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63화 (63/127)

十三장. 홍의장군. (1)

모든 준비를 끝내고 상호는 일행과 함께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우선 왜군 점령지가 된 경상도 지방에서 활동 중인 곽재우 장군의 의병 부대를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

‘홍의장군 곽재우라,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의병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구나.’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장기로 임진왜란 초중반에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우게 되는 곽재우를 만난다는 것은 상호에게 있어 꽤나 기대되는 일이었다.

광해군과 만났던 안성 땅에 출발해 청주를 지나 무주를 거쳐 고령까지 향했다.

이 여정은 빈 말로도 평안하다고 할 수 없었다.

왜군의 점령지 내였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을 피하여 일부러 산과 들을 지나야 해 노상에서 노숙을 빈번하게 해야만 했다.

더욱이 점차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 인근까지 활동하게 된 여러 몬스터와도 의도치 않게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크워!”

“수룡시!”

달려오는 오크를 향해 수룡시를 날리는 상호.

상호의 능력이 강해지면서 그에 맞춰 수룡시의 관통력도 커져 일격에 오크의 육중한 몸을 관통했다.

“하아앗!”

포스를 씌운 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오크들 사이를 누비는 율.

그녀가 지나간 뒤로 오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카가각!

“취이익!”

“허업!”

도끼와 검을 맞댄 상태에 있던 임충이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힘을 준다.

그러자 오크가 내민 도끼는 힘에 밀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오크가 더욱 힘을 주는 그 순간!

임충은 검에 실었던 힘을 빼면서 동시에 옆으로 몸을 빼냈다.

푸확!

앞으로 넘어지는 오크의 옆구리를 깊숙이 베어내는 임충이었다.

이렇듯 이미 능력자이면서 또 몬스터와 싸움에 익숙한 세 사람은 오크들을 쉽게 처치해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몬스터와의 전투가 처음인 네 사람은 의외로 잘 싸워주고 있었다.

“오메.”

떡쇠는 자신을 향해 달려든 두 마리의 오크를 각각 겨드랑이에 끼고 팔에 힘을 주었다.

능력을 받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2단계 근력에 필적하는 괴력을 과시하니 목이 졸린 오크들은 그대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아이고!”

반면 싸움에 능하지 못한 역관 조인환은 무장으로 지닌 활을 쏠 정신도 없이 오크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기 바빴다.

이런 그를 상호와 임충이 나름 챙기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등을 돌리고 자기들의 본거지로 도망치는 오크들을 뒤쫓지를 못했다.

팍! 투캉!

도망치는 오크들이 갑자기 큰 동작으로 땅에 나자빠진다.

“도망치게 두게 할 수는 없제.”

오석견은 돌멩이를 천에 담은 다음에 빙빙 크게 돌리고는 그대로 돌팔매질을 했다.

조그마한 돌도 아니고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돌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또 한 번 정확히 오크 머리통에 적중했다.

이렇게 도망가던 오크들까지 모두 쓰러뜨리고 싸움은 끝났다.

상호는 쓰러진 오크들을 보다가 내내 싸움에서 보이지 않았던 노유명을 찾았다.

“저기 있었나.”

어디서 뭐하고 있었나 싶었더니 피 묻은 칼을 들고 쓰러진 오크 대여섯 마리 사이로 노유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싸움에 정신이 팔려 몰랐지만 노유명은 사각지대로 접근하던 오크들을 혼자서 상대해 전부 쓰러뜨렸던 것이다.

이를 안 상호는 노유명이란 남자는 새삼 달리 보게 되었다.

‘임충이나 율도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여기에 코어의 능력까지 더해지면 무시무시한 실력자가 되겠는 걸.’

정말이지 검계라는 범죄 집단 출신만 아니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한 사람을 빼면 모두 충분한 전력감이라는 것을 이동 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전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기량을 알아가며 곽재우 장군이 활동 중인 창녕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서 곽재우를 바로 만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이 지역은 왜군의 점령지이기 때문에 의병들은 밤낮 가릴 것 없이 숨어 지내기 때문이다.

해서 일행을 나눠 인근 주민들에게 정보를 모으게 했다.

