마비의 연고’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이렇게 토벌은 또 성공리에 끝났고 전리품으로 <붉은색 코어>와 함께 상호가 바라던 재료인 ‘만티코어의 독침’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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