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64화 (64/127)

十三장. 홍의장군. (2)

대부분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과 다르게 유독 붉은 옷을 입은 남성은 단번에 그가 홍의장군 곽재우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물을 던져라!”

곽재우의 명령에 고기잡이 그물이 활짝 펴졌다.

그물이 상체를 덮자 리자드맨들은 난폭하게 찢어발겼다.

그러는 사이에 접근한 의병들은 손에 든 병을 던졌다.

화르륵.

심지에 불이 붙었던 병이 깨지면서 안에 있던 내용물이 기름이 몸에 부어지고 곧 불타기 시작했다.

“크아아앗!”

리자드맨들은 괴로워하며 정신없이 손으로 불이 붙은 자리를 감쌌다.

이 틈에 보통 창보다 훨씬 길이가 길고 두꺼운 창대를 함께 든 의병들이 힘을 모아 리자드맨의 복부와 등을 찌르니 꽤 깊은 상처를 주는데 성공했다.

“크워어!”

이때! 리자드맨들 중에서 목에 짐승 뼈와 이빨로 만든 목걸이를 찬 놈이 크게 포효했다.

상호는 놈이 몬스터 코어를 가진 상위 개체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런 놈을 상대로 곽재우가 맞서는 게 아닌가.

“위험합니다!”

상호는 보통 인간의 힘으론 저 리자드맨 투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렇게 외쳤다.

그 목소리가 분명 닿았을 텐데 곽재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리자드맨 투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네 놈의 숨통을 끊어주마.”

“크와아!”

곽재우의 말을 본능적으로 이해한 리자드맨 투사는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움직였다.

순간 충격에 의해 물살이 사방으로 거칠게 일어나고 검은 그림자가 곽재우를 덮쳤다.

그것을 본 상호는 꼼짝없이 곽재우가 죽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슷.

리자드맨 투사에게 덮쳐진 곽재우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진다.

놀랍게도 약 20여 보 떨어진 지점에 붉은 철릭을 입은 곽재우가 멀쩡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야사에서 곽재우가 도를 깨우쳐 임진왜란 당시에 놀라운 재주를 보였고 말년엔 신선이 되어 선계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화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상호였다.

결국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벌써 곽재우 장군은 스킬을 습득한 것이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스스로 몬스터 코어의 정체를 알아내 그 힘을 취한 것이 분명했다.

지금 곽재우가 사용한 스킬은 ‘분신’이었다.

스스슷.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기 힘든 세 명의 곽재우는 리자드맨 투사 앞에 나란히 섰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파악하지 못한 리자드맨 투사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가장 우측에 있는 곽재우를 쳤다.

하지만 창날에 베인 곽재우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크롸라!”

분노한 리자드맨 투사는 창을 반대로 강하게 휘둘러 중앙에 있던 곽재우를 허리부터 베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분신이었고 진짜는 창을 휘두르느라 틈을 보인 리자드맨 투사를 향해 환도를 크게 휘둘렀다.

카가각.

“크윽!”

전력을 다한 베기였지만 단단한 리자드맨 투사의 비늘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분한 표정을 지으며 곽태우는 리자드맨 투사에게서 떨어졌다.

이러한 싸움을 본 상호는 서둘러 곽재우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룡창!”

상호가 날린 ‘수룡창’이 리자드맨 투사의 등을 노렸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자신을 향한 공격을 알아챈 리자드맨 투사는 몸을 비켰다.

급소를 노린 공격이 빗겨났지만 팔뚝에 상처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칫! 실패했나.”

상호는 한 번 더 ‘수룡창’을 늪지의 물을 이용해 만들어냈다.

이를 본 리자드맨 투사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울부짖었다.

“카아아앗!”

그리고는 상대하던 곽재우나 상호를 향해 덤벼들지 않고 곧장 늪지의 억새풀 사이로 곧장 달려갔다.

이에 호응하듯 여태까지 의병들과 싸우던 리자드맨들 역시 일제히 후퇴하는데 아주 재빨랐다.