“왜군의 감시를 피해 지속적으로 본거지를 바꾸고 있어 이곳 사람들도 의병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답니다.”

“주민들과도 접촉을 피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것이···몇몇 자들이 왜군의 편에 부역하여 정보를 흘리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끄응, 그렇군요.”

살기 위해서 혹은 한 몫 챙기기 위해 민족과 나라를 저버리고 왜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들을 순왜라고 하는데 그런 자들이 있어 곽재우 부대는 여러 곳을 전전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직접 곽재우 부대가 있을 만한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왜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어디에 은신하고 있을까요?”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제대로 은신하려면 외부와의 접촉이 적은 곳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제가 부대를 이끄는 장수라면 여기 우포늪 근방에 숨어있을 것 같습니다.”

“우포늪인가요?”

가져온 지도에 나온 우포늪은 현대에서도 꽤 유명한 늪지였다.

개간과 발전으로 협소해진 현대의 우포늪보다 규모가 몇 배나 넓은 우포늪은 어지간한 현 하나 크기였다.

그런데다가 전략적 가치가 없고 접근이 불편하기에 왜군도 그 근방엔 찾지 않았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곽재우 부대가 잠깐이라도 그 근방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다른 곳들에 있을 수도 있으니 인원을 쪼개 확인을 하는 게 나을 듯 싶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으니 나눠져서 찾도록 하죠.”

상호는 조인환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행을 셋으로 쪼개 우포늪과 다른 예상 되는 장소 두 곳을 확인하기로 했다.

상호와 함께 우포늪 일대를 확인하러 가는 것은 노유명이었다.

“잘 부탁하지.”

“···네.”

처음으로 율과 임충이 아닌 다른 자와 행동하는 게 살짝 불안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상호는 노유명에 대해 여전히 약간의 의혹을 품고 그를 은연중에 경계하며 우포늪으로 향했다.

방대한 늪지가 조성된 우포늪은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필 안개까지 끼다니.”

아침 일찍 안개가 꽤 자욱하게 끼어 주변의 시야가 좋지 않았다.

질퍽거리는 바닥을 밟으며 주변 주민들이 알려준 군대가 주둔할 만한 우포늪 내의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안개와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갈대 탓에 길을 더듬어 찾아가는 것도 쉬지 않았다.

푸드득.

늪지에서 지내던 물새들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

“쩝.”

조용히 뒤를 따르는 노유명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아무 말도 않고 무작정 걷자니 답답했기에 상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은 무슨 마음으로 날 따라나서기로 한 것이지?”

“딱히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힘을 쓸 수 있는 장소면 그것을 족할 뿐이다.”

“나라를 위해서 어디서든 싸운다는 건가?”

“이 나라 따위를 위해서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앞을 가로막는 억새풀을 손으로 치우며 노유명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상호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 그를 응시했다.

뭔가 숨은 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묻기엔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때, 앞서 가던 노유명이 걸음을 멈췄다.

“뭔가가 온다.”

“뭐라고?”

그 말에 상호는 바로 멈춘 다음에 감각을 확대했다.

안개와 풀 때문에 가려진 시야지만 그 대신 청각이 미세하게 들리는 수면을 밟는 소리를 잡아냈다.

‘나 조차도 알아채지 못한 기척을 먼저 알아챈 건가?’

새삼 또 한 번 노유명의 남다른 재주를 알게 되었다.

아무튼 상호는 뭔가가 온다는 사실에 등 뒤로 찬 검을 뽑아들었다.

‘이 정도의 소리를 내는 것은 꽤나 큰 짐승이나 사람뿐이다.’

늪지 한가운데에 다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낮으니 짐승 아니면 몬스터일 게 분명했다.

어느 쪽이든 위험이 되기엔 방심할 수는 없었다.

기척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한순간 멈췄다.

주변에서 들리는 것은 개구리의 울음소리뿐.

그렇지만 상호나 노유명은 검을 들고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개골!

가까이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한 번 크게 들리던 순간!

억새풀 사이로 창 한 자루가 빠르게 상호를 향해 찔러져왔다.