상호는 도망치는 리자드맨들을 향해 만들어둔 ‘수룡창’을 날렸다. 하지만 억새풀 사이로 날아간 공격은 애꿎은 수면만 강타해 물기둥만 만들 뿐이었다.

“일단 물러나 준 건가.”

공격이 실패한 것을 알았지만 상호는 리자드맨을 쫓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렇게 무사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뭣보다 곽재우가 어떻게 스킬을 얻었는지 그것부터 알고 싶었다.

이런 점에서 곽재우 또한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척!

“방금 전에 물을 조종한 그 힘, 도대체 어디서 얻은 것이냐.”

"잠, 잠시만.“

다짜고짜 환도를 목에 들이미는 곽재우를 향해 상호는 두 손을 들어 보여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곽재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인은 요괴 토벌의 전권을 분조를 이끄시는 세자 저하에게 받은 토포사요.”

“토포사라고?”

뜻밖의 말에 곽재우는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던 상호는 계속해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실은 제가 이곳에 온 것도 장군을 만나 협력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장군께서는 이미 몬스터, 아니 요괴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신 것 같군요.”

“그러는 자네도 그 힘을 지닌 것 같은데.”

“예.”

서로 간에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 대화를 하기는 여러모로 곤란했다.

상호는 물 위에 반쯤 떠있는 몇 마리의 리자드맨 시체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물가 밖으로 옮겨지는 의병들의 한 번 본 다음 이와 같이 말했다.

“피차간에 할 얘기는 많겠지만 여기 일을 수습하고 차차 대화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네. 단 자네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으니 입장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우리 쪽의 구속을 받아들여야 하네.”

“상관없습니다. 다만 제 동료들이 다른 곳에 있기에 그들에게 연통을 줄 수 있게 저기 있는 친구는 보내주십시오.”

상호는 다른 곳으로 간 일행에게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노유명을 가리키며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곽재우는 신중하게 생각하더니 곧 대답을 내놨다.

“그리 하게.”

“감사합니다.”

상호는 허락을 받고 지금까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조용히, 하지만 은연중에 언제든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던 노유명에게 자신의 지시를 전하였다.

“난 이들과 함께 가서 대화를 할 예정이야. 자네는 돌아가서 일행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대기할 수 있도록 해.”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이쪽 일은 걱정 안 해도 돼. 오히려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행될 것 같으니 우리 쪽으로선 호재라고 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노유명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하고는 주변을 둘러싼 의병들 사이로 걸어 나갔다.

곽재우와 그를 따르는 수백여 명의 의병들은 우포늪의 북쪽에 있는 산자락 아래에 주둔지를 두고 있었다.

눈을 천으로 가리고 무기를 모두 압수당한 채로 이곳에 오게 된 상호는 나무 사이로 쳐진 볼품없는 군막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풀어줘라.”

“네.”

곽재우의 말에 지금까지 상호의 팔을 꽉 붙잡고 있던 사내가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곧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풀려졌다.

햇빛이 없는 곳이라 곧바로 시력을 회복한 상호는 앞에 양반다리로 앉은 곽재우를 보았다.

“우선 자리에 앉게.”

처음 대화할 때처럼 경계에 찬 말투가 아닌 손님을 대하듯 말하는 곽재우는 말해왔다.

이에 상호는 시키는 대로 자리에 똑같이 양반 다리로 앉고 곽재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상호였다.

“제 신분은 이제 입증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네의 소지품에서 세자 저하의 친필 서신과 신분패를 보았네.”