“큭!”

간발의 차이로 상체를 틀어 창을 피해낸 상호는 억새풀 사이를 거칠게 뚫고 나오는 적을 보게 되었다.

진녹색의 비늘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몸에 꼬리까지 달린 생물, 도마뱀의 머리를 가진 리자드맨은 긴 혓바닥을 쉭쉭 움직이며 창을 거두었다.

“제길! 리자드맨의 서식지였나.”

인근에서 정보를 수집할 때에는 분명 이 근방에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얘기가 없었기에 리자드맨의 출현은 그야말로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채앵!

노유명 역시 다른 리자드맨의 공격을 받았지만 검으로 방어를 해내는데 성공했다.

나타난 리자드맨은 총 세 마리였다.

“카아앗!”

한 놈이 크게 소리를 내자 국부 주위만 겨우 헝겊으로 가린 리자드맨들이 두 사람을 향해 다시금 창을 휘둘러댔다.

첨벙.

발목까지 잠기는 물과 물 속의 진흙 때문에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상호는 날아드는 창을 손에 든 검으로 쳐내며 이렇게 외쳤다.

“안 됐지만 이곳은 너희들에게만 유리한 장소가 아니거든!”

오크보다 조금 더 우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데다가 주서식지가 물가인 리자드맨에겐 우포늪은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하나, 물이 많은 이곳은 상호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싸우기 좋은 장소였다.

“가랏, 수룡시!”

늪의 물을 이용해 만들어낸 수룡시가 일제히 리자드맨들을 향해 쇄도했다.

퍼버벅!

타격을 받고 비틀거리는 리자드맨들.

“역시 비늘 때문에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았나.”

리자드맨의 비늘은 그 자체가 비늘 갑옷 수준의 방어력을 갖고 있어 수룡시의 힘만으론 큰 타격을 주기 어려웠다.

이는 노유명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티잉!

겉에 난 비늘에 의해 검이 튕기자 노유명은 날쌘 움직임으로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고쳤다.

“그렇다면!”

상호는 리자드맨을 상대로 이번엔 보다 강력한 기술인 ‘수룡창’을 날렸다.

바닥의 물이 위로 솟구치고 격렬하게 회전하는 수류의 창이 만들어져 앞으로 세차게 뻗어나갔다.

이를 리자드맨은 막아보려 했지만 앞으로 내민 창대는 간단히 동강나고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렇게 한 마리를 처치한 상호는 핏물이 섞인 수룡창을 그대로 유도해 또 다른 한 마리까지 처치했다.

한편, 노유명은 나머지 리자드맨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첨벙.

찔러오는 창을 피해 낮게 몸을 숙이고 간격을 좁혔다.

노유명의 손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그 손에 들려진 검은 아래서 위로 빠르게 솟구쳐 리자드맨의 턱을 관통했다.

유일하게 비늘이 덮이지 않은 턱 밑을 파고 든 검은 그대로 입 천장까지 들어갔다.

“카아아앗!”

고통에 날뛰려는 리자드맨의 손발을 피해 노유명은 다른 손으로 단도를 들어 왼쪽 눈을 후벼 팠다.

그리고는 박힌 검을 빼내 무방비가 된 리자드맨의 입 속으로 힘껏 검을 재차 박아 넣어 결정타를 날렸다.

나타난 리자드맨들을 모두 쓰러뜨렸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어서 여길 벗어나는 게 좋겠다.”

“······.”

상호의 말에 노유명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침 아침 안개도 거의 사라져갔고 서두르면 늪지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호와 노유명은 서 있던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안개가 걷힌 갈대와 억새풀 사이로 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곳곳에 서 있는 리자드맨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제길, 완전히 포위되었잖아.”

단 둘이서 스무 마리도 넘는 리자드맨을 상대해야 할 상황이다.

아무리 물의 속성력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물가라 해도 승산이 없었다.

피이이잉!

바로 이 때!

하늘 위로 소리를 내는 화살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곧 함성과 함께 한쪽에서부터 무장한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나왔다.

“저들은?!”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을 본 상호.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붉은 철립을 입은 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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