상호가 정말로 세자의 명을 받은 요괴 토포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곽재우의 태도가 정중해진 것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전 요괴 토벌에 장군의 조력을 바라고자 장군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요괴를 처단하고 얻을 수 있는 보옥에서 신통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드리려 했지요. 한데 이미 장군께서는 그 방법을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요괴가 가진 구슬이 신비한 능력을 준다는 것은 나도 최근에야 알았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곽재우는 의령 지방에서 한미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 지내던 중에 부산이 함락되고 왜군이 북상하는 상황을 알자마자 지인들과 사람들을 모아 최초로 의병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고작 수십여 명의 인원으로 사람들을 피난시키고 무기와 물자를 모은 후에 소규모로 약탈을 벌이는 왜군과 대적하였고 정암진에서 큰 승리를 거둬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이후로 경상우도 일대에서 유격전과 기만전술로 왜군을 농락하며 창녕과 영산 현을 일시적으로 탈환하기도 했다.

이렇듯 왜군을 상대로 공을 세우는 한 편, 곽재우의 의병 부대는 경상우도에 출현한 몬스터들과도 싸웠다.

곽재우가 몬스터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7월 초순 도움을 청하는 피난민을 만나고부터였다.

“산으로 피난을 갔던 백성들이 처음 보는 괴물들에게 공격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가만있을 수 없었네.”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향했던 그곳에서 곽재우가 마주친 것은 수십 마리에 달하는 고블린들이었다.

사투 끝에 고블린들을 처치하는데 성공했지만 피해도 컸다.

특히 요술을 쓰는 우두머리 격의 고블린에게 당한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괴물들이 도처에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왜군도 왜군이지만 산으로 숨어들어간 피난민들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여 곽재우는 잠시 왜군을 상대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자신의 의병 부대를 이끌어 몬스터들을 토벌해갔다.

이런 와중에 계속해서 신통력을 발휘하는 개체들을 마주치게 되었고 그들과 일반 몬스터의 차이점을 알기 위해 조사를 한 끝에 몬스터 코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애먹었지만 우연히 색깔이 다른 하나의 보옥에서만 반응을 이끌어내 능력을 얻을 수 있었네.”

“분신 능력 말씀이시군요.”

“놀랍게도 저절로 그 능력을 쓰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더군.”

어떤 능력을 올릴지 생각을 해야 하는 <붉은색 코어>와 다르게 <푸른색 코어>는 스킬의 능력을 바로 흡수해 자각하여 쓸 수 있으니 사전 정보가 없이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신’ 능력을 아까 싸움에서처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려면 상당한 숙련이 요구된다. 즉, 힘을 적극적으로 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조선의 양반인 곽재우가 그런 마음을 먹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곽재우는 능력을 얻고 난 뒤에 자신의 심경을 얘기해주었다.

“처음에는 유교의 도리에 반하는 사특한 능력을 얻은 것에 대해 비통해했었네.”

“······.”

“하지만 백성들을 구하고 내 부하들의 희생을 줄이는데 이 힘이 아주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지.”

“말씀대로 이 힘은 이 난세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차례는 상호 쪽으로 넘어왔다.

상호는 곽재우에게 자신이 온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곽재우는 입을 열었다.

“나 또한 경상도 지방에 나타난 요괴들을 하루라도 빨리 뿌리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네.”

“도울 게 있다면 뭐든지 돕도록 하겠습니다.”

상호의 대답에 곽재우는 긴 곰방대 끝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한 번 뿜어냈다.

연기에 눈살이 찡그러졌지만 그렇다고 상호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가 이곳에 머물면서 요괴를 토벌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네.”

“어째서 입니까?”

“왜군들이 대대적으로 진주성 쪽으로 모여들고 있네. 아마도 다시 한 번 전라도를 노리고 있는 것이겠지.”

진주성이라는 단어에 상호는 잠시 움찔해하였다.

곧 얼마 안 있으면 삼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 대첩’이 치러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이었다.

“사실 진작 이곳을 떠나 진주성으로 가야했지만 그 괴물 놈을 두고 떠날 수가 없어 차일피일 하고 있던 차였네.”

“그 괴물이라고 하시면?”

“이곳 우포늪에는 절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할 괴물이 있네."

지금 말한 괴물이 리자드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체 이곳 우포늪에 무엇이 있기에 중요한 요충지인 진주성에 수만의 왜군이 몰려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곳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지 그 이유가 사뭇 궁금해지는 상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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